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kiss0426님의 서재 (serendipity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9319125</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16 May 2026 07:19:35 +0900</lastBuildDate><image><title>serendipity</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79319125209784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79319125</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serendipity</description></image><item><author>serendipity</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What was absent colored experience. - [The Faraway Nearby (Paperback) - 『멀고도 가까운』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9319125/17258598</link><pubDate>Tue, 05 May 2026 14: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9319125/172585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783787368&TPaperId=172585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374/42/coveroff/178378736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783787368&TPaperId=172585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The Faraway Nearby (Paperback) - 『멀고도 가까운』원서</a><br/>리베카 솔닛 / Granta Books / 2022년 07월<br/></td></tr></table><br/>이 책의 제목 ‘The Faraway Nearby’는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가 했던 말에서 차용했다고 생각한다. ‘멀지만 늘 가까이’라는 것은 언어의 역설이지만, 우리 삶에도 잘 적용이 된다. 짐작건대, 평생을 힘들게 했던 엄마와의 물리적·정신적 거리를 의미할 수도 있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직면해야 하는 죽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한다. 치매였던 엄마에게, 혹은 뇌종양에 걸렸던 작가에게도 죽음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 그러나 실존 인물과 배경을 바탕으로 한 작가의 자서전적 이야기는 우리가 늘 공감(empathy), 동정(compassion), 이해(understanding), 용서(forgiveness)를 가까이에 두기를 원한다. 이 네 가지는 타인을 위한 확장의 개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의 감옥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됨을 작가 스스로 입증했다.<br><br>이 책을 오랜 기간 붙들고 있을 때는 얼마나 귀한 책인지 몰랐는데, 연휴 기간 몰입하여 읽으니 한 권의 철학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어둡고 차가운 깊은 우물에서 건진 정화수 같은 작가의 회고록은 은유적·수사적 표현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답고 깊음이 있어서 오랜 기간 나의 좌우명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비록 배움은 선택 사항이지만, 어려움은 배움의 학교이며 그 어려움을 독서로 극복한 작가가 존경스럽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음이 꼭 축복일 수 없듯이, 엄마에게 인정받지 못함도 반드시 불행은 아니었다. 책은 우리가 만나는 고독이지만 작가는 책에 몰입하고 언어 단식을 통해 세상과 높은 담을 세웠던 조용하고 말이 없는 아이였지만, 결국엔 엄마를 이해하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어른으로 성장했다.<br><br>늘 도덕적 질문과 원리에 집착하고 성취와 공헌으로 정당화시키려 했던 엄마의 삶은 치매를 통해 마침내 모든 원한, 비교, 기대감, 불안한 포부를 내려놓게 되었다. 자신과 닮지 않아서 기대감에 미치지 못해 구박하고 미워했던 딸에 대해 관대해졌다기보다 자신에게 너그러워진 것이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현재에 사는 삶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했는데, 치매라는 질병도 엄마에게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고, 모녀 관계를 회복시키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아울러 작가는 엄마를 비로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엄마를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용서의 시작이었고, 충분히 이해한다는 것은 일종의 용서이자 사랑이었다. 