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는 동안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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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의 유작. '황금가지'가 크리스티 전집을 기획하면서 야심차게 1권으로 내놓은 책이다. 보통 크리스티의 원투펀치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오리엔트 특급살인』이 꼽히지만(이 두 작품은 정말... 30년 가까지 지난 지금도 소름이 끼치게 하는 그런 대담한 결말의 작품은 흔치 않다), '황금가지'는 이 책으로 기존 전집과 차별화하고 싶었던 것 같다.


9편의 단편 작품집인데, 모두가 추리소설은 아니다. 푸아로가 둘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환상문학에 가깝다.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대중이 씌운 굴레가 얼마나 지겨웠을까.「꿈의 집」,「칼날」, 「외로운 신」,「벽 속에서」, 「빛이 있는 동안」이 그런 굴레를 벗어나고자 한 작품 같은데, 글쎄, 이 중 「벽 속에서」 정도만 괜찮았고 나머지는 곧 잊게 될 것 같다. 보물찾기 모험극인 「맨 섬의 황금」도 별로였다.


반면, 푸아로가 등장하는 두 작품은 정통 단편 추리극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다만, 「바그다드 궤짝의 수수께끼」는 약간 아쉬운 게, 완벽한 범죄라고 완벽한 탐정이 칭찬하고는 있으나, '김전일'의 관점에서 보면....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추리 => 끝. 이런 추리물은 김전일의 범죄자들에게 비웃음을 사기 십상이다(ㅎㅎㅎ 증거는 있나? 이러면서).


「여배우」는 약간의 트릭이 있는 희곡 같은 작품인데, 제일 좋았다. 앞으로 크리스티의 단편들을 읽는다는 것은 이런 매력적인 것들을 발견하는 작업이 될 것 같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돌이켜 보니,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상당수가 치정 관계가 깔려 있고 그것이 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 중년여성 드라마 작가들이 막장코드로 인기몰이를 했지만, 그리도 사람은 거의(?) 안 죽였다. 크리스티는 과감하게 살인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막장력'이 그들보다 한수 위이다. 직전에 읽은 『나일강의 죽음』도 그랬고,「바그다드 궤짝의 수수께끼」 같은 것들은 삼각 로맨스 그 이상을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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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 강의 죽음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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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때문이라기보다는, 평소에 읽고 싶던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스트리밍 서비스를 기다렸는데, 영화를 계기로 대여로 풀려서 냉큼 결제했다. 황금가지가 '쉬운' 출판사가 아니기 때문에 구독으로 읽으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지만... 최근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들도 풀렸으니 기대해 본다.


『나일강의 죽음』은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청소년용이 아닌 성인용 책으로 읽은 크리스티 작품인 것 같다. 지금은 없어진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는데, 이리저리 이사 다니는 사이에 정리가 된 듯. 


각설하고, 오랜만에, 나이가 들어 다시 읽었으니 역시 다른 게 많이 눈에 들어온다. 거의 중반에 이르기까지 사건은 벌어지지 않고 바람만 잡는다. 대신에 이집트 여행에 대한 깨알 같은 정보들이 있다. 이 경로를 따라가는 관광상품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이미 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고고학에 대한 크리스티의 애정과 지식이 돋보이는데, 그가 고고학자와 재혼한 사실은 어릴적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게 덕후 기질과 관계된 줄은 최근에 알았다. 그리고 푸아로가 자신의 멋진 콧수염과 '회색 뇌세포'에 강한 자부심이 강하긴 한데, 지금 다시 보니 명탐정으로서의 자뻑이 굉장해서 아르센 뤼팽과 비견될 만하다. 아마 많은 작품에서 그런 플렉스를 보게 될 것 같다(푸아로가 등장하는 책이 무려 34권이니, 읽는 사람들도 들어주기 지겨울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걸 떠나 이 작품이 명작으로 손꼽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정교한 트릭 때문일 것이다. 범인과 범행동기는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대강은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사건의 전반적인 전개와 트릭은 다시 읽으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몇몇 문장들은 가슴에 와 박히는 게 문학적 수준도 상당해 보이고.


요전에 '김전일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추리를 늘어놓는 방식은 크리스티에게서 왔다'는 텍스트를 읽은 적이 있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그렇다. 김전일은 크리스티, 그 중에서 푸아로에 대한 리스펙트로 가득하다. 푸아로는 자신의 추리를 늘어놓는 동안 이어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긴다(고 책에 나와 있다). 영화의 전작인 '오리엔트 특급살인'에도 그랬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다룸으로써 독자들의 집중력을 향상시킨다. 범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결말이 좋지 못하다. 


