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입니다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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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일만, 앞날 일만 생각할 때일수록 그리움은 따뜻하다." <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입니다>는 일본의 에세이스트 겸 만화가 마스다 미리가 자신이 평소에 신경 쓰는 사소한 것들을 짧은 글과 만화로 소개하는 형식의 책이다. 책 초반에 감자 샐러드, 몽블랑, 아이스크림, 달걀 샌드위치 등 음식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 중 하나인 몽블랑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흥미로웠고, 달걀 프라이가 들어간 달걀 샌드위치를 선호한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할 뿐 미니멀리즘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지만 서점에 가면 정리정돈 책 보는 걸 좋아하는 것, 쾌적한 장소에서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을 때면 집 근처 무인양품에 들어간다는 것이 나와 똑같아서 신기했다. 타카라즈카 팬인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뭔가를 열광적으로 좋아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내가 내 장르의 찐덕후인 친구들 보면서 하는 생각이라서 웃겼다('나는 찐덕후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찐덕후라던데...). 


마스다 미리 책답게 옛날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저자는 고등학생 때 동네에 하겐다즈 매장이 처음 생겼고 무인양품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시급이 500엔이라고 해서 놀랐다(참고로 저자는 1969년생이다). 나는 2005년에 대학생이 되어서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시급이 3천 원도 안 되었건만. 80년대에 슈퍼 계산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친구들은 계산기 치는 연습을 열심히 했다는데, 생각해 보면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슈퍼에서 계산기로 물건값을 계산했던 것 같다. 요즘은 슈퍼도 보기 힘든데... 


"아름다운 존재는 거리 곳곳에 있지만 어떤 사람은 "그게, 아름다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은 "어머나, 아름답네"라고 하겠죠. 나는 신호등이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것은 사거리 신호등이 전부 '빨강'이 되는 순간입니다. 파란색으로 바뀌기 전의 한순간. 다양한 사람의 작은 아름다움이 거리에 흩어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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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2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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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만큼이나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도 다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SF 소설집이다. 총 열한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이중 세 편은 '싱귤래리티 3부작'의 프리퀄 격인 '포스트 휴먼 3부작'이라서 한 번에 이어서 읽으면 좋다. 중학생 매디가 이모티콘만으로 이루어진 의문의 채팅 메시지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설인데, 지구상의 똑똑한 사람들의 뇌가 전부 다 인공지능화 되어 '구름(cloud)' 위의 신처럼 기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매우 재미있고 흥미롭다.


중국계 미국인인 켄 리우는 전작 <종이 동물원>에서 동북아시아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소설의 배경 내지는 소재로 차용한 바 있는데,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수리 불곰>은 1907년 자신의 가족을 몰살한 불곰을 잡으러 만주에 간 일본인 박사와 그의 길 안내를 맡은 만주족 아이의 이야기이고, <풀을 묶어서라도, 반지를 물어 와서라도>는 1645년 청나라 군대가 10일 동안 양주성 주민 약 8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양주 대학살을 배경으로 한다. <북두>는 무려 임진왜란이 배경인 이야기라서 한국인 독자들이 상당히 반가워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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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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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일단 같은 문과 출신으로서 저자에게 매우 공감했다. 저자에 따르면 자신이 문과를 택한 이유는 1. 수학을 못해서, 2. 문과 과목을 좋아해서,인데 정확히 나도 그랬다. 수학을 못한다고 해도 노력으로 커버 가능한 성적이라서 문과 전공 중 상대적으로 이과에 가까운 경제학을 택했는데 (복수전공, 부전공으로 온) 수학, 통계학 전공자들을 이기기 어려웠다는 것까지도 완벽히 나의 고등학교~대학교 시절 경험과 일치한다. 이것이 문과 출신 경제학 전공자들의 보편적인 경험일까. (결국 나는 경제학에서 아주 먼 분야로 도망쳤지만...)


