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늑대들 2, 회색 도시를 지나 웅진 모두의 그림책 38
전이수.김나윤 지음 / 웅진주니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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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으로 인해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학교나 학원에 못 가니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줄고, 집 근처 놀이터에서 놀 때조차 마스크를 써야 하니 얼마나 답답할까. 그런 아이들에게 읽히고픈 그림책을 만났다. SBS <영재발굴단>에 최연소 동화작가로 소개된 전이수 작가와 어머니 김나윤이 함께 만든 <걸어가는 늑대들 2, 회색 도시를 지나>이다. 


책을 펼치면 어두운 회색 빛깔의 건물들로 가득한 도시가 나온다. 건물들은 높아도 너무 높아서, 보여야 할 파란 하늘은 보이지 않고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다. 건물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도 하나같이 어두운 회색 빛깔이다. 건물 안의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 '빛이 나는 네모난 상자'를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때 마누라는 소년이 나타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떠들어 대는 유하라는 소년을 소개한다. 늑대들은 유하와 함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들은 대체 어디로 향하는 걸까. 


유하를 만나기 전까지, 늑대들은 다른 세계의 존재를 몰랐다. 회색 도시에 사는 사람들 또한 그곳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걷고 또 걸은 그 길 끝에는,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자연과 탁 트인 바다가 있었다. 어쩌면 이 책에 나오는 것과 똑같은 회색 도시에 사는 우리들도 또 다른 세계의 존재를 모른 채 그저 현실에만 안주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빛이 나는 네모난 상자'를 들여다보느라 더 아름답고 더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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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2-0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자라니 그림책을 더 이상 안보게 되었는데 키치님 리뷰로라도 이렇게 그림책을 보니 좋네요. ^^

키치 2021-02-03 10:54   좋아요 0 | URL
좋아해주시니 저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
 
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 - 먹고 마시는 유럽 유랑기
문정훈 지음, 장준우 사진 / 상상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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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내로라하는 '식신(食神)'들은 어떻게 여행할까.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이자 푸드비즈니스랩 소장 문정훈이 글을 쓰고, 셰프 겸 푸드라이터로 활동하는 장준우가 사진을 찍은 책 <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에 그 답이 나온다.

음식 산업을 연구하는 문정훈 교수는 국내외 가리지 않고 어딜 가든 주로 시골을 찾는다. 도시에도 좋은 음식, 좋은 식당이 많이 있지만, 그 나라, 그 지역의 먹거리, 식문화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은 단연 시골이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저자는 파리나 마르세유, 리옹 같은 대도시보다 시골을 선호한다. 이 책에는 프랑스 중동부에 위치한 부르고뉴 지방의 마콩, 브레스, 코트 도르와 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프로방스 지방의 론 강 남부, 프로방스 알프스, 프로방스 지중해 지방을 저자가 직접 여행하고 먹고 마시며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음식은 브레스 토종닭, 정확히는 오븐에 익힌 토종닭에서 나온 닭기름이다. 닭고기도 아니고 닭기름이 별미라니?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브레스 닭이 품고 있다가 이제 더는 품지 못하겠다며 놓아버린 육즙"에 빵을 찍어 먹다가 너무 맛있어서 큰 빵 하나를 해치우고 또 해치우고 또 해치우고... 이제까지 닭 요리라면 치킨, 삼계탕, 닭볶음탕, 찜닭, 닭갈비 등등 다양하게 먹어봤고 또 엄청난 양을 먹어봤지만, 닭기름에 빵을 찍어 먹어본 적은 없고, 그 맛이 과연 치킨이나 삼계탕을 뛰어넘을지 의문이기에 어떤 맛일지 참 궁금하다.

프랑스 시골 하면 와인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는 전국 각지에 포도밭이 있고, 포도밭마다 고유한 개성과 특징이 있다. 이러한 개성과 특징은 와인에도 반영되어 각각의 독창적인 맛과 향으로 나타난다. 혹시라도 와인이 좋아서 프랑스 시골 여행을 하게 된다면 포도밭의 흙을 유심히 보거나 직접 만져보길 바란다. 흙의 질감을 느끼고 난 다음에 마시는 와인은 더욱 생생하고 특별할 테니. 참고로 저자가 강추하는 와인은 부르고뉴의 뫼르소 와인이다. 20만 원짜리 옷은 못 사도, 20만 원짜리 뫼르소 와인은 기꺼이 살 수 있을 정도. 이 또한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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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9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0 0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처한 클래식 수업 4 - 헨델, 멈출 수 없는 노래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4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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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와 헨델은 같은 해(1685년) 같은 나라(독일)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둘의 생애와 음악 스타일은 전혀 달랐다. 바흐는 고향 주변의 좁은 지역을 무대로 활동한 반면, 헨델은 독일은 물론이고 이탈리아, 영국 등을 누비며 활동했다. 바흐는 평생 두 번 결혼해 열세 명의 자식을 보았고, 헨델은 단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다. 음악적으로는 둘 다 종교에 기반하지만, 바흐는 주로 교회 예배 때 쓰일 음악을 작곡한 반면, 헨델은 왕 앞에서 선보일 연주곡이나 오페라를 작곡했다. 요약하자면, 바흐가 성실하고 모범적인 가장의 삶을, 헨델은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셀럽의 삶을 살았달까. 