재미있게 읽었으니, 당분간 푸아로에 푹 빠져 살 것 같다. 셜록 홈즈와도, 아르센 뤼팽과도 다른, 혹은 그 둘을 섞은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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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박인용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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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금성출판사 추리소설 전집을 통해 읽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이 출간되면서 읽으려 생가한 걸 차일피일 미루다, 영화 '나일강의 죽음'을 계기로 전자책이 대여로 풀렸길래 결제했다.


금성출판사 본을 여러 번 읽었는지 상당히 많은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 있다. 이번 독서에서는, (최근 내 독서의 경향에 따라) 작품이 씌어졌을 당시인 1930년대 영국의 풍경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벤틀리를 시속 130km로 밟으려다 시간이 안 맞을 것 같자, '항공 택시'를 이용하는 장면이 있는데, 130km는 지금도 빠른 속도인데(나도 이렇게는 잘 안 밟는다) 그 당시 도로가 그렇게 잘 되어 있었다는 점, 현재 공공기관 주도로 강력히 추진 중인 UAM이 이때 그런 아이디어가 있었나 하는 점이 경이롭기만 하다.


많은 추리소설들이 그렇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 작품 역시 '인간심리'에 대한 통찰이 두드러진다. 초반을 보자. 목사 아들 보비가 기차 일등칸에 있던 소꿉친구이자 백작의 딸인 프랭키를 만나는데, 자신의 차표는 일등석이 아니기 때문에 옮겨야 하는 상황. 이때 (미녀) 프랭키는 검표원에게 미소를 지으며 친구가 조금만 함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검표원은 기분좋게 수락한다. 보비는 '미소만 지으니까 되는구나'하고 감탄한다. 이 장면은 어릴 때에는 '아, 그렇구나'하고 넘어갔는데. 지금 보니 나름 복선이다. 작품은 '사람은 이성의 아름다운 외모에 끌려 판단을 그르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하는데, 여기서 밑밥을 깔아둔 것이다.


이외에도 인간심리 혹은 대중심리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등장인문들의 대사를 통해 표출되는데, 상당부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호기심 많은 청춘남녀가 단서(lead)를 좇아 실마리를 풀어가는 재미있는 추리소설이지만, 이런 통찰이 작품의 진짜 매력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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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신장판 1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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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위해 책을 읽은 적이 없는데, 아마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저자가 창조한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은 언제나 힘들기 마련. 『반지의 제왕』때에도 그런 것처럼, 그와 필적한다는 『듄』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것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스파이스'라는 물질이다. 스파이스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이자, 캐릭터들의 중요한 동기였다. 아라키스 행성을 갖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의 원천이요, 원주민인 프레멘의 삶의 기본이다. 그런데, 그게 식물인지, 가루같은 형태인지 뭔지 분명치 않았다. 상상이 안되었는데, 심지어 영화에서조차 그 정체는 소개되지 않는다.  


동시에 가장 명백한 것이 스파이스이기도 하다. 아라키스 행성이 '사막'이라는 점릉 감안한다면, 이곳은 중동을 상징하는 곳일 것이다. 위에서 '욕망의 원천'이라고 했는데, 서구인들이 중동 지역에서 욕망하는 것은 두 가지일 것이다. 근대까지는 후추, 현대에 이르러서는 석유. 후추는 물론 인도에서 건너왔지만, 중간지대에 자리잡은 터키, 아라비아 반도에서 그 무역을 독점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결국 마젤란 등이 대체항로를 개척하는 계기가 되었다. 석유는 말할 것도 없는 현대사회의 근간이다. 탄소중립성을 이유로  석유 사용량을 줄이자는 움직임이 있지만, 감산하자마자 세계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중동의 석유는 양차 세계대전이 확대된 원인이자 종결시킨 결정적인 이유였으며, 고립주의를 고수했던 미국이 세계 경찰을 자처하게 된 배경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지난 추석 연휴 직전에 석유의 역사를 다룬 대니얼 예긴의 역작『황금의 샘(The Prize)』를 읽었고, 추석 때부터 이 『듄』을 읽기 시작했다. 『듄』에서 하코넨 일가와 조합이 스파이스에 집착한데서 보인 모습은 미국과 중동에서 유전 개발에 뛰어든 혁신가들의 그것과 같았다. 그래서 처칠이 말했다고 하지 않은가. '패권은 모험에 대한 보상(the prize)'이라고.


