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의.기다림이었던가. 에밀 졸라의.대작 '제르미날'이 드디어 재출간되었다. 90년대 '쥬라기 공원'과 경쟁하다 쫄딱 망한 그 영화의 원작소설이 절판된 이래 첫 출간이니 참 우리의 출판문화가 얼마나 후진적인지 씁쓸함을 달랠 길이 없으나, 지금에라도 읽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당장 달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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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4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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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에 비해... 아우 어렵다. 특히 대심문관 서사시 부분. 번역은 그런대로 준수하나 현(縣), `...함에 있`, `군(소년을 호칭하는 말)` 따위 용어를 보면 일본 것 같은 느낌도 들고(압권은 `잠바`였다). 게다가 오타. 그 많은 책을 찍어내는 민음사에는 과연 편집팀에 몇 사람이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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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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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일이지만, 남들은 고등학교, 대학교 때 읽은 책을 나는 만 서른 넷 생일에서야 다 읽을 수 있었다. 예전엔 문학이라는 것이 쓸데없는 것으로 여겼다. 사실에 충실한 글만이 나에게 텍스트로서의 가치가 있었다.

 

EBS라디오 '고전읽기'에서, 지금은 작고한 구본형 씨가 이 작품을 '거대하다'고 묘사한 적이 있다. 그런데 실제 '죄와 벌'은 라스꼴리니꼬프와 어머니, 동생, 이웃의 창녀 등 몇몇 사람들 간의 일화를 며칠 간에 거쳐 다루고 있을 뿐이다. 800페이지 분량에 달하지만 (정신없이 읽어서 그런지)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러면 그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것을 '거대하다'고 한 것일까. 왜 이 작품을 꼭 읽어야만 하는 것으로 본 것일까.

 

읽고 나니 과연 '거대했다'. 그러나 한 번 읽은 것으로는 그 느낌을 잘 표현할 수가 없어 키워드로 정리해 봤다.

 

1인칭 주인공시점

 

물론 이 작품은 전지적 작가시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라스꼴리니꼬프가 아닌 다른 인물들만 등장하는 장면이 종종 있음에도) 그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작가는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그의 심리를 온전히 전달하는 역할에 그친다. 반면에 다른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보이지 않는다. 전지적 작가의 가면을 쓴 1인칭 주인공 시점인 것이다.

궁금증은 '역자 후기'에서 풀렸다. '죄와 벌'의 모체가 되는 그의 전작인 '참회'에서의 1인칭 주인공시점을 그대로 쓰려다 이것이 '주변세계와 주인공의 심리를 보다 폭넓게 묘사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전환하였다는 것이다.

 

스릴러, 심리소설

 

'죄와 벌'은 스릴러 같다. 잔혹한 살인자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무척이나 흥미 있게 읽힌다. '페이지 터너'라고 하나. 이 작품이 그랬고, 끝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살인자의 심리를 파헤치는 '심리소설'의 성격도 짙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 혼자 중얼중얼 거리면서 다닌다는 것이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나와 비슷한 소심한 사람의 습관을 여기서 발견하고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될 수 있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살인죄를 저지른다. 그러나 이는 평화로운 세상의 법규의 관점에서 그런 것이다. 그는 단지 세상에 해로운 '이'같은 존재를 죽였을 뿐이다. 그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거의 없다. 반전은, 그는 가난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자신이 수중에 돈이 없음에도, 일단 돈이 생기면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고 만다. 조금의 망설임만이 있을 뿐이다. '이'같은 존재는 사회의 법과 관계없이 죽여도 된다. 가난한 사람은 무조건 도와야 한다. 이것이 그가 스스로를 '비범인'으로 여긴 증거가 아닐까.

 

 

라스꼴리니꼬프에 있어 '벌'은 불안한 심리였다. 살인자의 불안한 심리. 남들의 이야기가 자신을 살인자로 간주하고 있는 것인가의 불안함. 가뜩이나 평소에도 중얼중얼 거리고 다니는 소심한 남자에게 그러한 벌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에게 죄책감이나 형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소냐

 

가족의 어려움 때문에 거리에 나서게 된, 모두가 손가락질 하는 매춘부. 그러나 그녀는 성경에서나 볼 수 있는 순결한 영혼을 갖고 있다. 보통 매춘부는 나오면 주인공에게 몸을 주려 한다는 게 클리셰인데, 작품에는 단 한번도 그런 이야기가 없다. 그녀는 성녀이다. 라스꼴리니꼬프의 단 하나의 '구원'이다. 심리적 불안이라는 '벌'에 시달리는 그를 자수하여 광명찾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의 옥바라지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연극적 요소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희곡을 읽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이 발생하는 장소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노란 하숙방', 마르멜라도프의 집, 소냐의 집 등. 그리고 등장인물 간 대화가 뛰어나고 매력적이다. 주인공의 심리묘사는 독백에 해당할 것이다. 연극으로 각색해도 무척 좋은 작품이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해봤다.

