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포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4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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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이 작품을 스파이물로 분류하던데, 나는 막 저물어가는 아르센 뤼팽을 의식한 게 아닌가 하고 추측해본다(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을 5권<1910년대 후반>까지 읽었다). "이 에르큘 포와로의 방법은 나만의 독특한 것이네. 순서와 방법, 그리고 '회색의 작은 뇌세포.' 안락의자에 편히 앉아서" 라고 말하면서 시작하지만, 정작 작품에서는 참 열심히도 뛰어다닌다. 변장을 하고, 위기에서 극적으로 탈출하고, 적에게 덫을 놓고, 말단 형사가 아니라 총리, 내무상 등과 대화하는 모습 등에서 아르센 뤼팽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진다.


상대는 세계정복을 꿈꾸면서, 레닌과 트로츠키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중국을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는 등의 권력을 가진 거악(巨惡)으로(세계제패가 목적인 푸란치도 아니고...), 유치찬란한 설정이다. 솔직히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초기의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 실험적 작품이라고 예쁘게 봐주면 되겠다. 세계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자들이 벌이는 사건들을 쫓아다니며 해결하는, 느슨한 반(半) 단편집 형식이다. 푸아로의 특기인 '심리분석'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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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8 (완전판) - 테이블 위의 카드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허형은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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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U(애거서 크리스티 유니버스)의 세 탐정이 함께 등장했다. 크리스티 자신도 '아리아드네 올리버'라는 이름을 달고 작품 속으로 뛰어든다(아리아드네라는 네이밍이 추리소설가로서는 상징적이고 좋다). 탐정들이기 때문에 '어벤저스'보다는 '저스티스 리그'에 비유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다만 추리 배틀은 아니고 협업플레이이다.


물론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은 '절대 실패하는 법이 없는' 에르퀼 푸아로이지만 그는 정적이다. 용의자들에게 말을 시켜서 살인 당시의 전모를 퍼즐조각처럼 맞추고, 심리과 성향을 분석해서 답을 내놓는다. 배틀은 용의자들의 배경이 되는 것들을 추적하기 위해 부하들을 풀고 개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닌다. 정부 비밀요원(MI6?)인 레이스 대령은 잠깐씩 튀어나와 튀어나와 정보를 주고는 사라진다. 후에 배틀 총경은『0을 향하여』의 탐정으로(여기서 푸아로의 '대화법'을 설파한다), 레이스 대령은 『나일강의 죽음』에서 푸아로의 조력자로 등장한다.


푸아로의 심리분석과 추리의 논리적 완결성은 뛰어나지만, 브릿지 게임을 모르면 재미가 반감되는 것 같다. 중간의 용의자들의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도 다소 지루하다. 영웅은 한명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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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집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5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정성희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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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만에 두번째로 읽는다. 범인은 알고 있었으므로, 이 작품이 표방한 '살인자'의 일반적인 심리를 읽는 데 초점을 두었다.


서술자는 찰스 헤이워드. 부유한 약혼녀의 집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그곳을 찾아가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건을 추적한다. 각 사람들과 1차 면담이 끝나고, 아버지인 런던경찰청 부청장에게 살인범에 대해 묻는다. 이게 복선이자 작품의 핵심이다. 아버지는 살인범의 심리를 세세하게 설명해주고, '나'는 그 가족들을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푸아로가 여러 번 강조하는 것이지만, 범인의 허점을 이끌어내는 수사방법론이다. 그 와중에 또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은 마지막 비극에 이르러 밝혀진다.


이 작품은 '트릭'이 없다. 오직 살인을 저자른 자의 심리를 세세하게 설명하고, 가족 구성원들에게 대입함으로써 범인을 알아내도록 수수께끼를 던진다. 그래서 그런지 두번째인 이번 독서에서는 큰 재미는 느낄 수 없었다. 


전체적인 구조가 이보다 10여 년 앞선 1932년에 출판된 엘러리퀸의 『Y의 비극』과 비슷한 점은 다소 아쉽다(크리스티가 더 먼저 썼을 수는 있겠지만). 표절 시비가 있었을 법도 한데, 작가 스스로 베스트 10으로 꼽을 정도인 것을 보니 그런 일은 없었던 듯하고, 아마도 작가의 장기인 '심리분석'에서 차별화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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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의 약속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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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일강의 죽음」개봉과 그에 따른 리디북스 대여 이벤트로, 나의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는 어느새 프로젝트가 되었다. 그 여덟번 째, 그리고 세번째 '에르퀼 푸아로'는 20여 년의 세월을 책장에 처박혀 있던 해문이 발행한 『죽음과의 약속』. 나 개인적으로는 이집트, 이라크에 이어 푸아로의 세번째 중동 여행기이기도 하다.


