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탄생
김민식 지음 / 브.레드(b.read)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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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목재 딜러, 목재 컨설턴트로 일한 저자는 내촌목공소의 대표입니다. 

나무일로 세계를 다닌 여정만큼 다양한 풍경과 공간과 삶을 모습을 

보고 읽은 이야기가 담긴 <집의 탄생>을 보겠습니다.



대부분 집이라는 기억 속에 어머니가 함께 합니다. 

원초의 집, 어머니의 자궁, 하늘 아래 어머니의 몸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백 칸이 넘는 저택이든, 어두운 불빛 식탁 위에 감자 접시밖에 없었던 집이든 

집은 그냥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우린 house보다 home으로 집을 느낍니다. 

저자는 자신의 생활을 확보할 최소한의 공간인 8평 집에 살고 싶은 로망이 있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42평이고, 그곳에서 자신의 동선은 12평에 지나지 않습니다. 

12평에서 8평으로 주거 공간을 줄이면 생활양식도 이에 맞춰야 합니다. 

모든 것을 줄여야 하지요. 옷과 책은 너무 많고 가구는 너무 큽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번다합니다. 

그래서 작은 공간, 작은 삶을 상상하게 됩니다.


시선이 미치기도 전에 좋은 공간은 몸이 먼저 압니다. 

건축 내부로 미처 발을 딛기 전, 바깥에서 보는 조형과 색이 바랜 벽, 

안정된 지붕이 전달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디테일 없이도 다가오는 힘을 가진 건축이 있습니다. 

눈이 보고 이성이 판단하기 전 오감이 먼저 느끼는 공간, 다정하고 고요합니다.


공간의 배치는 비슷해도, 그 안을 꾸미는 사람이 달라 느낌이 다르듯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산시성 교가대원에서는 누대에 걸쳐 중국 대륙에서 유통으로 축적한 

진씨 가문의 엄청난 부를 읽을 수 있고, 

버지니아 출신 조지 워싱턴의 저택과 토머스 제퍼슨의 콜로니얼양식 저택을 보면 

미국 독립전쟁은 식민지 유력 가문들의 재산을 

본국 영국으로부터 지키려는 운동이 아니었나 싶은 의구심이 들 정도라고 합니다. 

이렇게 남겨진 건축은 그들 생전의 모습을 세세히 설명합니다. 

세기의 사상가가 머물렀던 윌슨 호숫가 작은 집과 

법정 스님의 수류산방을 보며 부질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집의 탄생>은 저자가 직접 보고 그린 세계의 집들을 설명과 함께 실었습니다. 

관광지로 유명한 건축물도 있고, 저자의 지인이 살던 집도 있습니다. 

집 구조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해 

집은 우리들의 이야기이고 기억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을 합니다.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 개성 있는 집 모양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마저 개성 없진 않습니다. 

나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래의 집은 어떻게 변할지 가늠할 수 없지만, 

세상에 내 집 같은 곳은 없다는 생각은 변함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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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도시 속 인형들 1 안전가옥 오리지널 19
이경희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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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세우스의 배"가 2020 SF 어워드 장편 부문 대상에 선정된 저자는 

단편 "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이 소설 플랫폼 '브릿G'에서 

2019년 올해의 SF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럼, <모래도시 속 인형들>을 보겠습니다.



코르도바 콤플렉스 주식회사가 만들어낸 합성인간 카이는 

공식 홍보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100명의 유전자를 샘플로 뽑아 장점만을 조합했다고 합니다. 

카이는 무슨 일을 해도 척척해낼 만큼의 재능은 있는데, 

그렇다고 딱히 대단한 수준은 아니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특별히 못하는 것도 없는, 

모든 재능을 적당히 가진 아이입니다. 

카이는 이 재능으로 유명해지기로 하고 성공합니다. 

카이에겐 삶이 곧 상품이고, 시간이 곧 돈인지라 

콘텐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자신을 복제했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게 Plenty x Cred/t, 일명 카이 헌드레드입니다. 

트라이플래닛에서 DNA와 뇌파 패턴까지 동일한 신체에 

기억과 성격까지 그대로 복사해 원본과 100% 일치하게 만들었습니다. 