내가 너를 용서하니 너의 빚은 나의 관대함으로 탕감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오래되고 추한 낡은 고통을 내려놓고 미움과 증오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당당히 과거로부터 걸어 나옴이 진정한 용서이자 자유일 것이다.<br><br>작가의 삶을 그늘지게 했던 것은 단순히 엄마의 영향만은 아니었다. 뇌종양을 진단받고 그녀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나이 들어가는 엄마에게만 가까운 줄 알았던 죽음이 내게도 곧 엄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인간의 욕망, 포부, 집착의 허무함을 알게 된다. 에라스무스의 ‘인간은 마치 거품과 같다’는 말을 통해 인간의 삶이 얼마나 유한하고 한시적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의 아이러니는, 그녀의 질병이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해 책 속에서 위안을 얻었던 그녀의 고독을 완화했다는 것이다.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어야 하는, 아무것도 영원한 것이 없는 이 세상에서는 고독도 사치였으리라. 만약 조만간 이 세상을 마감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에는 자신의 부정적 감정에 몰입하며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붙들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br><br>마음을 얼어붙게 하고 세상을 왜곡하는 것은 나르시시즘이거나 냉소주의자의 거울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나 역시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었다가 다치고 나면 금세 냉소주의로 변하게 된다. 허무주의에 머물렀다가 어느새 냉소주의자가 되어 마음을 닫고 세상을 향해 부정과 불만을 마구 쏟아내려고 한다.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이야기에도 많은 장을 할애하고 있다. 그는 초기에 길 위에서 만난 개별적인 인간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했던 의사였으나, ‘더 나은 세상‘이라는 혁명적 대의를 위해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제거해도 좋다는 냉혹함으로 변하게 되었다. 혁명의 아이콘이 되면서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멀리 있는(Faraway) 억압받는 민중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쏟았지만, 정작 자신과 가까이 있는(Nearby) 동료나 가족, 적대자들에게는 무자비하게 대우했기에, 아르헨티나와 쿠바에서 그에 대한 평이 엇갈리고 있는 것 같다.<br><br>작가는 책 외에 또 다른 건강한 출구를 통해 삶의 균형을 이룬 것 같다. 자신의 신조인 ‘타당한 이유 없이 모험을 거절하지 말라’에 따라 그랜드 캐니언으로 모험을 다녀왔다. 극한의 추위와 마주해야 하는 아이슬란드로의 여행도 매우 아름답다. 물론 책으로 그녀의 여정을 읽는 것보다 실제 겪어야 했던 그녀의 어려움은 어마어마했으리라. 그럼에도 모험 앞에서 ‘Yes’를 함으로써 그녀의 대답은 삶의 이정표가 되고, 또 다른 이정표를 세우는 계기가 된다. 많은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기에 ‘부족한 것이 경험을 다채롭게 했다(What was absent colored experience. p.253)’는 표현이 나의 좌우명이 되길 바란다. 현재의 나 역시 부족한 것투성이이다. 남들에게는 있는데 나에게는 없는 것이 너무 많아 늘 이것이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이 되었다. 부족한 것을 자산으로 삼을 수 있고 삶의 양념으로 노래할 수 있는 그녀의 용기와 패기에 존경을 표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374/42/cover150/178378736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3744228</link></image></item><item><author>serendipity</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Go as a River - [Go as a River : The powerful Sunday Times bestseller (Paperback) - 『흐르는 강물처럼』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9319125/17258431</link><pubDate>Tue, 05 May 2026 11: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9319125/1725843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804991805&TPaperId=1725843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834/30/coveroff/180499180f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804991805&TPaperId=1725843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Go as a River : The powerful Sunday Times bestseller (Paperback) - 『흐르는 강물처럼』원서</a><br/>Shelley Read / Transworld Publishers Ltd / 2024년 04월<br/></td></tr></table><br/>갑자기 연애소설을 읽고 싶었고 사랑의 기운을 받고 싶어서 고른 책이다. 