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2 - 다양성 너머 심오한 세계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2
브래디 미카코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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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틀 동안 브래디 미카코의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1,2권을 재밌게 읽었다. 왜 이렇게 재밌을까 생각하다가 1권을 다시 읽었는데 이런 문장이 눈에 띄었다. "아들이 입학한 '구 밑바닥 중학교'는 다른 의미지만 초장부터 극적이랄까. 드라마 <글리(glee)> 같았다." 


맞다. 이 책은 드라마 <글리>같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총 6시즌에 걸쳐 방영된 드라마 <글리>는 고등학교 합창부를 무대로 학생들이 겪는 인종 차별, 계급 차별, 성소수자 차별, 장애인 차별 등의 문제를 폭넓게 다룬 작품이다. 이 책도 그렇다. 이 책은 영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저자의 아들이 명문 가톨릭계 초등학교 졸업 후 분위기가 전혀 다른 '구 밑바닥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당연히 인종 차별 문제도 나오고, 빈부 격차, 이민자 혐오, 성소수자 혐오 등의 문제도 나오지만, 읽는 내내 분노나 우울감보다는 감동과 희망을 더 많이 느꼈다. 


그렇게 느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혐오와 차별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루마니아 출신 이주민 가족을 돕는 저자의 남편,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교복 재활용 자원봉사에 이어 생리용품 나눔 운동을 하는 교사, 따돌림당하는 아이를 걱정하고 보살피는 저자의 아들, 이 밖에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에게 선의를 베푸는 사람, 사람들. 


1권에 이어 2권에도 아들의 명대사(?)가 많이 나오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사회를 믿는다"이다. 어떤 사람이 선하고 정의로운 행동을 하려고 해도 사회가 자신의 행동을 지지할 것이라고 믿을 수 없다면 그 행동을 할 수 없다. 그런 사회에선 선하고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그 사회는 각박해지고 몰인정해질 것이다. 사회 전체가 자신의 행동을 지지하지 않아도 관철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누군가가 주변에 있는 것이다. 그 누군가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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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 차별과 다양성 사이의 아이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1
브래디 미카코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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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캘리(신연선) 작가님이 추천해 주셔서 읽게 된 책이다. 저자 브래디 미카코는 1965년 일본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난 일본인 여성으로, 펑크 음악에 빠져 영국을 오가다 아예 영국에 정착했다. 런던의 일본계 기업에서 일하다 프리랜서로 번역 및 저술 활동을 했고, 영국의 탁아소와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일한 경험을 쓴 책 <아이들의 계급투쟁>이 일본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면서 작가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이 책은 아일랜드계 아버지와 일본계 어머니를 둔 저자의 아들이 백인 저소득층 청소년들이 주로 다니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겪은 1,2년 동안의 일을 담고 있다. 저자의 아들은 명문 가톨릭계 초등학교를 나왔다. 그 학교는 한국의 사립 초등학교처럼 잘 사는 집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라서, 학교 분위기도 좋고 부모들의 교육열도 높고 학생들도 대체로 모범생이었다. 저자의 아들은 그런 학교에서 학생회장으로 뽑힐 만큼 범생이 중의 범생이였다. 


그러나 졸업 후 학풍이 비슷한 명문 가톨릭계 중학교가 아닌, 집에서 가까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아들의 상황이 급변했다. 백인이 대다수인 학교에서 아시아계 혼혈인 아들은 존재 자체로 튀었다. 백인 학생들은 인종 차별, 이민자 혐오를 일삼았고, 소수인 유색인종 아이들 사이에도 온갖 차별과 혐오가 난무했다. 여기까지 읽으면 아시아계 혼혈인 남자 중학생이 자신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센 백인 학생들 사이에서 분투하는 서사를 상상할지 모르겠는데, 전혀 아니다. 


