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랑은 무슨 색인가요? - 전지적 컬러테라피 시점
김규리.서보영 지음 / 이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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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개인이 가진 신체의 색과 어울리는 색을 찾아주는 '퍼스널 컬러 진단'이 유행했다. 외모가 일종의 자산으로 여겨지는 풍조가 확산되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 자신의 매력을 높여주는 색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반영된 유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나는 퍼스널 컬러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니 퍼스널 컬러와는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남이 보기에) 나에게 어울리는 색, 나의 매력을 높여주는 색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나에게 필요한 색,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색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랄까.


이 책의 저자인 김규리, 서보영에 따르면 색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에 더 없는 도구이다. 색으로 나를 이해하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다면, 소통과 공감이 쉬워지고 관계 역시 보다 원숙해질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학문으로 발전시킨 것이 '컬러테라피'이다. 컬러테라피는 "색이 가진 에너지와 특성을 이용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것을 말한다."(14쪽) 예를 들어 사람들은 피곤하거나 스트레스가 많을 때 빨간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간 매운 음식을 찾는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이완되어야 하는 장소인 침실은 노란색, 차분하게 집중해야 하는 공간인 공부방이나 서재는 파란색으로 꾸미는 경향이 있다.


이 책에는 레드, 핑크, 오렌지, 블루, 옐로, 바이올렛, 마젠타, 로열블루, 그린 등 총 아홉 가지 색에 관한 설명과 저자들이 실제로 컬러테라피 상담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사례가 색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 책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책 뒷부분에 실린 '부록 #2 설문지와 해설지' 편을 찾아 각각의 문항을 읽고 가장 많이 체크한 색이 무엇인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많이 체크한 색은 옐로다. 색에 관한 설명을 확인하기 위해 본문으로 돌아가서 옐로 편을 찾아 읽어보니 과연 나와 무척 비슷하다.


옐로의 강점은 재치, 쾌활, 천진난만, 지적인 면이고 약점은 예민함, 비판적인 면인데, 이는 나의 성격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이어지는 상담 사례 세 편도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놀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기 모습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같은 조언들은 글로 써서 책상 앞에 붙여 놓아야겠다. 이 책은 또한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읽으면서 각자 가장 많이 체크한 색이 무엇인지, 성격의 특성과 장, 단점은 무엇인지, 학업 또는 일, 관계에 있어서 어떤 점을 주의하면 좋은지 이야기 해보기에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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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동정탑 - 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구단 리에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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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는 흔히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이 꼽힌다.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에는 여러 차이점이 있는데, 아쿠타가와상은 주로 신인 작가에게 수여되는 반면 나오키상은 기성 작가에게도 수여된다. 아쿠타가와상은 작품의 예술성, 독창성 등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나오키상은 대중성, 오락성 등을 두루 평가한다. 내가 읽어본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과 나오키상 수상작만 해도 그랬다. 특히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은 <헌치백> (2023년 수상작), <최애, 타오르다> (2022년 수상작), <편의점 인간> (2016년 수상작) 등 주제나 소재, 문장과 형식 면에서 기발하고 참신한 작품이 많다.


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구단 리에의 <도쿄도 동정탑> 역시 여러 면에서 새롭고 독특하다. 주인공인 마키나 사라는 삼십 대 후반의 여성 건축가이다. 개인 사무소를 운영하는 그는 도쿄 도심 한가운데에 새로 지어지는 교도소의 설계 공모전에 참가해 당선된다. 문제는 정부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이 정한 교도소의 명칭이 '심퍼시 타워 도쿄'라는 것이다. 사라는 죄수들을 수감하는 장소인 교도소의 명칭 어디에도 교도소를 의미하는 단어가 들어있지 않다는 것과 일본인들 자신이 일본어 사용을 기피하고 영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분노한다.


