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노트: 826

글 제목:  완벽귀조(完璧歸趙) 트럼프

춘추전국시대는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강대국은 힘으로 약소국을 위협했고, 약소국은 처신과 외교로 살아남아야 했다.
대표적인 고사로 완벽귀조(完璧歸趙) 전해져 온다.

약소국 ()나라에는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고 불리는(오늘날의 )’ 있었다. 강대국인 진나라는 보물을 탐 냈 마침내 자신들의 일부와 바꾸자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조나라는 분명 그것은 명분에 지나지 않고 결국 모두 뺏기게 되리라는 고민에 빠졌다.
옥을 바치면 보물을 잃고, 거절하면 전쟁이었다.

이때 조나라의 재상 인상여(藺相如) 기지를 발휘해 옥을 잠시 진나라에 보내는 척하며 결국 무사히 돌려받았다.
고사에서 나온 말이 바로 ‘완벽(完璧)’이다.

완벽귀조 없는 옥을 온전히 지켜내 조나라로 가져왔다 뜻이다.


오늘날, 여전히 우리는 춘추전국시대의 상황과 다르지 않음을 쉽게 안다.
어제 저녁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회담을 앞두고 자신의 SNS 글을 남겼다.
“한국은 숙청 중이다. 혁명 같다. 우리는 그런 나라에서 사업을 없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파장은 보였다. 언론과 정치권은 혹시 회담이 파행으로 흐르지 않을까 긴장했고, 해석이 분분했다.

그러나 막상 회담장은 달랐다.

트럼프는 이재명 대통령을 맞으며 환하게 웃었고, 100% 지지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우려는 기우였고, 회담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정부는 안도했고, 정당들은 각자의 언어로 성과와 한계를 해석했다.
의전 문제는 논란이 됐다. 비판자들은 영빈관 대신 호텔 숙박과 공항 영접 인사의 격을 문제 삼았고, 지지자들은 실무 방문이니 당연한 절차라 했다.
하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체면이 아니다.

회담의 실질적 성과가 있었는가, 삶에 닿는 변화가 있느냐가 본질이다.

트럼프의 방식은 특유의 연극성이 있다. 회담하기 강한 언어로 기선을 제압한다. 그러고는 회담장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환대로 전환한다.
이렇게 트럼프는 설계된 연극으로 협상의 주도권을 자연스레 쥐고 있었다.

작은 요구조차 내놓지 않은 보였지만, 진짜 청구서는 뒤에 것이다.
관세, 동맹, 투자 이행 같은 구체적 비용은 언급조차 안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회담은 겉으로 체면을 지켰을 , 관세와 동맹, 투자라는 본질적 과제는 그대로 남았다.
우리가 지켜내야 것은 체면이 아니라, 완벽과 같은 없는 실질적 성과다.
조나라가 화씨지벽이라는 옥을 돌려받은 것처럼, 우리의 행복한 이라는 옥을 온전히 지켜내야 한다.

정치권은 서사로 다투겠지만, 시민은 수치로 그들을 평가해야 한다.

적어도 아래 8가지 지표의 수치는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1.
공장 기분 지수(PMI) 살아나고 있는가?  (50 이상이면 공장이 살아난다는 신호로 본다)
2.
반도체 수출, 자동차, 조선, 화장품 고르게 팔리는가?
3.
관세 예외 업종 , 미국이 세금을 깎아주는 산업이 늘어나는가?
4.
조선업 투자 실행률, 계약이 실제 착공, 고용으로 이어지는가?
5.
외국인 투자 유입, 유출(FDI), 한국으로 돈이 들어오는가, 빠져나가는가?
6.
노사 분규와 가동률, 파업으로 멈추지 않고 공장이 돌아가는가?
7.
실업률과 청년 장기 구직자, 젊은 세대가 일자리를 얻고 있는가?
8.
물가 2% 유지가 되는가? (2% 생활비의 안정적인 수준의 기준임)

숫자와 추세선 이야말로 정치의 서사보다 확인해야 진실에 가깝다.
춘추시대 인상여의 지혜는 오늘날 수치에 근거한 지혜로움으로 변해야 한다.
춘추시대 조나라가 화씨지벽 지켜낸 것처럼, 오늘날 한국도행복한 이라는 완벽(完璧)’ 돌려받아야 한다.

