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0
에밀 졸라 지음, 김치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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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목로주점'으로 시작하여, 제르베즈와 그의 세 자녀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을 모두 읽었다(목로주점, 작품, 제르미날, 나나). '목로주점'을 읽은 것이 2012년 11월이니, 중간에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이나 '인간짐승' 같은 다른 작품들도 읽었다고는 하나 참 오래 걸린 셈이다.

 

역시, 에밀졸라. 현실에 대한 치밀하고도 가혹하리라 할 만큼 현실에 대한 묘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만큼이나 현실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쓰는 작가가 현대에도 과연 얼마나 있을까? 

 

뭇 남성들이 한 매력적인 여성을 향해 질주한다. 가난한 그녀는 그 남성들에게 쾌락을 선사하고 그들의 재력을 사치에 이용하여 파멸에 빠뜨린다. 단지 재정적인 파멸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엄청난 타격을 주는데, 백작을 네 발로 걷게 하는 등 사디즘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어린 소년들조차 그녀에게 접근하여 파멸하고 만다.

 

다른 작품만큼의 재미는 없었지만, 역시 졸라는 졸라였다. 그의 루공-마까르 총서가 어서 빨리 번역되기를 기대하며...

"잘 알겠지만 저런 사람들은 이제 나를 놀라게 하지 못해요... 나는 그들을 너무도 잘 알아요... 한 꺼풀 벗겨놓고 봐야 해요... 난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아요! 존경은 끝났어요!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나 모두 더러운 놈들이고 한패거리에요... 이게 그들이 나를 귀찮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예요!" - 450쪽

이 때가 나나의 절정기였다. 그녀는 파리를 두 배로 더 찬란하게 빛냈다. 그녀는 타락의 지평선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방약무인하게 사치를 부리고 돈에 대한 경멸을 보이며 도시 전체를 지배했다. 그로 인해 엄청난 재산을 공개적으로 탕진했다. 그녀의 저택에는 대장간의 불꽃 같은 것이 존재했다. 거기서 끝없는 욕망이 불타고 있었다. 그녀의 하찮은 입김 한 번에 황금이 재로 변했고, 바람이 시시때때로 그것을 쓸어냈다. 그 누구도 이런 미친 듯한 낭비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그 저택은 마치 깊은 구렁 속에 세워진 것 같았다. 무수한 남자들이 재산과 육체와 이름까지 그 속에 빠뜨렸지만 티끌만한 흔적 하나 남지 않았다. - 520쪽

"빌어먹을!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이 사회가 잘못돼먹었지. 그 짓거리를 요구하는 건 남자들인데 욕은 여자들이 먹는단 말이에요..." - 5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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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짐승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5
에밀 졸라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2014.9.13~9.16

 

에밀 졸라의 작품은 지난해 말 읽었던 '작품' 이후 간만이다.

 

자크 랑티에가 나온다. '목로주점'의 제르베즈의 세 아들 중, '작품'에서는 큰 아들인 끌로드, '제르미날'에서 막내인 에티엔에 이어 둘째 아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거기에 막내딸인 나나의 생을 다룬 '나나'만 읽으면 그의 자식들의 일대기를 모두 읽게 되는 셈이다.

 

'인간짐승'은 참 잔혹한 작품이다. 여기에 나오는 죽음들이 잔혹하다. 제르베즈처럼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읽는 것도 고통이지만, 여기서는 칼에 목을 맞아죽고, 기관차에 치어 죽는 등 참 독하게도 죽는다. 사람 뿐 아니라 말들도 다리가 잘려나가 버둥대다 죽어간다. 작가는 이것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데, 그가 그려낸 이 참상이 진실된 세계의 모습에 더 가까운 것을. 흔히 잔인한 영화의 잔인한 장면을 보면서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라고 하는데, 실상은 이것이 세계에 더 가깝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짐승'에서 묘사된 비참한 죽음들은, 특히 작가가 살던 19세기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짐승'은 살인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다룬다. 먼 옛날부터, 아주 머나면 옛날부터 인간은 살인이라는 본성을 갖고 있다. '교육'을 통해, '문화'를 통해, '법과 제도'를 통해 그 본능을 억제하도록 강요당하고 있지만, 자크의 경우처럼 이유없이 살인욕구가 유독 강하게 발현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성적인 충동과 맞물려. 살인 본능이 태초에 기원을 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이러한 사람은 요즘 세상에도 뉴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교육을 잘못 받은 것인지, 만화나 비디오게임이 그들의 심성을 망가뜨린 것인지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졸라 식으로라면 이들은 태초로부터의 인간 본성에 충실한 인간들인 것이다. 짐승의 본성이 좀 더 강하게 나타나는 인간들인 것이다.