책의 내용은 사실 단순하다. 원수에게 아버지를 잃고 그곳을 탈출하여 천신만고 끝에 다른 부족의 우두머리가 되어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다는 서사는 어디서 많이 보던 것들이다. '복수'라는 점에서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떠올리게 하고,  현지인과 동화된다는 점에서 영화『늑대와 춤을』이나 『아바타』와도 유사한 점이 있다. 사막에 꽃을 피우려는 생태학자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에도 등장한다. 아버지를 잃은 스타크 형제들의 모험과 복수를 그린『얼음과 불의 노래』의 원형이라고도 할 만하다. 거기에, SF라고는 하지만 주된 무기가 칼이라는 점에서는 『스타워즈』와 닮았다. 이렇게 놓고 보니, 그 많은 명작들에 영감을 주었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덧붙여, 영화는 꽤 괜찮았다. 오니솝터 등 각종 탈 것, 목소리, 방어막 등에 대한 묘사가 뛰어났고,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선물 같은 것이었다. 반면, 원작을 안 읽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예컨대, 카인즈 박사가 갈고리를 들고 있는 장면이 그것일 것이다. 영화를 즐기고픈 사람은 책을 꼭 먼저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1권만 읽고 그만두려 했지만, 어렵사리 읽고나니 또 영화까지 보고 나니 완주하고픈 욕심이 생긴다. 영화는 1권에서 끝날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읽을 책들의 목록은 늘고나는데 고민이 깊어가는 가을 밤이다. 


*리디북스에서 대여로 읽음

**번역은 상당히 좋았다. 개인적으로, 김승욱 번역가는 『분노의 포도』 이후 두번째임 

***영화는 용산 cgv 아이파크몰에서 아이맥스 2D레이저로 보았음

처음이란 균형을 맞추는 데 가장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하는 시간이다.

무앗딥이 속했던 곳이 바로 아라키스 행성이라는 사실에 가장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그가 칼라단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 때까지 그곳에 살았다는 사실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행성 아라키스가 영원히 그가 속한 곳이다.

그는 ‘공포에 맞서는 기도문‘을 떠올렸다. 어머니가 가르쳐준 베네 게세리트의 기도문이었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은 정신을 죽인다. 두려움은 완전한 소멸을 초래하는 작은 죽음이다. 나는 두려움에 맞설 것이며 두려움이 나를 통과해서 지나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두려움이 지나가면 나는 마음의 눈으로 그것이 지나간 길을 살펴보리라. 두려움이 사라진 곳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남아 있으리라.‘

"왜 인간을 가려내기 위한 시험을 하는 거죠?" 그가 물었다.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려고."
"자유라고요?"
"옛날에 사람들은 생각하는 기능을 기계에게 넘겼다. 그러면 자기들이 자유로워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말이야. 하지만 그건 기계를 가진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노예로 삼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유전적인 특징들이 정체될가 봐 두려워하지. 사람들의 핏속에는 계획 없이 무작정 유전적 특징들을 뒤섞으려는 충동이 있어..."

"이것을 명심해라.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네 가지다..." 그녀는 관절이 커다랗게 불거진 손가락 네 개를 들어 올렸다. "...현자의 지식, 위대한 자의 정의, 올바른 자의 기도, 용감한 자의 용맹.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 아무것도 아냐..." 그녀는 손가락을 오므려 주먹을 쥐었다. "...다스리는 법을 아는 통치자가 없다면 말이다. 이것을 너희 가문의 체계적인 지식으로 만들어라!"

"귀머거리는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우리 모두 일종의 귀머거리가 아닌가? 우리 주위를 온통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세상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감각이 부족한 까닭인가? 주위에 있는 것을 우리는..."

"나를 파멸시키는 데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의심의 씨앗을 뿌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나?"

"칼라단에서 우리는 해군과 공군을 이용해서 지배했다. 이곳에서는 사막에서 활동할 수 있는 군사력을 긁어모아야해. 그게 네가 받을 유산이다, 폴,.."

"...인간은 각자 자신의 자리가 있을 때, 자기가 이 세상의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어디에 속하는지 알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해요. 어떤 사람이 속한 자리를 파괴하는 건 곧 그 사람을 파괴하는 거예요..."

"난 절대 반역자를 믿지 않아. 나 때문에 반역자가 된 인간이라 해도 말이야."

"...당신은 당신의 충성심이 파는 물건이 아니라고 했지만, 난 당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카드를 갖고 있소. 당신이 내게 충성하는 대가로 나 역시 당신에게 나의 신의를 주겠소... 완전한 신의를."

베네 게세리트의 격언 중에 ‘눈에 모든 것을 의존하면 다른 감각이 약해진다‘는 말이 있었다. 폴은 이 격언을 되새기며 다시는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금까지 인간과 인간의 활동은 인간이 살고 있는 행성 표면에서 질병과도 같은 존재였다. 자연은 질병들을 보정해서 제거하거나 분리시키고, 자신의 방식대로 그것들을 시스템 속에 통합시키는 경향이 있지."

스틸가가 말했다. "네가 선택한 이름이 마음에 든다. 무앗딥은 사막에서 현명하게 살아가야 하는 동물이야. 무앗딥은 스스로 물을 만들어내지. 무앗딥은 태양을 피해 몸을 숨겼다가 서늘한 밤에 움직인다. 무앗딥은 다산이어서 온 땅 위에서 번성하지. 무앗딥을 우리는 ‘아이들의 교사‘라고 부른다. 우리들 사이에서 우슬이라고 불리는 폴 무앗딥이여, 그건 네 인생의 강력한 기초가 되어줄 것이다. 너를 환영한다."