트럼프의 무대는 연극일 있으나, 시민의 삶은 무대 연극이 아니다.
우리는 의전의 격보다 매달 나오는 수치 속에서 나라의 방향을 읽어야만 한다.

서사와 선동에 흔들리는 정치보다는 원칙과 수치를 무장한 지혜로운 자로 살아야 된다.


나는 과연 행복한 삶을 완벽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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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8-27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도 결국 진에 의해 멸망한 역사라면 완벽귀조 또한 궁여지책이고 임시방편이 아닌가 싶군요. 진의 통일 그 너머를 바라보는 혜안이 필요했을 터인데 역사는 또 어떤 모습으로 그 교훈을 전해주고 있을까요.

2025-08-28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25-08-27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8가지 수치중 현재 민주당이 줄기차게 내놓은 법안은 말씀하신것과 반대로 수치를 낮추는 행태를 보이고있어 미래가 암울해보입니다.

2025-08-28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생각의 도약 - 평범함을 뛰어넘는 초효율 사고법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전경아 옮김 / 페이지2(page2)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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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818

책 제목: 생각의 도약/저자: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전경아 옮김

글 제목: 잊음의 세렌디피티


무극(無極)에서 태극(太極) 이 형성된다.

불의 기운이 아래로 돌고, 물의 기운은 위로 돌아간다. (水昇火降수승화강)

장삼봉이 풀어내는 태극권은 천천히, 유유히 흐르는 물과 같다.

지켜보고 있는 장무기에게 묻는다.

지금은 어떠하냐?”

已忘了一小半(조금 잊었습니다).”

难为你(수고했구나).”

 

도야마 시게히코(1923~2020)<생각의 도약>을 덮는 순간, 나는 김용의 <의천도룡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바로 장삼봉이 장무기에게 태극권을 전수하는 장면이다.

()이 비워지자 의()의 윤곽이 떠오른다.

외움의 그릇을 비우는 순간, 배움은 비로소 시작된다.

이 책 <생각의 도약>은 잊음에 관한 책이다.

학습의 기본 구조는 외우기다. 우리는 외우지 못하면 학습 능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해왔다. 하지만 저자는 외우는 능력만이 인간이 가진 최고의 능력이 아니라고 말한다.

잊어버림의 능력, 즉 망각이라고 일컫는 능력 또한 중요한 능력이란 것이다.

마치 장자의 무용의 용(無用之用)을 말 하는 것과 같다.

저자는 생각의 숙성을 말 한다. ‘재운다는 표현을 썼는데 머리 속에 나오는 생각은 발효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뜻을 의미한다. 이때 잊음이 발동되는데 이건 단순히 망각이 아니다.

장무기처럼 잊을수록 더 배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형식을 사다리 삼아 오르고, 꼭대기에 이르면 사다리를 걷어 차는 일이다.

지식은 뗏목과 같아, 강을 건넜으면 뗏목은 버려야 한다.

 

장삼봉의 태극권이 끊어지지 않고 다시 한번 이어져 펼쳐진다.

已忘了一大半(많이 잊었습니다).”

不坏不坏(나쁘지 않다).”

 

장자는뜻을 얻으면 말을 잊는다(得意忘言)”고 했고, 선사는모른다로만 말할 수 있었다. 가득 찬 잔은 더 이상 아무 것도 담지 못한다. 창의성은 빈 잔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생각이란 눈에 보이는 꽃이 아니다. 땅 속 깊이 박혀 있는 뿌리와 같다.

시게히코는 뿌리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생각을 오래 동안 품고 있어야 마침내 진정으로 구체적인 형상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는 절대로 그 뿌리를 내리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나는 모른다에서 철학을 시작했다. 무지(無知)의 자각이야 말로 앎의 출발이다. 아는 체를 멈출 때 비로소 가정이 드러나고, 질문이 생기고, 검증이 가능해진다. 공자는알면 안다 하고, 모르면 모른다 하라(知之知之)”고 논어에서 말했다.

이는 겸손의 미덕이 아니라 사유를 움직이게 하는 엔진이기 때문이다.

 

장삼봉은 다시 물었다.

이제는 얼마나 잊었느냐?”

有三招(세 초식은 아직 못 잊었습니다).”

 

장무기처럼 우리는 아직 앎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이름의 권위, 결론의 교조, 변하지 않으려는 확신, 이 셋이 마지막 족쇄다.

