배낭에 담아 온 중국 - 거친 세상으로 나가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주는 특별한 선물
우샹후이 지음, 허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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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년 전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영화가 대만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큰 히트를 쳤다. 대만의 톱스타 주걸륜, 계륜미가 주연인 이 영화는 음악학교를 배경으로 청춘 남녀의 풋풋한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특히 대만의 '음악 천재' 주걸륜이 화려한 테크닉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노 배틀' 신은 인터넷상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었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대만 영화' 하면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나도 그무렵 대만의 대중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말도 모르면서 어렵게 자막을 구해 대만 드라마도 보고, 음악도 듣고, 간혹 쇼프로도 찾아봤다. 그러면서 느낀 건 내가 모르는 게 대만의 언어만이 아니라는 사실.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역사적으로도 관련이 깊은 나라라서 아는 것이 많을 법도 한데 생각 외로 아는 것이 얼마 없었다. 그 중에는 인터넷상에 도는 폄하글에서 비롯된 오해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그 때부터 직접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하고 책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인터넷 검색은 언어의 장벽 때문에 쉽지가 않았고, 대만에 대한 책은 물론이거니와 대만 작가가 쓴 책은 더욱 찾기가 힘들었다.

 

+

 

그래서 <배낭에 담아 온 중국>의 저자 우샹후이가 대만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저자 우샹후이는 대만에서도 손꼽히는 지식인이자 작가, 저널리스트로, 일찍이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대만의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를 비판하는 <대입시험을 거부한 소년>이라는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최근에는 아시아인의 관점에서 유럽 3국 -핀란드, 아일랜드, 노르웨이-을 여행하고 쓴 이른바 '국가 기행 3부작' 시리즈로 화제를 모았고, 이번에는 세 아들과 중국을 여행하는 '부자 기행 3부작'을 출간했다. '부자 기행 3부작' 중 첫 편이 바로 이 책 <배낭에 담아온 중국>인 셈이다. 워낙 외국 여행기를 좋아해서 저자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 찾아보았는데, 아쉽게도 <배낭에 담아온 중국>이 이 분이 쓴 책으로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인 것 같다. 이 책이 화제가 되고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면 다른 책도 국내에 소개가 되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제발......!!!)


저자는 아들 셋을 모두 독립시키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아들과 중국을 종단하는 '졸업 여행'을 계획했다. <배낭에 담아온 중국>에 등장하는 아들은 그 중 첫째 아들로,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전공이 나랑 비슷해서 그런지 관심사나 말할 때 쓰는 용어, 현상을 보는 관점이 나랑 비슷했다. 그래서 저자의 가르침이 더욱 와닿았던 것 같다. 특히 앞부분에서 저자가 아들에게 던진 "중국도 모르면서 어떻게 제대로 된 세계관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니?" 라는 말은 내 마음을 죽비처럼 내리쳤다. 대학 때 중국에 관한 수업도 여러번 듣고 중국어도 배워보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때 힘들어도 계속 중국에 대해 배우고 중국어를 공부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진작 공부할 걸! 게다가 책에 등장하는 도시 중에는 이미 내가 다녀온 곳도 몇 곳 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 멋모르고 친구를 따라갔던 중국 여행. 놀기 바빠서 몰랐는데, 그 때 내가 갔던 중국의 유적들이 이런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을 줄이야! 자책하는 나를 보며 동생은 '그렇게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 아니냐'고 했지만, '지금 아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책제목이 간절하게 다가왔다.

 

각 장은 저자인 아버지의 관찰과 감상,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의 글로 미루어 봤을 때 두 사람은 여행하면서 유쾌한 일보다는 불쾌한 일을 더 많이 겪은 것 같았다. 중국은 경제 수준은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낙후된 지역이 많고, 특히 서비스 수준이나 윤리, 준법의식 면에서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했다. 민족 의식이 높은 것에 반해 국민 내부의 감정 - 특히 다른 도시 사람들을 비하하는 경향이 높은 점은 외국인이 보기에도 볼썽사나웠고, 환경오염, 그 중에서도 물 부족으로 인한 고통은 이미 대도시에까지 만연해 있었다. 저자는 중국 내부의 문제가 외부로 폭발하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은 대만이라고 비관적으로 예측했지만, 우리나라도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에 대해 더욱 많이 공부해야 할 것 같다.