 

또 한가지, 이 작품은'철도'라는 당대의 소재를 다룬다. 세탁소(목로주점), 백화점(여인들의 행복백화점), 탄광(제르미날), 예술(작품) 등 그는 제2제정 시기에 등장하는 사회현상에 대해서 예리하게 관찰하여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번에는 철도다. 여기서 철도는 여러 인간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삼키는 존재이다. 많은 사람이 인간의 살인본능의 실현도구로서의 철도에 희생된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막판에는 급기야 '괴물'로 표현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과연 그것 뿐일까? 철도는 '돌이킬 수 없는 인류문명의 진보'를 상징하고 있지 않을까?

 

기관차가 도중에 산산조각내버린 희생자들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기관차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로 인해 뿌려진 피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 있지 않은가?

- 571쪽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점은, 진실에의 강한 열망을 가진 에밀 졸라의 태도이다. 조금 역설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진실을 밝히느냐 마느냐의 열쇠를 쥔 카미라모트 사무총장은 사건을 잘못된 방향으로 풀어가고 있는 예심판사인 드니제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진실이 말을 하는 순간부터는 그 진실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는 법이오. 개개인의 이익도, 심지어 국가 이성이라고 하는 것도 말이오... 계속 정진하시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신경쓰지 말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주시오."

- 546쪽

 

이 문장이 문득 나를 섬찟하게 했다. 다음의 문장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그 무엇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 에밀졸라, '전진하는 진실', 박명숙 역, 은행나무

 

드레퓌스 사건에 즈음한 졸라의 외침이다. 앞선 말이 마치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그의 변론과 흡사하지 않은가? 그런데 시기적으로 '인간짐승'은 드레퓌스 사건에 앞서 있다.(드레퓌스가 유죄판결을 받은 때는 1894년이고,  '나는 고발한다'는 논설문 기고는 1898년의 일이다) 그는 국가의 집단 최면에 진실이 가려지는 것을 묵과할 수 없는, 평소의 소신과 행동이 일치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졸라와 그의 자연주의 작품을은 너무도 생생하고, 외면하고 싶을만치 잔인한 인간성을 묘사하고 있다. 박찬호나 봉준호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읽기가 매우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지금의 세계를 부정하려는 자기기만이기에 나는 내일도 그의 다른 작품을 읽으련다.

에밀 졸라, 인간짐승, 드레퓌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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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의.기다림이었던가. 에밀 졸라의.대작 '제르미날'이 드디어 재출간되었다. 90년대 '쥬라기 공원'과 경쟁하다 쫄딱 망한 그 영화의 원작소설이 절판된 이래 첫 출간이니 참 우리의 출판문화가 얼마나 후진적인지 씁쓸함을 달랠 길이 없으나, 지금에라도 읽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당장 달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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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4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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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에 비해... 아우 어렵다. 특히 대심문관 서사시 부분. 번역은 그런대로 준수하나 현(縣), `...함에 있`, `군(소년을 호칭하는 말)` 따위 용어를 보면 일본 것 같은 느낌도 들고(압권은 `잠바`였다). 게다가 오타. 그 많은 책을 찍어내는 민음사에는 과연 편집팀에 몇 사람이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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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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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일이지만, 남들은 고등학교, 대학교 때 읽은 책을 나는 만 서른 넷 생일에서야 다 읽을 수 있었다. 예전엔 문학이라는 것이 쓸데없는 것으로 여겼다. 사실에 충실한 글만이 나에게 텍스트로서의 가치가 있었다.

