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보수를 말하다 - 한국 보수를 향한 바깥의 시선
진중권 지음 / 동아일보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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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논객 진중권이 주간동아에 10여회 연재한 '대안으로서 보수의 재건' 주제의 칼럼 모음집이다. 한국일보에 연재한 '트루스 오디세이'와 달리 별다른 수정 없이 그대로 묶은 것 같다. 건진 건 부록으로 실린 김종인과의 대담 정도.

책 내용은 간단히 말하면 두가지이다.

1. 보수 생존 방안. 철지난 반공주의, 시장만능주의에 매몰되어 있고, 정부 수립 이후 항상 '갑'의 지위에 있어왔기에 아직도 자기들이 주류라고 착각한다는 것. 현실은 땅 속에 들어갈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운동권들이 김대중-노무현 때 인터넷-벤처로 진출한 동년배들과 함께 사회 주류로 자리잡았음에도. 이는 최근에 읽은 강원철 교수의 '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의 분석과 통하는 면이 있다. 영국 보수당은 300년을 유지하는데 있어 구 체제의 유지를 목표로 하지 않고, 시대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젊은 보수주의자들을 양성하고, 교육, 사회보장제도 등 진보진영의 아젠다를 선점함으로써 프랑스와 같은 대혁명을 피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국왕중심의 의원내각제, 귀족으로 구성된 상원 등). 진중권도 박정희 사회보장제도, 이명박 시내버스운영체계 등을 통해 보수도 진보아젠다를 끌여들이는 등 유연성을 발휘하라고 조언한다.

2. 싸움의 기술. 586 운동권 출신은 선전-선동의 도사이고, 프레이밍 전략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니, 상대방의 프레임에 들어가지 말고 밖에서 공격할 것. 구 보수는 언제나 갑이었기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본인들의 문제가 왜 문제인지 모른다는 게 문제이다. 오거돈-박원순 등 일련의 사건으로 민주당의 도덕적 우위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 민주당의 주장을 점검하여 민주당 정책 전부가 아닌, '내로남불' 부분을 국지적으로 공격하면 지지를 얻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지금 민주당에 환멸을 느끼고, '존경받는 보수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에 관련 책들을 뒤적이고 있는데(그렇다고 지금의 국힘을 찍을 건 아니고), 이 책이 다이제스트로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만 읽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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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보수를 말하다 - 한국 보수를 향한 바깥의 시선
진중권 지음 / 동아일보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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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뜨자마자 주문함. 주간동아에서 읽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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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네트렙코가 드디어 벽을 넘었나보다. 최고의 라이벌을 만나서. 메조 소프라노 아니타 라흐벨리쉬빌리는 라 스칼라 판 '아이다'에서 암네리스 역을 맡아 아이다 역의 크리스틴 루이스를 깔아뭉개는 굉장한 포스를 보여줬는데, 여기 전의에 불타는 공작부인 역할에서는 더욱 격정적이다. 덩치가 산만한 두 여자가 뿜어내는 에너지에 치인 테너 베찰라가 쪼그라드는 느낌. '아드리나아 르쿠브뢰르'는 처음인데, 연극무대 뒷편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묘사, 19세기 귀족들의 은밀한 이중생활 고발, 액자식 구성 등이 매력적이다. 메트만의 대본에 충실하되 촌스럽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디테일을 모두 잡는 연출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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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블루레이] 헨델 : 리날도
헨델 (George Friderich Handel),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Orchestr / OPUS ARTE(오퍼스 아르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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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은 처음이고, 바로크 오페라로는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에 이어 두번째.

 

바로크 오페라답게 단순허접한 스토리에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단순 무한반복으로 지루했을 이 작품을 살린 것은 100% 로버트 카슨의 연출이다. 십자군 전쟁을 영국 교복차림의 남학생들과 일본 교복차림의 여학생들의 싸움으로 치환해서, 전통 연출이었으면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을 다음 장면들이 어떨지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곳곳에 관객을 빵 터뜨리게 하는 아이디어들은 보너스.

 

음악적으로도 손색이 없다. 바로크적 예쁜 선율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오타비오 단토네의 지휘와 챔발로(먖나?) 연주는 물론이거니와 소니아 프리나, 브렌다 레이의 테크닉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알미레나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는 그간  (파리넬리 버전 등) 내가 기존에 들었던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공연 안에서 처음 접하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

 