  

또한 여행길을 따라 이어지는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의 대화에는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차이가 여실히 묻어났다. 아버지는 2차 대전을 겪은 부모를 두었고, 민주화 이전에 오로지 경제 성장만 강요하고 인권은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았다. 반면 아들은 민주화 이후 물질적, 문화적 혜택을 누리며 살았고, 무조건적인 성장보다는 환경, 인권 등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세대다. 유복하지만 여유가 없고, 똑똑하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이 얼마 없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하지만 전보다 경쟁이 더 치열해진 글로벌 시대에, 아버지 세대가 남긴 수많은 과오와 짐을 떠안을 아들 세대가 안쓰럽기도 하다고 고백했다. 저자의 아들은 외국에서 오랫동안 유학을 하고 명문대를 졸업한 인재인데도, 저자가 아들과 동세대인 상하이 '개미족'을 보며 아들을 떠올린 것처럼 나는 나와 내 또래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들 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원하는 모습에 맞추어져 키워졌지만, 시대는 이제 아버지 세대가 살던 시대가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대견한 아들을 더 가엾게 보는 것 같기도 했다. 

 

++

 

나는 가족이 함께 썼거나, 부모가 자식을 위해 쓴 책이나 글은 '믿고 보는' 편이다. 가족이 함께 썼는데, 더군다나 부모가 자식을 위해 쓴 책인데 허술할 리가 없고, 거짓된 내용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싶었다. 중국의 역사와 정치, 경제를 아우르는 내용도 좋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특히 아버지가 아들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더욱 좋았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사업가를 꿈꾸는 둘째 아들과는 어떤 여행을 했는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부디 2권, 3권이 차례대로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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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물건 -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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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TV가 너무 좋아서 방송국에 취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TV를 일주일에 십 분도 채 안 보게 되었고, 이러다가는 TV가 없어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대신 인터넷으로 미국과 일본 방송을 본다는 게 함정...) 그런데 요즘은 TV를 꽤 본다. 주로 버라이어티. 일단 일요일에는 시즌2로 바뀐 <1박 2일>을 꼭 본다. 그 전엔 한번도 안 봤는데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방사수는 못하지만 다시보기 서비스로 <힐링캠프>를 챙겨본다. 이효리 편도 좋았고, 최근에 방영된 법륜스님, 정대세 선수 편도 좋았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편이 바로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님 편. 전부터 매체를 통해서 자주 성함을 듣기는 했지만 어떤 분인지는 잘 몰랐는데, 이 방송을 통해 살아오신 얘기도 듣고, 한국사회, 한국 남자들에 대한 파격적이면서도 통찰력있는 견해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방송을 보자마자 바로 교수님의 책 두 권 <남자의 물건>과 <노는 만큼 성공한다>를 구입했다. 두 권 다 좋았지만, 같이 읽은 동생도 더 재밌다고 한 <남자의 물건>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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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하려고 산다. 재미있으려고 산다. 한국 사회에는 행복과 재미를 이야기하면 한 급 아래로 내려다보는 어쭙잖은 어숙주의가 존재한다. 자유, 민주, 평등과 같은 가치를 이야기하면 폼 나 보인다. 그러나 자유, 민주, 평등은 수단적 가치다. 행복과 재미는 궁극적 가치다. 물론 수단적 가치가 확보되어야 궁극적 가치를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자유, 평등, 민주라는 조건이 이뤄진다고 자동적으로 사는 게 행복하고 재미있어지는 것이 아니다. (p.33)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남자의 물건'에 관한 책이다. 이어령, 신영복, 차범근, 문재인, 안성기, 조영남, 김문수, 유영구, 이왈종, 박범신 등 이 시대를 대표하는 중장년층 남성 명사 10인이 아끼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 물건을 통해 그 사람의 인생과 성격 등을 알아보는, 이른바 '물건을 통해 매개된 존재의 스토리텔링' (p.8)이라고 할 수 있다.

 

물건이라고 해도 대부분 대량생산된 똑같은 '제품'들인데 어떻게 소유자의 개성과 인격을 나타낼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대량생산된 제품 중에서도 사람마다 고르는 물건은 제각각이다. 내가 자주 들르는 커뮤니티에는 가방이나 지갑, 필통에 담긴 소소한 소지품을 공개하는 게시판이 있다. 이 곳만 보아도 사람의 취향과 개성이 전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꽃무늬에 집착하고, 어떤 사람은 특정 브랜드 제품만 구입한다. 유난히 분홍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노톤의 물건만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뭐, 명사들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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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남녀 차이를 '상자'와 '책상'으로 비교해 설명한다. 여자의 물건은 대부분 '상자'다. 상자는 여자의 자궁 같은 것이다. 생명을 잉태해 시간을 소유하는 것처럼, 여자는 상자 안에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보석을 담는다.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남자는 시간을 소유하는 대신 공간을 정복하려 한다. 그래서 옛날 남자들은 달리는 말에 그토록 집착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금전적 여유가 조금만 생기면 남자들은 자동차 전시장을 기웃댄다. 보다 빠르고 폼 나는 차를 타고 달리는 만큼 그 공간이 자기 것이 된다는 환상 때문이다. (pp.164-5)