저자의 아들이 다니는 중학교는 비록 성적으로만 따지면 공립학교 랭킹 최하위, 밑바닥 중의 밑바닥 학교일지 몰라도, 교장과 교사들의 열의가 엄청나다. 급식비를 못 내는 학생을 위해 대신 돈을 내주고, 교복 살 돈이 없는 학생들을 위해 버려진 교복을 수선해 헐값에 판매하고, 학생들의 정서를 발달시키기 위해 음악, 뮤지컬을 비롯한 다양한 클럽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하는 점이 그렇다. (폭력과 중독 문제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감정 표현이 단조롭고 타인의 표정을 읽지 못해서 정부 차원에서 연기 수업을 많이 시킨다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에 묘사된 저자의 아들이 너무나 착하고 사랑스럽다. 인종차별 발언을 일삼는 친구에게는 단호히 일침을 놓는가 하면, 가난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는 또 다른 친구에게는 어떻게 하면 상처 주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이 어쩜 그리 예쁘던지. 책의 제목인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역시 저자의 아들이 쓴 문장인데, 이 문장이 탄생한 에피소드도 매우 아름답고 짠하다. 공감(empathy)이란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이라는 대답도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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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원 - 제20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137
김지현 지음 / 사계절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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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내내 나는 친구가 많았다. 학급 반장도 여러 번 했고, 동아리 활동도 활발하게 해서 다른 반인 친구들도 많았고 선후배와도 잘 지냈다. 문제는 대학교 때부터였다. 입학 후 학교 행사든 학과 행사든 동아리 활동이든 열심히 했는데 현재는 만나는 사람이 얼마 안 된다. 초, 중,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도 연락이 거의 다 끊어졌다. 각자 사는 곳이 달라지고 몰두하는 목표가 달라졌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아쉽고 허전하다. 그때의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우리는 무엇일까.  

김지현의 소설 <우리의 정원>을 읽는 동안 내가 정원의 나이였을 때, 그러니까 열일곱 살 고등학생 시절 생각이 많이 났다. 공교롭게도 나 역시 정원처럼 서울이 아닌 도시에 살았고, 남녀 공학이 아닌 여학교에 다녔다(심지어 정원의 학교와 똑같이 언덕 위에 있었다). 정원처럼 공부하는 틈틈이 책도 즐겨 읽었다. 무엇보다도, 정원처럼 덕질을 했다. 에이세븐과 비슷한 남자 아이돌 그룹이었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자컨'도 없었고 '스밍'도 못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찾아보고 돌려 들으며 열심히 좋아했다. 정원처럼 친구가, 가족이, 학교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 때, 그들을 생각하며 힘을 냈다. 

정원처럼 그 시절의 나에게도 친구 문제가 있었다. 주영과 혜수처럼 나 빼고 둘이 더 친하게 지내서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달이처럼 내가 많이 좋아하고 의지했는데 갑자기 내 일상에서 사라진 친구도 있었다. 지은과 나현, 여레처럼 함께 덕질도 하고 책도 읽는 친구가 결국엔 생겼지만 뭔가 늘 아쉬웠다. 돌이켜 보면 문제는 나였다. 정원처럼 나도 덕질을 제외하면 나를 소개할 말이 부족했다. 덕질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를 원했지만, 덕질을 안 하게 되면 그 친구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불안했다. 더 이상 공통의 관심사가 없어도, 만나지 못하게 되어도 우리는 친구일까 궁금했다.

이 소설을 읽으니 그 시절의 마음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나를 내보이고 싶은 마음, 나를 감추고 싶은 마음. 친구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 모르는 채로 있고 싶은 마음. 혜수가 나오는 장면들은 개인적으로 많이 아프고 힘들기도 했다. 나에게는 정원과 혜수처럼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가 있었다. 당시에는 아니었지만 그 친구도 혜수처럼 프로아나(pro-ana)였고,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그 친구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내내 알고 싶었는데, 소설 속 혜수의 대사들을 읽으며 그 친구의 마음이 이랬을까 싶어서 안타까웠다. 더 큰일 나기 전에 혜수를 구하고 싶어 하는 정원의 심경에 깊이 공감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정원도 변하고 친구들도 변하고 그들과의 관계도 변하는 것이 마치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 정원은 주영, 혜수와 같은 반이고 함께 밥을 먹어도 덕질 얘기를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달이와는 덕질 얘기도 하고 속마음도 나누지만 온라인 친구라서 직접 만나지 못해 안타깝다. 달이가 사라진 후 덕질 얘기도 하고 책 얘기도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기지만, 그만큼 주영, 혜수와 멀어진다. 언니 친구, 책방 주인 부부, 상담 선생님 등 또래 친구는 아니지만 친구의 범주에 들어가는 새로운 관계도 생긴다. 

