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6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6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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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판' 5권에 수록된 두 장편은 모두 제1차 세계대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포탄 파편』은 기자와 추리력이 뛰어난 젊은 장교가 주인공으로, 전투 묘사가 있지만 뤼팽이 전면에 등장하지도 않고 썩 재미있지도 않았다. 


반면, 『황금삼각형』은 다시 '신'의 위치에서 모든 것을 컨트롤하는 '탐정' 아르센 뤼팽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앞서 발표된『호랑이 이빨』의 프리퀄 격인데, 뛰어난 상황설정과 사건전개가 일품이다. 1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답게 애국심을 강조한 건 조금 거슬리긴 해도 극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좌우할 정도는 아니다. 뤼팽에게 별다른 위기상황이 없다보니, 서스펜스가 다소 떨어지는 것은 흠이다.


대선 국면에서, 최근 한 후보가 "우리도 셜록 홈즈와 아르센 '루팡' 같은 탐정이 있어야 한다"고 소셜미디어에 썼다가 반대편으로부터 '루팡은 도둑'이라는 반박에 '아르센 루팡'은 삭제한 일이 있었다. 선거,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최고지도자를 뽑는 선거이다보니 별별 설화가 발생한다. 그에 대한 지지여부를 떠나, '루팡=탐정'이라는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 루팡 ― 즉, 뤼팽 ―은 처음에는 신사도둑으로 화려하게 등장해서 셜록 홈즈와 대결 구도로 돌풍을 일으켰지만 초기의 이야기일 뿐이다. 『수정마개』 때부터는 국가 고위층의 묵인 하에 활약하는 탐정 역할을 하는데, 다만 허가를 받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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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박인용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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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릴적 금성출판사 추리소설 전집을 통해 읽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이 출간되면서 읽으려 생가한 걸 차일피일 미루다, 영화 '나일강의 죽음'을 계기로 전자책이 대여로 풀렸길래 결제했다.


금성출판사 본을 여러 번 읽었는지 상당히 많은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 있다. 이번 독서에서는, (최근 내 독서의 경향에 따라) 작품이 씌어졌을 당시인 1930년대 영국의 풍경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벤틀리를 시속 130km로 밟으려다 시간이 안 맞을 것 같자, '항공 택시'를 이용하는 장면이 있는데, 130km는 지금도 빠른 속도인데(나도 이렇게는 잘 안 밟는다) 그 당시 도로가 그렇게 잘 되어 있었다는 점, 현재 공공기관 주도로 강력히 추진 중인 UAM이 이때 그런 아이디어가 있었나 하는 점이 경이롭기만 하다.


많은 추리소설들이 그렇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 작품 역시 '인간심리'에 대한 통찰이 두드러진다. 초반을 보자. 목사 아들 보비가 기차 일등칸에 있던 소꿉친구이자 백작의 딸인 프랭키를 만나는데, 자신의 차표는 일등석이 아니기 때문에 옮겨야 하는 상황. 이때 (미녀) 프랭키는 검표원에게 미소를 지으며 친구가 조금만 함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검표원은 기분좋게 수락한다. 보비는 '미소만 지으니까 되는구나'하고 감탄한다. 이 장면은 어릴 때에는 '아, 그렇구나'하고 넘어갔는데. 지금 보니 나름 복선이다. 작품은 '사람은 이성의 아름다운 외모에 끌려 판단을 그르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하는데, 여기서 밑밥을 깔아둔 것이다.


이외에도 인간심리 혹은 대중심리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등장인문들의 대사를 통해 표출되는데, 상당부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호기심 많은 청춘남녀가 단서(lead)를 좇아 실마리를 풀어가는 재미있는 추리소설이지만, 이런 통찰이 작품의 진짜 매력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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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기행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24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송은경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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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차키스 책 답게 정열적인 문장들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그리스인 조르바』나 『영혼의 자서전』처럼, 그의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여기서도 재활용되고 있다. 그 정점은 역시 조르바. 자신을 모세에 빗대어, 계율이 몇 개이든 자신이 모조리 어겨줄 수 있다고 호기롭게 말하는 모습이, 나같은 샌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여기서 두 가지 오류를 범했는데, 무솔리니를 높게 평가한 것과 유대인의 나라는 결코 재건될 수 없다고 역설한 것이다. 무솔리니를 간디와 레닌과 동급이라고 주장한 부분에서 갸우뚱 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챕터 말미 주석에서 그의 부인이 '그는 후에 견해를 바꾸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필 이 책을 읽은 날, 도올 김용옥이 새해를 맞아 모 대선주자를 '선각자'라고 지칭했다(무솔리니를 가리키는 단어 '두체'도 영도자, 지도자라는 뜻이라지). 한편, 그는 서양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동양에 대한 동경을 드러내고 있는데, 글쎄... 100년이 지난 지금, 아시아국가는 '정신'문명 대신 서방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술대국으로 부상했다.  