 

책에 소개된 명사들의 물건들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을 몇 가지 소개해 본다. 먼저 이어령의 책상. 공부하는 사람한테 책상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나한테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께서 열심히 번 돈으로 사주신 책상이 첫 책상이었다. 원목으로 된 아주 좋은 책상이었는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몸이 커지는 바람에 사촌동생에게 물려주었다. 지금 쓰는 책상은 고등학교 때 구입했다. 아주 튼튼하고 널찍하지만 방에 비해 너무 커서 조금 작은 것으로 바꿀까 몇 번을 고민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어령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책상이라는 것은 '끝도 없는 광활한 지식의 영토를 달릴' 때 필요한 준마 같은 것이라고 하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말아야겠다.

 

 

+

 

삶이란 목적을 사는 게 아니라, 과정을 사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목적이 중요하다. 그러나 목적에 의해 과정이 생략된 삶을 사는 것처럼 불행한 삶이 없다. 군대 간 이들은 제대 날짜만 생각한다. 유학 떠난 이들은 학위 따는 날만 기다린다. 언젠가는 제대하고, 언젠가는 학위를 딴다. 그러나 제대 날짜를 기다리고, 학위 따는 날을 기다리며 지나간 내 젊은 날은 과연 내 삶이 아니란 이야긴가? 그렇게 제대하면 뭐하고, 그렇게 학위를 따면 뭐하는가. 그 사이에 '우리 기쁜 젊은 날'은 맥없이 사라져버리는데. (p.187)

 

"감옥에 있을 때도 꼭 미운 사람이 하나는 있어요. ... 그래서 그 사람이 출소하잖아요? 나가면 그날 저녁은 참 행복해요. ... 그런데 며칠 있으면 또 그런 사람이 생겨나요. ... 그러면서 깨달았지요. 그 사람에게 물론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이 환경이 그런 대상을 필요로 하는구나." (pp.190-1)

 

신영복 교수님 인터뷰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 세상에는 미워하는 마음이 참 많다. 남을 미워하고, 조직을 미워하고, 제도를 미워하고, 사회를 미워하고... 나도 마찬가지다. 누가 밉기도 하고, 현실이 밉기도 하고, 남이 미운 얘기하는 얘기도 밉다. 그런데 신영복 교수님 말씀을 읽고 미움이라는 게 누가 나한테 그런 마음이 들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원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마음에 미움이 없다면 미운 사람이 있어도 밉지 않을텐데. 나는 특히 남이 남을 미워하는 얘길 듣는 게 참 싫다. 어머니가 가족들을, 지인들을, 하다 못해 개까지 밉다고 하는 얘길 들으면 내 마음에 미움이 일어나는 것 같아서 힘들고 괴롭다. 근데 어쩌면 그게 어머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내 마음에도 미움이 있기 때문에 더 힘들고 괴로운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이 마음을, 미움을 어떻게 풀면 좋을까. 신영복 교수님은 서예를 하시면서 마음을 다스린다고 하시는데, 나한테는 어떤 처방이 좋을까.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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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놓고 보니 진지한 내용만 있는 것 같은데, 차범근, 안성기 인터뷰도 굉장히 재밌고, 문재인, 김문수 인터뷰도 (인터뷰 자체가 재미있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김정운 교수님의 해석이 참 재밌었다. 차범근 감독님은 사실 내가 아주 어릴 때 현역으로 활동한 분이고 감독으로 데뷔하신 이후의 모습만 본터라 전성기에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하셨는지 잘 몰랐는데 이 책을 읽고 확실히 알았다. 안성기 님도 배우로만 봐왔는데 미술에 조예가 깊다고 하셔서 신선했다. 온 국민이 인정하는 '국민 배우'가 겨우 5천원짜리 캔버스를 산다고 아내에게 타박을 듣는 대목도 재밌었다

 

