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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월
평점 :
나에게는 고향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없다.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전세 계약에 따라 몇 년에 한 번씩 집이나 동네를 옮겨 다닌 까닭이다. 그래서 고향이 있는 사람이 부럽다. 태어난 곳에서 쭉 자라지는 않았어도 한곳에 오래 정착해 살아서 그곳을 떠난 후에도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그곳에 돌아가면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반겨주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 부럽다. 그런 고향에 관한 소설을 읽었다. 폴란드를 대표하고 이제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작가가 된 올가 토카르추크의 장편 소설 <태고의 시간들>이다.
소설의 배경은 '태고'다. 태고의 북쪽에는 바깥으로 향하는 도로가 있고 남쪽에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동쪽에는 백강과 흑강이 흐르고 서쪽에는 목초지와 작은 숲이 있다. 태고 사람들은 웬만해선 태고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다. 태고에서 태어나 태고에서 자라고 태고 사람과 결혼해 태고에서 살면서 죽음을 맞는 것이 태고 사람의 일생이다. 그런 태고에 위기가 닥친다. 때는 1914년 여름. 러시아 군인 둘이 총을 차고 태고로 와서 젊은 남성들을 데리고 떠난다. 전쟁이 일어났으니 참전하라고 전한다.
방앗간 주인 미하우도 군인들을 따라 떠난다. 아내 게노베파의 뱃속에 아이가 들어선 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게노베파는 남편의 생사 여부도 모른 채 딸 미시아를 낳고 키운다. 마을 남자들은 아직 젊고 예쁜 게노베파에게 호시탐탐 추파를 보낸다. 게노베파도 속이 끓고 몸이 달아오르지만 그 때마다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르는 남편을 생각한다. 미시아가
자라는 동안 마을 숲에 사는 크워스카도 출산을 한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크워스카는 고아로, 마을 여기저기를 떠돌며 구걸해서 배를 채우고 술집에서 몸을 팔아 이제까지 살아온 여자이기 때문이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크워스카는 숲속에서 혼자 아이를 낳는다.
전쟁이 일어났다 끝나고 또 한 번 전쟁이 일어났다 끝나는 동안 태고에선 바람 잘 날 없는 날들이 이어진다. 어느 날은 독일군이 들어와 포피엘스키 집안이 대대로 살았던 성과 영지를 빼앗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유대인을 색출해 학살한다. 어느 날은 볼셰비키가 들어와 마을 사람들의 식료품을 빼앗고 마을을 병영 상태로 만든다. 어느 날은 독일군과 볼셰비키 간에 전투가 일어나 엄청난 수의 사람이 죽고 시체가 마을 곳곳에 쌓인다. 어느 날은 러시아군이 들어와 미하우와 게노베파의 집을 빼앗고 미시아를 향해 음흉한 눈길을 보낸다. 미시아의 딸 아델카는 미하우에게 묻는다. "할아버지, 폴란드군은 언제 오나요?" 미하우는 손녀에게 이제 더는 널 구해줄 조국은 없다고 말하지 못한다.
"아마도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딸이 필요한 것 같네요. 다들 딸만 낳기 시작한다면, 세상이 한결 평화로워질 텐데 말이죠." (13쪽)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동안에도 여자들은 사랑을 하고 생명을 만든다. 게노베파는 미시아와 이지도르를 낳고, 미시아는 아델카, 안테크, 비테크에 쌍둥이 딸까지 낳는다. 크워스카도 딸 루타를 얻는다. 여자들은 제대로 된 직업도 가지지 못하고 자기 몫의 재산도 형성할 수 없다. 한 번 결혼한 남자와는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것이 도리라고 믿고, 그러한 도리를 따르지 않는 여자는 창녀 취급을 당한다. 그래서 어떤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어도 맺어지지 못하고, 어떤 여자는 따로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매를 맞고 겁탈을 당한다. 그런데도 여자들은 계속 살아간다. 마치 삶이라는 선택지밖에 없다는 듯이.
전쟁 전에 태고 사람들은 태고에서 벗어난 삶을 상상하지 못했지만 전쟁 후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태고를 떠난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떠나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가족을 만들기 위해 떠나고 어떤 사람은 그저 태고가 싫어서 떠난다. 그들처럼 태고를 떠났다가 오랜만에 다시 태고를 찾은 아델카는 태고가 많이 변한 것을 확인한다. 그 많던 가족과 친지 중에 남은 사람도 아버지뿐이고, 어릴 적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도 거의 다 떠났거나 죽었다. 거의 십여 년 만에 고향을 찾아와 애써 살갑게 구는 딸에게 아버지가 하는 말이란 고작 이런 것이다. "왜 아들을 낳지 않았니?" 아버지의 무심한 말에 아델카는 내가 이래서 집을 떠났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런 아델카가 집을 떠나면서 훔치듯 가져온 물건이 있었으니, 오래전 미하우가 전쟁에 끌려갔다가 돌아올 때 가져온 커피 그라인더다. 아마도 아델카는 두 번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기다릴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아델카는 고향 생각이 날 때마다 커피 그라인더를 만질 것이다. 커피 그라인더를 만질 때면 전쟁터로 간 남편 대신 고향을 지킨 외할머니와 대가족을 거두어 먹였던 어머니와 다정했던 자매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제 아델카의 고향은 아버지의 집이 있는 곳이 아니라 어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고향은 있다. 아니, 예전부터 있었는데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 차마 깨닫지 못했다. 나의 태고는 어머니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