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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ㅣ 스토리블랙 3
김정신 지음, 홍세인 그림 / 웅진주니어 / 2022년 7월
평점 :
책 『사각사각』은 귀엽게 작아서 가볍게 들고 다니며 읽기 좋은 어린이 책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른들조차 얕보지 말자. 이 책은 웅진주니어가 야심차게 내놓은 '스토리 블랙' 시리즈 중 하나로서, 작 중의 특유의 오싹오싹한 분위기가 요즘 같이 선선해질 때 읽기 제격이다.
귀엽고 치즈빛 노란색이 산뜻한 표지, 그러나 그 위에 그려진 쥐 떼가 뭔가 일상을 넘어선 심상치 않은 내용이 등장할 것을 반전처럼 암시한다. 제목 ‘사각사각’의 의미에까지 생각이 뻗어간다. 숨어있는 쥐 떼가 무언가 갉아먹어 들어가는 소리가 소름끼치듯 들려오는 것만 같다.
작품 속 주인공인 영재는 그 이름에 걸맞게,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듣고 자란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과시욕 강하고 유난스러운 어머니의 기대에 언젠가 부터 영재는 긴장을 하기 시작한다. 한 번 삐끗한 날 이후로 어머니의 닦달은 심해지고, 영재의 성적이나 예술적인 능력은 줄곧 곤두박질 쳤다. 그렇게 좋아하던 숫자에도 영재는 시큰둥해진다.
‘X’자가 늘어난 시험지에 어머니는
“오영재! 틀렸어! 또 틀렸다고! 오(O)보다 엑스(X)가 더 많잖아? 너, 이제는 엑스가 되고 싶은 거니? ”
영재는 고개를 숙였다. 엄마가 엑스라고 부른 순간, 자신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그 말을 듣고 자신감이 바닥을 친 영재는 남들이 본인을 엑스(X)라고 부른다는 착각까지 든다. 그 이후 영재는 줄곧 '엑스'로 칭해진다. 현실에서 없을 듯 하면서도, 어디선가 흔히 본 듯한 씁쓸한 가정의 모습 같지 않은가? 영재는 ‘손톱’ 물어 뜯는 버릇이 생겼고, 그 때마다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 영재의 아버지가 투자에 실패하면서 집안이 기울고, 아버지는 우연히 들어간 술집에서 그 동네 치고는 싼 가격에 낡은 일 층짜리 주택을 덜컥 계약하고 만다. 주변 높은 건물들 사이에 이질적으로 남아있는 그 집으로 이사하면서, 부모님의 불화는 커져만 간다. 책임을 엄마에게 돌리는 아빠와 여전히 자녀의 교육에만 집착하는 엄마.
그런 분위기 속에서 부모님의 눈치만 보던 영재(엑스)는 우연히 자기 방에 있는 벽장을 발견한다. 그 속에서 밤새 들려오는 ‘사각사각’ 소리에 잠 못 이룬다. 그 소리의 정체는 예상하셨듯 쥐 떼가 득실거리며 만들어 내는 소리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부모님은 영재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아버지는 이 집을 계약할 때 들은 <주의사항(금기)>:
-계약을 깰 경우, 계약금의 열 배를 보상할 것,
-잠겨 있는 벽장에 들어가지 말 것
-계단에 놓인 백 항아리에 매일 쌀을 넣을 것
을 가족들에게 설명하지만, 소통이 잘 안 되는 영재네 식구들은 금기사항을 항아리와 함께 하나하나 깨버린다. 어떤 후환이 덮쳐올 지 긴장이 되기 시작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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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뒤로는 약간의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라.)
쥐가 인간으로 분신한 앞니가 두드러진 ‘부동산 업자이자 술집 주인’을 비롯한 쥐 떼는 금기를 어긴 인간의 영혼을 빼내고, 자신들이 그 몸을 차지한다는 계획을 착착 진행해 간다. 인간이 되는 공부까지 하면서, 편의점을 털어먹는 게 아주 그럴싸 하다. 그 과정에서 몸을 차지하기 위해 잠든 인간들의 손톱을 깎아 먹는다. 영재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자신을 잃어가듯, 깎인 손톱은 소중한 영혼을 잃어가는 상징일 테다.
그렇게 새로운 엄마 아빠(쥐)를 갖게 된 영재는 어떤 선택을 할까? 새로운 엄마와 아빠(쥐)는 영재가 하고 싶은 것만 하라는 다정한 새 부모님(?)인데 말이다!
그 후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이 오싹오싹한 사각사각 책을 꼭 읽어보시라!
이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손톱을 매만지게 된다, 작가님은 ‘기분 나쁜 섬뜩함’을 독자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것이 1) 다른 동물 류에게 위협 받는 인간에 대한 동질감에서 오는 것이든, 2) 사실 그 상황으로 치닫도록 몰고 간 건 인간이라는 죄책감에서 오는 것이든.
낮 동안 숨어있던 쥐 떼가, 밤이 되면 기어나와 인간의 몸을 차지하려 한다는 느낌에 진저리 친다. 그러다 가도, 돌연 쥐떼를 위시한 동물들을 그렇게 하기까지 내몰았던 건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묘한 죄책감을 안고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책이다.
원래부터 그 터전의 주인이었던 쥐 무리와 ‘공생’할 수 없게 만든 건 어찌 보면 인간이다. 최소한 먹고 살 양식(쌀)과, 무리가 머물 최소한의 공간(벽장)조차 여지를 남기지 않고 영역을 배려 없이 넘어 버린 건 결국 인간이다.
이야기가 절정을 향해 치달아갈 때 주인공인 영재는 쥐 떼에게 기억을 잃지만, 엄마 아빠가 허락해준 유일한 자유의 시간을 알리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빽빽히 조여 오는 부모님의 기대와 요구 속에서도, 엄마 아빠의 사랑이 남아있음을 상징하는 딱 세 시간 ‘일요일 정오’ 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난 영재의 부모님이 사랑으로 부른 이름에, 엑스가 아닌 ‘영재’로 또렷이 칭해지기 시작하는 변화의 장면을 기대해도 좋다!) 세 가족이 함께 있는 모습의 그림은 마지막 장면에서야 볼 수 있는 것도 포인트이다!
영재네 가족이 떠나간 이후에도, 그 이층집에는 이삿짐 차가 서 있고 새로운 가족이 이사온다. 그리고 부동산 사장이 멀찌감치서 이 가족을 지켜보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인 것이다.
내가 꿈꾼 건 이런 게 아니야! 완벽한 생활, 완벽한 가족이었어!”
‘완벽’함을 내리 얘기하는 여러 등장인물들의 말에서 그 ‘완벽함’이란 과연 무엇일 지 곱씹으며 심란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여운이 길-게 남는 오싹오싹 재미있는 책이다. ‘가족을 가족이게 만드는 것들, 공생의 의미’를 동시에 생각을 하게 하니 어른들도 꼭 읽어보시면 좋겠다!
웅진주니어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웅진주니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