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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년2월18일
오늘의정진: 降龍鉢解虎錫 항룡발해호석 /용을 항복받은 발우와 범 싸움 말린 석장이여
- 100일 정진, 55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쉰 네번 째 구절은
<佛性戒珠心地印 불성계주심지인 /부처 성품계의 구슬은 심지인이고
霧露雲霞體上衣 무로운하체상의/ 안개, 이슬, 구름, 노을은 몸 위의 옷이로다> 였다.
부처의 성품이 근본이요, 무위 세계라면, 유위 세계는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고정됨이 없이 변화하며 바쁘게 돌아간다.
마치 옷을 바꿔 입는 것처럼, 한가지 고정된 상태로 지속 되지 않는다.
무위 세계와 유위 세계가 서로 명백하지만 또한 함께 어울리며 돌아간다.
 
오늘은 쉰 다섯번 째 구절
降龍鉢解虎錫 (항복 항, 용 룡, 발우 본, 풀 해, 범 호, 주석 석 )
항룡발해호석 /용을 항복받은 발우와 범 싸움 말린 석장이여
兩鈷金環鳴歷歷 (둘 양, 다리미 고, 쇠 금, 구슬 환, 울릴 명, 지낼 력, 지낼 력 )
양고금환명역력/ 양쪽 쇠고리는 역력히 울리는 구나
 
발우와 석장은 스님들이 사용하는 도구이다.
발우는 공양할 때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예전 스님들은 탁발을 할 때는 발우를 들고 다니셨다.
석장은 스님들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로 머리부분은 청동이나 구리로 장신구가 달려 있다.
석장의 장신구는 쇠 방울이나 쇠 고리가 달여 있어 보기에는 화려해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보기 좋은 장신구가 아니라 길에서 미물이나 축생들이 석장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피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석장의 장신구는 미물에 대해 불필요한 살생과 산 짐승들의 위험을 예방하는 목적이 우선이었다.
발우에 담긴 음식은 비단 내 몸을 위해 먹는 것이 아닌 시주자들의 은혜와 공덕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한다.
또한 석장을 짚는  걸음걸음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한다.
이와 같이 수행자에게 발우와 석장은 단지 먹고, 길을 걷는데 필요한 도구가 아니라 수행의 한 방편인 것이다.
하늘의 용과 땅의 범은 서로를 마주 보며 사납게 싸운다.
용호상박(龙虎相搏), 용쟁호투(龙争虎斗)상황이다.
이는 나의 다스려지지 않은 분별과 업식을 의미한다.
발우와 석장은 수행을 의미하므로 수행을 통해 용과 범의 싸움을 말리는 것, 즉 분별과 업식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모든 싸움을 말리고 길을 떠나는 수행자의 석장 소리는 맑게 울려 퍼진다.
 
<일일 소견>
밥을 먹는 것, 길을 가는 것, 수행 아님이 없다.
쌀 한 톨에 깃든 모든 은혜로움에 감사하고, 주장자를 쥐고 한발한발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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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217

오늘의정진: 佛性戒珠心地印 불성계주심지인 /부처 성품계의 구슬은 심지인이고


- 100일 정진, 54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쉰 세번 째 구절은

<江月照松風吹 강월조송풍취 /강엔 달 비치고 소나무 바람 부니

永夜淸宵何所爲 영야청소하소위/ 긴긴 밤 맑은 하늘 무슨 하릴 있는가> 였다.


길고 긴 밤 맑은 하늘

하늘에 떠있는 달은 강물에 비춰지고

스쳐가는 바람에도 소나무는 변함없이 서 있다.

우리는 강에 비치는 달을 보고 하늘에 달이 떠 있음을 안다.

우리는 바람이 불어도 소나무 뿌리는 흔들리지 않음을 안다.

우리의 본성은 강에 비친 달과 같고 뿌리 깊은 소나무와 같다.

참 성품은 늘 밝고 늘 굳건하다.


오늘은 쉰 네번 째 구절

佛性戒珠心地印 (부처 불, 성품 성, 경계 계, 구슬 주, 마음 심, 땅 지, 도장 인 )

불성계주심지인 /부처 성품계의 구슬은 심지인이고

霧露雲霞體上衣 (안개 무, 이슬 로, 구름 운, 노을 하, 몸 체, 윗 상, 옷 의   )

무로운하체상의/ 안개, 이슬, 구름, 노을은 몸 위의 옷이로다.


<조주 스님(趙州 778~897)에게 어떤 수행자가 물었다.

"개에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 없다."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 모두에게 불성이 있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왜 스님께서는 없다고 하십니까?"

