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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 1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12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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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있는 한,

탐욕이 있는 한,

전쟁이 있는 한,

예수의 수난은 반복될 것이다.

"인간은 언제 구원을 받습니까?"
"물건을 사고 파는 순간에도 마음은 정원에 있는 것처럼 편안할 때지."

"우리가 신을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신부님?"
"인간을 사랑함으로써 사랑하지."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지."
"어떤 길이 올바른 길입니까?"
"올라가는 길이라네."

"헛되군요, 나의 예수님. 2천 년이 지났어도 인간들은 여전히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지 않습니까. 대체 언제쯤이면 당신은 다시 태어나 이번만큼은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고 우리 가운데서 영원히 사실 겁니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진은 다시 시작되었다. 용기를 내라, 나의 자녀들아!"
그리하여 동쪽을 향한 그들의 끝없는 행진은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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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자서전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35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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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좀 어렵다. 그의 작품들의 소재들인 그리스도, 아버지, 붓다, 아시시의 성인 프란체스코, 조르바, 오뒷세우스 등과 여러 나라 여행을 담았다. 여러번 읽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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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완전판 스페셜 박스세트 - 전15권 이타카
다나카 요시키 지음, 김완 옮김, 미치하라 카츠미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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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재미있으면서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SF는 당분간 보지 못할 것 같다.

 

완독하는 데 약 한 달 걸렸다. 나의 출퇴근 시간과 짬나는 시간, 그리고 주말을 책임졌다. 읽는 내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몰입하기만 했다.

 

주지하다시피 은영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SF의 하나이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처음 접했으나,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무려 20년만에 다시 만난 셈.

 

은영전은 엔터테인먼트로서 최고의 재미를 지닌 소설이다. 이렇게 몰입감을 주면서도 위트 넘치는 문장으로 꽉 찬 책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나 엔터테인먼트는 은영전의 단면에 불과하다. SF의 외피를 입은 정치철학 소설이랄까. 그것도 쉽게 풀어쓴. 은영전은 현자가 다스리는 전제군주제와 중우정치에 가까운 민주주의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면서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때문에 이 작품은 정체(政體) 논쟁의 좋은 비유거리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연극으로도 상연된다고 하는데, 아마도 레이저포가 날라다니는 게 아니라, 전제군주제와 민주주의에 우월성에 대한 논쟁이 핵심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작가는 궁극적으로는 양웬리의 입을 빌려 "최악의 민주주의가 최선의 전제주의보다 낫다"라고 말한다. 전제주의에서는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 부족하다. 그러나 민주주의 하에서는 좋은 지도자를 선택하면 그 혜택은 유권자가 누리고, 최악의 지도자를 선택하면 그 책임도 유권자에게 있음을 역설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는 것이다.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다스리는 은하제국은 아마도 제국민들이 꿈에 그리워 마지 않는 곳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제국민들에게 골고루 결과가 돌아가는 전제군주제는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역사상 그런 예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욥 트뤼니히트 같은 보신주의자가 최고지도자인 민주주의 국가는 획기적인 발전이 없을지도 모른다. 양 웬리와 같은 걸출한 영웅의 역할이 제한될 수 있다. 시행착오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조금씩 전진한다'는 것이 역사에서 증명한다. 그래서 민주주의이다.

 

은영전의 설정은 많은 면에서 우리나라를 떠올리게 한다. 저자가 마치 한국사를 심도있게 연구해서 모델로 삼은 듯 말이다. 아니면 그것이 역사의, 위정자들의 보편적인 행태일까. 정치권의 사주를 받은 듯한 우국기사단은 정권에 반하는 이들에게 린치를 가한다(서북청년단). 선거철만 되면 자유행성동맹은 요란하게 전쟁을 부르짖는다(한국의 보수정당). 위정자들은 전쟁영웅이 집권할 것을 두려워하여 사사건건 그의 행동에 태클을 건다(선조와 이순신). 몰살 위기의 위정자들은 다급히 항복하고 보신에만 급급해 한다(한말의 조정대신들).

