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5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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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내가 목로주점”, “제르미날”, “여인들의 행복백화점”, “작품”, “나나”, “인간짐승에 이어 일곱 번째로 읽은 에밀졸라의 루공-마카르 작품이다. 2제정 시대 테마별로 시대상을 날카롭게, 날것 그대로, 인간의 가장 밑바닥 본성을 파헤친 그가, 이번에는 돈과 증권시장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세 가지 점에서 대비를 보이면서 자신의의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첫째, 가톨릭과 유대교의 대립이다. 역자의 해제에 따르면 이는 19세기 말에 실제로 있었던 가톨릭 은행과 유대계 은행의 대결을 모티브로 그렸다고 한다. 주인공 사카르는 가톨릭계 은행가로 성장한다. 그는 유대인 은행가로서 이미 엄청난 부를 축적한 군데르만을 경멸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순식간에 그와 맞먹는 부를 만들어낸다(그리고 추락한다). 부의 축적방식에서도 약간 차이를 보이는데 군데르만이 전형적인 (샤일록 같은) 수전노 고리대금업으로 차근차근 성장했다면, 사카르는 증권시장을 만들고 주위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면서 삽시간에 거부가 된다. 그러나 딱 성장한 속도만큼 추락한다.

둘째, 부의 축적에 대한 선악의 관점이다. 사카르는 빠른 성장을 추구한다. 돈이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이라 믿으며, 돈이 없어지면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지극히 현실주의자이다. 그러나 그의 동료이자 한때 연인관계였으면서, 독실한 가톨릭교도인 카롤린 부인은 그것이 옳지 않다고 한다. 그녀는 부의 급격한 축재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작품은 지극한 현실주의의 패배로 끝을 맺고, 카롤린 부인은 사카르가 문제가 아니라 돈이 문제라고 결론을 내린다. 상당히 알쏭달쏭한 결론이긴 하지만,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다. 역자가 해제에서 밝힌 바와 같이, 본디 교환의 수단이었던 돈은,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목적으로 변질되었다. 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장경제라는 제도가 한 사람을 입지전적인 인물에서 죄수로 추락시킨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이따금씩 등장하는 사기꾼 투자자(이희진 등)의 문제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미 100여년 전에 이러한 문제의식을 짚었다는 점에서, 에밀졸라의 관점을 시대를 앞서가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셋째, 주인공 사카르가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인물로서 그 성장과 몰락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대하여, 곁다리 인물로서 시지스몽의 입을 빌려 이상적이긴 하지만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공산주의의 모습을 제시한다. 사카르에 대비되는 시지스몽은 모두가 평등하고 함꼐 사는 세상을 역설하는 몽상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세상은 한 백년 후인 지금은 무수한 인명을 앗아간 실패한 실험이 되었으며 천년 후에도 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작가는 시지스몽을 친형의 돌봄이 없으면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나약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끝내 아무런 역할도 없이 말만 하다가 죽음에 이른다. 왜인지 카를 마르크스의 일생과 닮았다. 어쩌면 작가는 자본의 축적을 향해 무한질주를 하는 당대 프랑스 사회에 대한 경종으로서 시지스몽을 등장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러시아 혁명이 극단적으로 성장하던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 노동자의 복지를 가져온 것을 예견한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이 작품에서 그 간 알려졌던 에밀 졸라의 행적과 두 가지 점에서 모순을 보인다. 그는 사회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주의자를 나약한 몽상가로 묘사했다. 사회주의의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일까. 또한 유대인인 드레퓌스를 지지하다 결국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에서 그는 유대인=샤일록과 등치시키는 등 돈에 집착하는 전형적인 안티히어로로 그리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역자 해제에서 의 출간과 드레퓌스 사건 사이에는 7년 정도의 간극이 있으며, ‘의 출간 당시 서구사회가 유대인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에밀 졸라도 자유롭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덧붙여, 몇가지 점에서 이 작품은 에밀졸라의 다른 작품들과 차별성을 갖는데, ‘루공-마카르작품들이 프랑스 제2제정 시대를 그리고 있는데, 여기서는 잠깐이나마 레바논 등 아시아의 이국적 풍경들을 묘사하고 있다. 또 그의 작품에서 사람은 모두 이기적인 동물로 그려지고 도덕적 양심을 지닌 인물은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카롤린 부인과 같이 어느 정도 금욕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거대 출판사들이 문학적집에 관심을 가지면서 에밀 졸라의 작품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도 우리나라 초역이다. 20권에 달하는 루공-마카르를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말로 모두 읽게 되는 날이 있게 되기를 바란다.

