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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과 싸는 것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2년 3월
평점 :
이 책은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희귀질환을 겪으면서 저자의 삶 전반에 걸쳐 일어난 변화들에 대한 것으로 오직
경험한 자만이 알고, 느낄 수 있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이 병은 희귀질환 중에서도 ‘지정난병’에 해당한다. 이는
인구의 약 0.1퍼센트에 해당한다는 것이며, 이렇게
극소수만이 겪는 병에 걸린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더 많은 고통과 절망이 동반된다는 것을 알아챌 필요가 있다.
표면적인
부분만 보더라도 환자 수가 없다는 것은 치료를 위한 통계 데이터가 풍부하지 않음을 의미하며, 이들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이가 이 세상에 아주 극소수만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타인이
공감해줄 수 없기 때문에 고독은 필연적이다.
저자는 병을 통해 일상
속 작은 것들에게서 행복을 느끼게 되었고, 별 것 아닌 것들로부터 민감하게 감사를 느끼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사실 내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반증이라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참 역설적이다. 큰 행복을 누리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면 절대 느낄 수 없는 행복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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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맛 본 환상적인 음식과 눈물 날 정도로 감동적인 일몰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야
어떤 표현으로 전달할 수 있겠는가? 어찌 보면 아픔도 마찬가지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자가 단지 상상으로 가늠해서 그 입장을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오만한 발상일까?
병에 걸린 당사자는 건강한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들을 체험한다. 그런데 주위의 건강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추측하여 다 안다고 생각하며 아픈 사람들에게
대응한다면, 비참한 일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노골적이면서도
직관적인 책의 제목을 보고 멋대로 추측했던 나의 예상은 책 장을 넘기면서 민망할 만큼 빗나갔음 깨닫게 되었고, 절반쯤
읽었을 때 다시 한번 예상했던 책의 결론 역시 책 후반부에 다다르자 완벽하게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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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며 내 머릿속에는 '당신의
상상력으로 재단한 극히 일부분의 모습을 가지고 함부로 누군가를 판단하지 말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라는
메세지가 선명하게 각인된 듯 하다.
당신의 행운은 당신과 당신 친구의 것,
당신의 재난은 당신만의 것
-아프리카의 속담-
누구도 문병을 오지 않는다. 그러면 고통이 문병을 온다.
-데라야마 슈지가 보낸 편지 중에서-
경험이란 통절하면 통절할수록 명료하게 표현하기 어려워지는 법이다.
–해럴드 핀터-
잘 풀린 사람은 항상 결과를 자신의 ‘노력’과 연결한다. 하지만 잘 풀리지 않은 입장에서 보면 노력과 상관없는 일이 수없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면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라고 사회적으로 풍족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말할 때가 있다. ‘나도 고생 끝에 여기까지 왔다.’라는 식으로. 노력은 훌륭한 것이지만, 잘 풀리지 않은 일을 모두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노력은 많은 가능성을 숨기고 있는 만큼 동시에 무서운 점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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