트릭은 매우 복잡하다. 각자 피해자를 거쳐간 타임라인이 있고 그 중 누가 범인이냐를 밝혀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살인자가 다녀간 시간을 찾아내는는 것(appointment)'. 물적증거는 없다시피하고 거의 관계자들의 진술에만 의존하여 추리를 진행한다. 심지어, 피해자가 자연사한 것으로 보고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는 상황. 


이러한 이유로, 이 작품은 푸아로의 전매특허인 '대화'와 '심리분석' 기법이 거의 한계까지 동원된다. 처음부터 '증거가 없다'고 보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사에 착수한 계기도 책머리에서 푸아로가 우연히도 '살인모의' 대화를 들었기 때문이다. 관련자와의 '대화'에서 '허점'을 발견하는 작업이다보니, 형식이 플라톤의 「대화(Dialogue)」들처럼 흘러간다. 푸아로는 화자들의 말의 모순을 일일이 지적하고 그 안에서 꽁꽁 숨겨둔 사실들을 발견해 내고, 결국 범인을 지목한다. 언제나 그렇듯 증거는 없지만, 논리적으로는 완벽하다. 범인은 최소한의 저항조차 할 수 없다.


30년이 넘은 역서이기 때문에 번역상의 아쉬움은 많다. 황금가지 본에서, 벨기에인인 푸아로는 거의 모든 말에서 불어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건 생략했는지 그것까지 번역한 건지, 보이지 않는다. 일부 지명 또는 관광사이트는 옛날식 표현이라 그런지 네이버에서는 검색할 수 없다. 명색이 한국추리작가협회가 내놓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이라면 세월의 흐름을 감안해 '개역'까지는 아니더라도 손을 좀 봤어야 하는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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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의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푸아로 셀렉션 2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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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0년 전, 지금은 없어진 출판사 본으로 처음 읽고 두번째이다. 핵심 트릭은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고, 100페이지를 넘어갈 즈음, 인물들의 알리바이 진술에 따라 진범도 알았다.


때문에 두번째 독서는 작가가 얼마나 작품에 고고학 덕질을 했는지, 인물들의 심리를 어떻게 묘사했는지에 초점을 두었다. 푸아로의 캐릭터를 탐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듬해(1937년) 발표된 『나일강의 죽음』이 고대 유적지들을 '관광' 목적으로 둘러보는 수준에 그쳤지만, 레더런 간호사의 회고록 형식으로 된 이 작품은 유적 발굴단의 활동을 직접 다루고 있다. 책의 헌사도 이라크와 시리아의 고고학자들에게 주어졌고, 간간이 발굴작업이 묘사되기도 한다. 

그는 앉은 채 몸을 바로하고는 칼을 꺼내서 그 뼈에 붙어 있는 흙을 아주 조심스럽게 긁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간간이 동작을 멈추고는 손으로 부채질을 하거나 직접 입김을 불기도 했다.

"온갖 종류의 세균이 당신 입 속으로 들어갈 거예요, 에모트 씨."

"세균이야말로 제 일용할 양식이랍니다, 간호사. 세균들은 고고학자에게는 아무 힘도 쓰지 못하거든요. 헛수고만 할 뿐이죠."

이 작업들을 지켜본 푸아로는 『나일강의 죽음』에서 "내가 고고학 탐사를 해봐서 아는데..."라며 써먹는다.


심리소설 측면에서, 푸아로는 독특하게도 범인보다는 피해자의 심리에 주목한다. 피해자는 사람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육식성 동물'이며, 상황에 따른 그의 미세한 심리변화, 그리고 주변인물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대단한 반전이나 카타르시스는 없지만, 후반부의 푸아로의 추리과정은 읽어가는 재미가 있다.


관종 푸아로가 또 어떤 플렉스를 했나도 관전 포인트인데, 아인슈타인을 연상시키는 다음의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제 나는 이 사건의 진상이라고 믿어지는 결론에 도달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증거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난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압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하니까요. 다른 식으로는 모든 사실 하나하나가 맞아떨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로 그것이 가장 옳은 결론으로 보는 게 타당합니다."


추가로, 푸아로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걸 안 것도 이번 독서의 수확이었다. 이런 TMI가 내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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