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보이차 한잔 (마힐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8719259</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한 가지를 답을 찾기 보다는질문을 품는 사람으로 살아 가려고 합니다. 경험하고, 사유하고 글을 쓰며 질문은 다듬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7 Oct 2026 18:50:25 +0900</lastBuildDate><image><title>마힐</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787192594687707.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78719259</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마힐</description></image><item><author>마힐</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상앙의 法(법)에서 한비의 法(법)術(술)勢(세)까지 - [낭송 한비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8719259/17559260</link><pubDate>Wed, 07 Oct 2026 17: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8719259/175592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7969587&TPaperId=175592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268/40/coveroff/89979695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7969587&TPaperId=175592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낭송 한비자</a><br/>고미숙 기획, 한비 지음, 구윤숙 옮김 / 북드라망 / 2015년 02월<br/></td></tr></table><br/>어제 글의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남겼다.춘추전국의 오랜 분열을 끝내고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는 왜 그렇게 빨리 무너졌을까?그리고 2천 년도 더 지난 지금 나는 왜 다시 《한비자》를 읽고 있는 것일까?그 질문에 답하려고 하다 보니 먼저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나는 그동안 법가와 한비자를 거의 같은 의미로 생각하고 있었다.과연 법가와 한비자는 같은 사상이었을까? &nbsp;그런데 사실&nbsp;둘은 정확히 같은 것이 아니었다.<br>넓게 보면 오늘날 우리는 한비를 법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분류한다. 하지만 법가적 사상의 흐흠은 한비보다 훨씬 앞서 이미 존재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상앙(商鞅)이다.이후 신불해, 신도등이 서로 다른 문제를 고민했고 전국시대 말 한비에 이르러 법가는 종합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nbsp;당시에는 이들이 하나의 학파를 이루어 서로 같은 생각을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후대에 여러 사상적 흐름이 하나의 범주로 정리되면서 '법가'라는 이름으로 묶여 부르게 된 것이다.사실 법가 안에서도 인물에 따라 강조점은 서로 달랐다.<br>한비의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법가의 시조나 다름 없는 상앙(商鞅)은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상앙은 한비보다 약 100년 전 앞선 사람이며 &nbsp;후에 진이 천하통일 할 수 있도록 내부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그는 당시에 진나라를 강국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그가 특히 중요하게 본 것은 法, 즉 법과 제도였다.사마천의 &lt;사기&gt; &lt;상군열전&gt;에는 상앙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나온다.<br>상앙이 새로운 법을 시행하기 전, 그는 수도의 남문에 큰 나무 하나를 세워놓고 말했다고 한다.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했다.하지만 처음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너무 쉬운 일에 큰돈을 준다고 하니 백성들이 오히려 믿지 않았던 것이다.상앙은 상금을 더 올렸다.그러자 한 사람이 나무를 옮겼다.상앙은 약속대로 정말 상금을 지급했다.그 뒤 새로운 법을 비로소 공포했다.이 이야기는 단순히 상앙이 법을 따랐기 때문에 돈을 많이 주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그가 먼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국가는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 한번 정한 상과 벌은 실제로 집행한다.