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고전강독 3 -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진정한 행복을 묻다 공병호의 고전강독 3
공병호 지음 / 해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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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인가, 서울 모 처에서 열린 공병호 소장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때가 마침 대학 졸업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는데, 그 강연에서 공병호 소장님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며 많은 자극을 받았다. 청중들의 질문에 정성스럽게 답해주시는 모습,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하시면서 즐거워하시는 모습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귀감으로 남아있다. 그 때 그 소장님의 모습을 보며 언제나 겸허하게 살고, 마음 먹은 일은 포기하지 말고 꼭 이뤄내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들었던 앞으로의 계획 중에 고전을 바탕으로 하는 책을 쓰고 싶다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나는데, 아마도 '공병호의 고전 강독' 시리즈가 그 결실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책을 받았을 때 가슴이 무척 설렜다. 계획한 일은 반드시 실현시키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책 한 권이지만 한 사람의 오랜 꿈이 실현된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책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고, 책을 대하는 마음이 경건해졌다. 그 때 이런 책을 구상하고 계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내심 어떤 책으로 완성이 될까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어 왠지 운명 같은(!) 기분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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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째를 맞이한 '공병호의 고전강독' 시리즈는 1,2부에서는 서양 철학 사상의 원류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다뤘고, 이번 3부에서는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메인이다. 고전강독이라는 제목 답게 각 챕터마다 원전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번역본이 먼저 제시되고 그에 대한 저자의 풀이와 견해가 해설처럼 덧붙여진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자기계발서라기보다는 인문서, 철학서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고전 번역본만 보면 낯선 어휘도 있고 딱딱한 개념이 많이 등장하는 데다가, 추상적인 문장이 많아서 어려웠다. 하지만 저자의 해설 부분은 저자가 직접 겪었거나 주변에서 관찰한 경험담, 사례도 나오고, 현대어로 쉽게 풀이가 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쉬웠다. 이렇게 읽으면 어려운 고전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고전강독 시리즈가 계속 나온다면 고전이 한결 친숙하게 느껴질 것 같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들 니코마코스를 위해 쓴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재미있게도 저자 역시 이 책에 아들과의 애틋한 추억이 담겨있다고 한다. 저자의 막내 아들이 군입대를 하고나서 저자는 아들이 떠나고 없는 방에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그 책이 바로 '니코마코스 윤리학'이었다. 마침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기도 했지만, 아들이 학교에서 이 책을 공부하면서 여백에 메모를 하기도 하고, 밑줄을 그은 부분을 보니 마치 입대한 아들과 대화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고, 저자는 입대한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고대와 현대의 두 부자(父子)가 같은 책 한 권을 통해 교감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니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렇게 읽게 된 이 책에서 저자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윤리학'이라는 제목만 보면 이 책이 윤리나 도덕에 관한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직접 저자가 읽어보니 요즘 말하는 '자기계발서'의 고전이라고 봐도 좋을만큼 개인의 행복과 성공에 관한 이야기로 풀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술한 수많은 책 중에서 이 책을 이번 시리즈의 주제로 선정했고, '행복과 성공에 관한 인류 최고의 고전'으로 이 책을 평가한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고대 그리스의 인물인 아리스토텔레스가 현대의 자기계발서의 고전을 제시했다는 저자의 주장이 이해가 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 역시 책을 읽어보니 먼 옛날 고대 그리스에서 쓰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자기계발서를 연상시키는 구절들이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인간의 모든 행위와 선택은 결국 행복을 향한 것이다, 행복을 위해서는 탁월성을 갖춰야 한다, 탁월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한다 등 현대 자기계발서라고 해도 감쪽 같이 속을 만한 경구들을 보며 역시 기본적인 원칙과 철학은 시대를 관통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자기계발서의 창시자로 일컫는 사람이 미국의 데일 카네기인데, 최근에 읽은 책들을 보면 그는 결국 자본주의, 산업시대에 한정된 자기계발서를 쓴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특정 시대, 특정 상황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의 도리와 역할에 관한 근본적인 해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근래에 나온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깊이와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고대의 사상가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인간에게 있어 더없이 중요한 것은 행복,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충분히 활용하며 사는 것이었지만, 요즘 나오는 자기계발서를 보면 그저 직장에서 성공하고, 돈 많이 벌고,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서 필요한 팁만 제시된 것도 많다. 인생에는 물질적인 풍요나 남과 비교해서 얻어지는 우월감보다 중요한 것이 많은데 현대인들은 그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고전을 읽고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공병호의 고전강독' 역시 그런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으로서, 자기계발을 위해, 성공을 위해 먼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는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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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 읽고보니 미처 못 읽은 공병호의 고전강독 1,2, 그리고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여름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과 교감하는 시간이 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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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사회 - 솔깃해서 위태로운 소문의 심리학
니콜라스 디폰조 지음, 곽윤정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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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루머를 듣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루머사회>를 읽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모 방송 프로그램에 여배우 고소영 씨가 출연해서 몇 년 전 악성 루머로 인해 심적인 고통을 겪었다고 털어놔 화제가 되었다. 또 지난 주말에는 모 걸그룹에 관한 루머로 인터넷이 뜨겁게 달궈졌었다. 연예계 루머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 접하는 루머도 참 많다. 회사 상황이 실은 어떻다더라, 어느 부서 누구와 누구가 그렇고 그런 관계라더라, 이웃집 누구 엄마가 어떻고, 친구 누가 어떻고 등등...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또 아무리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일단 한번 루머를 들으면 신경이 쓰이고 더 알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인터넷이나 커뮤니티 게시판 같은 데서 이니셜 루머를 접할 때마다, 그닥 궁금하지 않은데도 이니셜의 주인공이 누군지 검색해보고 싶어지고, 스캔들이나 루머에 빠삭한 친구나 지인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참, 이런 루머에 대한 관심만 좀 끊었어도 내 생활이 더 윤택해질 수 있었을텐데... 쩝쩝...