 

새로운 고골에서 대문호 도스또예프스끼로

 

'죄와 벌'은 작가의 5대 장편 중 첫 작품이다(해설에서는 '5막짜리 비극의 제1막'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작가와 작품 모두에게 불멸의 이름을 허락해 주었다. 5막에 해당하는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과 어느 것이 더 걸작인가 하는 논쟁은 후세의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던져진 떡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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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예술가의 초상
에밀 졸라 지음, 권유현 옮김 / 일빛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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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의 자연주의는 어느 광고 카피처럼 '과학'이다. 현실에 대한 현미경적 관찰을 통해 '날 것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그의 성향이다.

 

'루공-마카르 총서'의 열 네번째인 '작품'은 그의 이러한 생각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이미 상도즈의 입으로 그의 '루공-마카르 총서'를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것이 그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점을 뚜렷이 하고 있다. 또 마지막 상도즈와 봉그랑의 대화에서 낭만주의에 대한 회의와 과학이 바탕되는 근대를 향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작품'에는 그의 자연주의 작가적 요소가 풍부하다. 일단 주인공들이 불쌍하다. 끌로드 랑티에는 운좋게 거부를 만나 자신의 꿈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어머니 제르베즈처럼 비참한 생활을 이어간다. 아무도 그의 그림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살롱에서는 번번히 낙선한다. 끌로드는 그러한 세상의 냉대에 낙심하지만, 미친 듯이 그림, 오직 그림에만 몰두한다.

 

끌로드의 크리스틴의 누드화를 그리던 중 그녀와 사랑에 빠져 마침내 그와 결혼한다. 그러나 그는 점점 자신의 그림에만 끌려 그녀를 소홀히 하게 된다. 크리스틴은 끌로드가 자신보다 자신을 그린 그림을 더 사랑한다며 좌절한다. 자신을 그림이 연적이 된 것이다. 끌로드는 한 술 더 떠 대두증 증세를 보이다 죽은 자신의 아이의 시신을 그리는 엽기적인 행각마저 벌인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애초 의도와 멀어진 미완성작을 바라보며 목을 멘다.

 

'작품'은 또한 미술이라는 양식에서 작가의 신념인 '과학'을 찾으려 했다. 인상파 화가들이 그림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빛'이다. 빛의 각도에 따른 사물의 변화, 보색이론 등 그림을 과학적으로 그리려는 당시 화가들의 노력이 돋보인다. 이는 낭만주의를 털어내고 근대로 향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강하게 표출된 것이다.

 

흥미롭게도, 졸라는 모차르트, 베토벤, 바그너 등 대한 자신의 생각도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전달하고 있다. 그는 비단 미술 뿐 아니라 음악까지 깊은 관심을 보인 작가였던 것이다.

 

어쨌거나, '작품'은 '비참하다'는 면에서 작가의 다른 소설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인공의 비참한 생활, 그리고 종국에 비극적인 결말 등 여전히 그는 독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졸라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진실을 가리는 것을 매우 싫어한 사람이다. 마치 사회고발을 하듯 프랑스 제2제정기의 여러 측면을 그린 그의 다른 작품이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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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을 표현하지 않는 예술이 있단 말인가? 여자 모델을 앞에 세워두고, 자기가 느끼는 대로 그리는 것이 예술이 아니겠는가? 홍당무 한 단, 그래 홍당무 한 단이면 어떤가! 직접 관찰하고,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개인적인 필치로 단순하게 그린 홍당무 한 단이 항상 일정한 틀에 맞추어 제작되는 잎담배 색깔을 한 파리 미술학교의 그림 따위보다 낫지 않은가? 독창적으로 그려진 한낱 홍당무가 혁명을 잉태할 수도 있다.

- 61쪽

 

"...이제 필요한 것은 태양인 것 같아. 실내가 아닌 야외의 대기. 그래서 밝고 젊은 그림, 진짜 빛 속에서 움직이는 사물과 사람들이 필요할지도 몰라... 그런 것이 우리가 그려야 할 그림일 거야. 우리 시대에 우리의 눈이 바라보고 만들어내야 하는 그림은 그런 것이어야 할 것 같아."

- 65쪽

 

"아! 인생! 인생이여! 그것을 느끼는 것, 그리고 그것을 현실로 되돌려 놓는 것, 그것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 거기에서 영원하면서도 변해가는 진실한 아름다움만을 보는 것, 그것을 거세하면서 고상하게 만들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피하는 것, 소위 추함이라는 것도 오직 여러 특성들 중의 두드러진 현상임을 이해하는 것, 모든 것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인간을 만드는 것, 그것이 신이 되는 유일한 길이야!"