베이컨은 우리 머릿속의 우상(Idola), 즉 종족·동굴·시장·극장의 우상을 버리지 않으면 어떤 실험도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급진성은지식은 힘이다라는 선언에만 있지 않다.

지식이 우상이 되지 않게, 주기적으로 틀을 부숴야 함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잊음은 파괴가 아니라 점검이다.

과학은 비움관찰검증임시 채택다시 비움의 루프다.

 

데카르트는 문제를 쪼개고 좌표를 놓아 사유를 기하학화했다.

스피노자는 감각의 신뢰도를 낮게 두고 이성의 기하학적 전개로 세계의 일관성을 밀어붙였다. 이들은형식의 위력을 극대화했다. 그러나 형식은 목적이 아니라 의도를 통과시키는 관문일 뿐이다.

장무기의 잊음이 형식을 버리고 뜻으로 가듯, 서양 합리주의의 형식 또한 끊임없이 검증·반증·업데이트의 과정을 거쳐왔다.

 

베이즈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불확실성의 바다임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

예측은 결코 확정이 아니라, 사전() 믿음에 증거를 더해 사후() 믿음을 갱신하는 행위다. 법칙은 가능하지만, 예측은 확률이다

오늘의 데이터가 내일의 나를 고친다. 확신은 느리게 올리고, 반증에는 빠르게 낮춘다.

베이컨에서 시작한 과학적 사고는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그리고 베이즈를 거치며 오늘날 인공지능의 DNA로 진화했다.

 

우리는 늘 예측하기를 진화 본능으로 삼아왔다. 날씨, 주식, 부동산, 경기, 심지어 우주의 심연까지. 그러나 양자역학은 우리에게 마지막 주의를 주었다. 가능성의 파동만을 허락하고, 개별 사건은 확률의 주사위로 다가온다.

과학을 통해 예측 가능한 법칙을 알고자 했지만 결국 우리는 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모름다시 모름은 사유의 기본 루프인 셈이다.

모름은 무지의 구렁텅이가 아니라 시작을 허락하는 출발선이다.

앎은 끝이 아니라 모름으로 향하는 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모름으로 돌아가는 건 패배가 아니라 자유다. 비움은 공허가 아니라 여지(余地), 여지는 창의성의 보고와 같다.

 

마지막 태극권의 초식이 끝난 후, 노사(老师)는 다시 묻는다.

지금은 어떠냐?”

장무기가 미소 짓는다.

我可全忘了,忘得干干净净的了(이제 전부 잊었습니다. 아주 말끔히).”

이제 장삼봉은 아주 크게 기뻐하며 웃었다.

 

잊음은 생각의 폐쇄가 아니라 생각의 열쇠이다.

어쩌면 우리 사고의 세렌디피티(Seredipity)는 잊음 속에서만 경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의 도약>을 읽으며 무협지와 철학 그리고 인공지능까지 이어지는 통찰이 가능 했다면 나의 생각은 다시 한 계단 도약한 셈이 아닐까?


🖋 by Dharma & Maheal    





우리는 꽃을 보지만 잎은 보지 않는다. 잎을 보더라도 줄기는 보지 않는다. 하물며 뿌리에 대해서는 생각하려 하지도 않는다. - P19

오랫동안 마음 속에 품고 있지 않으면 구체적 모습을 갖추지 못한다. - P46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군불에 밥을 짓는 것처럼 운 좋게 생겨나는 발견이나 발명을 ‘세렌디피티‘라고 부른다. - P75

어느 시대나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현대‘다. - P136

‘지식의 양‘과 ‘사고의 힘‘은 반비례 하는 것이다.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자유로운 생각을 하기 어렵고 창의적 사고와 거리가 멀어진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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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8-20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잊고, 소유하지 않고, 비우는 것 모두 같은 뿌리같군요.
당무유용(当无有用)

마힐 2025-08-21 11:03   좋아요 0 | URL
그렇죠. 다 비움을 얘기 하는 거였죠.
역쉬~ 잉크냄새님은 名不虚传!입니다.
 

관노트: 816

글 제목신춘추전국시대의 간쟁(諫諍)


2500년전, 천하는 춘추전국시대()였다.

평화보다는 전쟁이, 안녕보다는 불안이, 화목보다는 분쟁이 일상이었다.