새로운 법을 발표하기 전에 먼저 국가의 명령에 대한 신뢰부터 만든 것이다.&nbsp;&lt;사기&gt;에서는 이를 두고 &nbsp;“以明不欺(이명불기)” 즉 '속이지 않음을 밝힌다 '고 표현했다.<br>법이 아무리 훌륭해도 사람들이&nbsp;“어차피 권력자 마음대로 바뀔 텐데.”&nbsp;라고 생각한다면 아무런 힘이 없다.규칙이 있고, 그 규칙이 실제로 집행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사람도 움직인다.상앙이 진나라에서 시행한 개혁은 훨씬 광범위했다.군공을 세우면 그에 따라 신분과 보상을 얻게 하고,&nbsp;농업과 군사를 장려하며,&nbsp;호적과 행정체계를 정비하고,&nbsp;중앙정부가 백성과 지방을 더 직접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귀족의 혈통보다는 국가에 어떤 공을 세웠는지가 중요해졌다.진나라가 훗날 전국의 다른 나라들을 압도할 수 있었던 국가체제의 뼈대는 한비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상앙은 法을 통해 강한 국가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했고 실제로 법으로 나라를 강하게 만든 결정적 인물인 셈이다.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인생 마지막에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다.<br>상앙이 권력을 잃고 도망치던 중 여관에 묵으려고 했지만, 여관 주인은 신분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을 받아주면 법에 따라 처벌받는다며 그를 거절했다고 전해진다.결국 자신이 만들고 강화했던 법의 세계가 도망치는 자신에게도 예외를 허락하지 않았던 셈이다.상앙은 법으로 진나라를 강하게 만들었지만,&nbsp;마지막에는 자신 역시 그 법의 바깥에 있을 수 없었다.법은 그를 설계한 사람마저 가둬버리는 역설인 셈이다.<br>상앙이 진이 법가적 국가운영의 기본 틀을 만들었다면 비슷한 시대의 신불해는 법이 집행되도록 하는 술(術)을 강조했다.&nbsp;즉&nbsp;그 법을 집행하는 관료는 누가 관리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술이다.술은 관료를 관리하는 방법이다.&nbsp;법을 강조한 상앙과 달리 술을 특히 강조한 신불해(申不害).이름이 조금 헷갈리기 쉬운데, 진시황의 정치적 후견인이었고 한때 친부설까지 따라붙었던 진나라 재상 여불위(呂不韋)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신불해는 한비가 태어났던 한나라에서 활동했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다.그가 관심을 둔 것은 법 그 자체보다 군주가 관료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누구에게 어떤 일을 맡길 것인가.권한을 어디까지 줄 것인가.보고가 사실인지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신하가 자기 권한을 넘어서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오늘날 현대 조직으로 옮겨보면 인사, 감사, 보고체계, 권한분장, 성과검증과 비슷하다.쉽게 말하면,&nbsp;法이 조직의 규칙이라면, 術은 그 조직의 사람을 운영하는 기술이다.<br>그리고 그 뒤를 이어 신도(慎到)라는 인물은 세(勢)의 중요성을 강조했다.勢는 어제 이미 이야기한 대로&nbsp;높은 산 위의 작은 나무가 골짜기의 큰 나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은 그 나무가 더 훌륭해서가 아니라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군주도 반드시 모든 신하보다 지혜롭거나 유능해서 명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가 군주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명령하고 상벌을 내릴 수 있다.사람의 능력보다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서 나오는 힘.그것이 勢다.&nbsp;<br>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비가 등장하며 법가는 앞 전보다 더욱 종합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다.&nbsp;한비의 중요한 점은 法 하나만 강조한 데 있지 않았다.그는 앞선 여러 통치사상을 받아들이면서 군주가 국가와 관료조직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훨씬 정교하게 고민했다.그래서 오늘날 한비자의 정치사상을 흔히 法·術·勢라는 세 축으로 정리한다.다만 이것을 한비가 직접 교과서처럼 세 항목으로 분류했다고 보기보다는, 후대 사람들이 그의 사상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틀이라고 보는 편이 좋다.法은 기준이고,&nbsp;術은 사람을 다루는 방법이며,&nbsp;勢는 그것을 실행할 수 있게 만드는 자리의 힘이다.<br>그런데 한비는 여기서 좀 더 깊게 파헤친다.사람에게 일을 맡겼다면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여기에서 형명(形名)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nbsp;말은 어렵지만 뜻은 의외로 간단하다.