 

이 책의 저자 니콜라스 디폰조는 자타공인 세계최고의 루머 전문가라고 한다. 심리학에 다양한 분야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루머에 관심을 가진 학자가 있다는 사실이 일단 신기했다. 이 책에는 저자가 루머 전문가로서 루머가 어떻게 만들어는지부터 루머의 다양한 종류 - 소문, 뒷담화, 도시괴담 등 -, 그리고 사람들이 루머에 열광하는 이유, 루머를 통제하는 방법 등 루머에 관해 연구하고 분석한 내용이 총망라 되어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사람들이 루머에 열광하는 이유에 관한 저자의 분석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사람들이 루머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불안감' 때문이다. 진실을 알기 전까지 불안한 상태에 있는 것보다는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뜬 소문을 믿는 것이 사람들한테는 훨씬 안정적인 상태라고 한다. 예를 들어 회사 사정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회사가 곧 구조조정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어떻게든 대비를 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으로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 즉 소문에 좌지우지 되다보면 정작 자기가 가장 하고 싶고, 자기한테 가장 중요한 일은 놓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보면 소문이라는 것이 그저 뜬소문, 스캔들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내 인생, 내 생활과도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요즘은 루머가 스캔들이나 연예계 가십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마케팅, PR 수단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특히 요즘은 인터넷, 스마트폰을 통해 SNS서비스가 보급 되면서 이런 서비스를 통해 기업의 제품을 홍보하는 버즈 마케팅, 입소문 마케팅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마케팅 방법은 입소문이 역사가 깊은 마케팅 수단인 것은 사실이고, 잘만 사용하면 제품이나 서비스의 좋은 점을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또 저비용으로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을 수 있다. 하지만 모 회사 제품은 쓰면 안 되는 위험한 원료를 쓴다더라, 모 회사는 특정 정치 성향을 지녔다더라 등등 악성 루머인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실제로 세계적인 몇몇 기업은 특정 인종, 특정 종교를 후원한다는 루머에 오랫동안 시달리기도 했고, 잘못 알려진 소문으로 인해 잘 만들어진 제품이 소비자들로부터 오해를 받고 외면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기업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루머를 제대로 이해하고,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고보면 세상에는 루머에 휘둘리는 사람과 루머를 휘두르는 사람, 이렇게 두 부류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루머를 휘두르는 사람은 아니고, 루머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신하... 고 싶지만 루머에 휘둘리는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좋게 사용하면 약도 될 수 있지만, 나쁘게 사용하면 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발 없는 말을 천 리 가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루머다. <루머사회>를 읽으며 나는 오늘도 루머에 휘둘렸는지, 아니면 루머를 휘둘렀는지, 앞으로 루머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등등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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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어나 어디로 향할 것인가 - 문제는 정책이다
스테판 에셀 & 에드가 모랭 지음, 장소미 옮김 / 푸른숲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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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작년 이맘 때 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를 읽었다. 그는 청년 시절 나치에 대항한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일원이었으며, 전후에는 1948년 발표된 '세계인권선언' 작성에 기여했다. 이런 그의 이력은 살아있는 현대사나 다름없다. 그런 그가 보기에 21세기 프랑스, 그리고 전 세계의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분노하라>라는,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가진 글을 썼고, 이 글이 담긴 책은 이 분야의 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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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자는 여전히 분노할 것이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이번 분노의 대상은 바로 '세계화'. 문명은 원래 어느 한 곳에 정체하지 않고 흘러다니며 확산되는 속성을 가졌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교통, 기술의 발전과 탈냉전 등으로 인해 세계는 전례 없는 속도로 연결되고 있다. 세계화의 장점, 물론 있다. 하지만 생태계 파괴, 금융 투기, 국수주의 등 부작용도 낳았다. 또한 이 세계화라는 것은 세계 각국의 문화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서구의, 그것도 미국 한 나라의 스타일로 획일화 된다는 점도 문제다.