2500년이란 시간이 흘러 현대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나는 춘추전국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바야흐로 디지털 춘추전국 시대로 도래했다.


춘추시대의 전차 대신 피드(feed)가 질주하고, 제자 백가들의 세치 혀는 알고리즘으로 증폭되고 있다

춘추시대 타임라인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분노는좋아요로 정량화되고, 서사는 짧은 영상으로 압축된다.

이 소란의 중심부에서 정치는 가속 페달만 밟고, 브레이크는 고장나 버렸다.

어쩌다 우리는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정치는 본질적으로 갈등 조정의 기술이다

그런데 조정 이전에 선택이 온다. 선택은 감정으로 쉬워지지만 결과는 감정으로 망가진다.

분노는 즉각적 보상을 주지만 장기 비용을 숨긴다.

서사는 결집을 만들지만 서사가 모든 것을 설명하기 시작하면서 진실은 전리품이 되고, 제도는 장식이 되어버린다

그때 우리의 공동체는 이미 추락 궤도에 접어들게 된다.


원칙은 사람보다 앞서야 했다.

이름을 지우고도 설득되는 문장인지, 절차·법치·권한 통제가 지켜졌는지, 독립기관이 두려움 없이 일할 수 있는 구조여야 했다.

바로 그것이 정명(正名)이고, 최소한의 방호벽이다.

원칙이 무너지면 좋은 의도도 흉기가 된다.

승자의 자만은 법을 도구로 만들고, 패자의 집착은 절차를 폐지하려 한다

승자든 패자든 둘 다 결국 제도라는 다리를 불태워 버린다.


수치(數値)는 말의 검증서다. 국가의 말은 지표로 환산될 때만 현실이 된다.

물가, 가계 이자부담, 전월세 상승률, 청년고용의’, 수출·투자 흐름, 재정수지와 국채금리, 환율 안정성, 안보 사건과 억지력등.

이 모든 항목에 대해 분기마다 개선되는지, 악화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설명이 길수록 숫자는 짧아져야 한다.

책임은 말이 아니라 추세선으로 져야 한다.


두 축을 곱해 보자

(원칙과 정당성) × 성과(수치와 실력)법치·성과로 나오면 신뢰, 법치·성과가 되면 개선 전제 조건부 신뢰할 수 있다.

하지만 답이 법치·성과로 나오면 위험한 효율이니 거부해야 하고, 법치·성과 라면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이 매트릭스가 투표 한 번의 계산을 넘어, 매일의 시민 행위가 되면 선동은 힘을 잃는다. 왜냐하면 선동은 감정의 시계를 앞당기지만, 지표는 시간을 정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도자에게 요구할 것은 간단하다.

서사를 줄이고 데이터 대시보드를 늘려라. 공약은 KPI로 번역하고, 분기별 목표-실행-검증을 공개하라. 실패하면 즉시 대안 플랜 B로 전환하라. 사면·인사·감사의 기준을 규칙으로 명문화하라. 외교·안보·경제의 돌발 변수엔 자동 안정화 장치를 걸어라. 법원과 감사, 통계기관의 독립을 권력의 외벽으로 삼아라. 그 외벽이 허물어지는 순간, 지지율은 단지 지연된 붕괴일 뿐이다.


야당과 비판자에게도 주문이 있다.

분노를 원칙으로 냉각하라. 감정적 언행을 줄이고, 기록·판례·절차로 말하라. ‘순교 서사를 절제하라.

폭력과 불복의 유혹에서 물러서라. 중도를 설득할 언어는 언제나 근거다.

근거가 약하면, 오늘의 환호는 내일의 고립으로 돌아온다.


시민의 자리는 더 중요하다.

뉴스는 하루 20분만, 가계의 숫자는 매일 10분 이상.

가족의 KPI, 현금흐름, 부채 금리, 식비·주거비, 건강·관계가 정치 뉴스보다 먼저다.

의견을 말할 때는 출처·기간·비용·대안을 함께 제시하라.

이름을 가리고도 설득되는 문장만 남겨라. 내 가족과 이웃이 모여 공동구매와 돌봄·비상연락망을 공유할 때이다. 국가는 이런 작은 질서의 합이다.