의식을 복사하기 전 수면제를 먹고 자신을 포함한 101명의 카이를 룰렛에 넣고 

무작위로 뒤섞어 누가 진짜 오리지널 카이인지 아무도 알 수 없게, 

심지어 101명의 카이 자신들조차도 모르게 합니다. 

100명의 유전자 아빠와 1명의 대리모를 모아 서바이벌을 하고 

우승자가 카이 크레디트의 부모가 되는 페어런트 101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카이 33번과 67번이 서로 죽이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을 살인사건이라 해야 할지, 자살 사건이라 해야 할까요.


휴먼 셰어하우스 메가빌리지는 평택 보편복지공단에서 건립한 공공임대 메가빌딩입니다. 

이곳엔 10만 명이 넘는 노인들이 모여 살았고, 

그중 30% 정도가 노령 기초생활 의체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의체 사용자에게는 법적으로 책임보험 가입 의무가 있어 

매년 보험사들은 의체보험료 갱신을 위해 임시 조사원들을 고용했습니다. 

가입자들의 의체가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인데, 

비싼 의체를 국가보조금으로 지원받고 자식을 위해 브로커에게 넘깁니다. 

그것도 헐값에 팔아 마련된 목돈은 자식들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갑니다. 

주택 임대 보증금으로, 창업 자금으로, 대출 이자로, 도박 빚으로요. 

그런데 일주일 동안 이곳에서 평시 대비 열 배나 많은 폭력 범죄가 일어납니다. 

샌드박스 전체 평균은 그대로인데 며칠 전부터 갑자기 이곳만 사건을 폭증합니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곧 다가올 세상의 파멸을 경고한다며 전 세계 곳곳에서 

별별 기상천외한 장난질을 벌인 글로벌 해커 그룹 파멸로부터의 9호 계획이 

평택 국제공항으로 입국했다는 첩보가 입수됩니다. 

그들의 목표는 코르도바 메가빌딩이고 이를 막기 위해 주인공이 출동합니다.


홀로마스크를 쓰고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슈퍼히어로가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집니다. 

처음엔 뜬소문으로 시작했으나 흐릿한 영상으로, 전문가의 라이브 캠 촬영으로, 

3차원 VR 콘텐츠까지 다양한 증거들이 넷 소사이어티 채널 사이를 떠돌게 됩니다. 

슈퍼 히어로 스위치는 각양각색의 초능력으로 

범죄자들을 물리치며 유저들은 열광했습니다. 

스위치는 카이 크레디트 이후로 가장 인기 있는 셀럽이 되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요. 

슈퍼히어로 스위치의 상품성을 캐치한 여섯 명의 버추얼 스트리머들이 함께 모여 

기업형 스타트업 채널을 개설했고, 이 채널은 거대 공룡 기업으로 성장합니다. 

거기에 CK 그룹의 투자를 바탕으로 스위치 관련 제보와 촬영 소스를 

공격적으로 매입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CH.스위치가 관련 콘텐츠를 독점하고 있습니다. 

자칼은 정장을 차려입고 상류층 10대 아이들을 납치해 

교육을 빙자한 학대와 고문을 자행하는 미치광이 빌런이 등장했는데, 

매번 스위치가 아이를 구조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의심을 품고 주인공은 잠입수사를 합니다.


원현수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치 않는 몸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곳 샌드박스에서 자신이 원하는 취향대로 몸을 바꿔 입는 정도야 

누구나 자연스레 하고 있는 일이라 그는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의 폭력을 조율하는 군산복합체 카르텔의 CEO 중 한 명인 

원미연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점입니다. 

원미연이 남몰래 숭배하는 구시대의 낡은 종교는 극도로 편협한 교리를 갖고 있어 

남자가 치마를 입는 일은 상상조차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하물며 몸을 바꿔 입는 수술을 허락받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결국 원현수는 자살을 시도했으나 살아남았습니다. 

엄마를 굴복시키지 못한 그는 트윈플렉스로 원현정을 만듭니다. 

트윈플렉스는 하나의 인격이 두 개의 신체를 가진 것으로 극소수만 이용하는 서비스입니다. 

원현정은 원현수에게 수년간 폭언과 구타에 시달렸고 그녀는 그를 고소를 합니다.