자국 문화를 수호하는 데 어느 나라보다도 열심인 프랑스도 이 세계화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테러, 실업난으로 인한 소요 등 몇몇 굵직한 소식들은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졌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농촌공동화, 다문화 가정 문제, 청년실업난 등 프랑스와 똑같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이데올로기 행세를 하는 경제자유주의는 실패한 시스템임이 밝혀졌다. 자유방임은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풍요보다는 빈곤을 초래했다. 경제자유주의 시스템 하의 세계화, 개발, 서구화(똑같은 현상의 세 가지 이름)는 인류의 사활이 걸린 문제들을 다루기에 역부족임이 드러났다. (p.14)

 

저자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르네상스'를 제시한다. 암흑의 시대로 불리는 중세가 르네상스를 맞아 종식되었던 것처럼, 지금의 혼란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바로 르네상스, 즉 새로운 문화의 출현이라고 보았다. 군사, 경제 같은 '딱딱한(hard)' 이슈들을 어떻게 문화 같은 '부드러운(soft)'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이 나오지 않은 점은 아쉽다. 하지만 군사적 위기, 경제적 혼란 속에서도 문화적 파워를 바탕으로 미국이 아직까지는 세계 1위 국가로 건재한 것을 보면 문화의 힘은 생각보다 질기고 강한 것 같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이미 그 자체로도 여타의 학문과 과목들 사이에서 구획화된 상황에서, 이 두 학문 사이의 소통 불능은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인문학은 과거의 작품들을 되살리고, 자연과학은 현재의 학문에 가치를 부여한다. ... 그런데 현재는 인문학이라는 분쇄기가 자연과학의 살아 있는 알갱이를 받아들여 분쇄하고 곱씹는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이 두 문화 사이를 가르는 경계선에는 사실 사회과학이 자리하고 있으나, 사회과학은 두 문화 사이에서 연락선 역할을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실정이다. (p.65)

 

또한 저자는 인문학을 부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을 보니 '유럽의 지성'이라고 불리던 프랑스도 우리나라처럼 '인문학의 위기'를 겪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 본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도 현재 실업난으로 인해 최고교육기관에서 인문학, 사회과학 전공으로 졸업한 사람들이 정규직 취업을 못하고 인턴, 파트타임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저자의 말대로 인문학은 자연과학 같은 실용적 학문을 '분쇄하고 곱씹으며'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여러 방면으로 시너지 효과를 많이 낼 수 있는 학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돈 못 벌고 고루한 학문으로 전락해버린 것 같다. 아니, 학문이라는 것, 배움이라는 것 자체가 무언가 당장 결과를 내지 못하고, 돈으로 바꿀 수 없으면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 같다. 이런 세태에 대한 저자의 쓴소리가 더욱 가슴에 사무친다.