 

2018.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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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크리스토 백작 1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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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일이라든가, 다소 무례한 짓이라든가, 내가 한 말이 거짓이라고 했다든가, 조그마한 모욕을 당했다든가 하는 경우라면 난 위험에 길이 들기도 했고 또 여러모로 몸을 단련해서 솜씨도 있느니만큼, 안심하고 상대방을 죽일 자신을 가지겠죠. 아, 그런 정도의 일쯤이라면 나도 결투로 대결을 할 겁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두고 깊숙이 파고드는 영원 같은 고통을 준 사람이라면, 가능한 한 내가 받은 고통과 비슷한 방식으로 복수를 할 생각입니다..."         - 2권, 283쪽

 

 

2011년 경부터 꽤 많은 고전문학을 읽었지만 '복수'를 주제로 한 것은 이것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아킬레우스가 절친 파트로클레스의 죽음에 전장에 복귀하여 헥토르를 죽이고 그 시신을 모욕함으로써 복수를 완성한 '일리아스'도 그 핵심 주제는 '복수'가 아닌 '분노'였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에드몽 당테스의 14년 간의 한 맺힌 자의 복수라는 감정이 5권이라는 방대한 작품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복수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일반적으로, 삼국지나 수호전에서 말하는 동양식의 복수라 하면 쳐들어가서 칼을 휘둘러 몰살시키는 수법을 쓴다. 그러나 백작은 기다린다. 그들이 부를 쌓고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 행복의 정점에 이를 때까지 기다린다. 복수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무려 9년을 그렇게 기다렸다.

 

"하느님!" 하고 백작은 중얼거렸다. "당신의 복수에는 종종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다 더 완전해지기 위해서이리라고 믿습니다."   - 4권, 331쪽

 

그리고 그는 파리 사교계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스스로를 동양에 기나긴 여행으로 다녀온,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설정했다. 돈을 물쓰듯 써서 4인방의 이목을 사로잡았으며, 그들의 신뢰를 얻어냈다. 20여년을 복수귀로 살았던 그였으나, 항상 담대하고 태연하게 행동한다. 그리고 마침내 복수를 시작한다. 스스로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면서, 미미한 존재를 서서히 쥐구멍으로 몰아가듯, 그렇게 그의 복수는 진행된다.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자들은 공개적으로 명예가 훼손되고 가족이 파탄나고 맞아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미쳤다. 그러나 하나하나 복수를 실현해 가면서, 당테스는 과연 속이 편안해 졌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한명은, 죽음 직전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자 용서를 해주었던 것일게다.

 

"나는 당신 때문에 신세를 망친 사람이오. 나는 당신이 행운을 잡기 위해 밟고 올라섰던 사람 중에 하나요. 나는 당신 때문에 아버님을 굶주려 돌아가시게 했고, 또 당신을 굶겨 죽이려다가 바로 지금 당신을 용서해 주는 사람이오. 그 까닭은 나 자신 또한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요."  - 5권, 424쪽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만큼 등장인물들의 대사, 행동 하나하나가 연극을 염두에 둔 느낌이다. 역자 후기에야 알게됐지만, 뒤마는 희곡작가로 출발해서 큰 성공을 거둔 후 소설에 입문했다고 하니 그 역량이 제대로 발휘된 것이다.