주한 미군 절반이 빠져나간 캠프 험프리스에 

기술규제 면제특구가 설정된 것을 시작으로 평택은 

25년 만에 서울을 능가하는 거대 도시로 자랐습니다. 

혁신행정특례법이 제정된 후로는 중앙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치정부까지 들어섰습니다. 

평택 특별자치시 기술규제 면제특구, 일명 샌드박스는 

윤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끔찍한 기술들을 가둬 둔 실험용 모래 상자입니다. 

<모래도시 속 인형들>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첨단 기술이 

자유롭게 거래되는 낙원이자 지옥인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복제인간 사이의 윤리 문제와 사람들의 관심을 가지고 싶은 욕망을 그린 'x Cred/t', 

부유층과 최하층과의 갈등과 연예 노동자 문제를 다룬 '저 디지털 세계의 좀비들', 

밈과 음모론에 매몰된 사람들을 이야기한 '파멸로부터의 9호 계획', 

사람들이 어떤 것을 믿게 하느냐 아니냐의 싸움과 교육을 그린 '슈퍼히어로 프로듀서',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권력자와 성소수자 이야기를 다룬 '트윈플렉스', 

앞에 나온 조연들이 총집합하는 'epilogue'까지, 

6개 연작소설이 최첨단 기술이 상용화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연작소설의 주인공, 첨단범죄수사부 진강우 검사와 

민간조사사 주혜리가 활약하며 진상을 파헤칩니다. 

진짜 사건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것 같다는 말에, 

서로 다른 매력을 뽐내는 두 주인공이 등장할 다음 권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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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그라비아의 음모 레이디 셜록 시리즈 2
셰리 토머스 지음, 이경아 옮김 / 리드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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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중국에서 태어난 13살에 미국으로 이민한 저자는 

경제학과 회계학을 공부했습니다. 

2006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8년에 발표한 "Private Arrangements"는 

그해 최고의 책과 최고의 역사 로맨스로 선정됐습니다. 

이후 다양한 시리즈를 집필하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 로맨스 작가로 인정받았습니다. 

2013년부터 판타지,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로 

영역을 넓혀 나갔고, 2016년 '레이디 셜록 시리즈'를 발표했습니다. 

시리즈의 2번째 책인 <벨그라비아의 음모>를 보겠습니다.



1권에서 가상의 인물 셜록 홈스의 활약상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그가 명탐정임을 알게 됩니다. 

원래 정체는 샬럿 홈스로 어퍼 베이커 스트리트 18번지에서 의뢰인을 만납니다. 

사람들은 셜록 홈스가 수수께끼 같은 병에 걸려 누워서 지내는 중이며, 

평범한 방식으론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서 그의 여동생을 거쳐야만 

그의 통찰력을 의뢰인이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그의 여동생 역으로 샬럿이 대부분 나섰고 

가끔 정체는 아는 왓슨 부인이나 페넬로페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그녀의 정체를 아는 트레들스 경사는 상관의 신임과 부하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셜록 홈스와 직접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연줄도 있어서 

운 좋은 남자라고 의기양양했습니다. 

하지만 셜록 홈스가 눈부신 지성을 소유한 여자이며 

점잖은 사회에서 더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여성임을 알고 난 뒤 혼란스럽습니다. 

게다가 경사도 연락을 받은 지 한 시간이 되지 않은 사건을 

샬럿과 그의 지인 잉그램 경이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짐작되지 않습니다.


잉그램 경의 형인 밴크로프트 경이 샬럿에게 청혼을 하면서 

셜록 홈스가 받는 의뢰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녀는 사양하려고 했으나 밴크로프트 경이 자신이 마주치는 

머리를 쓰는 소일거리가 든 서류 봉투를 보며 검토해 보라고 합니다. 

또한 잉그램 부인이 셜록 홈스가 낸 광고를 보고 의뢰를 합니다. 

잉그램 부인은 왓슨 부인과 샬럿의 얼굴을 아는지라

 페넬로페가 여동생 역할을 하고 의뢰 내용을 들었습니다. 

잉그램 부인이 결혼 전 사생아이자 견습 회계사와 만나 사랑을 했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졌고, 얼마 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답니다. 