역사는 경고한다. 오왕 부차의 패망은 월왕 구천의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결과 때문이 아니었다. 측정하지 못한 자신감, 절차를 압축한 효율, 반대의 목소리를 무시한 오판이 무너뜨렸다. 반대로 구천은 분노를 연료로 삼았고, 치욕의 순간을 끝내 견뎠다. 그는 감정을 안으로 묶었고, 냉정을 유지했다. 마침내 월왕은 살아남았다. 그래서 살아남음은 때로 승리보다 어렵다.


지금 우리의 정치도 이와 같다. 선동은 빠르고, 숫자는 느리다.

선동은 박수 소리를 모으고, 숫자는 침묵 속에서 신뢰를 쌓는다.

선동은 지도자를 영웅으로 만들고, 숫자는 제도를 신으로 만든다.

우리가 택해야 할 쪽은 분명하다. 원칙 위에 서고, 수치로 말하는 세상. 브레이크가 작동하는 세상. 느리지만 도착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와 서사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원칙이며, 수치다.

선동과 감정에 휩쓸려 원칙과 수치가 사라지면 2500년전에 사라진 춘추시대의 나라들과 다르지 않게 되어 버린다.

신춘추전국시대,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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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8-19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힐님은 항상 과거에서 현재를 읽고 미래를 제시하네요. 온고지신이로세!!!

마힐 2025-08-21 11:15   좋아요 0 | URL
금강경에 보면, 과거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过去心不可得,现在心不可得,未来心不可得) 이란 구절이 나옵니다.
과거의 마음도 현재의 마음도 미래의 마음도 얻을 바가 없다는 뜻이라 합니다.
고정되지 않은 시간이니 과거 현재 미래가 따로 없다는 뜻도 되지요.
잉크냄새님, 매 순간 좋은 시간 되십시요. ㅎㅎ
 

관노트: 711

글 제목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두번째 여행


회사의 일을 함께 마친 나는 동료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어라, 차 키가 없네. 집에다 놓고 왔나 보네. 동료들아, 잠시 기다려. 집에 가서 열쇠 가지고 올께.”

아니, 엘리베이터에 웬 사람이 이렇게 많아? 할 수 없다. 계단으로 올라가야 겠다. 7층에 다 올라왔다. , 근데 여기가 어디지? 주상 복합이라니원래 우리집이 이런 곳이 었었나? , . 우리집은 서쪽 끝에 있지. 그쪽 복도로 가자.


아니, 사람이 왜 이리 많지? ? 우리 절 신도님들 이신데?  이제 보니 지O이 아버지 장례식장에 가려는 분들 이잖아. 나도 가야 될 것 같은데아이고, 지금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떻 하냐? . 민O아, 너를 여기서 만나다니? 반갑다. 내 부탁하나 있는데 좀 들어줄 래? 안된다고? 네가 내 부탁 들어주면 앞으로 네가 원할 때 나도 꼭 네 부탁 들어줄 께. 진짜라구. 그래? 고맙다. 저 건물 밖에 날 기다리는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들 좀 집에 데려다 주면 고맙겠어. 정말 고마워.


, 문O법우님, 오랜 만이에요. O 스님 안녕하셨어요. 언제부터 계셨어요? , 저기 우리 절 신도님들이 차를 대절해 오셨네요. 지O이네 장례식 가려고 이렇게 들 많이 오다니, 혜자스님 오셨다.' 

"스님, 스님, 저어제가 혹시 안보이시나요? 스님, 혹시 옆에 계신 청 O 스님이 너무 밝으셔서 제가 안보이시는 것이 아닌가요

스님, 너무 배꼽 빠지게 웃으시는데요."

'아 저 보살님은 왜 스님을 발로 치 실까

각자 누구나 자기 차원에서 공부가 있구나.' 

"이제 지하로 내려 가시죠."


'아니, 지하가 이렇게 넓다니

무슨 광장도 이런 광장도 없는 것 같은데그런데 여기가 전부 장례식장이라니?

대문 안에 들어가니 정면에 불상이 모셔져 있네. 합장 삼배를 하고 들어가야지. 안에는 겉 보기와 다르게 진짜 넓고 사람들도 많구나.

지O이네 장래식장은 왼쪽이구나.


