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과 결함
예소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7월
평점 :
온라인 강의를 검수하는 일을 하는 석주는 크로스핏 센터에서 만난 맹지와 친구가 된다. 석주는 맹지와 같이 밥 먹고 술 먹고 PC방에나 가는 생활이 너무 좋은데, 맹지는 남친이 살을 뺐으면 좋겠다고 해서 크로스핏을 시작한 거(였는데 이렇게 됐다)라며 죄책감을 느낀다. 석주는 애인이랍시고 맹지를 괴롭게 하는 맹지의 현 남친이 싫다. 여친이 임신 중절 수술을 받게 하고도 수술비를 안 내고 대기업에 척척 붙는 자신의 전 남친도 너무 싫다. 명백한 성차별 발언을 지적하자 '페미 같다'며 해고한 직장에도 환멸을 느낀다. 이런 세상에서 누구를, 무엇을, 어떻게 사랑하란 말인가.
예소연 작가의 첫 소설집 <사랑과 결함>에는 총 열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소설집 제목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어서 이성애 로맨스를 주로 다루는 소설집인가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성애 로맨스에 국한하지 않고 훨씬 더 폭넓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이라서 좋았다. 첫 번째 단편 <우리 철봉 하자>만 해도 맹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한다는 점에서, 맹지의 현 남친보다 맹지의 친구인 석주가 맹지를 더 많이, 더 크게 사랑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성애 독점 관계만을 연애 혹은 (좁은 범위의) 사랑의 형태로 인정하는 한국 사회에선 석주가 아무리 맹지를 아껴도 잘해야 우정으로 간주된다.
이어지는 세 편의 단편 <아주 사소한 시절>, <우리는 계절마다>, <그 얼굴을 마주하고>는 희조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그린 연작 소설이다. 희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연히 미정의 아빠가 죽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희조와 미정은 함께 청설모를 관찰하고 집에도 자주 놀러 가고 비밀 이야기도 나누는 사이였다. 하지만 미정의 아빠가 죽은 후 희조가 미정의 비밀을 누군가에게 말하면서 둘 사이가 멀어지고, 중학생이 되어 두 사람은 다시 가까워지지만 뜻밖의 사건으로 인해 또 다시 거리가 멀어진다.
표제작 <사랑과 결함>은 성혜와 고모, 엄마의 기묘한 삼각관계를 그린다. 성혜의 고모인 순정은 장녀라는 이유로 부모를 대신해 남동생을 건사하는 데 자신의 청춘을 다 바쳤다. 순정은 현재 남동생 가족과 함께 사는데, 순정은 자신이 남동생을 키웠으니 이 정도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하다 여기는 반면, 성혜의 엄마는 자신의 집에 얹혀사는 시누이를 곱게 보지 않는다. 성혜는 엄마의 감정에 이입해 고모를 미워하기도 하고, 엄마에게 서운한 일이 있을 때는 고모의 돌봄을 받기도 하면서 둘 사이를 오간다. 이 밖에도 다양한 사랑, 다양한 결함의 형태를 제시하는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