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빛의 과거> 는 현재를 살고있는 여성이 소설가 친구의 작품을 읽게 되면서 과거의 기억을 만나는 소설이다.
2017년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김유경이라는 여성은 대학 시절 기숙사에서 만나 오랜 기간 알고 지내온 김희진의 작품을 읽게 된다. 오래 알고 지냈지만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는 아닌 그런 관계. 참 어색하고 어이없는 관계이지만 생각보다 주변에 이런 관계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또 이런 관계가 오래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참 이상하기도 하고...

그녀의 작품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를 읽으면서 유경은 1977 년 여대 기숙사 시절로 되돌아간다.
당시 국문과 신입생이었던 그녀는 김희진과는 다른 방이지만, 선배들이 서로 친하다는 이유로 자주 만나게 된다. 소설 속 유경은 자신의 틀에 갇혀 고고한 듯, 독단적이고 아집있는 세번째 공주로 칭해진다. 사실 그녀는 말더듬이라는 약점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피해온 인물이다.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기 위한 그녀의 태도는 어쩌면 그런 오해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소설가 희진이 유경을 그렇게 생각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녀가 좋아했던 남자가 유경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경은 다른 사람을 좋아했었고, 그와 만나고 이별했었다.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되면 사람과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비틀어지는 경우는 많으니까...

이 소설은 1977년대의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한 기숙사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각각의 독특한 생각과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서로 양립할 수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기숙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의 개성을 보이며 존재하며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쓴다. 이 소설은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지지만 그 개인에 많은 영향을 주는 그 시대 사회 상황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가득하다. 개인을 만들어 나가는데 사회가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처럼...그녀가 말더듬이가 된 이유를 보듯이 말이다.

어쩌면 침묵과 회피로 몸을 둘러쌓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가졌던 그녀에게 소설가 희진은 연약함을 무기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한 그녀가 이기적으로 보였을까?
 
하지만 잘못된 말 한마디로 인해 목숨이 간당간당해질 수도 있었던 그 시대 사회분위기 속에서 그녀와 같이 회피와 침묵을 갑옷처럼 두른 이가 오직 그녀 한 사람뿐일까?

"누구도 과거의 자신을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집하거나 유기할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

자신의 기억과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던 희진의 기억을 소설속에서 보며 그녀는 이렇게 말을 한다. 과거 자신의 기억을 편집하는 자유나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 그녀 특유의 시니컬함이 이런 담대함을 주는 것일까?
아직도 이런 경우 파르르 떨리려고 하는 나를 보며 아직도 언제나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는 경지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 듯 하다.

제목 <빛의 과거>를 생각해 보며, 그녀는 왜 현재를 빛이라 생각했을까, 아니면 빛은 현재의 나를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기억? 무엇이 빛인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과거의 기억, 그 기억의 왜곡이나 변곡마저 음악의 변주로 듣고 흘려 버리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유경의 모습이 인상깊다. 그래 ..네 기억의 변주를 인정할께...내 기억의 변주도 인정해줄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