 

반면에 (역시 연극적인 요소 때문인지) 치열한 심리묘사는 아쉽다.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레 미제라블'에서, 마들렌 씨는 자신 대신에 장발장으로 잡혀가는 이에 대하여 수십페이지에 걸쳐 고뇌한다. 그가 법정으로 가기까지 많은 사건이 있으며 그때마다 그는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죄와 벌에서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의 범죄에 대하여 주변인들의 반응에 끊임없이 내적으로 반응한다. 그런데 당테스에게는 그런 고민의 여지가 전혀 없다. 그는 말 그대로 신의 대리인으로서, 자신의 행위는 정의의 실현이라는 신의 섭리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산'이라는 뜻의 '몬테크리스토'란 이름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아마도 그러한 치열한 고민이 없었으리라. 이러한 캐릭터를 분명히 드러내는 부분이, 역설적으로 단 한가지 그가 고민했던 지점에서 알 수 있다. 알베르와의 결투에서 아들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메르세데스의 간청 때이다. 백작은 그녀의 요청을 수락하면서 진정 복수귀가 되지 못한 것을 한탄한다.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하고 백작은 생각했다. "복수를 결심한 날, 왜 내가 심장을 뽑아버리지 못했단 말인가!"  - 4권, 440쪽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참 재미있고 읽기 쉽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소설 특유의 철학적인 고뇌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방대하게 이끈 것은 역시 작가의 역량이다. 천년이 넘도록 재생산될 문화상품으로 남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내가 이 책을 처음으로 꺼내 본 것은 10여년 전 도서관에서였다. 어릴적 명작동화로 재미있게 읽은 것이 기억났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 펼쳤을 때 인상은 그다지 좋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오타작렬. 알고보니 지금도 오타로 악명높은 출판사였던 것이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 문학에 흠뻑 취해서 사서 읽게 되었는데, 24쇄쯤 되니 그런 오타는 많이 잡힌 것 같다. 아니, 오타에 신경쓸 겨를 없이 이야기 자체의 흡입력이 워낙 강해 워낙 바쁜 중에도 5권을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알렉상드르 뒤마 전공자가 번역한 다른 번역본이 나왔으면 좋겠다. 몇몇 문장에서는 일본냄새가 확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표기를, 몬테크리스토 백작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인물 그림을 붙여 놓았다. 비슷한 시기 사교계의 인물 그림 같은데, 적절한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레 미제라블' 이후 간만게 기나긴 소설을 즐겁게 완독하게 되어 기쁘기 그지 없다. '삼총사'와 '검은 튤립'도 곧 즐거운 마음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너희들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수단밖엔 못 가지고 있지만, 우리처럼 권력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헌신으로 얻을 수 있는 수단이라는 걸 가지고 있단 말이다."
"헌신이라고요?" 빌포르가 웃으며 물었다.
"그렇다, 헌신이다. 희망으로 불타는 야심을 점잖은 말로 그렇게 부르는 거다." - 1권,197쪽

그는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신에게 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에게 하는 기도였다. 신이란 가장 막바지에 구원을 청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주께 기원을 구해야 할 불행한 사람은 언제나 다른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야 비로소 주에게서 희망을 발견하는 법이다. - 1권,239쪽

"... 도대체 백작은 어느 나라 사람이지? 어느 나라 말을 하고 있느냔 말이야? 생활은 또 어떻게 하고 있지? 그 막대한 재산은 다 어디서 나오느냔 말일세. 그 사람을 지금과 같은 그 음산하고 사람을 싫어하는 인간으로 만들어 놓은, 아무도 모르는 이상한 그 사람의 반평생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 2권, 371쪽

"한 번 목숨을 내던져 본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됩니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은 이미 자기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단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런 결심을 한 사람은 그때부터 당장 힘이 열 배가 되고, 자기 세계가 확 넓어진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법입니다." - 3권, 45쪽

"눈만 감으면 어렸을 때 본 모든 것들이 눈에 선해 와요. 우리에겐 두 가지 눈이 있죠, 하나는 육체의 눈, 또 하나는 마음의 눈. 육체의 눈은 가끔 잊어버리는 수가 있지만 마음의 눈은 항상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지요." - 4권, 194쪽

정신적인 상처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완전히 아물지 않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것은 늘 고통이 사라지지 않으며, 누군가의 손이 닿는 날엔 당장에 피가 새어나오도록 가슴속에서 항상 생생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셈이다. - 4권, 378쪽