이 과정에서 친구 사귀는 방법을 몰랐던 정원의 '스킬'이 조금씩 발전하는 것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정원은 이제껏 자신이 에이세븐을 좋아한다고 밝힌 적 없는 사람에게 자신이 에이세븐 팬이라고 밝힌다(그중 한 명은 영업에 성공한다!). 자신이 에이세븐을 좋아하듯이 다른 사람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의 세계에 오로지 덕질뿐이었던 정원은 덕질로 자기를 표현하고, 덕질 외의 것들을 수용하는 법을 배운다. 언젠가 에이세븐이 해체하고 덕질이 끝나도 정원의 배움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나도 배웠다. 철따라 내 안에서 피고 지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보듬어주는 '정원' 같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 성장이고 인생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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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빛들 - 앤드 연작소설
최유안 지음 / &(앤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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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 배경인 소설 읽으면 기 빨린다고 싫어했던 것 같은데, 올해 최유안 작가의 <백 오피스>도 읽고 <보통 맛>도 읽고, 다른 작가들이 쓴 소설도 읽으면서 오피스 소설의 매력을 알게 된 것 같다. 물론 오피스 소설이라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니고,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 일을 하면서 겪게 되는 문제들과 그것들을 해결하는(혹은 하지 못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작품이어야 공감도 되고 대리만족도 되고 공부도 되는 것 같다. 최유안 작가의 신작 <먼 빛들>에도 (내가 좋아하는) 일하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잔뜩 나온다. 


이 책은 세 편의 이야기가 연작 형식으로 담겨 있다. 1편의 주인공 여은경은 한국의 모 대학 법과대학의 교수로 이제 막 임용된 상황이다. 은경은 한국계 최연소로 미국 로스쿨 교수가 되었는데, 로스쿨 동문인 설기윤 총장이 자신의 대학으로 오라고 직접 스카우트해 미국에서 이룬 것들을 모두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온 순간부터 은경을 괴롭게 만드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결혼하라는 부모의 압박, 다른 교수들의 시기와 질투, 조교와의 마찰... 이 와중에 은경은 동료 교수의 부정을 목격하게 되고, 이를 고발해야 할지 말지 고민에 빠진다. 


2편의 주인공 최민선은 문체부 산하 기관의 정규직 직원이다. 적당하고 소소한 행복을 즐기면서 너무 튀지 않은 선에서 회사 생활하는 게 목표였던 민선의 커리어는 새로운 원장이 취임하면서 급변한다. 원장이 민선을 새로운 TF팀의 센터장으로 파격 발탁한 것이다. 졸지에 30대 후반의 나이에 센터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맡게 된 민선은 원장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회사 내에서 눈에 띄는 존재가 되고, 사내 정치라는 민감하고 복잡한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된다. 


3편의 주인공 표초희는 모 지방 도시에서 열리는 비엔날레의 예술 감독이다.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해 영국 유학을 마치고 막 마흔이 된 상태로 한국에 돌아온 초희는 대학 동기 재연의 소개로 감독직을 맡았다. 동년배들이 취업과 내 집 마련, 결혼, 출산, 육아 등을 경쟁하듯 해내는 동안,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며 유학을 택한 초희를 전 남친 윤재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초희 앞에 민혁이라는 새로운 남자가 나타난다. 초희보다 열 살 넘게 어린 것만 제외하면, 예술적인 취향, 타인에 대한 매너, 삶에 대한 태도 등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민혁을 초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소설 속 여성들은 학력이나 업무 능력 면에서는 남부러울 것이 없으나, 사회 생활 면에선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이들의 사회 생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에서 사회 생활을 잘한다는 건 어느 정도의 부정이나 불의와 타협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사회 생활을 잘 못한다는 건 정직하고 정의로운 것이 아니라 융통성이 떨어지고 심지어는 무능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그러니 원칙을 중시하고 양심 있는 사람일수록 사회 생활을 잘할 수도 잘 못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처하기 쉽다. 이런 상태가 지속될수록 내적인 갈등이 심해지고 스트레스가 높아진다.