 

저자는 경제적, 사회적인 여유만을 추구하는 웰빙 대신 심리적, 도덕적, 정신적 웰빙도 함께 추구하는 '웰리빙'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침 최근에 읽은 책에서 보니 경제적인 소득이 낮을수록 값이 싸지만 영양가는 낮은 인스턴트 음식을 주로 먹고, 소득이 높을수록 영양가가 높고 몸에도 좋은 유기농 식품을 먹는다고 했다. 이 고소득자들 중에는 싸구려 음식을 대량 생산하는 제조업체, 이런 음식을 유통하는 유통업체에 다니는 임직원들도 있을터. 싼 인스턴트 음식을 사먹을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의 건강과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유기농 음식을 사먹는 이런 시스템이 과연 옳은 것일까? 저자의 짦은 문장 한 줄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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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와 마찬가지로 이 책도 두께가 매우 얇다. 하지만 한 줄 한 줄의 임팩트가 세고, 내가 살고 있는 나라와 이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찌는 듯이 더운 이 여름, 가슴 속에도 무언가 세상을 향해 뜨겁게 분출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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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왜 부조리한가 - 경제학.철학.통계학.정치학으로 풀어낸 법의 모순
레오 카츠 지음, 이주만 옮김, 금태섭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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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로스쿨 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도 어느새 몇 년이 흘렀다. 몇 년 전 로스쿨을 도입한 목적 중 하나는 법학 이외에도 다양한 전공 출신의 법관을 양성하여 법 적용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함인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그 목적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로스쿨 제도에 있어 선배격인 미국을 보면 그 목적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 최초로 하버드 법학대학원 석좌교수로 임명되어 화제가 되었던 석지영 교수를 예로 들어볼까. 석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발레를 배우고, 10대 때 발레리나의 꿈을 포기한 후로도 음악을 공부하고 대학에서는 문학을 전공하는 등 법학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보이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로스쿨에 진학, 검사로 재직한 뒤 하버드로부터 교수로 임명받았고, 현재는 자신의 과거 전공을살려 법과 예술을 접목한 새로운 연구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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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왜 부조리한가>의 저자 레오 카츠도 로스쿨 제도의 수혜를 입은 인물이다. 학부는 물론 석사 전공까지 경제학인 저자는 (그것도 경제학으로 매우 유명한 시카고 대학!) 로스쿨 진학 후 재판연구원과 변호사를 거쳐, 현재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로스쿨 교수로 재직하며 법학과 경제학을 접목하는 연구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저자는 주로 법학의 수수께끼, 난제, 모순점 등 실질적인 법 집행보다는 법의 논리를 비롯한 법학의 본질적인 부분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저자의 연구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학부 전공인 경제학을 비롯하여 정치학, 통계학, 철학 등 다른 학문을 이용하여 법의 허점을 치밀하게 파고들었다. 똑똑한 사람들만 모이기로 유명한 법의 세계에서, 그들의 머리를 짜내 만든 법학에 어떤 허점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순환론이다. 순환론은 경제학과 정치학 전공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투표의 역설, 애로의 정리, 사회선택이론 등을 통해 나온 이론인데,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 여러 개가 모여 사회적인 차원으로 커졌을 때는 전혀 다른, 비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주장이 맞물리는 법정에서, 더군다나 다수결 원칙을 따르는 배심원제를 택하고 있는 미국 법정에서 이 같은 순환론으로 인한 오류는 크게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을 집행보다 전 단계인 법의 정립, 법의 연구 단계에서부터 법학자들이 많은 고민을 하고 최대한 지혜로운 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려운 학술 용어는 가급적 피하고 다양한 사례를 활용했다. 앨, 클로이, 베아라는 가상의 인물이 나오는 사례는 책에 내내 등장한다. 이 밖에도 고용인이 자발적으로 유독물질을 사용하는 것에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에 걸렸을 때 고용주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오염물질을 배출할 권리를 사고 파는 것은 옳은가(탄소배출권), 환자가 자발적으로 죽음에 동의했을 때 의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안락사) 등 이미 사회적으로 여러 차례 거론된 이슈도 나온다.

 