이렇게 책 내용을 다시 떠올려보니 책 앞머리에 여자에게는 화장품, 가방, 옷, 구두 같은 소중한 물건들이 많이 있지만 남자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대목이 새롭게 다가온다. 왜 여자들한테는 화장품이나 옷 같은, 외모를 꾸미는 데에 필요한 물건들만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반론도 반론이지만, 그것들을 빼면 과연 여자들에게는 어떤 소중한 물건들이 있을까,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 음, 나한테는 책, 추억의 물건들이 담긴 상자, 딱 이 두 가지뿐인데, 이 둘로 어떻게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두고두고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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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남자의 물건>과 <노는 만큼 성공한다>를 연달아 읽고나니 다른 저서들도 읽어보고 싶어져서 냉큼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남자가 아니라도 <남자의 물건>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이 책도 여자, 심지어는(?) 결혼 안 한 여자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한다. 이렇게 이전 저서들을 다 읽을 쯤이면 이 책의 후속편 내지는 김정운 교수님의 다음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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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찔한 경성 - 여섯 가지 풍경에서 찾아낸 근대 조선인들의 욕망과 사생활
김병희 외 지음, 한성환 외 엮음 / 꿈결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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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면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적 상황 때문에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부터 들기 쉽다. 그래도 최근에는 당시에 최신 유행을 선도하며 고급 문화를 향유했던 모던걸, 모던보이 등이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다뤄지기도 하고 당시를 배경으로 한 팩션이 유행을 하기도 하며 새롭게 관심을 가져보려는 움직임이 있기도 했지만, 근현대사 하면 여전히 강화도조약에서 국권 침탈, 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는 가슴 아픈 역사가 떠올라 알기를 주저하고, 외면하는 사람도 적지않다.  

 

그런 사람이라도, 이 책 <이토록 아찔한 경성>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뀔 것 같다. <이토록 아찔한 경성>은 OBS 특별기획 <세상을 움직이는 역사>에 소개된 내용 중 광고, 대중음악, 사법제도, 문화재, 미디어, 철도 등 여섯 개의 테마를 담은 책으로, 근대 조선인들에게도 현대인들과 똑같은 욕망과 사생활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책이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시대가 어렵고, 나라 잃은 민중들이라고 해도 먹고, 자고, 노래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은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문명과 기술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것을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은 더 커졌을지 모른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광고. 근대 광고는 1876년 개항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광고 품목은 다방, 담배, 음료, 맥주, 이유식 등 다양하다. 인쇄 품질이나 디자인, 폰트도 조악하고, 지금 보기엔 낯설고 유치한 문구도 있지만, 포지셔닝, PPL 등 현대 광고에도 쓰이는 기법이 쓰인 것도 있고, 지금 광고와도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의 광고도 있어서 놀라웠다. 이런 광고들을 보고 있자니 그 때 사람들도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상품에 호기심을 느끼고, 열광하는, 똑같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김병희 교수는 이 당시 광고에 대해 '남이 이야기한 것들을 보고 모방만 하는, 주체적 욕망이 아니라 모방으로서의 욕망'이라고 표현했는데(p.49) 조선인이 만들고, 조선인이 원하는 물건이 아닌 일본 기업이 파는, 일제에 종속된 2등, 3등 민족으로서 일본인에 가까워지기 위해 필요로 했던 상품이라... 이런 '식민지적 근대성'에서 비롯된 광고들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당시의 광고들을 보니 마냥 재밌고 놀랍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1부 광고 편에 이어지는 2부는 흔히 '트로트'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성인 가요의 역사에 관한 내용이다. 이전까지 농악이나 민요만 불렀던 조선 민중들이 일본의 엔카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과, 엔카가 우리나라의 트로트로 뿌리내리는 과정, 그리고 트로트가 일제강점기에만 해도 경성의 모던보이, 모던걸이 향유하는 고급 문화였던 반면 1960년대 이후에는 성인가요로 분류되며 가요의 주류가 아닌 하위장르의 하나가 되는 과정 등등 평소 잘 몰랐던 내용이 나와서 재미있었다.

 

3부 사법제도 편을 지나 4부 문화재 편 <지켜낸 문화재, 지키지 못한 문화재>는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분인 간송 전형필 선생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대학교 3학년 때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지금 시세로 약 6천억 원)으로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유출되는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여 남긴 분이다. 이 분이 안 계셨으면 국보 제 70호 <훈민정음 혜례본>,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 국보 제 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우리나라의 국보급 문화재들을 해외에 유출했거나 소실했을 것이다.