오랜 세월 동안 고통 받은 기쁨이란, 햇빛에 말라버린 땅 위에 내리는 이슬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가슴과 대지는 그들에게 내리는 비를 빨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는 법이다. 며칠째 백작은 오래전부터 믿어지지 않던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두 사람의 메르세데스가 있다는 것과 자기가 아직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5권, 25쪽

"... 이 세상에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상태와 다른 상태와의 비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불행을 경험한 자만이 가장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막시밀리앙 씨, 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기 위해서는 한번 죽으려고 해보든 것도 필요합니다." - 5권, 449쪽

"백작님께서 그러시지 않았어요? 인간의 지혜는 이 두 마디 속에 있다고요.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 5권, 4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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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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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관람했던 상연작 중에는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가 있었다. 이 오페라는 주인공 음유시인 만리코와 루나 백작은 어릴 적 헤어진 형제로서 레오노라를 사랑하는 연적인 하는 구도로 되어 있다. 2014년작의 특이한 점은 형인 루나 백작 역을 칠순을 훌쩍 넘긴 플라시도 도밍고가 맡았다는 점이었다. 이미 테너에서 바리톤으로 변신했지만 나이를 뛰어넘은 그의 연기력은 충분히 박수를 보낼 만 했다.

 

뜬금 없이 오페라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여자친구의 짧은 감상평 때문이다. 여자친구는 늙은 플라시도 도밍고를 형으로 출연시킨 연출의 의도가, '어린 여자를 갖고 싶어하는 남자의 심리와 질투를 묘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다. 이 작품은 두 남녀가 주고 받은 서간문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편지마다 '사랑하는 나의...'로 시작하지만, 처음부터 작가가 밝힌 두 남녀의 차이는 거의 30살 정도 된다. 그러면서 남자는 말한다. 내 감정을 오해하지 말라고, 그것은 부성애와 같은 것이라고.

 

그런데 젊은 여자가 남자만큼 자주는 아니더라도 성의껏 답을 주니까 남자는 몸이 달았나보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격정을 담아 편지를 보낸다. 자신의 문학적 소양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해서, 여자가 추천한 고골의 '외투'를 읽어보더니 흠을 잡는다.

 

그러나, 남자의 이러한 감정이 부성애가 아니라는 실마리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여자의 편지 중 다음 문장이다.

 

"제가 어쩌다 조심성 없이 어떤 사물에 대해 언급이라도 하면 당신은 그 즉시로 그것을 사버리시는군요."  - 17쪽

 

...연애 고수들의 방법이다.

 

어쨌거나, 둘은 계속 돈이 없다, 나는 불행하다 이런 넋두리를 늘어 놓다가 결국 여자가 떠난다. 남자는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 받고 싶어하지만, 외로운 외침일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는 결국 (그 끝이야 어찌 되든) 돈 있는 남자를 찾아 떠난다는 진리? 늙은 남자는 찌질하게 그 여자가 거의 자기에게로 넘어온 것으로 생각했나보다.

 

 

창문 아래 마당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고 있건만, 저는 웬 향기 타령이었을까요! 아마 제가 어리석어서 그냥 그렇게 느껴졌던가 봅니다. 가끔은 누구나 그렇게 자기 느낌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바보 같은 얘기를 할 때가 있잖아요. 그건 바로 심장이 지나치게, 어리석으리 만치 뜨거워서 생기는 일이죠. - 21쪽

나는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고 있으니..... 추억은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항상 괴로운 것이다. 최소한 나한테는 그렇다. 그러나 그 괴로움은 또 달착지근한 것이다. 마치 타는 듯한 하루가 지나고 밤이 되면 이슬피 폭염에 바싹 마른 꽃에 신선함을 주어 소생시키듯이, 추억은 괴롭고 아프고 지치고 슬픈 내 가슴에 새로운 힘을 주어 소생시키는 것이다. - 64쪽

사실 전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한곳에 정착해서 살고 싶어요. 슬픔을 끌어안고 살아도 익숙한 곳에서 사는 게 아무래도 더 낫겠죠. - 98쪽