저 높은 사당안에서 스님들의 염불 소리가 들리는데, 조문객들은 사당 아래에 마당에 있었구나

이크. 웬 수레가 옆을 지나가지? , 저 수레에는 대나무가 잔뜩 실려 있네, 대나무로 화장을 할 때 태운다고? 그렇구나

그런데 비구 스님들 께서 직접 수레를 몰고 가시네. 잘못하면 쏟아 질 것 같은데, 다행이 전부 사당 앞에 잘 실려 왔구나. 이제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자.


저기 상주인 지O이가 앉아 있네. 지O아, 심심한 위로를 표한다

아니 뭐야생각 보다 얼굴이 밝은데? 그래, 다행이다. 아버님이 이렇게 가신 것도 그나마 다행인 것 같구나. 그래

아 청년회 회장님. 정O아, 3배 해야 한다고? 위 사당에 계신 스님들께? 그래 알았어. 혜O 스님의 독경 소리가 들리네...


, 옆에 장례식장에 있는 저 사람. , 남대리, 15년전 전 직장에서 마지막이었는데 오늘 이런데 서 보게 될 줄이야?' 

"남대리 잘 있었어? 거기로 넘어 오라구요? 상주분의 호의는 고맙지만, 저는 인사만 하고 갈 겁니다. 남대리, 흰 드레스가 잘 어울리네. 아니, 임신했어? 신랑은? , 어디 잠시 나갔다고? 옆에 이 젊은 남자는 누구 신지? , 근데 남대리 한테 반말로 얘기하지 말라고요? , 네 알겠습니다. 꼰대 소리 안 들으려면 존댓말 해드려야죠. 알았어요. 앞으로 꼭 경어 쓸께요."

'아, 그런데 이제 의식이 돌아오는데….  에이, 꿈이 였구나.’

 

또 꿈이다.

일주일전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무덤 여행 뒤에 다시 또 지하 장례식 여행을 하고 왔다. 지난 번 꿈에서 혜자 스님께서는 조상이 바로 나라고 하셨다.

이번엔 아마도 그 전날 실제 지O이 아버님 부고를 보고 난 뒤 잠이 들었는데 그게 그대로 꿈으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어제 낮에는 가족의 인연에 대해 생각해 봤다.

만약 윤회가 있다고 전제하고, 윤회 한번에 100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우리가 실제 문명의 역사는 대략 5천년. 그동안 100년에 한번 환생을 했다고 하면 50번 윤회를 한 셈이다. (그런데 겨우 50번의 윤회라니…)

그럼, 50번 윤회 가운데 현재 나의 가족이 만나게 될 확률을 대략 10프로로 본다면대략 5. 지금 나의 가족이 또 다시 똑 같은 가족으로 만난다면? 천년에 한 번이다.

아니, 뭐 엉터리 계산인 것은 확실하지만 지금 가족으로 다시 만나게 될 확율은 긴 역사 속에서 희박하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천년에 딱 한번, 맺어지는 가족의 인연이라 생각을 하니, 갑자기 너무 아련해진다.


부모가 자식이 되고, 자식이 부모가 된다고 큰 스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또다시 지금 이대로 가족이 되려면 천년에 한번 맺어지는 인연일 수도 있다.

일기일회(一期一会, 생에 한번 뿐인 만남)이다.

내 부모, 내 아내, 내 자식, 내 형제 같은 인연은 정말 천년에 한번 또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를 인연이라니

정말 순간순간 마주하는 모든 인연들에 대하여 소중히 생각해야 겠다.

15년 전, 크게 의미 없었던 직장 동료도 꿈에 나오는 데, 언제 또 다시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말로 헛된 인연은 없는 것 같다.

꿈이 그냥 꿈이 아닌 것 같다.

무덤 속과 장례식을 다니면서 나의 의식은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닌 세계로 가는 것일까?


🖋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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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노트: 75

글 제목재난에서 살아 남으려면오직 Attention !


7월에 일본에서 큰 지진이 날 거라는 소식이 들린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TV에서 보았던 쓰나미가 곧 다시 몰려온다는 것이다.

설마재난이라…. 하지만 우리는 늘 불확실한 오늘을 살고 있다.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처럼 또 다른 재난이 잇따라 일어날 것이다.

TV에 등장하는 재난의 피해자가 곧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는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 나는 생존을 생각해본다

어떻게 똑 같은 재난을 겪는데 소수의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소수의 생존자는 운이 좋았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 생존은 운이 아니라, 위험을 눈치채고 움직이는 다른 능력, Attention덕분일지도 모른다.