 

책 상태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번역도, 인쇄도 꽤 괜찮은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일본에서 주로 쓰이고,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한자어를 너무 많이 사용해서 추후 개정판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도帝都, 안광眼光, 존명尊命 등등... 나는 이런 한자를 그대로 두는 것은 번역하기 귀찮아서 그냥 그렇게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 오타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지만, 간혹 계급을 잘못하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문장이 매끄러워 읽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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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크리스토 백작 1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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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일이라든가, 다소 무례한 짓이라든가, 내가 한 말이 거짓이라고 했다든가, 조그마한 모욕을 당했다든가 하는 경우라면 난 위험에 길이 들기도 했고 또 여러모로 몸을 단련해서 솜씨도 있느니만큼, 안심하고 상대방을 죽일 자신을 가지겠죠. 아, 그런 정도의 일쯤이라면 나도 결투로 대결을 할 겁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두고 깊숙이 파고드는 영원 같은 고통을 준 사람이라면, 가능한 한 내가 받은 고통과 비슷한 방식으로 복수를 할 생각입니다..."         - 2권, 283쪽

 

 

2011년 경부터 꽤 많은 고전문학을 읽었지만 '복수'를 주제로 한 것은 이것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아킬레우스가 절친 파트로클레스의 죽음에 전장에 복귀하여 헥토르를 죽이고 그 시신을 모욕함으로써 복수를 완성한 '일리아스'도 그 핵심 주제는 '복수'가 아닌 '분노'였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에드몽 당테스의 14년 간의 한 맺힌 자의 복수라는 감정이 5권이라는 방대한 작품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복수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일반적으로, 삼국지나 수호전에서 말하는 동양식의 복수라 하면 쳐들어가서 칼을 휘둘러 몰살시키는 수법을 쓴다. 그러나 백작은 기다린다. 그들이 부를 쌓고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 행복의 정점에 이를 때까지 기다린다. 복수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무려 9년을 그렇게 기다렸다.

 

"하느님!" 하고 백작은 중얼거렸다. "당신의 복수에는 종종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다 더 완전해지기 위해서이리라고 믿습니다."   - 4권, 331쪽

 

그리고 그는 파리 사교계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스스로를 동양에 기나긴 여행으로 다녀온,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설정했다. 돈을 물쓰듯 써서 4인방의 이목을 사로잡았으며, 그들의 신뢰를 얻어냈다. 20여년을 복수귀로 살았던 그였으나, 항상 담대하고 태연하게 행동한다. 그리고 마침내 복수를 시작한다. 스스로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면서, 미미한 존재를 서서히 쥐구멍으로 몰아가듯, 그렇게 그의 복수는 진행된다.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자들은 공개적으로 명예가 훼손되고 가족이 파탄나고 맞아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미쳤다. 그러나 하나하나 복수를 실현해 가면서, 당테스는 과연 속이 편안해 졌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한명은, 죽음 직전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자 용서를 해주었던 것일게다.

 

"나는 당신 때문에 신세를 망친 사람이오. 나는 당신이 행운을 잡기 위해 밟고 올라섰던 사람 중에 하나요. 나는 당신 때문에 아버님을 굶주려 돌아가시게 했고, 또 당신을 굶겨 죽이려다가 바로 지금 당신을 용서해 주는 사람이오. 그 까닭은 나 자신 또한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요."  - 5권, 424쪽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만큼 등장인물들의 대사, 행동 하나하나가 연극을 염두에 둔 느낌이다. 역자 후기에야 알게됐지만, 뒤마는 희곡작가로 출발해서 큰 성공을 거둔 후 소설에 입문했다고 하니 그 역량이 제대로 발휘된 것이다.

 