불행은 전염병입니다.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 전염되지 않도록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옛날에 검소하고 조용하게 사셨을 때는 겪어 보지도 못했을 불행을 이제 제가 당신께 가져다 드리고 말았군요. - 122쪽

누가 책에 뭐라고 쓰든 엉터리 3류 작가 족속들이 뭐라고 끼적이든 가난한 사람의 인생은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왜 이전하고 같을 수밖에 없느냐고요? 3류 작가들의 말대로라면, 가난한 사람이 가진 것은 모두 옷을 뒤집어 보이듯 세상에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죠. - 129쪽

가난한 사람에게 비어져 나온 발가락과 다 해진 팔꿈치는, 예를 들자면 당신에게 처녀성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커다란 부끄러움이란 말이죠. - 131쪽

제 목을 조이는 것은 사람들이에요, 그렇죠? 제 목을 조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느껴지는 불안감, 사람들의 수군거림, 야릇한 미소, 비웃음입니다. - 153쪽

당신만 생각하면 제 아픈 상처에 약을 바르듯 편안해집니다. 비록 당신 때문에 괴롭기는 합니다만, 당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 마저도 저는 즐겁답니다. -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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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0
에밀 졸라 지음, 김치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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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목로주점'으로 시작하여, 제르베즈와 그의 세 자녀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을 모두 읽었다(목로주점, 작품, 제르미날, 나나). '목로주점'을 읽은 것이 2012년 11월이니, 중간에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이나 '인간짐승' 같은 다른 작품들도 읽었다고는 하나 참 오래 걸린 셈이다.

 

역시, 에밀졸라. 현실에 대한 치밀하고도 가혹하리라 할 만큼 현실에 대한 묘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만큼이나 현실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쓰는 작가가 현대에도 과연 얼마나 있을까? 

 

뭇 남성들이 한 매력적인 여성을 향해 질주한다. 가난한 그녀는 그 남성들에게 쾌락을 선사하고 그들의 재력을 사치에 이용하여 파멸에 빠뜨린다. 단지 재정적인 파멸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엄청난 타격을 주는데, 백작을 네 발로 걷게 하는 등 사디즘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어린 소년들조차 그녀에게 접근하여 파멸하고 만다.

 

다른 작품만큼의 재미는 없었지만, 역시 졸라는 졸라였다. 그의 루공-마까르 총서가 어서 빨리 번역되기를 기대하며...

"잘 알겠지만 저런 사람들은 이제 나를 놀라게 하지 못해요... 나는 그들을 너무도 잘 알아요... 한 꺼풀 벗겨놓고 봐야 해요... 난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아요! 존경은 끝났어요!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나 모두 더러운 놈들이고 한패거리에요... 이게 그들이 나를 귀찮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예요!" - 450쪽

이 때가 나나의 절정기였다. 그녀는 파리를 두 배로 더 찬란하게 빛냈다. 그녀는 타락의 지평선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방약무인하게 사치를 부리고 돈에 대한 경멸을 보이며 도시 전체를 지배했다. 그로 인해 엄청난 재산을 공개적으로 탕진했다. 그녀의 저택에는 대장간의 불꽃 같은 것이 존재했다. 거기서 끝없는 욕망이 불타고 있었다. 그녀의 하찮은 입김 한 번에 황금이 재로 변했고, 바람이 시시때때로 그것을 쓸어냈다. 그 누구도 이런 미친 듯한 낭비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그 저택은 마치 깊은 구렁 속에 세워진 것 같았다. 무수한 남자들이 재산과 육체와 이름까지 그 속에 빠뜨렸지만 티끌만한 흔적 하나 남지 않았다. - 520쪽

"빌어먹을!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이 사회가 잘못돼먹었지. 그 짓거리를 요구하는 건 남자들인데 욕은 여자들이 먹는단 말이에요..." - 5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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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짐승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5
에밀 졸라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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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13~9.16

 

에밀 졸라의 작품은 지난해 말 읽었던 '작품' 이후 간만이다.