둘은 일 년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을 산책하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이어졌는데, 

올해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 그 남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의 안부가 걱정된 잉그램 부인은 셜록에게 이를 의뢰했고, 

그 사람의 이름을 다른 방에서 들은 샬럿은 놀랍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배다른 오빠였기 때문입니다.


잉그램 부인의 의뢰한 실종사건과 10년 전 암호에 얽힌 살인 사건을 해결하면서, 

언니 리비아가 한눈에 빠져든 수수께끼의 낯선 남자의 정체를 알아내야 하고, 

샬럿 자신이 받은 청혼 문제까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녀의 통찰력이 어떻게 빛나는지, <벨그라비아의 음모>에서 확인하세요.




전작은 배경에 대한 묘사와 캐릭터의 성격에 대한 이야기로0

 '레이디 셜록 시리즈'의 배경을 만들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가 어떤 사회이며, 그중에서 여성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소설 전반에서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작품인, <벨그라비아의 음모>에선 샬럿 홈스가 

본격적인 사건 해결과 탐정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운명의 라이벌이 될 모리아티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됩니다. 

하지만 여성을 꽃처럼, 장식품처럼 생각하는 그 시대에서 

남성보다 더 뛰어난 그녀의 재능은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셜록 홈스라는 남성의 이름 아래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시대에서 요구하는 여성의 모습과 다른 재능을 가진 여성의 재능이 

과연 좋은 것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샬럿의 통찰력도 그녀에게 축복이었을지, 독이었을지 고민됩니다. 

샬럿도 언젠가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활약하게 되기를 응원합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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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볼 수 없는 책 - 귀중본이란 무엇인가
장유승 지음 / 파이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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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으로 한국출판문화상 편집상,

 "동아시아의 문헌교류"로 한국출판학술상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그럼 귀중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아무나 볼 수 없는 책>을 보겠습니다.



"팔만대장경"을 활자로 인쇄했다면 거대한 장경판전은 필요 없었을 겁니다. 

인쇄에 사용된 활자와 틀, 각종 도구를 전부 모아봤자 

해인사 해우소 한 칸도 못 채울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은 목판으로 인쇄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어마어마한 유산을 남긴 것입니다. 

목판인쇄의 장점은 판목 하나로 최소 수백 장의 동일한 인쇄물을 찍어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소량만 필요하다면 목판인쇄를 효율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소량 인쇄에 적합한 것은 활자 인쇄입니다. 

목판인쇄는 단일 품종 대량 생산에 적합하고, 

활자 인쇄는 다품종 소량 생산에 적합합니다. 

대장경의 수요는 왕실 및 일부 귀족 그리고 대형 사찰 정도로 수요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고려는 팔만대장경을 활자로 찍어내지 않았을까요. 

굳이 목판인쇄를 선택한 이유는 책보다 판목의 가치를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활자 인쇄는 한 장씩 조판하여 인쇄하고, 인쇄를 마치면 흩어버립니다. 

활자 인쇄를 마치면 남는 것이라고는 낱낱이 흩어진 활자뿐입니다. 

그러나 목판인쇄는 다릅니다. 

목판인쇄를 위해 제작된 판목은 인쇄한 뒤에도 그대로 남습니다. 

판목만 있으면 책은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으므로 

판목은 인쇄한 책보다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만약 팔만대장경의 판목이 전부 없어지고  판목으로 인쇄한 종이만 남이 있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팔만대장경에 경외심을 품을까요. 

책보다 판목을 중시하는 관념은 조선시대에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판목을 아무리 소중히 보관한들, 

그 자체로는 사회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판목은 그것이 책으로 바뀌어 널리 보급될 때 비로소 가치를 발휘하는 법입니다. 

그 속에 아무리 수준 높은 지식이 들어 있어도 

책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고스란히 전해진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만 

그 기적에 심취하고 말아서는 곤란합니다. 

철저히 조사하고 그 가치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쓸모 있는 것을 찾아보고 어떻게 활용할지 궁리해야 합니다.


문신 관료를 선발하는 문관은 초시, 회시, 전시 3차에 걸쳐 치러집니다. 

이 가운데 마지막 관문인 전시에서 출제된 것이 책문인데, 

오늘날의 논술에 해당합니다. 

조선시대 책문은 주로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내용입니다. 

응시자는 경전과 역사를 근거로 제시하고, 

현안을 분석하여 해결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책문을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 최종 합격자 순위가 결정됩니다. 