미쳤다. 무엇이? 머리가 미쳤다. 아니 '머리'라고 하기엔 범주가 너무 넓은가? 아니, 오히려 좁지. 게다가 '머리가 미쳤다'라고 하면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여기서는 '네이밍 센스' 정도가 좋겠다. (중략) 자동 모드로 단어 선택에 대한 검열 기능이 바쁘게 작동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성장하고 있는 검열관의 존재에 피로를 느끼고, 에너지 충전을 위해 급히 수식이 필요해진다. (7쪽) 


사라는 "일본인들이 일본어를 버리고 싶어"한다고 느낀다. 노숙자는 홈리스, 육아 방임은 니글렉트, 채식주의자는 비건, 소수자는 마이너리티, 성적 소수자는 섹슈얼 마이너리티... 이런 식으로 일본어 표현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영어 표현을 부러 사용하는 이유는 기존에 사용하던 언어에 담긴 차별적, 혐오적 뉘앙스를 피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미혼모 대신 싱글맘을 사용하는 정도는 괜찮을지 몰라도, 범죄자를 범죄자라고 부르지 못하고 '호모 미세라빌리스(불쌍한 인간을 뜻하는 라틴어)'라고 부르는 건 괜찮지 않은 것 아닌가.


이 소설은 일본의 상황을 그리고 있지만 한국의 상황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한국 여자의 줄임말인 '한녀'는 혐오 표현이 아닌데 한국 남자의 줄임말인 '한남'은 혐오 표현인 것,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의 후손들이 중도우파, 합리적 절충주의를 위시하며 그들을 규탄하는 정당과 대다수 국민들의 주장을 극단적 좌파, 비합리적 억지 논리로 일축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소설은 생성형 AI로 만든 문장을 사용한 것으로도 화제가 되었는데, 언어가 담고 있는 사상이나 판단에 대한 평가 또는 해석 없이 그저 답만 제공할 뿐인 생성형 AI의 사용이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면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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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루비] Life 선상의 우리들 - 뉴 루비코믹스 2157
토코쿠라 미야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ruvill)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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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사는 남고생 니시 유우키는 도로에 그려진 하얀 선 위만 밟는 기묘한 습관이 있다. 어느 하굣길에 평소처럼 혼자 하얀 선 위를 따라 걷던 니시는 맞은편에서 자신처럼 하얀 선 위를 따라 걷는 다른 학교 남학생 이토 아키라와 마주친다. "선 밖으로 벗어나면 죽는다"라며 대립각을 세우던 두 사람은 결국 "내 발 사이에 발을 디뎌봐"라는 이토의 제안으로 해결책을 찾는다. 그 날 이후 두 사람은 매일 하얀 선 위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며 친구가 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토는 하루 종일 니시 생각만 하고, 니시와 손을 잡고 몸이 닿을 때마다 니시에 대해 좀 더 알고 만지고 싶은 기분을 느낀다. 이거 친구 사이 맞나?


토코쿠라 미야의 만화 <Life 선상의 우리들>을 나는 동명의 일본 드라마로 먼저 만났다. 드라마는 니시와 이토가 처음 만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생, 사회초년생 시절을 거쳐 한 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시점까지를 그리는 반면, 원작 만화는 두 사람이 기적적으로 재회한 직후의 상황과 중, 노년 시절도 그린다. 드라마와 달리 만화에는 두 사람의 잠자리 장면도 나오고, 주변 인물들의 비중이나 설정이 조금씩 다르다(드라마에선 이토의 누나가 중요한 인물로 그려지는 반면 만화에선 아님). 만화나 소설이 영상화되는 경우 원작보다 나은 경우가 많지 않은데 이 작품은 원작 만화도 좋지만 드라마도 정말 좋다. 먼저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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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최은미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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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여자'한 외모를 지닌 나리는 나이를 불문하고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도망치듯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 딸 은채를 키우며 살던 나리는 집에서 캔들 공방을 운영하다 상가로 진출했는데 하필 팬데믹이 터지면서 위기를 맞는다. 월세는 내야 하는데 수강생은 급감하는 와중에 나리공방에 드나들던 수미가 확진 판정을 받고 이동 경로가 공개 되면서 나리공방의 상황은 더욱 더 절박해진다.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기초가 된, 최은미 작가가 2020년에 발표한 단편 <여기 우리 마주>의 줄거리이다. 이어서 더 쓴 부분을 엮은 장편소설 <마주>는 <여기 우리 마주>보다 훨씬 더 다채로우면서도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수미의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나리는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다. 결과는 다행히 음성인데, 피 검사 결과 잠복결핵균이 있는 것이 드러난다. 결핵이라는 단어를 듣고 나리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를 떠올린다. 나리의 부모님은 대전으로 이사하기 전에 다른 지역에서 과수원을 운영했다. 수확철이 되어 일손이 부족해질 때마다 부모님은 '만조 아줌마'라는 분을 불렀는데, 나중에 나리는 방학이 되면 일주일에 한 번씩 만조 아줌마네 집에 가서 지낼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나리의 결혼식에도 와주었던 만조 아줌마가 갑자기 생각난 이유는 뭘까.