Attention은 흔히집중이라고 번역되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깊은 개념이다.

Attention수많은 정보 속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을 고르는 힘이다.

세상은 겉 보기에는 무작위 같아 보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리적인 법칙이 지배를 받는다

하지만 모든 영역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최근 들어 세상은 결국 패턴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패턴을 본다는 건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 “평소와 다른 것을 알아보는 것이다.


게슈탈트 심리학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사람의 뇌는 조각조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그림을 보려고 한다.

그게 바로 패턴을 읽는 눈이다. 그리고 그 눈이 바로 Attention이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관() 이라고 불렀다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서 길()을 찾는 눈이다.


AI도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AI는 문장을 분석할 때 모든 단어를 숫자로 바꾼다. 이걸 벡터(VECTOR)라고 한다. 그리고 그 숫자들이 서로 얼마나 비슷한지를 계산한다. 그 계산을 코사인 유사도(Cosine Similarity)라고 한다.

비슷한 단어끼리 묶고, 그중 제일 중요한 단어를 고른다.

그 기술의 이름이 바로 Transfomer이다. (트랜스포머는 변화를 만든다)

왜냐면 AI가 언어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단어에 주의를 집중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무엇인가?”

사람도 바로 이러한 Attention으로 생존을 거듭해 진화를 해왔다.

우리 뇌는 늘 수많은 정보 중 “지금, 뭐가 중요하지?” 를 찾고 있다.

그렇게 확률적으로 높은 생존의 방법을 찾았고 그것이 진화를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다.


300년전, 18세기 영국의 토마스 베이즈(1701~1761)라는 목사는 이 같은 생각을 수학적으로 풀어냈다.

“새로운 증거가 오면, 나는 원래 믿고 있던 생각을 고쳐야 한다.”

그가 내놓은 베이즈 이론은 기존의 도박의 확률을 계산하는 수학과는 전혀 다른 발상이었다

당시 그의 발표되지 않은 이론은 바로 이 시대 인공지능의 DNA가 되었다.


"Attention is all you need: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집중 뿐이다."  2017년 구글에서 발표한 이 <Transfomer> 논문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쓰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앞당긴 촉매제가 되었다.


18세기 창발의 시대에서 21세기 인공지능의 시대는 모두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GPT, 구글 제미니, 딥시크 같은 인공지능은 모두 인간과 같은 방식의 사고를 모방하고 있다

그 사고를 이루는 핵심이 바로 Attention이다.

우리는 그 원리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결국 인류의 생존에서든, 인공지능의 진화에서든, 모두 Attention이 필요하다.

그렇게 Attention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알파요 오메가가 된 것이다.

패턴, 게슈탈트, () 그리고 Attention.

이 모든 말은 하나를 뜻하고 있다.

“불확실하고 혼란한 현실 속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신호를 찾으라는 말.”

그리고 그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것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자 바로 Attention이다.


생존이든, 변화이든, 또 진화이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ttention이다.

Attention 은 자각이자 깨어남이다.

동일본 지진 예언이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우선, 당황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지켜봐야 한다. 나와 내 주위의 변화를. Attention!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는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오늘의 시대에서 Attention은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확실함이 아닐까?


🖋 by Dharma & Maheal   

패턴을 읽는 (Attention, ) 생존하고
연결을 모르는 (Isolation, ) 침몰하며
변환을 거부하는 (Stagnation, ) 백년을 표류하게 된다.

생존은 Attention()에서 시작해
Connection(
)으로 성장하며
Transformation(
)으로 완성된다." ( 문장은 DeepSeek-R1 AI와의 대화에서 공동 창작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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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7-05 2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attention에 그렇게 심오한 뜻이...
옛날 영어 교육의 잔재가 너무 많은 우리는 ‘어텐션-바우‘ 로 이어지는 고리를 먼저 끊어야 통으로 성장하고 변화로 완성될 수 있을 듯 해요.

마힐 2025-07-05 22:44   좋아요 0 | URL
전 어릴 때 성룡 영화 <프로젝트A>에서 어텐션을 처음 들었는데요.
그때 부터 어텐션은 ‘차렷‘ 인줄 알았습니다. ㅎㅎ
그런데 그 차렷이 ‘정신 차렷‘ 이었네요. 안 끊어 내도 될 것 같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