"개에게는 분별의 업식이 있기 때문이다.">

무문관(無門關) 1칙에 나오는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狗子無佛性)"라는 내용이다.

이는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로 알려 졌고 옛 부터 수 많은 수행자들이 무자(無字) 화두를 들었다고 전해진다.


조주스님의 개와 불성에 대한 또 다른 일화가 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 있다."

" 만약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면 왜 가죽 속에 있습니까?"

" 그가 알면서도 일부러 범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개에게 불성이 있다고 한다.

조주 스님은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서로 다른 답을 한 것이다.

도대체 개에게 불성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불성이 없는 것인가?

없다면 왜 없다고 했을까?

있다면 왜 있다고 했을까?

무와 유의 뜻이 무엇일까?

이렇게 의심하는 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다.

하지만 화두타파가 되면 의심은 없어지고, 무와 유를 버리게 된다.

마침내 진여불성(眞如佛性)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부처의 성품은 구슬과 같아 마음 속 깊이 뭍혀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현상은 안개, 이슬, 구름, 노을처럼 변화한다.

본질은 변함이 없으나 현상은 변한다.

불성은 현상이 아니다. 본질이다.

불성은 무다.

불성은 유다.

본질은 무도 유도 아니다.

이 가운데 안개 같고, 이슬 같고, 구름 같고, 노을 같은 것은 본질이 아니다.

현상을 쫓지 말고 본질을 파야 한다.


<일일 소견>

심지인(心地印)은 마음 땅에 도장(圖章)을 찍는다는 뜻이다.

도장을 찍으려면 바탕이 단단해야 한다.

이는 다른 말로 깨달음의 도장이다.

바닥이 물렁하거나 울퉁불퉁하면 도장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다.

심지가 굳어야 깨달음의 도장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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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216

오늘의정진: 江月照松風吹 강월조송풍취 /강엔 달 비치고 소나무 바람 부니


- 100일 정진, 53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쉰 두번 째 구절은 

<旣能解此如意珠 기능해차여의주 /이미 이 여의주를 알게 되었으니

自利利他終不竭자리리타종불갈/  나와 남을 이롭게 함에 다함이 없도다> 였다

 

8만 대장경이라 불릴 만큼 방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핵심만 요약한 것이 반야심경이라고 전한다

반야심경에는 지혜 제일이라 불리는 사리불과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 보살이 등장한다.

지혜와 자비는 불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위로는 깨달음을 추구하고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의미의 상구보리하화중생의 입장에서 볼 때 깨달음은 지혜를자비는 중생 구제를 상징한다

지혜와 자비깨달음과 중생 구제 은 모두 같은 의미이다.

 

오늘은 쉰 세번 째 구절

江月照松風吹 (강 강달 월비출 조소나무 송바람 풍부를 취)

강월조송풍취 /강엔 달 비치고 소나무 바람 부니

永夜淸宵何所爲 (길 영밤 야맑을 청밤 소어찌 하바 소할 위   )

영야청소하소위긴긴 밤 맑은 하늘 무슨 하릴 있는가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짜와로 사맛디 아니 할쎄’ 라고 선포하신 세종대왕님 말씀 처럼 중국어는  표음문자(表音文字)인 우리나라 글과 달리 표의문자(表意文字)이다

중국어 글자 한자마다  뜻으로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한시(汉诗)는 의미를 전달하기에 가장 좋은 문학적 표현 방식이 되었다.

특히 당나라 시기의 한시는 가장 많이 쓰였고 수 많은 시인들이 출현했다

한시를 대표하는 이백두보왕유백거이 같은 시인들이 모두 당시기에 살았었다.

그런데 때마침 이시기에 불교의 선종도 함께 발전했다

시와 선시와 깨달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

그래서 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소식을 오도송이라 하여 시로 표현 한 것이다.

증도가의 이번 구절도 자연풍경을 묘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무위즉 함이 없음을 자연 풍경에 빗대어 읊은 것이다.

달 밝은 밤강가에서 할 일 없이 서성이는 마음.

영가스님은 깊어지는 밤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 함이 없는 함이 바로 무위인 것이다.

 

 

<일일 소견>

하늘은 맑고 바람은 훈훈하다어느덧 봄 기운이 살짝 느껴진다.

벌써 겨울이 끝나가나역시 시간은 빠르다.  

결국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오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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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215

오늘의정진: 旣能解此如意珠 기능해차여의주 /이미 이 여의주를 알게 되었으니


- 100일 정진, 52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쉰 한번 째 구절은 

<但得本莫愁末 단득본막수말 /단지 근본만 얻을 뿐 끝은 근심치 말지니

如淨瑠璃含寶月 여정유리함보월마치 깨끗한 유리가 보배달을 머금음과 같도다> 였다

 

<자성이 본래 청정함을 어찌 알았으랴?

