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공연물을 좋아한다. 파격적인 실험과 현대적이고 간결한 무대연출이 좋아서이다. 지금 시점에서 '용의 눈물'보다는 '정도전'이 보기 편한 것처럼.
이 공연물은 나의 두번째 '피델리오'이다. 처음 접한 2018년 성 갈렌 극장 공연물이 너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이 공연은 기대를 많이 했다.
무대 연출은 괜찮았다. 잘츠부르크답게 직각삼각형의 간결한 무대, 등장인물들의 절제된 의상(절대 돈이 없어서 이렇게 만든 건 아닐 것이다). 음악은 너무도 정직하게 베토벤풍. 레노노라와 동일한 의상으로 등장하는 한 여자는 열심히 수어 동작을 하는데, 아마도 그녀의 분신일 것이며 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라고 추측한다(수어를 모르고, 독일어 수어는 더욱 모르지만). 교도소장 피차로는 영화 '매트릭스'의 스미스를 차용한 듯 한데, 검은 옷에 선글라스를 쓴 의상이며, 그의 분신과도 같은 이들이 그의 주위를 어슬렁거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재미가 없다. 베토벤이 자신의 이상대로 자유, 정의, 박애를 소재로 내세운 건 좋지만 이 정도로 노잼이라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별다른 긴장감도 없고 쉽게 풀려난다. '그녀가 그녀의 남편을 구해서 기뻐라!'를 외치는데, 맞는 말이긴 하지만 재밌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앞으로 볼 오페라가 많으니, 피델리오는 이제 먼 훗날에나 다시 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