내가 부러워하는 흐르는 강물 같은 삶은 깊음과 넓음이 있어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시대를 거스르지 않고 편승하지 않기에 가볍지 않으며 강물의 색깔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가 없는 아름다운 색채를 띠고 있다. 쉼이 없으나 분주하지 않고 멈춘 것 같으나 늘 어딘가를 향해 유유자적 흘러간다. 강물 같은 삶을 살았고 지향했던 Wilson Moon을 사랑했던 Victoria의 슬프지만 멋진 삶을 읽으며 인간은 생각보다 용감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큰 용기이고 그 용기의 대가 또한 엄청난 희생을 요구했다. <br><br>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Wilson을 순수하게 사랑한 대가는 엄청난 아픔과 고통이었다. 혼자서 외딴 오두막에서 아이를 낳고 그에 대한 그리움 못지않게 압도하는 배고픔에 아이마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연히 만난 다른 사람의 자가용 뒷 자석에 아이를 놓고 도망을 쳤다. 그것만이 아이를 살리는 길이라 생각했다. 저수지 건설로 인해 고향 집을 떠나야 했던 그녀는 대대로 물려받은 복숭아 과수원은 살리고 싶었다. 도망치고 묻고 싶은 과거가 있는 반면 오래 오래 가슴에 함께 간직하고 싶은 과거의 유산 중 하나가 과수원이었나보다. 농과대학 교수의 도움으로 복숭아 나무들을 성공리에 이전하고 열매 없는 몇 년을 보낸 후 마침내 복숭아 수확을 하게 된다. <br><br>물질적 번영과 외적인 삶의 안정이 반드시 마음의 평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산속 공터에 피덩어리 같은 아들을 남기고 온 엄마의 심정은 매일 매일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녀는 매년 공터로 순례를 다녀왔고, 기념비적인 돌탑을 쌓기 시작한다. 복숭아가 얹혀있던 그 바위 위에 아들의 나이만큼 돌을 얹기 시작하고, 그 돌탑이 아들을 만나는 교량 역할을 한다. 아들을 입양했던 Inga Tate는 같이 자란 친아들 Maxwell을 잃고,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Lukas는 군대에 입대를 하게 된다. 어쩌면 친아들보다 더 사랑했던 Lukas를 얻기 위해 Inga Tate는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돌탑에 가져다 둔다. Victoria, Inga Tate, Lukas는 각각 인간이기에 짋어져야 하는 다른 슬픔을 가슴에 묻고, 견디며, 포기하지 않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br><br>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반드시 희극적인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닌 저마다의 비극적 요소가 있다. 그 비극이 우리의 삶에서 권태, 지루함, 교만함을 제거시키며 인간의 모단 부분을 둥글게 다듬으며 겸손의 미학과 감사를 배우게 하는 것일까? 인간은 비와 구름을 만나기 전까지는 고개 숙이지 못하는 오만한 동물인지라 아픔과 상처의 양념을 통해 성숙과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랑을 선택함으로써 겪지 않을 수 있었던 극단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Victoria의 삶은, 겉으로 보이기에는 비극적이지만 희극으로 대단원을 내린 역설이 있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834/30/cover150/180499180f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8343049</link></image></item><item><author>serendipity</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실존적 모순 - [The Denial of Death (Paperback)]</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9319125/17106960</link><pubDate>Sun, 22 Feb 2026 17: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9319125/171069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684832402&TPaperId=171069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5/53/coveroff/068483240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684832402&TPaperId=171069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The Denial of Death (Paperback)</a><br/>어네스트 베커 지음 / Free Pr                                  / 1997년 08월<br/></td></tr></table><br/>불확실성의 시대에 살면서 가장 확실한 명제는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것이다. 빈부 격차가 극심해지는 불평등의 시대에 가장 공평한 진리다. 그 누구도 질병, 노화, 죽음을 피할 수가 없다. 경미한 것을 제외하고 심한 질병에 걸리지 않고 평생을 살 수는 있다. 의학, 의술, 물질의 혜택으로 노화의 시기도 최대한 늦추거나 감출 수도 있다. 그러나 죽음은 시기와 방법을 달리할 뿐 인간이라면 누구나 도달해야 하는 종착역 같은 것이다. 