이 책은 그동안 역사, 정치, 경제, 글쓰기, 여행 등 인문사회 분야의 책을 주로 집필해 온 저자가 약 10년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읽어온 과학 교양 도서들을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코스모스>, <이기적 유전자>, <침묵의 봄>, <엔드 오브 타임> 등 대중적으로 유명한 과학 교양 도서들을 저자는 어떻게 읽었고, 어떤 점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는지를 설명한다. 어디까지나 '문과 출신'인 저자가 읽은 과학 '도서'에 대한 서술이기 때문에, '이과 출신'의 관점과는 다를 수 있고 과학 자체에 있어 새로운 내용이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칸트, 헤겔, 마르크스, 밀, 카뮈, 포퍼의 철학에 대해서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으면서 갈릴레이,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같은 과학자는 이름 말고는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동안 문과 출신이라는 이유로 문과 중심의 공부와 독서만을 해왔던 것을 반성한다. 저자는 파인만을 인용하며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거만한 바보'가 되지 말고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정직한 바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만한 바보가 많은 세상에선 아무도 상대방의 이론이나 철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며 그만큼 타협과 발전의 가능성은 줄어든다. 반면 정직한 바보가 많은 세상에선 상대방의 이론이나 철학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타협과 발전의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을 집필한 동기에 대해 저자는 '인문학의 질문을 다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저자는 과학 교양 도서를 읽으며 얻은 과학 지식을 통해 첫째로 오래 알았던 역사 이론에 대한 평가를 바꾸었고, 둘째로 난해한 책을 쓴 철학자를 존경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칸트다. 저자는 대학 시절 철학 과목 수업에서 칸트를 공부할 때 현상이니 사물 자체니 하는 용어들이 이해가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 때로부터 몇십 년이 흐른 후 양자역학을 공부하면서 칸트의 철학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고, 칸트가 왜 위대한 철학자인지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이 외에도 뇌의 거울신경세포를 통해 맹자의 측은지심을 새롭게 이해하고, 사회생물학을 통해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를 설명한다. 뇌 신경세포의 작동 방식을 무리하게 경제학에 접목해서 탄생한 것이 경제학의 한계생산력분배이론이라는 설명도 흥미로웠다. 문과와 이과 간에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아쉽지만, 같은 학문 안에서도 소통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경제학자들은 자기네끼리도 협동 연구를 잘 하지 않는다. 노동시장 연구자와 국제금융 연구자가 학문적 대화를 나누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디 경제학만 그렇겠는가."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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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체는 국가 기밀, 모쪼록 비밀 문학동네 청소년 68
문이소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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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체는 국가기밀, 모쪼록 비밀>은 2017년 <마지막 히치하이커>로 제4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으며 데뷔한 문이소 작가의 첫 SF 소설집이다. 총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고 앞의 세 편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네 번째 단편을 읽고 속절없이 울어버렸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살면서 가장 이루고 싶었던 꿈을 꾸면서 삶을 마감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 개발된다는 설정의 소설인데, 정말 이런 기술이 개발되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실제를 환상으로 대체하는 것의 윤리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다른 네 편도 좋았는데, 이 중에 가장 경쾌하게 읽힌 단편은 첫 번째로 실린 <소녀 농부 깡지와 웜홀 라이더와 첫사랑 각성자>이다. 2년 차 농부 깡지는 호우로 인해 엉망진창이 된 버섯 재배사를 복구하던 중 이상한 사람을 본다. 어렵게 구한 버섯 종균을 훔치러 온 도둑인 줄 알고 바로 달려가 붙잡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22세기 한반도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과거로 온 웜홀 라이더였다. 졸지에 미래의 후손들이 먹고 살 식량과 농사법을 전수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게 된 깡지. 가상이지만, 실제의 농부들도 비슷하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두 번째 단편 <젤리의 경배>도 흥미로웠다.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무명의 화가 젤리는 어느 날 자신의 아이의 초상화를 그려주면 거액의 보수를 지급하겠다는 의뢰를 받는다. 의심이 무색하게도 바로 입금이 되어 서둘러 의뢰인의 아이를 만나러 갔는데, 알고 보니 의뢰인의 아이는 인간, 이 아니라 인공지능이었다. 인공지능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요구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그 인공지능이 자신을 '덕질' 해왔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생소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이 지금보다 발전하고 보편화되면 이런 일이 불가능할 것 같지 않다. 


세 번째 단편 <유영의 촉감>은 선대로부터 '유영의 촉감'이라는 기억을 물려 받았으나 이를 온전히 계승하지 못해 단절자로 격하된 마요린이 유영의 촉감을 찾아 지구로 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시각뿐 아니라 청각이나 후각, 미각, 촉각으로도 기억이 전승될 수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이야기였다. 다섯 번째 단편 <봉지 기사와 대걸레 마녀의 황홀한 우울경>은 마녀가 아기 고양이를 납치한 줄 안 로봇의 이야기이다. 삭막한 세상에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 존재들이 있음을 상기하게 해주는 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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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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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은 한강 오리배 선착장의 지박령이다. 귀신이 되어서 하필 오리배 선착장에 머무는 이유는 생전에 가족과 자주 왔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영의 부가 연애 시절 데이트를 한 곳도, 지영을 데리고 소풍을 왔던 곳도, 식구들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나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찾아왔던 곳도 늘 여기였다. 지영은 자신이 가족들과 오리배를 탔던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가족들도 그 시간을 그리워한다면 반드시 만날 거라고 믿지만, 가족들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해남은 사고로 죽은 후 생전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배우였던 강산의 집으로 찾아간다. 해남이 기억하는 강산은 외모도 출중하고 연기력도 뛰어나며 부와 인기를 모두 갖춘,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는 남자다. 하지만 강산의 집으로 찾아가 강산을 직접 보니 혼자 살면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중년의 은퇴한 영화배우에 불과하다. 해남은 팬으로서 그를 동경하고 응원했던 마음이 강산에게 전해지기를 바라지만, 그의 소망은 좀처럼 강산의 마음에 닿지 못한다. 


이유리의 연작 소설집 <좋은 곳에서 만나요>는 알게 모르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주인공들이 죽음을 겪고 직전의 삶을 돌아보는 내용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지영과 해남 외에도 레즈비언 커플인 혜수와 지우, 아홉 번의 생을 산 고양이, 전 애인 정민을 그리워하는 수정, 과로사한 개발자 등 각자 다른 삶을 살다가 다른 이유로 죽음을 맞은 인물과 동물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의 공통점은 죽은 후 바로 저승으로 떠나지 않고 이승을 떠돌며 못 다 한 마음의 정리를 한다는 것이다.


이 중에 가장 감동적이었던 단편은 <아홉 번의 생>이다. 주인공 고양이는 태어나고 죽는 일을 네 번 반복하고 다섯 번째 삶에서 잊지 못할 사랑을 경험한다. 그 후 여섯 번째 삶, 일곱 번째 삶, 여덟 번째 삶에서 그 사랑을 찾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마지막 아홉 번째 삶은 사랑 말고 온전히 너 자신을 위해 쓰라는 충고를 들은 고양이는 과연 어떻게 할까. 설정은 사노 요코의 동화 <100만 번 산 고양이>와 비슷하지만, 사랑의 방식에 대해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새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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