이런 이슈들은 언뜻 보기에 법(계약)과 경제(계산)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애초에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학과 경제학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학문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저자가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인간의 존엄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법과 경제는 엄연히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절대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런 절대적인 영역은 계약과 계산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인데, 법만 아는 법학자, 경제만 아는 경제학자들은 이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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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전공자라서 케네스 애로의 이론을 비롯하여 사회적 선택, 후생함수, 파레토최적 같은 용어들이 친숙하게 다가왔다. 법학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법 하면 늘 어렵게만 느껴지고 공포 비슷한 것까지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아는 경제학 지식을 활용하여 법에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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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 북미 최후의 인디언이 천 년을 넘어 전한 마지막 지혜
위베르 망시옹.스테파니 벨랑제 지음, 권지현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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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사랑하지 않는 그들을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반값 도서로 나온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고 있다. 저 가진 것도 얼마 없으면서 한 번 만나고 그만일 나그네를 위해 먹을 것, 입을 것을 내어주는 인도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소유'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전보다 가진 것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만큼 가지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지금 가지고 있는 옷도 충분히 많은데 매 시즌마다, 아니 모임 약속이 잡힐 때마다, 일이 생길 때마다, 심하게는 즐겨 찾는 쇼핑몰의 신상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위시리스트 - '가지고 싶은' 옷의 목록이 늘어나는 건 왜일까. 이쯤되면 정말 필요해서, 가 아니라 그저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요, 채워도 채워도 차지 않을 소유욕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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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의 저자 위베르 망시옹과 스테파니 벨랑제는 바로 이런 탐욕의 시대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이 책을 집필한 것 같다. 망시옹은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고, 벨랑제는 항공사에서 승무원으로 근무했으며 퀘벡 TV 방송국에서 제작하는 '로프트 스토리'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력만 보아서는 물질 문명의 가장 중심에서 살아온 것 같은 두 사람이지만, 망시옹이 직접 북미대륙의 최북단인 북퀘벡에 가서 그곳에 사는 인디언 '크리족'에 관한 기록을 시작하면서 삶의 방향이 크게 바뀌었다. 망시옹은 <몬트리올에서 살아남은 유럽인들>, <최후의 자유, 치부가모에 대해서> 등 인디언 관련 서적을 연이어 발표하며 인디언 연구를 이어가고 있고, 벨랑제는 크리족의 오랜 전통과 지혜의 정수를 망시옹에게 들려주며 함께 집필하고 있다. 

 

사물들이 맺고 있는 현재의 관계를 살피는 데 집중하다 보면 당연히 자유의 개념도 바뀐다. 세상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나 역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내 행동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훨씬 많아지게 된다.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처럼 원주민들은 행동 하나하나가 전체 환경에 즉각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살아 있는 생물뿐만 아니라 무생물도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사냥감도 죽었든 살았든 존중해서 다뤄야 한다. 돌, 물, 산도 섣불리 대해서는 안 딘다. 모든 것이 균형이고, 관계이며 조화이기 때문이다. (p.49)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크리족에 대해 경의를 표현할 목적으로 집필된 이 책은 인디언 관련 서적 중 단연 최고의 학술적 가치를 지닌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크리족에 대한 인류학적 조사는 물론, 그들의 삶으로부터 현대인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지혜까지 무엇 하나 빼놓지 않은 책이다. 물질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크리족의 삶은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정치, 문화적인 수준도 낮아 보이지만, 정말 그럴까? 저자가 직접 크리족과 살며 그들의 삶을 관찰한 바에 따르면, 현대인들이 돈과 자본을 추구하느라 놓치고 있는 진정한 행복과 마음의 안정, 건강, 영적인 성장과 치유 등 인간으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끽하고 있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들이라고 한다. 

 

미디어는 전 세계에 사랑이라는 한 가지 표상을 전파했고, 그것은 우리의 집단무의식을 지배한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미디어가 규정한 최고의 사랑은 로맨틱하고 관능적이다. 그러다 보니 그런 사랑의 감정을 알지 못하는 민족은 사랑이라는 걸 모르나 보다, 하고 성급한 결론을 내린다. 어떤 슬라브족 노부인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영화 속 주인공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며서 영화와 같은 상황에 처해보지 못했으니 자신은 남편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구나. 하고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영화에 등장하는 신경질적인 여자 주인공들보다 더 많은 사랑을 탐험했을 것이다. (pp.160-1)

 

그렇다면 현대인들은 왜 물질적인 혜택은 누리면서도 정신적으로, 영적으로는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나는 책에서도 지적한 '미디어'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서, 현대의 소유는 결국 내가 진정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보다는, 남이 가진 것을 보고, TV 드라마나 광고 속 연예인이 가진 것을 보고 부럽고 탐이 나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그러다보니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가지게 되고, 그만큼 자원이, 물과 공기 같은 자연이 쓸데 없이 소비되고, 그러면 결국 그 영향이 나에게로 돌아와서 몸에 병이나거나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 때문일까?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로 시작하는 인디언들의 시가 더욱 애달프고 절절하게 들리는 것은. 저자들이 물질 문명의 한 가운데에서 살면서도 크리족의 삶을 동경하여 그들의 지혜를 구한 것이 괜한 일이 아니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후에야,

마지막 남은 물고기가 잡힌 후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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