- 134쪽

 

"나는 지금까지 자네들에게 여러 번 말해왔지. 언제나 데뷔할 때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그리고 기쁨은 저 산꼭대기에 도달할 때 있는 것이 아니고, 올라가는 것 자체, 앞뒤 생각 없이 오르는 데에 있다고."

- 301쪽

 

아내라는 것이 사랑하는 여자의 정열을 쇠약하게 만들고, 이 결혼이라는 형식이 사랑의 감정을 죽여버린 것 같았다.

- 378쪽

 

"... 비난은 건강에 좋언 것이야. 인기가 없는 것은 사람을 튼튼하게 하는 학교란 말야. 바보들의 조소 이상으로 사람을 유연하고 강하게 해주는 것은 없거든. 한 작품에 자기의 전 생애를 바쳤다고 말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해. 즉, 즉각적인 정당한 보상, 성실한 평가 따위는 전혀 기대하지 않고, 그 어떤 기대도 없이, 오직 피부 아래에서 심장이 뛰듯이 아무런 욕심없이 일을 해왔다고 말할 수 있으면 족한 거야. 그러면 언젠가는 세상의 인정을 받으리라는 환상으로 자신을 위로하면서 죽게 되는 것이지..."

- 432쪽

 

"자네 혹시 이런 생각 해본 적 있어? 어쩌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공정한 심판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야. 인간이란 현재 모욕을 받고, 인정받지 못해도, 다가올 공정한 미래를 믿기 때문에 위로받는 법인데. 마치 신앙심 깊은 사람이 모든 사람이 공정한 보상을 받는 내세를 굳게 믿음으로써 현재의 추악함을 견디듯이 말이야."

- 522쪽

 

"...우리 세대는 뱃속까지 낭만주의에 젖어 있어서 아직도 그것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들이 아무리 우리의 몸을 씻어보아도, 강렬한 현실 속에 몸을 담아보아도 얼룩은 끈질기게 남아 있고, 세상의 모든 세척제를 다 써보아도 그 냄새는 없어지지 않을 거에요."

- 585쪽

 

"빛에 대한 새로운 견해, 과학적인 분석으로까지 밀고 나간 진실에의 열정, 그토록 독창적으로 시작된 혁신운동이 우물쭈물하다가 손재주 좋은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어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을 잃고 만 것에 화가 나지 않으세요? 이 모두가 목표 달성에 필요한 인간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 587쪽

 

"자, 일하러 가시죠"

- 5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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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호세 무뇨스 그림 / 책세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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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나에게는, 버트런드 러셀 자서전과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 이은 역대급 첫 문장이다. 이 작품의 대한 리뷰의 상당수가 나처럼 이 첫 문장으로 시작하지 않을까. 첫 문장이 내용 전체를 암시하는 작품이 종종 있다. 까뮈의 이방인은 그 절정이다.

 

사차원적 인간. 모든 것에 무관심한 인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인간. 그런 인간을 까뮈는 '이방인'이라고 불렀다. 이방인 '뫼르소'는 그렇게 주변 사람들과 일정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점차 소원해져 간다.

 

사건 전개방식은 다소 충격적이다. 엄마가 죽었다.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친구를 만나 이야기 하고, 장례식에 참석한다. 다시 친구와 만남. 그리고 살인. 그리고 재판. 그 재판 결과. 전혀 관계 없을 것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이 짧은 중편에서 모두 연결된다. 작가는 일상적인, 소소한 것들을 점진적으로 큰 이슈로 발전시켰다. 이 점이 충격적이었다.  

 

흔히, '이방인'에는 '부조리'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까뮈가 말하는 부조리가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작품에서는 한 번의 언급이 있을 뿐이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 137쪽

 

내가 주목한 점은 '이방인'에 나온 사형제도에 대한 작가의 시각인데, 뭔가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아 그 진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의 작품 중 '단두대에 대한 고찰'이라는 것이 있음을 알았는데, 그걸 읽으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한다.

 

사형 집행보다 더 중대한 일은 없으며, 요컨대 그것이야말로 사람에게는 참으로 흥미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어째서 그때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일까!

- 128쪽

 

'이방인'의 스타일처럼, 무관심한 듯한 어투의 짤막짤막 문장으로 리뷰를 써봤다. 원체 쉽지 않은 문장에 이런 식으로 리뷰를 쓰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이방인'은 한 번 읽은 것만으로 내용을 알 수 없도록 씌어진 것 같다. 그 껍질을 벗겨내려면 그의 다른 작품도 함께 읽어봐야 할 듯하다.

 

일러스트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이자면, 그래픽노블의 거장의 작품이라 하지만 일본만화 그림에 익숙한 나에게 이해하기 좀 어려웠다. 작품을 읽는 이해를 돕고자 이걸 선택하긴 했는데, 그것과는 별 관계 없다. 글씨가 작아 읽기 오히려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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