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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ㅣ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평점 :
독일어권에서 쓰여진 책 읽어주는 남자(Der Vorleser)는 나치 정권이 막을 내린 직후를 배경으로 다루며 역사 의식과 정치 요소를 드러낸다. 하지만 일개 독자인 나로서는 나치 정권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그 후의 상처나 전쟁 중에 희생당하고 고통받은 사람들, 그리고 유대인의 반감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할 수 없어 정치적인 요소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읽었다. 모두 읽고 난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그것이 작품을 왜곡없이 받아들이게 만들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든다.
책 읽어주는 남자(Der Vorleser)의 전반부를 읽으며 떠오른 작품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나 사쿠라바 카즈키의 '내 남자'같은 소설이었다. 내용도 전혀 다르고, 표현력이나 묘사 기법이 비슷한 것도 아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위험한 사랑'이 이 두 책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책 읽어주는 남자(Der Vorleser)에서는 열다섯 살의 어린 소년. 미하엘 베르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린 소년이 훨씬 연상의(이걸 단순히 연상이라는 정도로 표현해도 괜찮을지는 모르겠지만) 여성에게 빠져들어 위험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는 읽는 재미 자체만 보더라도 대단히 재미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약간 에로틱하고 섬세하게 그려내면서도, (어린 소년이었던 주인공 미하엘의 성격이 일반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두 사람의 사랑과 갈등이 대단히 현실적으로 그려지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그에게 빠져들지만, 둘 사이에 좁혀지지 않는 거리. 그것을 묘사하는 책의 내용이 대단히 깔끔하다.
"아니요, 난 지금 명령과 복종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형집행인은 누구의 명령에 따라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하는 거요. 그는 자신이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는 그들에게 복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자신에게 방해가 되거나 그들이 자신을 위협하고 공격하려고 해서 그들을 죽이는 것도 아니지요."
하지만 이 작품의 진가는 후반에 가서야 진정으로 드러난다. 전반부가 '위험한 사랑'으로 위 두 작품을 살짝 연상하게 했다면 후반의 이야기는 사형 제도와 법률을 꼬집으며 사회를 매몰차게 비판한 다카노 카즈아키의 '13계단'이 떠오르게 만든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던 이야기는 반전하여 열다섯 살 소년과 서른여섯 살 여성의 사랑이 단순히 위험한 사랑이 아니라, 나치 정권을 겪은 상처의 세대와 나치 정권이 막을 내린 후의 젊은 세대. 두 세대 사이의 갈등과 두 세대가 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냈다는 것을 깨닫고는 소름이 돋았다.
법학을 전공하여 법학 박사 학위를 따낸 베른하르트 슐링크(Bernhard Schlink) 작가는 주인공인 미하엘의 눈을 통하여 재판을 받는 한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치 정권 시대의 수용소 감시원들과 그 앞잡이들을 처벌하는 법에 대해서 꼬집는다. 그러면서도 대단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인공 미하엘이 그녀를 과거에 깊이 사랑했고, 지금도 그녀에게 묶여 사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녀의 죄를 감싸거나 지지하지 않고 그녀가 '유죄'라는 것을 확실히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녀는 유죄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인 미하엘은 그녀를 깊이 이해하면 그녀를 용서하고 동정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모습도 보인다. 수용소에서 갇힌 어린 아이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하여 노력했던 그녀였기에...
다카노 카즈아키 작가의 '13계단'에서도 그리했듯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재판에서도 '인간의 감정'이 깊이 개입된다. 작가와 독자의 눈. 즉 책의 바깥쪽에서 생각하면 대단한 모순이 존재하는 재판인데도 작중의 인물들은 한나에게 감정적인 증오와 비난을 쏟는다. 그리고 한나는 판사에게 '당신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이냐'고 묻는다. 판사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이 문제는 단순히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쟁과 일제강점기를 겪어 온 우리나라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기에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된다. 무엇이 정답이라고는 지금까지도 모르겠고 앞으로도 판단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내가 주목했던 것은 죄를 저지른 한나는 재판을 받을 때에도 재판을 뒤집을 수 있는 사실을 밝히지 않으며 죄를 받아들였고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심지어 재판을 받은 후에도 수행하는 마음으로 살아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유일한 희망, 그녀가 마지막까지 매달렸었던 사랑. 미하엘은 마지막에 그녀를 어떠한 모습으로 만나러 갔는가. 정말 재미있었던 이 책에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부분이라면 바로 이 결말이다. 책에 깊이 몰입해서 읽었기에 한층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결말에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