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공연물을 좋아한다. 파격적인 실험과 현대적이고 간결한 무대연출이 좋아서이다. 지금 시점에서 '용의 눈물'보다는 '정도전'이 보기 편한 것처럼.

 

이 공연물은 나의 두번째 '피델리오'이다. 처음 접한 2018년 성 갈렌 극장 공연물이 너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이 공연은 기대를 많이 했다.

 

무대 연출은 괜찮았다. 잘츠부르크답게 직각삼각형의 간결한 무대, 등장인물들의 절제된 의상(절대 돈이 없어서 이렇게 만든 건 아닐 것이다). 음악은 너무도 정직하게 베토벤풍. 레노노라와 동일한 의상으로 등장하는 한 여자는 열심히 수어 동작을 하는데, 아마도 그녀의 분신일 것이며 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라고 추측한다(수어를 모르고, 독일어 수어는 더욱 모르지만). 교도소장 피차로는 영화 '매트릭스'의 스미스를 차용한 듯 한데, 검은 옷에 선글라스를 쓴 의상이며, 그의 분신과도 같은 이들이 그의 주위를 어슬렁거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재미가 없다. 베토벤이 자신의 이상대로 자유, 정의, 박애를 소재로 내세운 건 좋지만 이 정도로 노잼이라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별다른 긴장감도 없고 쉽게 풀려난다.  '그녀가 그녀의 남편을 구해서 기뻐라!'를 외치는데, 맞는 말이긴 하지만 재밌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앞으로 볼 오페라가 많으니, 피델리오는 이제 먼 훗날에나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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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벨리니 : 몽유병의 여인
벨리니 (Vincenzo Bellini) 외 / Decca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나의 첫 '몽유병의 여인', 첫 벨리니 공연물이면서 나탈리 드세이, 후안 디에고 폴로레즈와의 만남 역시 처음.

 

다른 벨리니 작품에 비해 '몽유병의 여인'이 규모가 작은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일단 내용이 없다. '사랑의 기쁨'만 주구장창 노래할 뿐.  환희 - (잠깐) 갈등 - 환희로 이어지는 스토리라인은 그냥 이거만 두고 본다면, 아마 연극이라면 전혀 팔리지 않을 것이다. 한글자막으로 보다 좀 부실해 보여 영어자막으로 바꿨는데, 부실한 건 마찬가지지만 내용을 따라가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을 만큼 쉬워서 그냥 그대로 봤다. 이 무기력한 플롯의 오페라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역시 벨리니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음악인데, 그 중에서도 아미나의 극한의 고음이 빛남으로써, '아, 이것이 벨칸토 오페라의 정수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별 내용은 없고, 주연 배우들의 초절기교만으로 승부하는.

 

시트콤 '프렌즈' 같은 무대가 좀 어설프긴 했지만, 오페라 규모를 생각하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피날레에 스위스풍 옷들로 갈아입고 노래하고 춤추는 건 에러. 폴로레즈의 가창은 로맨틱한 느낌을 준다.

 

나탈리 드세이의 목소리는 카나리아와 같이 가냘프로 아름다운데, 이런 스타일의 소프라노는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안나 네트렙코와 같이 굵직한 저음에만 익숙했던 것이다. 아기자기한 이 작품과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막바지에 문득 그녀가 노래하는 질다가 듣고 싶어졌다. 4중창 '아름다운 아가씨여Bella figlia dell'amore'나 3중창 '자정의 종소리가 울리기 전에Se pria ch'abbia'를 좋아하는데, 잘 어울릴 것 같다. 아쉽게도 애플뮤직에는 다른 아리아 하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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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블루레이] 베르디 : 돈 카를로 [한글자막]
베르디 (Giuseppe Verdi) 외 / Sony Classical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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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돈 카를로’

아마도 베르디 오페라 중 공연시간이 가장 긴 작품일거다. 3시간 55분 가량. 그래서 몇년 전 사두고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봤다.

우선 눈에 띄는 건 그간 본 그의 작품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대하사극’이라는 점이다. 물론 일 트로바토레, 에르나니 같은 것도 있지만 일 트로바토레는 사극이라 보기에는 사실 부분이 약하고 에르나니는 대하라고 보기엔 좀 작다(그냥 사극?). 돈 카를로는 (물론 실제 역사와 내용이 많이 다르기는 해도) 역사 속 인물들이 주역이고,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창조되었다. 그런 점에서 나도 보고 나서 좀 찾아봤어야 했어야 했는데, 잘 알고 있다는 시대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정도 디테일까지는 몰랐다는 자괴감에...

각설하고, 최고의 배역진이 출연한 만큼 음악은 당연히 훌륭하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답게 무대연출은 단촐하나, 한편으로는 잘츠부르크 답지 않게 전통의상에 돈 좀 썼다(풀 의상 같지는 않고 약식 같은 느낌?). 그래서 그런지 4시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 동안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유일한 흠이라면, 자막 교정에 신경을 거의 안 쓴 것 같다는 건데, 블루레이 한글자막은 도대체 누가 번역하고 편집하는건지... 질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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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 [dts] (2disc) - M 22
모짜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외 / Decca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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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번째 코지 판 투테. 마드리드 극장 공연에 비해 비주얼들은 밀리지만, 성악은 훨씬 훌륭하다. 특유의 단순화된 연출은 말할 것도 없고. 의상이 좀 어중간하긴 한데, 희극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라고 이해하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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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니제티 : 사랑의 묘약 (한글자막)
도니제티 (Gaetano Donizetti) 외 / 워너뮤직 (wea)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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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스가 노르마, 비올레타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면, 파바로티는 그가 소화한 20여 개의 배역 중 네모리노 역이 가장 어울렸다. 그에 필적할 만한 테너가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바로 롤란드 비야손. 내가 기억하는 파바로티의 공연물과 비슷한 배경과 의상으로, 언뜻 보면 사람만 바뀐 것 같다. 그런데 (천진하기는 해도) 털복숭이 뚱뚱이 파바로티보다 곱슬머리의 비야손이 순박한 마을청년이라는 역에 적어도 비주얼적으로는 훨씬 어울린다. 이보다 몇 개월 후 공연한 '라 트라비아타'가 안나 네트렙코의 것이었다면, 이 공연은 80% 이상이 비야손의 개인기이다. 

그 누치, 다르칸젤로 등 바리톤들의 능청맞고 코믹한 연기들이 시종일관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파바로티 공연물 이후 꽤 오랜만인데, 재미있게 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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