영어자막이지만 (영국 공연이라 그런지) 읽기 쉽도록 번역되어 공연 감상에 지장이 없다.부클릿은 네 페이지에 달하는 제작노트를 읽을거리로 제공한다. 헨델이 영국에 왔을 당시(1710년 이후) 바로크 오페라는 자신의 이전 작품이나 심지어 남의 작품의 곡들을 재사용했다고 하는데, 그의 리날도의 경우, 전체 멜로디의 1/3 정도만 작품을 위해 새로 창작되었다는 것과, 후에 헨델이 개작하면서 그 이후에 작곡한 작품들의 줄리오 체사레 등의 곡들을 대거 끼워넣고 캐릭터들의 성부도 바꾸었다고 한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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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 영국 보수당 300년, 몰락과 재기의 역사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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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교과서 상으로 영국과 미국의 정치체제를 배울 때, '대통령제는 미국에서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의원내각제는 영국 의회정치의 오랜 역사의 산물'이라고 배웠다. 이상한 말이다. 그럼 그 나라의 정치체제가 역사적 산물이지 뭐란 말인가? 우리나라의 공화국 체제야 식민지라는 단절기간을 거쳐 미국으로부터 유학한 이들이 권력욕을 위해 이식된 시스템이라고 치더라도, 독일이든, 프랑스든, 일본이든 자기 나라의 현실에 부합하는 정치체제를 도입한 것이 아닌가?  미국의 영향력 하에 놓인 우리는 4년마다 뉴스를 점령하는 복잡다단한 미국의 대통령 선거 방송을 보면서 대통령제가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이 만들어낸 시스템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영국은 총리가 COVID-19에 감염되고 나서야 그 이름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관심이 적어서 '의원내각제가 영국 의회정치의 오랜 역사의 산물'이라는 명제는 최근까지도 나에게 수수께끼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 책은 그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고 있다. 시민혁명(청교도혁명) 부터 2019년 보리스 존슨 총리의 브렉시트 준비까지, 역대 보수당의 당수와 총리의 역사를 차근차근 서술하면서, 조금씩 변화하면서도 변하지 않은 듯한 영국 정치제도의 변천사를 읽을 수 있다. '변화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듯한'이라는 말은 영국 왕실의 권위, 귀족들로 이루어진 상원, 유럽통합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영국'이라는 국가적 정체성 등이 도도히 유지되고 있다는 데 대한 경이로움이다. 나아가 전후 '자유당'이 몰락하고 '노동당'으로 대체된 것에 비해 '보수'라는 아이덴티티 뿐 아니라 '보수당'이라는 명칭이 300년, 적어도 200년 이상 존속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다. 영국 의회정치의 역사, 의원내각제의 역사는 곧 보수당의 역사인 것이다.

 

더욱 대단한 것은 영국역사에서 자유당이나 노동당이 집권한 시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이다. 20세기 노동당이 안정적으로 통치하던 시기는 토니 블레어의 10년 뿐이었다. 그 이전에는 글래드스턴 정도가 족적을 남긴 자유당 수상으로 기억된다. 보수당은 거의 모든 시기에 집권하거나 연립내각의 구성원으로 참여했던 것이다. 이 긴 영국역사를 읽는 동안 보수당이 '궤멸' 수준에 이른 건 대처와 메이저 총리 직후, 10몇년에 걸친 장기집권과 신자유주의의 강력한 추진에 시민들이 피로감을 느꼈을 때였던 것이다.

 

이러한 보수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저자는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지만 결국 하나다. 시대에 걸맞는 유연성. 영국의 보수은 절대로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과거에 토리당이 성립했을 당시의 보수는 전통 지주계층이었다. 이것이 시대가 변하면서 그들은 상공인으로, 자본가로 변신해왔다. 혁명을 통해 귀족이 부르주아로 대체된 이웃 프랑스와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영국의 보수/기득권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시민계급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모색했다. 복지제도 주창을 노동자 계급이 먼저 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기꺼이 수용한 것은 보수당이었다. 반동 정치도 없었다. 앞선 정부의 조치를 뒤집는다거 하지는 않았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보완해 나갔을 따름이다.

 

한편으로, 의회정치의 역사에서 그들의 성숙한 정치문화를 엿볼 수 있다. 일단, 특정 정책에 자신의 신임을 결부시키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그러하다. 여야를 불문하고 내로남불이 난무하는 우리정치를 보면 저 평범한 원칙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대처는 지지율 폭락이 아닌 변화를 원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스스로 물러났다. 지지율에 일희일비하고 온갖 말도 안되는 선동, 억지 폭로, 불법적은 방법을 서슴지 않고 선거를 이기고 집권을 늘리려는 자들을 보면 부끄럽기만 하다.

 

매우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 책에는 아쉬움도 있다. 분명 대중을 위한 서적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지만, 영국의 정치제도를 알 수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 일례로 무슨 선거가 그리 많은지. 총리의 신임을 묻는 등의 사유로 선거가 셀 수도 없이 치러지는데, 심지어 총선을 13개만에 치른다거나, 1918년부터 1922년까지 5년 내 보궐선거만 14회나 치르기도 하는데, 그걸 보면 영국은 선거공화국이고 갑작스레 치러지는 선거예산은 또 어디서 얼마나 나오는지 궁금해진다. 반대로 전시기간에는 10년 동안 선거를 아예 안치르기도 했는데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불문법 국가라더니 그런게 선거법에 정해져 있지도 않은 건가? (책에 따르면 선거 주기가 5년으로 못박힌 건 2011년 관련법이 통과되면서라고 한다). 국왕의 역할도 아리송한데, 수상을 국왕이 임명하는건지, 수상이 사임을 결정했을 때 국왕이 다수당에 내각 구성을 요구할 수 있는지 등등 우리네 상식으로는 알 수 없는 그들의 제도를 읽는 이들의 과제로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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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운동권 출신 집권세력이 자신들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국가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일련의 현상들을 보면서 보수를 다시 생각하고 있고, 그들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제안하는 책들을 찾고 있다. 이 책은 그래서 선택했다. 촛불혁명으로 한국의 보수(라고 쓰고 수구라고 읽는다)는 사망선고를 받았고, 2020년 4월 총선을 통해 압살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아직 영국의 자유당처럼 되지는 않았기에 기회는 있다. 유연하라. 시대의 목소리를 들어라. 경직된 대북관과 교조주의적 친기업정책, 철지난 시장만능주의에서 탈피하라. 조금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반동세력들이 변화를 거부하는 한 이는 보수당게는 거의 불가능한 주문이다. 그렇기에 이해찬이 말한 '20년 수권정당'이 꿈만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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