이런 저자의 단견에도 불구, 나는 여전히 그를 계속 읽고 싶다. 또다른 '조르바'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내뿜는 오라는 그만큼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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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4
에밀 졸라 지음, 조성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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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간신히 끝냈다.


'루공-마까르'가 사람들을 안 불편하게 하는 건 없지만, 이 작품 『대지』는 (푸근함을 주는 제목과 다르게) 그 끝판왕을 보는 것 같다. 에밀 졸라의 등장인물들은 욕설, 간음, 폭력, 학대, 뒷다마는 기본으로 장착하지만, 여기에 이르러서는 존속살인과 근친상간을 패치한다. 광부들이 파업에서 폭동으로 번지는 과정을 그린 『제르미날』보다도, 그 선정성과 폭력성이 압도적으로 자극적이고 세세하다. 


작품은 한평생 땅을 일군 자린고비 노인이 자식 셋에게 재산을 양도하는 데서 시작한다. 노인의 누이는 경고한다. 재산을 나눠주면 자식들의 존경심도 함께 잃는다고. 『대지』는 그렇게 재산을 분할해 준 자식들로 인해 노인이 '서서히 죽어가는' 이야기가 기본 뼈대이다. 『목로주점』의 제르베즈(이 작품의 주인공 '장 루공'의 누이)가 서서히 굶어죽어가는 것처럼, 노인은 그렇게 고통 속에 죽어간다. 재산 분할로 인해 그의 일가가 피튀기는 싸움을 이어가는 것을 모두 지켜보면서 (이 작품에서만은 작가의 이름을 바꿔도 되겠다. '에빌 졸라'). 내 주변에 재산이 많은 친척 일가가 있고, 그들 형제 간 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는 모습을 보긴 했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이들의 재산분배 과정에 이어지는 이전투구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당대의 풍경들을 카메라로 찍듯 펜으로 그려내는 졸라이기 때문에, 단순히 '욕하면서 보는 작가의 막장드라마'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여기에 등장하는 농부들은 땅에 진심이고, 정직하게 하는 대하는 등 거의 '여자'처럼 사랑하고 아낀다. 그러나 에밀 졸라를 읽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의 작품 속 '여자'들은 언제나 폭력과 욕설에 노출되어 있는, 거의 남자에게 매인 존재이다. 아무리 자존심이 강하거나 강인해도 여자들은 그를 취한 남자에게 돌아간다. 처음에는 갖은 사탕발림으로 꾀지만, 갖고 나면 그냥 소유물 취급을 한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게 아니고, 당대의 가부장적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땅을 '여자'로 비유하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땅은 'motherearth'인데, 땅을 물려준 부모를 내내 학대하다 살해하다시피 한 인물들의 행각을 보면,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지 않나 싶다.


이외에도 다양한 차원의 갈등들을 볼 수 있는데, 공업과 농업,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전통농법과 진보적 농법 등이 그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수입되는 값싼 밀 때문에 유럽의 밀값이 하락하고 그것이 도시의 노동자들을 먹여살리기는 하지만 농업인들은 희생되는, 사라져가는 전통농가에 대한 안타까움도 함께 담겨 있다.


번역은 조금 아쉬웠다. 여기서 일일이 지적하지는 않겠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문장들이 간간히 눈에 들어왔다. '루공-마까르'를 꾸준히 출간해 주는 출판사에 감사할 뿐이고, 20권을 다 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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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4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4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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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에 이어지는 작품.


