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밤하늘 에디션)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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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소재와 장르도 김영하 작가가 손을 대면 색다른 느낌이 든다. <아랑은 왜>는 역사추리소설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스토리텔링의 원리와 기법에 관해 이야기하는 듯 보였고,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연쇄살인범이 나오는 스릴러 소설처럼 보이지만 기억의 모호성과 불완전성에 대한 은유로도 읽혔다. 신작 <작별인사>도 예외는 아니다. 설정만 보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를 연상케 하는 SF 소설 같지만(실제로도 그렇지만), 막상 읽어보니 소재와 장르는 거들 뿐, 실제로는 (김영하 작가의 소설이 으레 그렇듯이) (온갖 시련과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에 관한 성찰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아버지,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쾌적한 환경에서 평화롭게 살아온 소년 철이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아버지와 같은 인간이 아닌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처음에 철이는 자신이 인간이 아닐 리가 없다며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은 아버지에게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자신이 아버지의 말을 좀 더 잘 들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자책하기도 하고, 이제 더는 예전과 같은 환경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에 우울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식의 감정과 상태 변화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애도의 5단계(부인, 분노, 협상, 우울, 수용)를 따르는 듯 보이고, 이는 역으로 철이가 (휴머노이드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인간다운지, 인간인지를 보여준다. 


"나고 자라고 죽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라는 존재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까를 고민했다. 선이가 죽고 혼자 남겨졌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달마처럼 순수한 의식으로 영생하게 될까? 나의 마음은 점점 반대로 기울었다. 내가 하나의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에는 끝이 있어야 할 것이다." (286쪽)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인 '노화'와 '죽음'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휴머노이드 철이는, 오히려 자신이 인간처럼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노화와 죽음을 갈망한다. 늙음보다는 젊음을, 죽음보다는 삶을 택할 대부분의 인간들과는 다른 생각이라서 신선했고, 타고난 조건이나 정해진 경로와는 다른 선택을 희구한다는 점에서 이 또한 지극히 인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고난 조건대로 살고 정해진 경로만을 걷는 것은 인간 아닌 로봇의 일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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