 

EBS라디오 '고전읽기'에서, 지금은 작고한 구본형 씨가 이 작품을 '거대하다'고 묘사한 적이 있다. 그런데 실제 '죄와 벌'은 라스꼴리니꼬프와 어머니, 동생, 이웃의 창녀 등 몇몇 사람들 간의 일화를 며칠 간에 거쳐 다루고 있을 뿐이다. 800페이지 분량에 달하지만 (정신없이 읽어서 그런지)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러면 그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것을 '거대하다'고 한 것일까. 왜 이 작품을 꼭 읽어야만 하는 것으로 본 것일까.

 

읽고 나니 과연 '거대했다'. 그러나 한 번 읽은 것으로는 그 느낌을 잘 표현할 수가 없어 키워드로 정리해 봤다.

 

1인칭 주인공시점

 

물론 이 작품은 전지적 작가시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라스꼴리니꼬프가 아닌 다른 인물들만 등장하는 장면이 종종 있음에도) 그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작가는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그의 심리를 온전히 전달하는 역할에 그친다. 반면에 다른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보이지 않는다. 전지적 작가의 가면을 쓴 1인칭 주인공 시점인 것이다.

궁금증은 '역자 후기'에서 풀렸다. '죄와 벌'의 모체가 되는 그의 전작인 '참회'에서의 1인칭 주인공시점을 그대로 쓰려다 이것이 '주변세계와 주인공의 심리를 보다 폭넓게 묘사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전환하였다는 것이다.

 

스릴러, 심리소설

 

'죄와 벌'은 스릴러 같다. 잔혹한 살인자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무척이나 흥미 있게 읽힌다. '페이지 터너'라고 하나. 이 작품이 그랬고, 끝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살인자의 심리를 파헤치는 '심리소설'의 성격도 짙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 혼자 중얼중얼 거리면서 다닌다는 것이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나와 비슷한 소심한 사람의 습관을 여기서 발견하고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될 수 있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살인죄를 저지른다. 그러나 이는 평화로운 세상의 법규의 관점에서 그런 것이다. 그는 단지 세상에 해로운 '이'같은 존재를 죽였을 뿐이다. 그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거의 없다. 반전은, 그는 가난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자신이 수중에 돈이 없음에도, 일단 돈이 생기면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고 만다. 조금의 망설임만이 있을 뿐이다. '이'같은 존재는 사회의 법과 관계없이 죽여도 된다. 가난한 사람은 무조건 도와야 한다. 이것이 그가 스스로를 '비범인'으로 여긴 증거가 아닐까.

 

 

라스꼴리니꼬프에 있어 '벌'은 불안한 심리였다. 살인자의 불안한 심리. 남들의 이야기가 자신을 살인자로 간주하고 있는 것인가의 불안함. 가뜩이나 평소에도 중얼중얼 거리고 다니는 소심한 남자에게 그러한 벌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에게 죄책감이나 형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소냐

 

가족의 어려움 때문에 거리에 나서게 된, 모두가 손가락질 하는 매춘부. 그러나 그녀는 성경에서나 볼 수 있는 순결한 영혼을 갖고 있다. 보통 매춘부는 나오면 주인공에게 몸을 주려 한다는 게 클리셰인데, 작품에는 단 한번도 그런 이야기가 없다. 그녀는 성녀이다. 라스꼴리니꼬프의 단 하나의 '구원'이다. 심리적 불안이라는 '벌'에 시달리는 그를 자수하여 광명찾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의 옥바라지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연극적 요소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희곡을 읽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이 발생하는 장소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노란 하숙방', 마르멜라도프의 집, 소냐의 집 등. 그리고 등장인물 간 대화가 뛰어나고 매력적이다. 주인공의 심리묘사는 독백에 해당할 것이다. 연극으로 각색해도 무척 좋은 작품이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해봤다.

 

새로운 고골에서 대문호 도스또예프스끼로

 

'죄와 벌'은 작가의 5대 장편 중 첫 작품이다(해설에서는 '5막짜리 비극의 제1막'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작가와 작품 모두에게 불멸의 이름을 허락해 주었다. 5막에 해당하는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과 어느 것이 더 걸작인가 하는 논쟁은 후세의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던져진 떡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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