자성이 본래 나고 죽음이 없음을 어찌 알았으랴?

자성이 본래 전부 갖추어 졌음을 어찌 알았으랴?

자성이 본래 동요함이 없음을 어찌 알았으랴?

자성이 능히 만법을 만들어 냄을 어찌 알았으랴?>

이는 육조혜능선사(六祖慧能禅师 638713) 의 오도송(悟道颂)으로 전해진다.

즉 혜능선사의 깨달음을 표현한 노래인 것이다.

밤 하늘에 뜬 달이 보름달이 아니라고 해도 그 본래 달이 둥근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러니 우리의 자성(自性)은  또한 그러하니 오직 근본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은 쉰 두번 째 구절

旣能解此如意珠 (이미 기할 능풀 해이를 차같을 여뜻 의구슬 주)

기능해차여의주 /이미 이 여의주를 알게 되었으니

自利利他終不竭 (스스로 자이로울 리이로울 리다를 타끝낼 종아닐 불다할 갈   )

자리리타종불갈/  나와 남을 이롭게 함에 다함이 없도다.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众生).

위로는 보리즉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말이다.

불교 수행의 목적이 깨달음을 얻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중생 구제이다.

중생이 있어야 부처가 있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다.

그러니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다

따라서 깨달음과 중생 구제도 둘이 아니게 된다

이는 깨달음을 얻으신 역대 선지식들께서 하신 말씀이다.

유마거사 또한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라고 했었다.

부처는 위대하고중생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나듯 깨달음도 중생심에서 피어난다.

어떻게 해야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고 이롭게 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이야 말로 깨달음에 이른 마음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보살의 마음이야 말로 자신을 구제하고 세상을 구하는 마음이다.

깨달음은 그 속에 이미 있다

 

<일일 소견>

깨달음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나를 알고 상대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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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214

오늘의정진: 但得本莫愁末 단득본막수말 /단지 근본만 얻을 뿐 끝은 근심치 말지니


- 100일 정진, 51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쉰 번 째 구절은

<爭似無爲實相門  쟁사무위실상문 /다툼이 없는 실상문에

一超直入如來地 일초직입여래지/한 번에 뛰어넘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감과 같도다.> 였다.


기독교에서 최초의 인류가 선악과를 따 먹은 행위를 가르켜 원죄라고 한다.

선악과를 먹은 행위가 나빠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 되었기 때문에 원죄가 된 것이다.

원죄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배반한 마음이였던 것이다.

결국 우리의 죄()는 분별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불교식으로 보면 이는 곧 진리에 대해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킨 것이다.

분별심은 다툼과 분쟁을 불러 일으키는 마음이다.

최초의 인류 이래로 우리는 오늘날 이르기 까지 옳고 그름, 선과 악, ()와 추(), 좋다 와 나쁘다라는 감정을 비롯하여 나와 너, 우리와 그들로 분별 지으며 살아왔다.

결국 수행이란 다툼이 없는 경지로 다시 되돌려 놓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다시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길이요.

그것이 바로 참된 실상문에 이르는 길이다.

분별심만 놓아 버린다면 곧 바로 불국토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쉰 한번 째 구절

但得本莫愁末 (다만 단, 얻을 득, 근본 본, 없을 막, 근심할 수, 끝 말)

단득본막수말 /단지 근본만 얻을 뿐 끝은 근심치 말지니

如淨瑠璃含寶月 (같을 여, 깨끗할 정, 유리 유, 유리 리, 머금을 함, 보배 보, 달 월   )

여정유리함보월/  마치 깨끗한 유리가 보배달을 머금음과 같도다


하늘은 본래 맑고 청정하듯이 우리의 마음도 본래 그와 같다.

때때로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 맑지 못하게 되더라도 걱정할 필요없다.

본래 청정함을 가릴 수는 있어도 그 본체를 털끝하나 건드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본성도 그와 같다.

아무리 나의 마음에 청정함을 가리는 장애물이 있다 하더라도 본체 마음은 하등의 관계가 없다.

마치 깨끗한 유리에 보배달을 머금은 듯, 우리의 참 마음은 그러하다.


<일일 소견>

보이는 것에, 들리는 것에 휩싸이지 말자.

분별하는 마음은 하늘에 낀 먹구름과 같다.

구름 걷히길 기다리면 언젠가 밝고 맑음은 드러난다.

나는 그저 믿고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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