겅클
스티븐 롤리 지음, 최정수 옮김 / 이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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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에서 사는 패트릭 오하라는 전성기를 지난 배우다. 한때는 인기 TV 드라마에 출연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골든 글로브 상을 받을 정도로 연기력도 인정 받았지만, 어떤 사건을 겪은 이후 연기를 그만두고 자택에서 은둔하는 중이다. 그런 패트릭에게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 온다. 패트릭의 오랜 친구이자 패트릭의 남동생 그레그의 아내인 세라가 투병 끝에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레그와 세라에게는 아홉 살 난 딸 메이지와 여섯 살 난 아들 그랜트가 있는데, 그레그가 중독 치료를 위해 시설에 들어가게 되면서 두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게 된다. 그렇다면 혼자 사는 삼촌이 나설 수 밖에.


그렇게 시작된 패트릭과 두 조카의 일상은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OO의 하루'(로 시작하는 유명한 애니메이션 오프닝 노래 가사) 그 자체다. 패트릭은 스마트폰과 유튜브, 틱톡 없이는 못 사는 아이들을 외계인처럼 본다. 메이지와 그랜트는 삼 시 세 끼 대신 브런치와 러퍼(런치와 서퍼의 합성어)를 먹는 삼촌을 이상하게 여긴다. 패트릭은 엄마를 여의고 아빠와 떨어져 있는데도 우는 소리 안 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대견하게 생각한다. 메이지와 그랜트는 자신들 앞에선 수다스럽고 허술한 삼촌이 사실은 엄청 유명한 배우였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


스티븐 롤리의 <겅클>은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없는 삼촌이 갑자기 두 조카를 맡아서 키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가족 시트콤 느낌의 소설이다. 주인공인 삼촌 패트릭 오하라가 워낙 독설을 잘 하고 재치 있는 캐릭터라서 시종일관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이어지지만, 소설의 중심에는 패트릭의 오랜 친구이자 두 조카의 엄마인 세라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다. 패트릭은 두 조카와 생활하면서 세라와의 추억을 회상하기도 하고, 두 아이에게 남아 있는 세라의 흔적을 보면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한다. 동시에 패트릭 자신을 세상과 단절하게 만든 그 사건을 극복할 힘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소설의 제목인 '겅클'은 남성 성소수자를 뜻하는 '게이(GAY)'와 삼촌을 뜻하는 '엉클(UNCLE)'의 합성어다. 패트릭이 조카들과 있을 때는 게이로서의 정체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아서 주인공을 게이로 설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소설 중반에 패트릭에게 새로운 인연이 나타나고 두 사람의 로맨스가 시작되어 주인공을 게이로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는 걸 강하게 납득했다(ㅎㅎ). 이 소설은 <미나리>, <존 윅> 등의 제작사 라이언스게이트에서 판권을 사서 영화화가 확정된 상태라고 한다. 어떤 배우가 패트릭(과 그의 새로운 인연)을 연기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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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야식
하라다 히카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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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오토하는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지만 현실은 제대로 된 일자리조차 구하기 어렵다. 그런 오토하에게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취업 제안이 들어온다. 취업을 제안한 곳은 '밤의 도서관'. 도쿄 교외의 한적한 지역에 위치한 이 도서관은 '밤의 도서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오후 7시부터 자정까지만 운영한다. 책과 관련된 일인 데다가 숙소와 식사도 제공한다는 말에 혹한 오토하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취업 제안을 받아들인다. 첫 출근 날 오토하는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곳에 있는 책들은 그냥 책이 아니라 이미 죽은 작가들이 기부한 장서들이라는 것이다.


하라다 히카의 장편 소설 <도서관의 야식>은 밤에만 운영하는 특별한 도서관에 취직한 오토하와 그의 동료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제목에 '야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유는 오토하와 동료들이 도서관에서 야식을 먹기 때문이다. 밤의 도서관에는 직원 식당이 따로 있고, 밤 열 시 즈음이 되면 직원들이 모여서 야식을 먹는다. 야식 메뉴는 매일 다른데, 대체로 책에 나오는 음식들이다. 이를테면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 <시로밤바>에 나오는 카레라든가, <빨간 머리 앤>에 나오는 빵과 버터와 오이가 들어간 샌드위치라든가...


하라다 히카 소설 하면 음식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 여성의 노동 문제를 다룬다는 것인데 이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오토하는 지방 출신의 문과 여성으로서 자신의 전공과 적성을 살린 직업을 가지고 싶어 하지만 일자리가 많지 않고, 있어도 대부분 단기 계약직이다. 소설에는 오토하처럼 사서라는 직업을 택한 사람들 외에 작가, 서점원, 중고서적상 등 책을 둘러싼 다양한 직업 이야기가 나온다. 극소수의 직원 외에는 본 적이 없는 오너의 이야기가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비현실적인데, 그런 사람 아니면 이제는 사설 도서관 같은 돈 안 되는 일을 할 사람이 없다는 뜻 같기도 해서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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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거리 - 김민정의 1월 시의적절 1
김민정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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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난다에서 올 한 해 동안 한 달에 한 권씩, 열두 명의 시인들이 릴레이로 책을 내는 재미있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름하여 '시의적절' 시리즈. 첫 책인 1월의 주인공은 출판사 난다 대표인 김민정 시인이다. 펼쳐보니 1월 1일부터 31일일까지 하루에 한 편 씩, 총 31편의 글이 실려 있다. 하루에 한 편 씩 읽으라는 의도가 담긴 구성인데, 글이 너무 좋아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이후에 나온 책들도 뒤늦게나마 전부 구입해 읽을 예정이고, 유희경 시인님이 쓰신 9월'호(?)'도 주문한 상태다.


