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작가의 책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책이다. 그러나 늘 그러하듯이, 나는 흥미가 부족한 이유를 책 자체가 아닌 나 자신의 무지와 부족함으로 돌린다. 독서에 대한 애정이 살짝 식어서 집중력이 떨어진 것도 원인 중의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단편소설을 선호하지 않는데, 중간에 내용이 이어지지 않아서 깜짝 놀랐다. 물론 단편을 모아 놓은 책은 아니지만, 하나의 스토리로 내용이 이어지지 않아서 단편 모음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작가는 Part Six(p. 227)에서 이 책을 변주곡의 형태를 빌어 쓴 소설이라고 한다. 하나의 주제와 하나의 사고로 귀결되며, Tamina에 대한, Tamina를 위한, 웃음, 망각, Prague에 대한 망각, Prague와 천사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여기서 Tamina라는 여성은 밀란 쿤데라 자신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프라하의 봄을 지킨 지식인이지만 보헤미아가 러시아에 의해 점령당한 후, 공산정권에 의해 서적이 몰수되고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1979년에 체코 국적을 상실당한 채 프랑스로 망명한 슬픈 작가를 대변한다.
1979년에 프랑스에서 발간된 이 책은, 조국을 등진 지식인의 슬픔을 망각과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듯 하다. 책의 서두는 ‘권력에 저항하는 인간의 싸움은 망각하지 않으려는 기억의 싸움이다’로 시작된다. 물리적 권력에 의해 지배당한 민족이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기억하는 것이다. 역사를 기억하고, 수치를 기억하고, 참혹함을 기억하며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정신을 지배당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를 대변하고 있는 여성 Tamina는 이국 땅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도, 보헤미아에서 정치적 박해를 받고 죽은 남편을 평생 기억하며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자신이 남편을 망각한다는 것을 절대 용서하지 못할 것이며, 망각을 망각하기 위해 노력한다. 밀란 쿤데라가 프랑스에 머물면서 갈 수 없는 조국을 향한 그리움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된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적 분위기에서 자란 밀란 쿤데라의 책에는 음악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아버지와 함께 길을 가다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를 듣는다. 민족의 슬픔이 클수록 노래는 더욱 크게 연주된다. 마치 지배당한 민족에게 역사의 아픔을 잊고 삶을 즐기며 살게 하라고 선동하는 파티곡 같다. 그의 아버지는 이를 ‘음악의 어리석음’이라 부른다. 음악이 기억을 지우려는 인간의 본질적 어리석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체코를 점령한 공산정권이 음악이라는 수단을 통해 역사에 대한 기억을 지우게 하고 쾌락적 삶을 누리도록 국민을 지배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조국을 잃었다고 해서 조국을 기억하지 못함은 역사에 죄를 짓는다는 채무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국을 잃은 상실감을 잘 대처하며, 그럼에도 삶은 지속되어야 하고 살아내야 하기에,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관용의 미소(a smile of tolerance)나 장례식장에서의 숨막힌 웃음(stifled laughter)등을 지으며 살아가야 했을까? 망각과 웃음에 관한 책이지만 망각은 보이지 않고, 웃음(laughter, smile)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하지만 웃을 수 없는 슬픈 웃음이다.
나역시 망각이 두려운 사람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여전히 많은 눈물 속에 살지만, 난 밥도 잘 먹고 아무 일 없듯이 일상을 잘 견디고 있는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기억이 희미해져서 웃고 있는 내가, 혹시나 망각한 채 살아가는 내가 큰 죄를 짓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망각이 없다면 커다란 고통 속에서 살아갈수도 있기에, 한 때는 축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과연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으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