『813』말미에 뤼팽은 모로코에 파병된 외인부대원으로 '돈 루이스 페레나'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데, 이 편에서는 내내 그 이름을 사용한다. 넘치는 자신감, 초인적 직관, 미녀 밝힘증은 여전하지만, '돈 루이스 페라나'라는 이름으로 변신을 전혀 하지 않는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그 뿐 아니라 공익의 수호자의 면모를 과시하는데, 전편들처럼 도둑질도 하지 않고 총리나 경시청장 같은 고위직들의 신임을 듬뿍 받으면서 거의 자유롭게 활동하는 탐정이 된다.


내용도 굉장히 재미있다. 사건 속에 사건이 있고, 사건 속에 또 다른 사건이 있다. 범인을 잡았다 그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 그래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계속해서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데드풀' 같은 끝없는 허풍이 이어지다보니, 모리타니 왕국을 프랑스령으로 귀속시킨 게 그 자신이었다는, 개념이 안드로메다로 갈 법한 부분에서는 살짝 지루해지기도 했지만, 모리스 르블랑의 필력은 『수정마개』가 끝이 아니었던 것. 


한편, 시간 설정이 특이하다. 사건의 시발점이 된 2억 프랑의 유산을 남긴 모닝턴은 1919년 '인플루엔자'로 앓아 누웠다가 독극물로 사망한다. 나는 그가 1918년부터 대유행한 스페인독감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해설에 따르면 작품은 1914년, 전쟁 중 집필된 것으로, 전쟁 후 일어날 세상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것이다. '미래에 유행성 독감까지 예견했다는 것인가'라는, 나만의 착각에 잠깐 웃음을 지었다.


다만, 뤼팽 장편의 백미라고 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나 전설(『속이 빈 바늘』), 당시의 국제정세(『813』), 정치 스캔들(『수정마개』)에 기반한 에피소드가 없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도둑질을 안 하다보니, 끝모를 예술적 취향도 여기서 멈춘다. 이제 겨우 4권인데, 그럼 다음 뤼팽은 또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해진다.

페레나를 둘러싼 영웅신화는 그 위용을 차근차근 갖추어왔던 것이다. 그 속에는 초인적인 에너지와 기적 같은 담력, 황당무계한 상상력과 기발한 모험심, 그리고 강인한 완력과 냉철한 정신력 등등, 도저히 아르센 뤼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신비스러운 인물의 모든 특징이 고스란이 담겨 있었다. 이를테면, 좀 더 이상화된 업적으로 더욱 위대하게 승화된 아르센 뤼팽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난 아무것도 믿지 않아. 다만 끊임없이 탐구할 뿐이네. 무엇이든 최초로 마련되는 기반 위에다 하나의 가설을 세울 뿐이지. 가장 그럴듯한 가설을 말이야. 그리고 생각하는 거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서두를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은 입 밖으로 내기 전에 그 한마디 한마디가 충분히 숙고된 것들입니다. 어느 한가지도 소홀히 흘려버려서는 안 되는 얘기이죠. 왜냐면 얘기 속에 담긴 사실들을 중구난방으로 헤집어 본다고 해서 결코 이번 사건이 해결되는 게 아니며, 오로지 가능한 한 충실하게 갖춰진 이야기를 따르는 가운데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난 신문 따위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냈습니다. 어리석은 정치 놀음이나 지저분한 사건들을 눈으로 섭렵하느라 매일 소중한 30분씩 허비하는 게 그토록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일일까요?"

"내 공격을 막아낸 건 당신 자신의 재능만이 아니었습니다. 분명 기적 같은 행운이 당신을 집요하게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머뭇거리는 것도, 생각에만 골몰하는 것도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번에 파악하고 싶었고, 순식간에 깨닫고만 싶었다. 별다른 단서라든가 모호한 추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중대한 순간마다 갈 길을 가르쳐주었던 그 놀라운 직관력 한 방으로 일사천리 꿰뚫기만을 원했다.

핍밥받고, 희생당하고, 삶의 열정을 상실한 사회적 약자들. 그들 모두에 대해 돈 루이스는 한결같이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명철한 지성과 자상한 조언, 경험과 힘을 그들과 함께하고, 필요하다면 직접 시간을 할애해 자기 스스로 나서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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