다행히 이 소설에 나오는 여성들은 각자의 이야기 끝에서 각자가 만족할 만한 답을 얻는다. 그리고 그 답을 발판 삼아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답을 얻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고통스럽고 치열하기는 했지만, 결국 다들 만족할 만한 답을 얻게 되어서 좋았다. 여은경과 최민선, 표초희가 서로의 이름은 당연하고 존재조차 모르지만, 서로 알게 모르게 영향과 도움을 주고 받는 점도 좋았다. 철저히 혼자라고, 외롭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는 결말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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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라는 게 뭔데? (중략) 성장이란, 조직에서 순화되어 결국 우두머리에 이르는 것일까. 성장을 훌륭하게 해 낸 성해윤은 민선의 경력 정도였을 때 어땠을까. 이런 딜레마를 매번 뚫고 나갔을까. 원래 지닌 성격을 잃거나 숨겨두지 않았을까. 그것이 '성장'하는 걸까. (84-5쪽) 


내가 저 회사에 얼마나 있었더라. 앞으로는 저 회사에 얼마나 있게 될까. 한 직장에 오래 있다는 말은 적응을 잘한다는 말일까 회사를 옮기기엔 충분히 유능하지 않다는 말일까. 한 사람을 오래 만난다는 말은 진득하다는 말일까 변화를 싫어한다는 말일까. 한 상사를 오래 모신다는 것은 그 상사가 좋다는 말일까 상황이 좋다는 말일까. (108쪽) 


초희의 삶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것으로도 괜찮다는 걸 초희는 알았다. 삶은 화려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은 그저 자기 앞에 주어진 생을 꾸려 나갈 뿐이었다. 그거면 될 일이었다.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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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
황모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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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 고등학생인 진리는 빵집을 운영하는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가수 변진섭을 좋아하고 순정 만화를 즐겨 읽었던 진리의 엄마는 진리를 낳다가 돌아가셨다. 진리의 생일은 엄마의 기일이기도 하기에, 진리는 자신의 생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탄생이 다른 사람, 그것도 사랑하는 엄마의 죽음으로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하면 기쁠 리가 없기 때문이다.


2학년 개학 첫 날.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허둥대며 집을 나온 진리는 갑자기 강한 진동을 느끼고 어떤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새 담임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이 학교가 남학교였던 사실을 기억하는 아이가 있냐고 질문한다. 그러자 남학생 대부분이 손을 들었고, 원래는 남학생뿐이었던 학교에 '운 좋게 살아남은' 여학생들이 들어왔다며 분개하기 시작한다. 여자들이 운 좋게 살아남았다니 무슨 소리일까. 


진리와 진리의 절친 해라는 지난 학기까지 착하고 친절했던 남학생들이 돌변한 것에 위화감을 느낀다. 진리는 특히 자신의 남자친구인 훈우가 예전과 다르게 입이 거칠어지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에 깜짝 놀란다. 항상 다정했던 진리의 아빠는 빵집을 그만두고 제약회사에 취직했다며 큰 집으로 이사한다. 화장하고 멋부리기를 좋아하는 같은 반 남학생 예준은 다른 남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사라진다. 다른 여자애들도 하나둘 사라지고 급기야 해라마저 사라진다.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가 갑자기 달라진 것에 놀란 진리는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처럼 위화감을 느끼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거나 전혀 다른 세계로 넘어가려고 애쓰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1990년 백말띠의 해에 태어난 여자들이라는 것이다. 백말띠의 해에 태어난 여자는 팔자가 드세다는 미신 때문에 태어나지 못하고 제거되었던 여자애들이 살아남은 세상과 그렇지 않은 세상은 어떻게 다를까. 작가는 그것을 다양한 상황의 평행 세계를 통해 표현한다. 


실제로 이 해에 엄마가 임신을 했는데 가족들이 셋째도 딸이면 안 된다고 해서 지웠다고 들었다. 만약 아들이었다면 아무 일 없이 축복과 환영 속에 태어났겠지. 아들 섬기느라 딸인 나와 (여)동생은 알게 모르게 차별을 당했겠지. 안 지웠으면 자기 아들 힘들게 딸 셋 낳아 키운다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엄마 구박 많이 했겠지. 동생은 (나와 내 동생이 그랬듯이) 고추 안 달고 태어났다고 무시 당했겠지... 


어떤 이들에게는 읽는 내내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는 이야기를 '페미니즘 문학'이라는 단어로 일축하고 평가절하 할 수 있는 사람들 참 부럽다. 이들은 "세상 참, 태어나지도 않았던 애들이 활보하고 다니네." 같은 문장이 현실에서 누군가가 실제로 들어본 말이라면 날조라고 하겠지. 자기 자신을 죽이는 건 살인이 아니라서, 자기 자신의 영혼을 죽인 채 살고 있는 사람은 타인의 영혼도 쉽게 죽인다는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119-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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