반면에 (역시 연극적인 요소 때문인지) 치열한 심리묘사는 아쉽다.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레 미제라블'에서, 마들렌 씨는 자신 대신에 장발장으로 잡혀가는 이에 대하여 수십페이지에 걸쳐 고뇌한다. 그가 법정으로 가기까지 많은 사건이 있으며 그때마다 그는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죄와 벌에서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의 범죄에 대하여 주변인들의 반응에 끊임없이 내적으로 반응한다. 그런데 당테스에게는 그런 고민의 여지가 전혀 없다. 그는 말 그대로 신의 대리인으로서, 자신의 행위는 정의의 실현이라는 신의 섭리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산'이라는 뜻의 '몬테크리스토'란 이름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아마도 그러한 치열한 고민이 없었으리라. 이러한 캐릭터를 분명히 드러내는 부분이, 역설적으로 단 한가지 그가 고민했던 지점에서 알 수 있다. 알베르와의 결투에서 아들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메르세데스의 간청 때이다. 백작은 그녀의 요청을 수락하면서 진정 복수귀가 되지 못한 것을 한탄한다.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하고 백작은 생각했다. "복수를 결심한 날, 왜 내가 심장을 뽑아버리지 못했단 말인가!"  - 4권, 440쪽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참 재미있고 읽기 쉽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소설 특유의 철학적인 고뇌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방대하게 이끈 것은 역시 작가의 역량이다. 천년이 넘도록 재생산될 문화상품으로 남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내가 이 책을 처음으로 꺼내 본 것은 10여년 전 도서관에서였다. 어릴적 명작동화로 재미있게 읽은 것이 기억났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 펼쳤을 때 인상은 그다지 좋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오타작렬. 알고보니 지금도 오타로 악명높은 출판사였던 것이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 문학에 흠뻑 취해서 사서 읽게 되었는데, 24쇄쯤 되니 그런 오타는 많이 잡힌 것 같다. 아니, 오타에 신경쓸 겨를 없이 이야기 자체의 흡입력이 워낙 강해 워낙 바쁜 중에도 5권을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알렉상드르 뒤마 전공자가 번역한 다른 번역본이 나왔으면 좋겠다. 몇몇 문장에서는 일본냄새가 확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표기를, 몬테크리스토 백작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인물 그림을 붙여 놓았다. 비슷한 시기 사교계의 인물 그림 같은데, 적절한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레 미제라블' 이후 간만게 기나긴 소설을 즐겁게 완독하게 되어 기쁘기 그지 없다. '삼총사'와 '검은 튤립'도 곧 즐거운 마음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너희들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수단밖엔 못 가지고 있지만, 우리처럼 권력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헌신으로 얻을 수 있는 수단이라는 걸 가지고 있단 말이다."
"헌신이라고요?" 빌포르가 웃으며 물었다.
"그렇다, 헌신이다. 희망으로 불타는 야심을 점잖은 말로 그렇게 부르는 거다." - 1권,197쪽

그는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신에게 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에게 하는 기도였다. 신이란 가장 막바지에 구원을 청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주께 기원을 구해야 할 불행한 사람은 언제나 다른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야 비로소 주에게서 희망을 발견하는 법이다. - 1권,239쪽

"... 도대체 백작은 어느 나라 사람이지? 어느 나라 말을 하고 있느냔 말이야? 생활은 또 어떻게 하고 있지? 그 막대한 재산은 다 어디서 나오느냔 말일세. 그 사람을 지금과 같은 그 음산하고 사람을 싫어하는 인간으로 만들어 놓은, 아무도 모르는 이상한 그 사람의 반평생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 2권, 371쪽

"한 번 목숨을 내던져 본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됩니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은 이미 자기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단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런 결심을 한 사람은 그때부터 당장 힘이 열 배가 되고, 자기 세계가 확 넓어진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법입니다." - 3권, 45쪽

"눈만 감으면 어렸을 때 본 모든 것들이 눈에 선해 와요. 우리에겐 두 가지 눈이 있죠, 하나는 육체의 눈, 또 하나는 마음의 눈. 육체의 눈은 가끔 잊어버리는 수가 있지만 마음의 눈은 항상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지요." - 4권, 194쪽

정신적인 상처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완전히 아물지 않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것은 늘 고통이 사라지지 않으며, 누군가의 손이 닿는 날엔 당장에 피가 새어나오도록 가슴속에서 항상 생생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셈이다. - 4권, 378쪽

오랜 세월 동안 고통 받은 기쁨이란, 햇빛에 말라버린 땅 위에 내리는 이슬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가슴과 대지는 그들에게 내리는 비를 빨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는 법이다. 며칠째 백작은 오래전부터 믿어지지 않던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두 사람의 메르세데스가 있다는 것과 자기가 아직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5권, 25쪽

"... 이 세상에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상태와 다른 상태와의 비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불행을 경험한 자만이 가장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막시밀리앙 씨, 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기 위해서는 한번 죽으려고 해보든 것도 필요합니다." - 5권, 449쪽

"백작님께서 그러시지 않았어요? 인간의 지혜는 이 두 마디 속에 있다고요.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 5권, 4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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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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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관람했던 상연작 중에는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가 있었다. 이 오페라는 주인공 음유시인 만리코와 루나 백작은 어릴 적 헤어진 형제로서 레오노라를 사랑하는 연적인 하는 구도로 되어 있다. 2014년작의 특이한 점은 형인 루나 백작 역을 칠순을 훌쩍 넘긴 플라시도 도밍고가 맡았다는 점이었다. 이미 테너에서 바리톤으로 변신했지만 나이를 뛰어넘은 그의 연기력은 충분히 박수를 보낼 만 했다.

