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네트렙코가 드디어 벽을 넘었나보다. 최고의 라이벌을 만나서. 메조 소프라노 아니타 라흐벨리쉬빌리는 라 스칼라 판 '아이다'에서 암네리스 역을 맡아 아이다 역의 크리스틴 루이스를 깔아뭉개는 굉장한 포스를 보여줬는데, 여기 전의에 불타는 공작부인 역할에서는 더욱 격정적이다. 덩치가 산만한 두 여자가 뿜어내는 에너지에 치인 테너 베찰라가 쪼그라드는 느낌. '아드리나아 르쿠브뢰르'는 처음인데, 연극무대 뒷편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묘사, 19세기 귀족들의 은밀한 이중생활 고발, 액자식 구성 등이 매력적이다. 메트만의 대본에 충실하되 촌스럽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디테일을 모두 잡는 연출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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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블루레이] 헨델 : 리날도
헨델 (George Friderich Handel),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Orchestr / OPUS ARTE(오퍼스 아르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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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헨델은 처음이고, 바로크 오페라로는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에 이어 두번째.

 

바로크 오페라답게 단순허접한 스토리에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단순 무한반복으로 지루했을 이 작품을 살린 것은 100% 로버트 카슨의 연출이다. 십자군 전쟁을 영국 교복차림의 남학생들과 일본 교복차림의 여학생들의 싸움으로 치환해서, 전통 연출이었으면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을 다음 장면들이 어떨지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곳곳에 관객을 빵 터뜨리게 하는 아이디어들은 보너스.

 

음악적으로도 손색이 없다. 바로크적 예쁜 선율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오타비오 단토네의 지휘와 챔발로(먖나?) 연주는 물론이거니와 소니아 프리나, 브렌다 레이의 테크닉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알미레나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는 그간  (파리넬리 버전 등) 내가 기존에 들었던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공연 안에서 처음 접하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

 

영어자막이지만 (영국 공연이라 그런지) 읽기 쉽도록 번역되어 공연 감상에 지장이 없다.부클릿은 네 페이지에 달하는 제작노트를 읽을거리로 제공한다. 헨델이 영국에 왔을 당시(1710년 이후) 바로크 오페라는 자신의 이전 작품이나 심지어 남의 작품의 곡들을 재사용했다고 하는데, 그의 리날도의 경우, 전체 멜로디의 1/3 정도만 작품을 위해 새로 창작되었다는 것과, 후에 헨델이 개작하면서 그 이후에 작곡한 작품들의 줄리오 체사레 등의 곡들을 대거 끼워넣고 캐릭터들의 성부도 바꾸었다고 한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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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 : 진주 조개잡이 [한글 자막] - 박종호와 함께하는 유럽 오페라하우스 명연시리즈 박종호와 함께하는 유럽오페라하우스 명연시리즈 21
비제 (Georges Bizet), 비오티 (Marcello Viotti) 외 / Dynamic / 201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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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조개잡이는 처음.

 

비제는 '카르멘' 하나로 프랑스의 다른 오페라를 합친 것보다 더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대신 다른 작품들은 아무도 연주하지 않고 있고, 그나마 스탠더드 목록에 오른게 '진주 조개잡이'.

 

내용만 보면 '카르멘'을 제외한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묻힐 뻔할 정도로 단순하다. 여사제가 있고, 마을의 지도자가 그를 사랑하고, 그 지도자의 친구가 여행에서 돌아와 여사제와 사랑에 빠지고, 그들을 벌을 받게 되는데...

 

대신 음악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이 작품이 그나마 극장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비제의 힘. 아리아들이 애절하고, 오케스트라도 비극적인 영화나 드라마 OST 같은게 내용 없는 대본을 커버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공연으로 보자면, 완만한 U자 형의 무대 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도록 디자인 된 게 특이하다. 브라만교 신상들이나 남아시아 계통의 복장들을 보면 지휘도 반드시 주빈 메타가 해야만 할 것 같다. 인도풍 춤인지, 프랑스풍 발레인지 알쏭달쏭한 춤들을 보고 있자면 다소 지루한 건 사실이다. 아니크 마시스를 비롯한 가수들의 지명도도 높지 않다. 그럼에도 끝까지 보게 해주는 건 비제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선율, 그리고 그 지명도 높지 않은 마시스와 나카지마의 열창이다.

 

박종호의 '불멸의 오페라'에는 추천영상물이 이것 하나다. 2010년대부터 담라우 등 유명가수들이 출연한 다른 공연들 있어, 몇 개는 더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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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블루레이] 모차르트 : 돈 지오반니 (한글자막)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외 / DG (도이치 그라모폰)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연광철을 비롯한 8명의 등장인물 모두 좋다. 안나 네트렙코가 지명도에 비해 조금 아깝고, 브린 터펠이 레포렐로 역할을 잘 소화했다는 점이 의외. 앤드 듀프레인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마테이의 연기는 돈 조반니와는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돈나 엘비라의 하녀를 향해 부르는 세레나데(내 사랑, 창가로 오세요)가 기가 막히게 로맨틱하다. 바렌보임의 지휘도 마음에 드는데, 가끔 고음악처럼 들리는 부분이 있다.

 

로버트 카슨이 꾸민 무대는 라 스칼라 극장의 커튼과 발코니석 이미지들을 기본으로 하여 다양하게 변주되는데, 처음에는 심심하지만 갈수록 매력적이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돈 조반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프로덕션. 한글자막이 좋은 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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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블루레이] Tutto Verdi 21 - 가면무도회 [한글자막]
베르디 (Giuseppe Verdi) 감독, 젤메티 (Gianluigi Gelmetti) / C Major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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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에서는 '쀼의 세계'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시민들에게 존경받는 총독이지만, 알고보니 가장 총애하는 신하이자 친구의 부인을 범하는 만토바 공작 같은 바람둥이. 반만 맞았다. 극 초반에서 시민들에 대한 사랑을 역설하지만, 한편으로는 신하의 아름다운 부인을 탐낸다. 그녀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위험한 장소까지 쫓아가고 그녀의 흔들리는 마음을 알고 만족해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 뿐. 탐하기를 했으나 범하지는 않는다. 절제하기로 마음먹는다.

 

뭔가 전작인 '시몬 보카네그라'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존경을 받는 리더, 측근의 배신과 암살. 이 무렵의 베르디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을 지지했고, 위대한 지도자 상을 제시하려 한 듯하다. '시몬 보카네그라'는 국내산 지도자, '가면무도회'는 수입산(스웨덴)이라는 점이 다를 뿐. 실제, 이 시기 이탈리아인들은 Viva Verdi를 외쳤는데, 이 중 Verdi는 '이탈리아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였고 그러한 분위기 속에 이 작품의 초연은 대성공을 거뒀다고. 예나 지금이나 국뽕은 만고의 진리인 듯.

 

이 작품은 아리아가 상당하다. 테너, 소프라노, 바리톤의 아리아들이 풍성해서 정통 이탈리아 오페라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여기에, 베르디는 장기인 2중창~5중창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다. 게다가 베르디 작품 중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아직 초기 작품들은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소프라노가 바지 역할로 등장하여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 대비하여 발랄함을 보여주고 있다.

 

공연으로 보면 전통적 연출이긴 한데, 공간적 배경이 여기가 미국인지 스웨덴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작품 자체가 검열을 피하다 보니 시공간을 이상하게 비틀어놔서 그런 듯. 마지막 가면무도회 장면이 활기차게 아름답고, 낭낭히 울리는 바이올린 솔로가 인상적이다.성악파트는 전반적으로 다 좋지만, 아멜리아 역 크리스틴 루이스의 노래는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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