 

선생의 거간꾼 중 한 명이 정선의 <해악전신첩>을 얻기까지의 이야기를 읽는데 안타까움을 넘어 속에서 열이 났다. 거간꾼이 일제 시대의 유명한 친일파 중 한 명인 송병준의 집을 찾아갔는데 마침 그 집의 하인이 정선의 화첩을 불쏘시개로 쓰려고 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화첩을 받았고, 거간꾼이 이 사정을 선생에게 말하고 선생이 화첩을 매입하려고 하자 송병준의 자손은 장작 값이나 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선의 작품이 한낱 불쏘시개로 사라질 뻔했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지만, 정선의 작품을 알아볼 줄도 모르는 수준 낮은 사람들이 조선을 일제의 손에 넘겼다는 생각을 하니 분통이 터졌다. 그러나 간송 선생은 '이런 귀한 물건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며 높은 값을 쳐주었다고 한다. 이런 에피소드만 보아도 선생의 고매한 인격과 나라사랑 정신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이토록 아찔한 경성>은 근대 조선인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점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근대사가 일본 제국주의에 빚지지 않고,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5부와 6부에서 이어지는 미디어와 철도에 관한 내용만 보아도,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기 이전부터 우리나라에는 자생적으로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일제와 현재 일본의 우파는 지금까지도 일제 침략이 조선 근대화에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근대사가 마냥 암울하고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부분이 있었고, 그런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선조들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내용이 책보다 먼저 방송을 통해 만들어져 2년간 100회 남짓 방영되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이토록 아찔한 경성>.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경성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라는, 오래된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준, 아주 고마운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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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등 블로그마케팅 서비스 위드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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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맺기의 심리학 -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박대령 지음 / 소울메이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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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심리 서적을 읽었다. 제목은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관계 맺기의 심리학>. 사랑을 주는 만큼 받지 못해서, 또는 사랑을 받고 싶은만큼 받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많이 실려있다. 임상 사례 위주로 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았고,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심리 서적을 읽으면 나 자신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어서 참 좋다. 막연하게 '나는 이렇다', '그 사람은 이렇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글자로 정리되고, 이론으로 설명되는 것을 보면 재밌다.

 

사람과 사람 사이ㅡ 관계라는 것. 참 어렵다. 모든 관계가 어렵고 힘들지만, 가장 어려울 때가 내가 상대를 생각하고 아끼는만큼 상대가 나를 생각하고 아껴주지 않을 때가 아닌가 싶다. 가족 간의 관계도 그렇고, 연애 문제도 그렇고, 친구도, 사회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는 것만큼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데에서 오는 결핍. 그것이 굳어지면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상처받은 사람'이라는 주제가 너무 포괄적이라서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연애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 '가족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 '사회 생활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 '자기 자신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 등 좀 더 구체화한 내용으로 후속작이 나온다면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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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 아름다운 공존을 위한 다문화 이야기
SBS 스페셜 제작팀 지음 / 꿈결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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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kbsn에서 방영하는 <엠블랙의 헬로베이비>라는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전에는 소녀시대, 샤이니 등 아이돌 그룹이 몇 주에 걸쳐 아이를 키우는, 과거 <g.o.d.의 육아일기> 같은 방송이었는데, 이번 시즌에는 다영, 레오, 로렌이라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과 생활하는 컨셉으로 바뀌었다. 이 방송을 보면서 다문화가정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거나 배운 점이 참 많다. 1화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나라 현재 전체 혼인의 11%가 국제혼인이라는 것. 즉, 결혼을 하는 열 쌍 중 한 쌍 이상이 국제결혼이라는 사실이 특히 놀라웠다. 농촌이나 공장이 많은 지역에서는 외국인 신부나 외국인 노동자 비율이 더 높아서 다문화가정의 비율이 훨씬 높을 것이다.

 

그리고 다문화 가정이든 한국인 가정이든, 아이들은 똑같이 순수하고 예쁘다는 것. 피부색이 조금 다르고, 외국어 이름을 가지기는 했지만, 세 아이들 모두 부모님이 둘 다 한국인인 가정의 아이들과 똑같이 뽀로로에 열광하고, 우리말도 잘 하고, '곰세마리' 같은 동요를 예쁘게 부르고, 장난감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이 아이들 보는 재미에 방송도 재밌게 보고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 이 예쁜 아이들이 한국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면서 살 수 있을까? 몇 년 전 모 도시에서 교육 봉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중에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참 착하고 예쁜 아이였다. 하지만 피부색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들 사이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듯 보였고, 부모님, 특히 외국에서 온 어머니가 아이를 많이 걱정하셨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게 그 아이 인생에 걸림돌이 될까봐 말이다. 헬로베이비에 나오는 아이들도 살면서 은연중에라도 그런 일을 겪게 될까봐 걱정이고 안타깝다.