 

뜬금 없이 오페라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여자친구의 짧은 감상평 때문이다. 여자친구는 늙은 플라시도 도밍고를 형으로 출연시킨 연출의 의도가, '어린 여자를 갖고 싶어하는 남자의 심리와 질투를 묘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다. 이 작품은 두 남녀가 주고 받은 서간문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편지마다 '사랑하는 나의...'로 시작하지만, 처음부터 작가가 밝힌 두 남녀의 차이는 거의 30살 정도 된다. 그러면서 남자는 말한다. 내 감정을 오해하지 말라고, 그것은 부성애와 같은 것이라고.

 

그런데 젊은 여자가 남자만큼 자주는 아니더라도 성의껏 답을 주니까 남자는 몸이 달았나보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격정을 담아 편지를 보낸다. 자신의 문학적 소양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해서, 여자가 추천한 고골의 '외투'를 읽어보더니 흠을 잡는다.

 

그러나, 남자의 이러한 감정이 부성애가 아니라는 실마리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여자의 편지 중 다음 문장이다.

 

"제가 어쩌다 조심성 없이 어떤 사물에 대해 언급이라도 하면 당신은 그 즉시로 그것을 사버리시는군요."  - 17쪽

 

...연애 고수들의 방법이다.

 

어쨌거나, 둘은 계속 돈이 없다, 나는 불행하다 이런 넋두리를 늘어 놓다가 결국 여자가 떠난다. 남자는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 받고 싶어하지만, 외로운 외침일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는 결국 (그 끝이야 어찌 되든) 돈 있는 남자를 찾아 떠난다는 진리? 늙은 남자는 찌질하게 그 여자가 거의 자기에게로 넘어온 것으로 생각했나보다.

 

 

창문 아래 마당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고 있건만, 저는 웬 향기 타령이었을까요! 아마 제가 어리석어서 그냥 그렇게 느껴졌던가 봅니다. 가끔은 누구나 그렇게 자기 느낌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바보 같은 얘기를 할 때가 있잖아요. 그건 바로 심장이 지나치게, 어리석으리 만치 뜨거워서 생기는 일이죠. - 21쪽

나는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고 있으니..... 추억은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항상 괴로운 것이다. 최소한 나한테는 그렇다. 그러나 그 괴로움은 또 달착지근한 것이다. 마치 타는 듯한 하루가 지나고 밤이 되면 이슬피 폭염에 바싹 마른 꽃에 신선함을 주어 소생시키듯이, 추억은 괴롭고 아프고 지치고 슬픈 내 가슴에 새로운 힘을 주어 소생시키는 것이다. - 64쪽

사실 전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한곳에 정착해서 살고 싶어요. 슬픔을 끌어안고 살아도 익숙한 곳에서 사는 게 아무래도 더 낫겠죠. - 98쪽

불행은 전염병입니다.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 전염되지 않도록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옛날에 검소하고 조용하게 사셨을 때는 겪어 보지도 못했을 불행을 이제 제가 당신께 가져다 드리고 말았군요. - 122쪽

누가 책에 뭐라고 쓰든 엉터리 3류 작가 족속들이 뭐라고 끼적이든 가난한 사람의 인생은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왜 이전하고 같을 수밖에 없느냐고요? 3류 작가들의 말대로라면, 가난한 사람이 가진 것은 모두 옷을 뒤집어 보이듯 세상에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죠. - 129쪽

가난한 사람에게 비어져 나온 발가락과 다 해진 팔꿈치는, 예를 들자면 당신에게 처녀성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커다란 부끄러움이란 말이죠. - 131쪽

제 목을 조이는 것은 사람들이에요, 그렇죠? 제 목을 조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느껴지는 불안감, 사람들의 수군거림, 야릇한 미소, 비웃음입니다. - 153쪽

당신만 생각하면 제 아픈 상처에 약을 바르듯 편안해집니다. 비록 당신 때문에 괴롭기는 합니다만, 당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 마저도 저는 즐겁답니다. -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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