논술은 정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기출문제의 모범 답안입니다. 

"동국장원책"은 1396년부터 1447년까지 시행된 

과거 시험의 장원급제자 답안지를 모은 책입니다. 

연도별로 문제와 답안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주어진 문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지만 답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기야 경전과 역사책만 공부하던 선비가 실무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노련한 관원들도 어쩌지 못한 실무적 문제를 해결할 창의적인 대책은 

출제자 입장에서도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출제 의도는 따로 있었습니다. 

수많은 폐단에도 불구하고 과거 제도를 유지한 이유는 체제의 유지와 안정입니다. 

책문에서 사회 문제 해결 방안을 질문한 의도 역시 

반드시 개혁 방안을 찾겠다는 의도는 아닌 듯합니다. 

과거 제도의 시행은 혁명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누군가 체제의 안정을 흔들 수 있는 급진적 개혁안을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배제됩니다. 

체재의 안정을 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답변은 일반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와 기업 모두 창의적인 인재를 뽑고 싶다고 하지만, 

그들은 정말 창의적인 인재를 원할까요. 

그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인재를 곁에 둘 자신이 있을까요. 

창의적인 인재가 없다고들 말하지만,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과 포용하는 문화가 없는 것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약 28만 권의 고서가 있습니다. 

그중 1%에 해당하는 963종 3,475권은 '귀중본'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귀중본은 귀중한 책을 말합니다. 어떤 책이 귀중한 책인지는 기준이 있습니다. 

대체로 17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책이라면 귀중본으로 취급합니다. 

근현대 서적에서의 기준도 있습니다. 

꼭 오래된 책만 귀중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수량에 관한 조건이 있는데 하나뿐이거나 몇 없는 책은 

오래되지 않아도 귀중본이지만, 수량이 적다고 반드시 귀중본은 아닙니다. 

책 주인이 유명한 사람이고 그 책에 흔적을 남겼다면 귀중본입니다. 

이름난 사람의 자필 원고나 편지는 귀중본이며, 초판과 한정판도 귀중합니다. 

서화나 고지도, 탁본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도 귀중본 대접을 받습니다. 

귀중본은 내용이 귀중한 책이 아니라 책의 물리적 특징이 중요합니다.


과거에 책을 만든 사람들은 많은 독자를 기대하기보다 

책의 가치를 알아줄 단 한 사람의 독자를 기대했습니다. 

조선 지식인의 저술은 대부분 간행되지 못했고, 

운 좋게 간행돼도 널리 보급되지 못했습니다. 

당대의 독자를 기대할 수 없었던 그들은 후대의 독자를 위해 

저술을 정리하고 보관했습니다. 

그 결과가 세계 어디를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의 기록문화입니다. 

독자가 아무리 적더라도 책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책은 앞으로도 

학문의 진보, 사회의 진보에 일조할 것입니다. 

이것이 책을 쓰는 사람, 책을 만드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귀중한 책의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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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증인 - The Last Witness
유즈키 유코 지음, 이혁재 옮김 / 더이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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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는 일본 이와테 출신으로 2008년 "임상진리"로 

7회 이 미스터리가 엄청나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했습니다. 

이후 15회 오야부 하루히코상, 69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2018년 서점대상 2위를 받았고, 

2021년 "미카엘의 고동"으로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그럼, 법률 미스터리 <최후의 증인>을 보겠습니다.



사가타 사다토는 검사 출신 변호사로 이 책의 주인공입니다. 

고사카 치히로는 그의 사무실 직원으로 

재판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는 실무능력과 사건을 보는 시각이 좋습니다. 

고사카는 그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달려들었습니다. 

지금 사가타는 요네사키 법원에 내려와 있습니다. 

도쿄에 사무실이 있는데 이곳은 고속전철 타고 

북쪽으로 두 시간 가야 나오는 지방 도시입니다. 

지방 의뢰는 교통비 숙박비까지 나오기에 대부분 의뢰인이 부유한 사람입니다. 

이번 건이 다른 의뢰와 달랐던 점은 의뢰인 다카세 미쓰코가 

억울하다고 '끝까지'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뢰 내용은 살인사건으로 상황 증거는 피고한테 불리한 것뿐입니다. 

