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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과학 - 위대한 석학 16인이 말하는 뇌, 기억, 성격, 그리고 행복의 비밀 ㅣ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1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이한음 옮김 / 와이즈베리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몇 달 전 카렌 호른이 쓴 <지식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경제학자 10인을 심층 인터뷰한 책으로, 제법 두꺼운 책인데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폴 새뮤얼슨, 애로, 뷰캐넌, 솔로 같은 이름을 되뇌이며 학부에서 경제학을 복수전공한 보람이 있다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
이번에 스티븐 핑커의 <마음의 과학>을 읽고 개인적으로 전에 읽은 <지식의 탄생> 때와 비슷한 감동을 느꼈다. 출판사가 같고, 책 편집이나 구성이 비슷해서 그 때의 감정을 또 다시 느낀 것도 있겠지만, 단 한 권의 책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들의 학문에 관한 속깊은 이야기를 듣는 경험은 TV나 영화와는 또 다른 감동을 주는 것 같다.
다만 <지식의 탄생>에 나오는 학자들이 모두 노벨 경제학상 수상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던 반면, 이 책에 등장하는 16인의 석학들은 <엣지 재단(Edge foundation Inc)>에 속하는 인물들이라는 점이 다르다. <엣지 재단>은 1996년 존 브록만에 의해 출범한 비공식 모임으로 각 분야의 핵심에 있는 과학자, 철학자, 예술가, 기술자, 사업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 나는 정말 이런 조직이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마음도 들고, 여러 분야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비공식 모임이라는 말에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템플 기사단 같은 느낌도 들었다.)
엣지의 회원으로 활동하는 지식인으로는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 <언어 본능>의 스티븐 핑커, <총,균,쇠>의 재레드 다이아몬드, <생각의 지도>의 리처드 니스벳, <몰입의 즐거움>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생각에 관한 생각>의 대니얼 카너먼, 긍정심리학의 선구자 마틴 셀러그먼 등이 있다. 한분 한분 현재 학계에서나 출판계에서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분들이라서 이분들이 모두 엣지의 회원이라는 사실이 놀랍고, 그만큼 엣지 재단이라는 모임이 대단한 모임이라는 것을 알겠다.
엣지 재단이 만든 엣지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마음의 과학>은 '마음'에 초점을 맞추었다. 엣지 회원들은 이론심리학, 인지과학, 신경과학, 신경생물학, 언어학, 행동유전학, 도덕심리학 등 서로 다른 배경과 전공분야를 반영하여 뇌, 기억, 성격, 그리고 행복에 관한 이야기들을 총 16편의 글로 펴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여러 학문을 아우르는 일종의 지식 세미나로 볼 수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최재천 교수는 이 책을 일컬어 '통섭의 불꽃이 튄다'는 표현을 하셨다는데 정말 그렇다.
나는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심리학자들의 글을 특히 주의 깊게 읽었는데, 출생순서와 성격의 관계를 주로 연구하는 학자인 프랭크 설로웨이의 '성격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악명 높은 스탠퍼드 감옥 실험의 주인공 필립 짐바르도의 '당신은 식초 통에 든 단 오이가 될 수 없다',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의 '성선택과 마음', 긍정심리학'의 창시자 마틴 셀리그먼의 '에우다이모니아 : 좋은 삶', 자폐증을 주로 연구하는 사이먼 배런코언의 '동류교배 이론' 등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학부 시절 여러 수업을 통해 들은 사례라서 학문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실험인지 알고 있는데, (스탠퍼드 감옥 실험 : 실제 감옥을 흉내낸 공간에서 실험에 참가한 평범한 대학생들에게 임의로 죄수와 간수의 역할을 주었는데 36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본래 인격을 잃고 각자의 역할에 몰입하여 욕설과 폭력, 급기야 고문 등의 행위를 저지름. 익명화, 탈개인화된 상태에서는 착한 사람도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실험.) 이 실험을 기획한 필립 짐바르도로부터 실험을 창안한 의도와 당시 상황, 그 이후의 진행 경과 등을 알 수 있어서 뜻깊었다.
이 실험을 생각하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선천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다가도 상황에 따라, 역할에 따라 너무나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믿게 된다. 그의 글 제목처럼 식초 통에서 나 홀로 단 맛이 나는 오이가 될 수는 없다. 단 맛이 나는 오이가 되려면 힘들어도 단 맛을 내는 통으로 옮겨가야 할 것이다. (아니면 식초 통에서 신 맛이 나는 오이로 살던가...)
독서의 계절, 학문의 계절 가을. 이 책을 읽으니 독서 수준도, 학문의 스펙트럼도 레벨이 한 단계 업된 기분이 든다. 앞으로 엣지 재단에서 또 어떤 책을 낼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