그러다 보니 헨델의 생애에는 왕이나 대공 같은 높은 신분의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독일 하노버 공국과 영국 왕실 사이에서 벌어진 소동이다. 헨델은 원래 하노버 공국의 악장이었는데, 런던에서의 인기가 높아지자 영국 왕실의 초대를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잠시 머물다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런던에서 하는 공연마다 큰 성공을 거두자 영국 왕실에서 헨델을 놓아주지 않았고 헨델도 하노버 공국으로 돌아갈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이때 영국의 앤 여왕이 급사하고, 하필 하노버 공국의 게오르크 루트비히 선제후가 영국의 왕 조지 1세로 즉위했다. 자신을 미워할 게 분명한 조지 1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만든 음악이 헨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수상 음악>이라고. 


바흐가 사후로부터 한참 지나서야 주목을 얻고 인정받은 것과 달리, 헨델은 생전에도 사후에도 한결같이 최고의 음악가로 인정받았다. 특히 오페라 분야에서 그렇다. 헨델은 평생 50여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 시절 오페라는 오늘날의 영화나 뮤지컬처럼 음악, 미술, 연극, 패션 등 다양한 예술 분야가 한데 어우러진 종합 예술로서 큰 인기를 누렸다. 헨델의 오페라 하면 영화 <파리넬리>에 삽입되어 유명해진 아리아 <울게 하소서> (조수미가 부른 버전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가 포함된 <리날도>가 유명하고, 최근에는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에 배경음악으로 삽입해 화제가 된 <로델린다>도 잘 알려져 있다. 


헨델은 '여성은 노래할 수 없다'는 금기를 깬 인물로도 유명하다. 중세 때부터 교회에서는 "모든 교회 공동체의 집회에서 여자들은 침묵해야 한다."라는 성서의 구절을 근거로 여성의 노래를 금지했다. 이로 인해 고음 성부를 부르게 할 목적으로 변성기 이전의 남자아이를 거세해 '카스트라토'로 만드는 문화가 오랫동안 있었고, 이 문화의 폐단은 영화 <파리넬리>에도 잘 나온다. 헨델은 이런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게 실력 있는 여성 소프라노를 적극 기용했고, 그 결과 여성 음악가의 지위도 높이고 자신의 작품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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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클래식 수업 3 - 바흐, 세상을 품은 예술의 수도사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3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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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시리즈물'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 서울대 작곡과 민은기 교수님이 쓰신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이다. 모차르트, 베토벤에 이어 이번에는 바흐 편을 읽었는데, '음악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왜 맞고 틀린 지부터(바흐는 그렇다 쳐도 헨델은 왜 '음악의 어머니일까? 둘이 부부도 아닌데) 바흐의 전 생애와 음악적 특징, 음악사에서 가지는 위치 등에 대해 체계적이고도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무척 유익했다. 


바흐는 음악의 역사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위상을 지니는 예술가이지만, 정작 바흐 자신은 스스로를 예술가로 인식하지는 않은 것 같고, 주위 사람들로부터도 그런 식의 대접을 받지는 않은 것 같다. 대대로 음악가를 배출해온 집안에서 태어난 바흐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형의 집에서 자랐다. 십 대 시절에 교회 연주자로 취직해 이후에도 주로 교회에서 봉직한 바흐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기보다는 종교인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바흐는 음악을 하나님이 창조한 우주의 신비한 원리를 소리로 표현하고 죄 많은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일종의 수단으로 여겼다. 


그래서일까. 종교를 가지지 않았는데도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주변이 신성해 보인다. 인간이 만든 음악이라기보다는 자연의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소리를 조화롭게 배치한 것 같다. 어쩌면 이는 바흐의 작곡 방식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바흐의 대표곡 중 하나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기독교의 '삼위일체' 개념을 구현한 작품이다. 변주곡들의 첫 음을 살펴보면 3번 변주곡은 1도 간격, 6번 변주곡은 2도 간격 하는 식으로 차례차례 간격이 멀어져 27번 변주에 이르면 9도 간격까지 멀어진다. 언뜻 보면 수학을 응용한 것 같기도 한데, 수학 역시 단순한 질서로 우주의 원리를 규명하는 학문이므로 음악과 무관하지 않다. 


