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고 허밍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 1
이정임 지음 / 호밀밭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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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책을 고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표지와 제목이다. 한마디로, 그 책의 첫인상에 따라 내가 그 책을 읽을 지 말지가 고민된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리뷰가 아무리 흥미로워도, 그 책의 표지가 내맘에 들지 않으면 어쩐지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손잡고 허밍은 내게 있어서 끌리는 책이었다. '손잡고 허밍' 이라는 , 어쩐지 자꾸 입 안에서 맴돌것만 같은 제목, 민트가 살짝 섞인 듯한 깔끔한 하늘 색 표지, 예쁜 제목의 글씨체까지, 완벽하게 내 취향이었다.
 책을 고르고 나서, 계속 읽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은 작가의 어조이다. 문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건 어조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특히 한국 소설일수록 더욱 더 글의 어조가 중요하다. 내 취향의 표지 덕에 기대감을 가지고 들쳐본 이 책은, 다행히도 어조도 내 취향이었다. 조용조용히, 어쩐지 붕 뜬(이 경우 설레서 붕 뜬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공중에 붕 뜬 듯한), 멍한 듯 담담하고 리듬감 있는 글의 분위기가 좋았다.


책은 총 9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내 마음에 들었던 글 몇 가지를 말하자면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과 '반짝반짝 빛나는', '당신은 어느 별에서 오셨습니까?' 이다.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은 여주인공의 성격이나 묘한 비틀린 상실감이 마음에 들었고, 반짝반짝 빛나는 과 당신은 어느 별에서 오셨습니까? 는 이룬 건 없고, 취업은 걱정이며, 딴 길로 새고 싶고, 이미 너무 늦은 것 같아 헤매는 중인 내 상황이 오버랩되서 마음에 들었다. 딴 얘기지만 고등학생 땐 진로를 고민하고 딴 길로 새고 혹은 나름의 타협을 하는, 아니면 학교에 반발하는 얘기들이 그렇게나 재밌더니, 지금은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실패한, 취업에 실패하거나 취업에 관심없는 청년들 얘기가 이렇게나 재밌는 걸 보면, 역시 사람은 자신의 상황과 비슷한 얘기들에 눈이 가나보다.


'반짝반짝 빛나는'은 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월 20의 집에 살며, 취업을 못해 계속 휴학을 연장하는 청년과 그의 배변활동과 심부름과 면접에 대한 이야기. 21살의 나이는 참 묘한 나이이다. 다들 나보고 어리다고 하는데, 나는 스무살 때 이런 저런 걸 하고, 마지막으로 도전해 볼껄 싶다. 아직 너무 어린 날인데, 뭔가를 새로 시작하자니 (예를 들면 삼수나 자퇴라고 하면 확 감이 오려나) 다들 큰 결심이라고 한다. 새로 시작했을 때 이뤄야하는 것들의 기준선은 올라가 있고, 여태껏 했던 것을 버리기엔 일년 반이 다 되어가는 시간들이 아깝다. 취업이 성큼 다가오는 데 솔직히 막상 뭘 할지는 잘 모르겠는 나이기도 하다. 스무살의 낯섦에 비해, 익숙해지고 친숙해져있지만, 그렇기에 한 발 딛기가 더 무섭고 귀찮다.
 작가가 뭘 의도했는 지 이런 건 딱히 신경도 안 썼고 짧은 내 식견으로는 아마 모를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 읽고 나니 후련해졌다. "그래, 아무리 거지같아도 삶은 계속된다. "라는 메시지를 받은 듯한 기분이다. 이때 계속 된다는 부정적인 뜻이 아니다.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상하게 위로를 받은 느낌이기도 했다. 망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이상한 위로. 다 읽고 나니, 오랫동안 변기로 안고 있던 묵은 변은 시원하게 내보낸 듯한 기분이 든다. 이상하게 홀가분해졌다.

구더기의 몸부림이 만드는 파문에 그때의 똥들은 반짝거렸다. 똥이라는 것도 예뻐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삶이 지속되는 한, 배변 활동은 멈출 수 없다, 그러니 달빛 받아 반짝이는 내 삶들을 언젠가는 볼 수 잇을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별처럼.

                                                                                                     -P142,143


당신은 어느 별에서 오셨습니까?는 뭐랄까, 망한 청춘들의 이야기이다. 곧 청춘이라 부르기 애매해 질, 아직 정신 못차린 애들의 이야기. 누군가에겐 그럴 것이고, 뭐 좋게 말하자면 아직 가슴의 열정을 완전히 잠재우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이다. 뭔가 내 이야기 같아서 좋았고, 내 이야기가 되었으면 하는 이야기 같아서 좋았고, 내 이야기가 될까봐 무서운 이야기여서 좋았다. 머리로는 저렇게 살면 안되 싶은 데 가슴으로도 아, 저렇게 살고 싶다, 아니, 나는 결국 저렇게 살고 있을 것 같다 싶은 이야기였다. 특별한 사건 없는 이야기였지만 읽으면서 묘하게 즐거워졌다.

이 글을 가장 잘 설명해주면서, 가장 공감갔던 대목을 소개하자면

독서, 음악 감상, 춤추기, 여행은 누가 봐도 특기가 아니라 취미였다

                                                                                                      -P181
 정말 읽으면서, 와 너무 적절한 표현이다 싶어서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완벽한 표현이라니. 작가님이 100번 탈고한다는 글을 어디서 본 것도 같은 데 그렇게 탈고를 많이 거치면 이렇게 딱 맞춘듯 꽉 맞아떨어지는 비유를 쓸 수 있는 건가 싶었다.

그외에도 공감되는 대목은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것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같다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과 이 책의 타이틀인 손잡고 허밍은 대목만 소개할까 싶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은 내가 느끼기엔 외로워서 날카로운 여자의 이야기였고, 손잡고 허밍은 죄책감과 상실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이름 모두가 고양이의 이름 같았고, 그 모두가 고양이의 이름이 아닌 것 같았다.

                                                                                           -P41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말해야 할 때는 상황에 따라 매번 다른 이름을 댔다.
그래서 누군가 그녈르 부르면 그녀는 잠시 말설이다 돌아보곤 했다. 미영이거나, 수빈이거나, 지니거나, 혹은 다른 어떤 이름이라도 다 자신의 이름 같았고, 그 모두가 자신의 이름이 아닌 것 같았다. 부르는 소리에 망설이다 돌아보면 그 자리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P27

그는 대숲에서 울고 있었다.
다음날 그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손잡고 허밍   P69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 책은 붕뜬 것들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붕 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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