가진 것이 많아서 이 세상의 삶이 행복한 자는 최대한 늦게, 가진 것이 없어서 이 세상의 삶이 곤고한 자는 최대한 빨리 도착하고 싶은 목적지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br><br>죽음이란 단어는 오랜 기간 터부시되어 왔고, 공론화가 되더라도 달가운 화제는 아니며, 죽음을 원한다고 해도 과연 그 고백 속에 얼마큼의 진실이 담겨 있을지 의문이다. 탄생, 발전, 진화, 팽창을 거듭하는 인간이 결국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인간의 이중성(duality)은 존재론적 불안감을 야기시킨다. 결국엔 부패하고 무질서를 맞이해야 한다면 과연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삶이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다면 태어난 이유는 무엇이고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마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모든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간다. 이를 두고 파스칼은 ‘미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또 다른 형태의 광기일 것이다’라고 표현했다.<br><br>실존적 모순이나 역설은 극복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죽기 때문이다. 영웅주의, 나르시시즘도 죽음이라는 공포를 잊거나 피하기 위한 긍정적 방어 기제가 될 수 있다. 우울증, 노이로제 같은 정신 질환 역시 근본적인 뿌리는 죽음이란 공포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인간은 거짓과 허상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허상도 궁극적으로는 민낯이 드러난다. 어린 시절 산처럼 높아 보였던 부모님, 사랑하는 연인, 최고라 선택했던 배우자, 절친이라 믿었던 친구들의 변화를 보며 다시 존재론적 모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br><br>영원한 영웅, 변치 않는 아름다움, 한결같은 선은 존재하지 않기에 인간은 불멸에 집착한다. 심리학, 정신분석학, 과학으로는 불멸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를 다룬다는 점이 닮아 있는 심리학과 신학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죽음의 공포를 잊고 삶의 의미를 찾게 하는 유일한 길은 믿음이 아닐까 한다.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Freud의 영향력은 오늘날도 엄청나지만 그의 성에 대한 집착은 많은 모순을 안고 있다. 그의 논리를 경시할 수 없고 공감도 가지만 존재론적 딜레마를 설명하기에는 미흡하다. 자신의 죽음의 날짜를 정해 놓았던 것과 삶에 대한 그의 염세적 태도는 굉장히 아이러니하다.<br><br>반면 Otto Rank와 Kierkegaard는 프로이드와 달리 신학에서 죽음의 해결점을 찾는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난 고아와 같고 살기 위해서는 삶의 의미가 필요하다. 인간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는다면 평생 허상을 붙들고 씨름하다가 결국엔 공허감 속에 빠지게 된다. ‘나는 할 수 있다’라고 믿었던 ‘가능성’이란 단어가 얼마나 나를 기만하고 짙은 패배감 속에 묶어 두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려고 발버둥 치느니 오히려 죽음을 초월하는 신에게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자유로움인가? 어깨 위의 무거운 짐을 벗어 신에게 맡김이 얼마나 창의적인 생각인가? 그 신은 인간이 찾아온 불멸의 대상이 아닌가?<br><br>프로이드는 가시적이고 가능한 영역만을 연구했지만 죽음의 압도적인 공포를 극복하지 못해 염세적이었다. 보이지 않는 무한한 세계에 존재하는 신을 믿음도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누군가는 믿음을 또 다른 ‘창의적인 허상’이라 말할 수 있다. belief와 faith 사이에서 faith로 나가기 위해서는 신의 은총이 필요하다. 인간의 의지로 믿음을 가질 수가 없다. 보이지 않는 어떤 원초적 힘에 의해 인간은 끊임없이 창조되고 유지되어 오고 있다. 그 원초적인 힘과 섭리는 무엇일까? 작가는 그 힘을 하나님으로 표현하고 있지는 않다. 모든 과학은 부르주아이고 관료주의라 표현한 걸로 보아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은 결코 실존 불안을 해결할 수 없다.<br><br>창조의 목적과 인간의 실존 이유에 대해 심리학은 마법의 치료약이 되지 못한다. 결국 신체의 한계를 넘어서고 죽음을 초월하는 절대자인 신의 손안으로 이 문제를 맡김으로 인간은 자유함을 얻을 수가 있고 정신적인 건강을 얻을 수가 있다. 작가는 구체적으로 기독교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종교 및 믿음의 절대적 필요성에 공감한다. 실제로 나의 신앙은 내 삶의 이유와 목적을 모두 찾아 주었다. 질병, 노화, 죽음은 겸손과 신의 존재를 배우게 하는 관문이 아닌가 한다. 젊음, 아름다움, 건강의 유한함을, 인간은 everything이 아니라 nothing임을, 유의미한 삶은 독립이 아니라 의존을 통해 가능함을 가르치는 영적 스승이라 칭하면 과장이 될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5/53/cover150/068483240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55325</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