시인의 책답게 시도 있고, 일기, 에세이, 인터뷰 등도 있다. 나는 특히 인터뷰가 좋았다. 몇 해 전 고인이 된 코미디언 박지선과 국악인 황병기의 인터뷰를 읽을 때에는 가슴이 먹먹했고, 번역가 김화영과 배우 고아성의 인터뷰를 읽을 때에는 한국 문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만난 듯했다. 박지선 씨가 생전에 동료 여성 코미디언들과 함께 했다는 북클럽이 계속되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더한다. 고아성 배우는 원래도 좋아했지만 아니 에르노를 읽는다는 말에 더 좋아졌다.


김민정 시인과 친분이 있는 허수경 시인, 최승자 시인의 이야기도 일기 형식으로 실려 있다. 일기라고 하면 보통 그 날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과 느낌이 들었는지 쓰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의 일기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자가 만난 사람, 대상의 이야기인 점이 인상적이었다. 장기 입원 중이신 아버지와의 대화에 나온 '잘 듣고 잘 보고 잘 기록하고'라는 말도 왠지 좋아서 메모해 두었다. 그렇게 잘 듣고 보고 기록한 것들을 엮어서 책이라는 귀한 존재를 만들어내는 저자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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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편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 위픽
정혜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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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을 쓴다면 어떤 소설을 쓸까. 이제껏 한 번도 소설을 써본 적 없지만, 그동안 수많은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 번(아니 많이) 해본 생각이다. 반대로 이런 생각도 한다. 소설가들은 어떻게 소설을 쓸까. 그들은 왜 하필 그 시대, 그 공간을 배경으로 그 인물, 그 사건에 대해 소설을 써보기로 마음 먹었을까. 무엇이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 만들고 소설가가 되게 하는지 궁금한 마음이 내내 있던 차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아무튼, 메모>, <앞으로 올 사랑> 등 수많은 산문집을 펴낸 에세이스트이자 라디오 PD인 정혜윤 작가의 첫 소설 <마음 편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이다.


소설은 평생 단 한 번도 마음이 편해보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마음이 편해지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그는 애초에 마음이 편하다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알려주는 사람에게 집안 대대로 내려온 거대한 숲이 있는 섬을 주기로 약속하고 대규모 글쓰기 워크숍을 연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워크숍에 참가했고, 단 한 명이 우승자로 뽑혔다. 우승자의 글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종국에는 온 지구를 뒤덮은 팬데믹과 살처분 당하는 동물들, 재난과 참사,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잃고 외국을 떠도는 난민들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나는 이 책을 쓴 정혜윤 작가님이 내가 아는 정혜윤 작가님이 아닌 동명이인인 줄 알았다(정혜윤 작가님이 소설을?). 내가 아는 정혜윤 작가님이 맞다는 걸 알고 책을 사면서도 긴가민가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는데, 책을 읽어보니 너무나 정혜윤 작가님 책 같은 내용이라서 안심했다. 소설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정혜윤 작가님이 기존에 쓰던 에세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라서 아쉬운 기분도 조금 들었는데, 책을 다 읽은 지금으로서는 소설이나 에세이나 한결 같은 스타일로 한결 같은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정혜윤 작가님이 그저 좋다. 무엇이 소설이 되고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 힌트를 얻은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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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김승섭 지음 / 난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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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천안함 사건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로 '비슷한 사고인데 왜 차별하냐'는 논조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부교수 김승섭의 책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와 천안함 사건은 둘 다 해상에서 일어난 사고이고 정부의 후속 조치가 미흡했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여러 면에서 다르다. 세월호 생존학생 연구와 천안함 생존장병 연구를 진행했던 저자는 이를 생존자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세월호 사고와 달리 천안함 사건은 산업 재해에 가깝다. 천안함 생존장병들에게 있어 천안함은 직장이었다. 세월호 사고는 생존학생들의 거주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반면, 천안함 사건은 생존장병들이 사건 이후에도 일하고 생활해야 하는 공간에서 일어났다. 실제로 천안함 생존장병들 중의 많은 수가 업무에 지장을 겪고, 일상 생활 중에도 수시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었으며, 심하게는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천안함 생존장병들은 또한 군인이기도 했다. 군대는 일반 조직에 비해 훨씬 더 엄격한 규율과 명령 체계가 작동한다. 군인은 언제 어디서든 굳세고 단단한 태도를 보여야 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천안함 생존장병들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털어놓기가 어려웠다.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과 군인으로서는 불명예인 '패잔병'이라는 낙인 또한 이들을 이중, 삼중으로 괴롭혔다. 군 조직 내에서 천안함 생존장병들을 가리키며 '실패했다', '창피하다'라고 비난하고, 인사나 보직 차별, 따돌림도 있었다고 하니 문제가 심각하다.


이 책은 주로 천안함 생존장병 문제를 다루지만 피우진, 변희수 등 이른바 '정상 군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국의 군대에서 배제된 사람들과 소방공무원, 세월호 생존학생, 성소수자, 쌍용차 해고노동자 문제 등도 다룬다. 저자는 세월호 사고 당시 세월호에 타고 있던 선원들이 승객들을 구조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고 배를 떠났다는 이유로 비난 받는 여론이 (지금도) 거세지만, 그들 또한 세월호라는 직장에서 산업 재해를 당한 입장이며 PTSD 치료 대상임을 지적한다. 생각해 볼 만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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