이 사건을 검토한 검찰은 불륜 사이였던 두 사람이 샤워를 한 뒤 논쟁을 벌였고, 

의뢰인이 식사용 나이프로 피해자 시마즈 구니아키를 찌른 것으로 추정합니다. 

분명 그 추리는 논리적이었고, 

검찰은 물론 언론들도 의뢰인이 범인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럼에도 사가타는 재미있는 사건이라며 의뢰를 받아들였습니다. 

그에게 재미있는 사건이란 검찰이 쉽게 간파할 수 있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한 꺼풀 벗길 때마다 새로운 얼굴이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피고인을 불리하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진실을 규명한다, 

그것이 사가타의 원칙입니다.


이번 사건 담당 검사 쇼지 마오는 사명감을 갖고 

자신의 의지로 이 길을 택한 여성으로 능력이 있습니다. 

재판장 데라모토 쥰이치로와 그를 가운데에 두고 우배심과 좌배심이 있습니다. 

사건 배심원으로 뽑힌 여섯 명은 세 명의 판사 양쪽으로 나뉘어 앉아 있습니다. 

방청석은 기자와 방청객으로 만원입니다. 

의뢰인이나 용의자의 옆집에 사는 부인의 증언에 따르면 

7년 전 당시 초등생이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은 이후로 변했다고 합니다. 

특히 요 근래 옷이 화려해지면서 부부 싸움도 자주 했고, 

내용 중에 미쓰코가 남편에게 좋은 사람이 있다며 헤어지자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또한 미쓰코가 부인 집에 들러 다른 남자와 만나고 있다며 

자신은 남편과 헤어지고 그 사람과 살고 싶은데 

남편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며 조언을 구했다고 합니다.


다카세 고지는 내과 클리닉을 개원한 의사로 실력이 좋고 친절하며 

병원 위치도 좋아 경제 상황도 좋습니다. 

그는 대학 부속병원에 근무하다 40살이 되기 전에 독립해 자신의 병원을 차렸습니다. 

일찍 독립한 이유는 아들이 생겨서였고, 자신의 힘으로 먹여 살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들 스구라는 활발하고 적극적인 소년입니다.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스포츠 학원을 갔는데, 조금 지나니 비가 많이 왔고, 

10시가 넘어도 소식이 없어 걱정할 무렵 경찰이 사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사고의 유일한 목격자는 친구 나오키입니다.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둘은 주택가 횡단보도에 도착했습니다. 

자동차 신호는 빨강, 자전거가 건널 횡단보도는 파랑이라 

두 사람은 횡단보도를 건넜습니다. 

그때 자동차 한 대가 밀고 들어와 앞에서 달리던 스구루는 차에 치여 날아갔습니다. 

차에서 내려 스구루에게 달려간 운전자는 어떻게 하며 있었으며 

그 입에서 술 냄새가 났다고 나오키는 경찰에서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증거로 인정받지 못했고, 명확한 증거가 없어 불기소 처분이 내려집니다. 

다카세는 억울해서 목격자 찾는 전단을 배포했으나 소용이 없고, 

민사소송을 위해 변호사를 만났지만 모두 난색을 표시합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지만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아들의 누명을 벗겨주기는 힘들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들 7주기가 오기 전까지 말이죠.


범인이 확실한 살인사건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여자, 

아들의 교통사고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 

이들은 어떻게 될지 <최후의 증인>에서 확인하세요.




사적 복수를 소재로 담은 이야기는 많습니다. 그것이 발단이 된 사건도 있습니다. 

<최후의 증인>에서처럼 법이 피해자의 편이 아니라 가해자의 편에 있게 되었다면, 

내가 그 일의 피해자이거나 그 가족이라면 어떨까를 생각해 봅니다. 

정말 사적 복수를 생각하지 않을까요. 

행동으로 나서진 못해도 생각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공감이 가고 법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변호사 사가타는 죄는 정당하게 재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정당하게 구원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법을 범하는 것은 인간이기에 법보다 인간을 보라는 주인공의 말에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죄를 제대로 처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법률 미스터리를 읽다 보면 주인공의 입장에서 재판을 이기기를 응원하는데, 

재판은 그걸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고 

피고인과 피해자를 위해 있는 것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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