"우리는 실패하지 않을 거예요."
"죄책감은 실패했다는 감정에서 시작되는 법이지."

"가능한 한 명령을 적게 내려야 한다." 그의 아버지가...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이렇게 말했다. "일단 명령을 내리기 시작하면 항상 명령을 내려야 해."

"어떤 물건을 파괴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그것을 장악하고 있는 거야."

성난 사람이 분노 때문에 내적인 자아가 들려주는 말을 부정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당신이 어떤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건 아니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느냐 하는 것이오.

제시카는 씁쓸한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해 봐라, 챠니. 저 공주는 아내라는 이름을 갖겠지만 첩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될 거야. 결혼으로 자신과 묶여 있는 남자에게서 단 한순간도 부드러움을 맛보지 못하겠지. 하지만 우리는 말이다, 챠니, 첩의 이름을 달고 있는 우리는 역사가들에 의해 아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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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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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는 사람 없어. 나하고 나 자신, 그리고 또 나뿐이지.」


30대 초중반에 읽었고, 40대 초반에 다시 읽어보니 느낌이 완연히 다르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반항기 어린 성장소설로만 생각했다. 세상을 향한 냉소와 어른들의 위선에 대해 퍼붓는 독설이 좋아서, 당시 나에게 큰 충격을 준 명작이었다. 10년 가까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두 번째 읽은 지금은 그 충격이 덜하다. 대신 길잃은 방랑자의 고독을 느꼈다.


홀든 콜필드는 짧은 여행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을 경멸한다. 그런데 그 경멸하는 표현이, 왠지 밉지 않다. 과도하게 들리지 않고 오히려 공허하다. 중반부에서 그가 밝히길 무척 외로워서 그런 것이고(마치 남자아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에 고백하듯, 그들을 그리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독한 외로움, 감정이입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읽을 때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명작으로 읽힌다. 또 10년이 후 읽게 되면 나는 홀든의 부모 나이가 되어 있을 것이고, 다른 느낌이겠지만 역시 명작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정말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끔찍했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우리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알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난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 않다. 우선 그런 일들을 이야기하자니 내가 너무 지겹기 때문이고, 그렇게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했다가는 부모님이 뇌출혈이라도 일으킬 것 같기 때문이다. - P9

만약 잘난 놈들 측에 끼어 있게 된다면 그때는 시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측에 끼게 된다면, 잘난 놈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편에 서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시합이 되겠는가? 아니. 그런 시합은 있을 수 없다. - P19

정말로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책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와 친한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자기가 받은 느낌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 P32

「오리들이 그곳에서 헤엄을 치고 있잖아요? 봄에 말이에요. 그럼 겨울이 되면 그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지 혹시 알고 계세요?」 - P113

망할 놈의 돈 같으니라구. 돈이란 언제나 끝에 가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어버린다. - P154

「같이 있는 사람 없어. 나하고 나 자신, 그리고 또 나뿐이지.」 - P201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빌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 P229

「지금 네가 떨어지고 있는 타락은, 일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좀 특별한 것처럼 보인다. 그건 정말 무서운 거라고 할 수 있어. 사람이 타락할 때는 본인이 느끼지도 못할 수도 있고, 자신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거야. 끝도 없이 계속해서 타락하게 되는 거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경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네가 그런 경우에 속하는 거지...」 - P247

「...빌헬름 스테켈이라는 정신분석 학자가 쓴 글이다. (중략) 이렇게 쓰고 있어.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 P248

「교육받고 학식이 높은 사람만이 세상에 가치 있는 공헌을 한다는 건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교육을 받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 재능과 창조력이 있는 사람보다 훨씬 가치 있는 기록을 남기기 쉽다는 거지. (후략)」 - P250

「그 밖에도 학교 교육이란 건 많은 도움을 주지. 학교 교육이라는 건, 어느 정도까지 받다 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게 되지. 자기의 사고에 맞는 것은 어떤 것인지,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돼. 나중에는 자기 사고의 일정한 크기에 어떤 종류의 사상을 이용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될 거야.게다가 자기에게 맞지 않는 사상들을 하나하나 시험해 보는 데 드는 시간도 절약해 주고 말이지. 결국 학교 교육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크기를 알게 해주고, 거기에 맞게 이용하게 해주는 거야」 - P251

난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한 걸 후회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이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것뿐. 이를테면, 스트라드레이터나 애클리 같은 녀석들까지도. 모리스 자식도 그립다. 정말 웃긴 일이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끝>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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