 

자크 랑티에가 나온다. '목로주점'의 제르베즈의 세 아들 중, '작품'에서는 큰 아들인 끌로드, '제르미날'에서 막내인 에티엔에 이어 둘째 아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거기에 막내딸인 나나의 생을 다룬 '나나'만 읽으면 그의 자식들의 일대기를 모두 읽게 되는 셈이다.

 

'인간짐승'은 참 잔혹한 작품이다. 여기에 나오는 죽음들이 잔혹하다. 제르베즈처럼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읽는 것도 고통이지만, 여기서는 칼에 목을 맞아죽고, 기관차에 치어 죽는 등 참 독하게도 죽는다. 사람 뿐 아니라 말들도 다리가 잘려나가 버둥대다 죽어간다. 작가는 이것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데, 그가 그려낸 이 참상이 진실된 세계의 모습에 더 가까운 것을. 흔히 잔인한 영화의 잔인한 장면을 보면서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라고 하는데, 실상은 이것이 세계에 더 가깝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짐승'에서 묘사된 비참한 죽음들은, 특히 작가가 살던 19세기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짐승'은 살인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다룬다. 먼 옛날부터, 아주 머나면 옛날부터 인간은 살인이라는 본성을 갖고 있다. '교육'을 통해, '문화'를 통해, '법과 제도'를 통해 그 본능을 억제하도록 강요당하고 있지만, 자크의 경우처럼 이유없이 살인욕구가 유독 강하게 발현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성적인 충동과 맞물려. 살인 본능이 태초에 기원을 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이러한 사람은 요즘 세상에도 뉴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교육을 잘못 받은 것인지, 만화나 비디오게임이 그들의 심성을 망가뜨린 것인지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졸라 식으로라면 이들은 태초로부터의 인간 본성에 충실한 인간들인 것이다. 짐승의 본성이 좀 더 강하게 나타나는 인간들인 것이다.

 

또 한가지, 이 작품은'철도'라는 당대의 소재를 다룬다. 세탁소(목로주점), 백화점(여인들의 행복백화점), 탄광(제르미날), 예술(작품) 등 그는 제2제정 시기에 등장하는 사회현상에 대해서 예리하게 관찰하여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번에는 철도다. 여기서 철도는 여러 인간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삼키는 존재이다. 많은 사람이 인간의 살인본능의 실현도구로서의 철도에 희생된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막판에는 급기야 '괴물'로 표현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과연 그것 뿐일까? 철도는 '돌이킬 수 없는 인류문명의 진보'를 상징하고 있지 않을까?

 

기관차가 도중에 산산조각내버린 희생자들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기관차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로 인해 뿌려진 피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 있지 않은가?

- 571쪽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점은, 진실에의 강한 열망을 가진 에밀 졸라의 태도이다. 조금 역설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진실을 밝히느냐 마느냐의 열쇠를 쥔 카미라모트 사무총장은 사건을 잘못된 방향으로 풀어가고 있는 예심판사인 드니제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진실이 말을 하는 순간부터는 그 진실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는 법이오. 개개인의 이익도, 심지어 국가 이성이라고 하는 것도 말이오... 계속 정진하시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신경쓰지 말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주시오."

- 546쪽

 

이 문장이 문득 나를 섬찟하게 했다. 다음의 문장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그 무엇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 에밀졸라, '전진하는 진실', 박명숙 역, 은행나무

 

드레퓌스 사건에 즈음한 졸라의 외침이다. 앞선 말이 마치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그의 변론과 흡사하지 않은가? 그런데 시기적으로 '인간짐승'은 드레퓌스 사건에 앞서 있다.(드레퓌스가 유죄판결을 받은 때는 1894년이고,  '나는 고발한다'는 논설문 기고는 1898년의 일이다) 그는 국가의 집단 최면에 진실이 가려지는 것을 묵과할 수 없는, 평소의 소신과 행동이 일치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졸라와 그의 자연주의 작품을은 너무도 생생하고, 외면하고 싶을만치 잔인한 인간성을 묘사하고 있다. 박찬호나 봉준호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읽기가 매우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지금의 세계를 부정하려는 자기기만이기에 나는 내일도 그의 다른 작품을 읽으련다.

에밀 졸라, 인간짐승, 드레퓌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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