 

생각해보면 학교 다닐 때 어떤 아이가 피부색이 조금만 까매도, 조금만 하얘도 다른 나라 사람이냐며 놀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부모님이 두 분 다 한국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피부색을 가지고 놀렸다. 그런데 부모님이 정말 외국에서 오신 분이라서, 정말 피부색이 달라서 놀림을 받으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SBS스페셜 제작팀이 만든 <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라는 책을 읽으면서 다문화가정, 다문화사회 문제에 대한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봤다. 이 책은 SBS스페셜에서 2006년,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제작, 방영한 다문화에 관한 다큐멘터리에 기반한 책으로, 외국인근로자와 가족, 귀화 외국인, 중간입국자녀, 다문화가정 청소년 등 한국사회를 이루는 당당한 구성원들인 다문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있게 풀어냈다. 

 

이 책은 다문화 이웃들이 한국사회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간략하게 제시한 다음 이러한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분석했다. 제작진은 가장 큰 원인으로 한국인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단일민족의 신화' 를 지적했다. 어릴 때부터, 특히 학교에서 그토록 많이 들었던 '단일민족', '한겨레' 같은 말들...  음악 시간에도 '우리는 한 겨레다', '단군의 자손이다' 같은 가사가 들어있는 노래를 참 많이도 불렀다. 하지만 이 말이 다문화 이웃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을뿐만 아니라, 단일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신화(myth)이고 허구라고 한다. 원 침략기에 국난극복을 위해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로부터 한민족은 단군으로부터 이어져내려온 단일민족이라는 사상이 생겨났고, 일제침략기에 일제의 단일민족론에 맞서기 위한 이데올로기로서 한민족의 단일민족 신화가 강화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게다가 국사 시간에 배웠듯이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주변 국가들과 교류도 많이 했고, 외침도 잦았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한민족이 단일 혈통을 공유한다고 믿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런 단일민족 신화가 극도에 다다르면 민족우월주의, 순혈주의, 자민족중심주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니 더 큰일이다. 국제 뉴스를 보면 이민자나 외국인 차별 문제로 인한 테러, 범죄 소식을 심심찮게 듣을 수 있다. 한국 내 이민자나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심해질 경우 향후 몇 년 안에 이런 사건사고가 우리나라에서 벌어지지 않는다는 법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단일민족의 신화가 한국 땅에 사는 수많은 다문화 이웃들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이다. 같은 우리말을 쓰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데도 얼굴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 받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아이돌 그룹만 봐도, 외국에서 살다 와서 우리말도 잘 못하고 한국 문화도 잘 모르지만 얼굴은 한국사람인 '해외파' 멤버는 그룹마다 한두명씩 있지만, 피부색이 아예 다른 외국인, 또는 한국말도 잘 하고 한국문화는 잘 아는  다문화 가정 출신인 멤버는 아직 없다. (2pm의 닉쿤이나 missA의 지아, 페이 등은 외모만으로는 우리나라 사람과 구별이 잘 안 되는만큼 예외적인 케이스인것 같다.)

 

  

 

 

우리나라 전통 탈을 보면 피부색이 전부 똑같지 않다. 어느 탈은 하얗고, 어느 탈은 누렇고, 빨갛고, 까맣다. 전에는 그저 재밌게 만들다보니 저런 색을 칠했나보다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느낌이 전혀 다르다. 그 때부터 이미 조상들은 피부색이 달라도, 부모님의 국적이 달라도 다 같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걸 아셨던 모양이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에서 한국사람이 차별 받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 한국 땅에서 외국인이 차별 받은 얘기는 못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얘기가 되지 않을만큼 무관심하고 무시했던 게 아닐까 싶다. 수면 위에 오르지도 못할 정도로, 한국에 사는 외국인 문제는 바닥 깊이 있었던 것이다.

 

열 쌍 중 한 쌍 꼴로 국제 결혼을 하고, 다문화 가정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지금. 한국 땅에 사는 사람은 모두 똑같은 피부색에, 똑같이 우리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이 책에 소개된 다문화 이웃들 - 영광이, 주디스씨, 소띠하, 다니엘, 대영이네 3남매 등-을 보면서 부모님이 두 분 다 한국사람이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보다도 한국을 더 사랑하고 한국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만큼 나도 이 사람들에 대해, 한국사회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문화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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