바흐가 오늘날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멘델스존의 공이다. 1829년, 당시 떠오르는 신예 음악가로 한창 주목받고 있던 멘델스존이 베를린 징 아카데미에서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초연한 것이다. 멘델스존은 <마태 수난곡> 악보를 할머니에게 선물 받았는데, 그전까지 이 곡은 극소수의 음악계 인사들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만약 멘델스존의 할머니가 멘델스존에게 바흐의 악보를 선물하지 않았다면, 멘델스존이 바흐의 악보가 지닌 가치를 몰라봤다면, 음악의 역사는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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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일인입니다 - 전쟁과 역사와 죄의식에 대하여
노라 크루크 지음, 권진아 옮김 / 엘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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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요 며칠 동안 전쟁 이후의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달아 읽었다. 첫 번째 책은 독일 출신의 작가 노라 크루크의 그래픽 노블 <나는 독일인입니다>이다. 1977년생인 저자는 68혁명 이후 독일에서 이루어진 교육개혁의 첫 수혜자다. 이 교육개혁을 통해 독일의 젊은 세대들은 그들의 조부모 또는 부모 세대가 국가의 발전이나 민족의 중흥 같은 명분 아래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구별짓고 통제하고 배척하고 살육했는지를 상세히 배웠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사랑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강한 일체감을 느끼는 일이 자칫하면 얼마나 위험한 지경에 치달을 수 있는지 생생한 사례를 통해 배웠다. 


문제는 저자가 미국에 가면서부터다. 학업을 위해 미국에 온 저자는 미국인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안한 태도로 나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것에 놀랐다. 저자와 같은 독일인이라도 전쟁 이전에 이민을 와서, 독일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도 위화감을 느꼈다. 왜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을까. 왜 나는 나의 조국을 사랑해선 안 될까. 고민을 거듭하던 저자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데, 자기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겠는가."라는 생각에 미친다. 그리하여 저자는 그동안 알려고 하지 않았던, 자신의 부모와 조부모, 외조부모의 이력에 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나를 있게 한 나라를 사랑할 수 없으므로, 나를 있게 한 사람들에게 주의를 돌린 것이다. 


가족의 역사를 추적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누구보다 가까운 피붙이인데도 그랬다. 캐묻는 상대가 (저자의) 아버지이거나 작은할아버지이거나 고모이다 보니 때로는 가족으로서 선을 지켜야 해서 입을 다물거나, 때로는 가족이라도 선을 넘어야 해서 얼굴을 붉히는 일이 벌어졌다. 그래도 집요하게 탐문한 결과, 저자는 자신의 가족들이 나치 치하에서 어떤 식으로 생활했는지, (가장 중요한) 나치에 협조를 했는지 안 했는지 등을 알아낼 수 있었다. 만약 나라면 집안 어른들을 상대로 이런 식의 조사를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일제 강점기 때 무엇을 했는지 - 혹은 하지 않았는지 - 묻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종전 후 저자의 할아버지가 나치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준 유대인의 아들 월터와 연락이 닿아 전화 통화를 하는 대목이다. 저자에게 "죄의식 가지지 말아요."라고 말한 월터는 14살 때 어머니가 유대인 수용소로 강제 이송되어 생이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가족의 역사를 알기 전의 저자라면, 죄의식 가지지 말라는 월터의 말에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린 월터에게서 어머니를 빼앗고 힘든 생활을 하게 한(적어도 그런 상태로 내버려 둔) 어른들 중에는 저자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기에, 저자는 쉽게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 못한다. 윤리와 정의 대신 생존과 안락을 택한 할아버지, 할머니 덕분에 지금의 저자가 있기에 모종의 책임을 느낀다. 


월터의 말대로 전후 세대에게는 선조가 저지른 전쟁에 대한 죄의식을 느낄 의무가 없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의무에서 벗어난다면, 실제로 피해를 입었고 여전히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누가 사죄하고 배상해야 할까. 제대로 알지 못하니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으니 책임질 마음도 안 생긴다. 결국 책임은 사랑으로부터, 제대로 된 앎으로부터 비롯됨을, 직접 자신의 가족사를 들추고 캐냄으로써 증명한 저자의 노력과 용기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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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1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1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