한편 나리는 수미가 격리 시설로 들어가기 전에 딸 은채가 보여준 영상 속 화면을 생각한다. 같은 딸 하나 엄마인 나리와 수미는 일 때문에 바쁠 때마다 서로의 딸을 돌봐주며 자매 이상으로 친하게 지냈다. 학창 시절에도 절친한 동성 친구 하나 없었던 나리로서는 처음 사귄 동성 친구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은채가 보여준 영상 속의 수미는 나리가 아는 수미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게다가 그 영상을 보낸 사람은 수미의 딸 서하다. 나리는 수미에게서 서하를 보호하는 한편으로 자신의 모녀 관계를 떠올리며 불편함을 느낀다. 어쩌면 지금 자신이 과거의 만조 아줌마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만 보면 팬데믹 시대의 자영업자의 애환과 모녀 사이의 애증을 다룬 소설 같은데,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면 또 다른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결핵 환자라는 이유로 사람들과 섞여 살지 못하고 따로 격리되어 살았던 사람들의 공동체인 '딴산마을'과 팬데믹 당시 사망률이 일반 병원의 2배 이상이라서 '코로나 무덤'으로 불리기도 했던 장기 요양병원 문제다.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모두가 힘든 시기에 더 힘든 사람들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자기 자신도 힘들면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먼저 손을 내밀었던 만조 아줌마 같은 사람들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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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디어리스
권오경 지음, 김지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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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 여성인 피비는 한국에서 음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어머니의 기대에 따라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다행히 피비에게는 재능이 있었고 일찍부터 '천재 피아니스트' 소리를 들으며 주목 받지만,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한다. 한때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지만 믿음을 잃고 무신론자가 된 윌 켄달은 대학에서 피비를 보고 강하게 이끌린다. 연인이 된 두 사람은 한동안 즐거운 나날을 보내지만, 피비가 탈북민 구조 활동을 하다가 북한의 수용소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왔다는 존 릴이라는 남자에게 끌리면서 둘의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소설을 쓴 권오경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의 첫 소설 <인센디어리스>는 작가 자신의 경험에 기반하고 있으며, 출간 직후부터 큰 주목을 받아 현재 드라마 <파친코>를 연출한 코코나다 감독의 연출로 드라마화가 확정된 상태다. 이 소설은 피비와 윌의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북한의 독재자를 모방해 스스로 종교 집단의 지도자가 되는 존 릴이다. 그를 추종하게 되는 피비는 임신중절 수술 찬성에서 반대로 입장을 바꿀 정도로 그에게 큰 영향을 받는다.


이후 피비는 9.11 테러 이후로 미국 땅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의 습격에 투입되고, 피비의 연인인 윌은 그의 선택을 되돌려 보려고 하지만 역부족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피아노도 공부도, 부(富)도 명예도, 신앙도 열정도 최고만을 추구하고 어중간한 상태는 인정하지 않는 한국인들의 특성이 극단적인 정치와 종교, 테러 등에 대한 강한 이끌림으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인도 아니고 완전한 한국인도 아닌 어중간한 정체성 역시 한국계 미국인들에게는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선망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 복잡한 서사를 코코나다 감독은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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