말한 것과 실제로 한 것이 서로 맞는가.예를 들어 어떤 신하가&nbsp;“제가 이 일을 해내겠습니다.”&nbsp;라고 말했다고 하자.그 사람이 맡은 직책과 약속, 말한 내용이 名이라면 실제로 해낸 결과가 形이다.군주는 둘을 맞춰보아야 한다.말은 거창한데 실제 결과가 없다면 책임을 묻는다.반대로 맡은 일을 제대로 해냈다면 그에 맞게 평가한다.오늘날 회사에서 업무목표와 실제 성과를 비교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단순한 KPI보다는 조금 더 넓은 개념이다.그 사람의 직책과 말과 실제 행동이 서로 일치하는가를 보는 것이다.그리고 평가만으로는 조직을 움직일 수 없다.평가한 결과에 따라 실제 상벌을 줄 수 있어야 한다.<br>이때 한비는 군주가 놓쳐서는 안 되는 두 개의 손잡이를 들고 나온다.그게 바로 이병(二柄) 이다.한자 병의 뜻이 손잡이란 말이다.그 두 가지는 형(刑)과 덕(德)이란 손잡이를 뜻한다.이때 사용한 德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적인 덕이라기보다 보상과 혜택을 베푸는 의미에 가깝다.쉽게 말하면 벌과 상이다.누가 승진을 결정하고&nbsp;누가 보상을 주는가.누가 책임을 묻고&nbsp;누가 사람을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가.그 권한을 가진 사람이 결국 조직의 사람을 움직인다.그래서 한비는 군주가 이 두 개의 손잡이를 다른 신하에게 절대로 넘겨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결국 한비자의 정치사상은 하나의 구조로 완성되어졌다.<br>勢는 군주가 가진 자리의 힘이고,&nbsp;法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준이며,&nbsp;術은 사람과 조직을 다루는 기술이다.形名은 말과 실제를 비교하는 검증방식이고,&nbsp;二柄은 그 결과에 따라 상과 벌을 행사하는 최종 권한이다.形名을 통해 신하를 확인하고,&nbsp;二柄을 통해 상벌을 행사하며,&nbsp;그 모든 것을 운영하는 방식이 術이다.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힘이 勢다.<br>이렇게 정리하면 법가와 한비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나는 처음에 법가라고 하면&nbsp;강한 법,&nbsp;엄격한 형벌,&nbsp;냉혹한 통치를 먼저 떠올렸다.그것은 상앙이 강조했던 초기의 법중심 개혁에 가깝다.그러나 한비의 관심은 그보다 훨씬 넓었다.법을 만든 다음 그 법을 운용하는 사람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보고되는 정보가 사실인지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유능한 신하가 오히려 군주의 권력을 잠식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상과 벌은 누가 쥐고 있어야 하는가.결국 한비가 고민한 것은 단순한 법률이 아니라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을 움직이고 통제하는 방법이었다.<br>그래서 상앙과 한비의 차이를 정리해 본다면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국가체제의 중심에는 한비보다 훨씬 앞선 상앙의 개혁이 있었다.그리고 한비는 그보다 뒤에 法뿐 아니라 術과 勢, 그리고 관료통제의 문제까지 더 깊게 고민했다.물론 이렇게 둘을 완전히 나눌 수는 없다.상앙에게도 권력과 통치의 문제가 있었고,&nbsp;한비에게도 法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하지만 두 사람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에는 이 정도의 구분이 도움이 된다.<br>오늘날 우리는 진은&nbsp;법가를 바탕으로 천하를 통일했지만 곧 무너졌고, &nbsp;뒤를 이은 한나라는 유학을 국가통치의 중요한 이념으로 받아들였다고 알고 있다.그런데 한나라는 과연 진나라의 법가를 전부 버렸을까?법가는 정말 통일 이후에는 쓸모가 없어진 것일까?<br>내일은 바로 그 질문에서 다시 시작해 보기로 한다.천하를 얻은 법가, 천하를 잃은 진.진나라는 왜 그렇게 빨리 무너졌을까?질문은 다시 이어진다.<br>2일차 마침.]]></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268/40/cover150/89979695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2684003</link></image></item><item><author>마힐</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한비자, 역린(逆鱗)을 말하다  - [낭송 한비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8719259/17558216</link><pubDate>Tue, 06 Oct 2026 23: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8719259/175582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7969587&TPaperId=175582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268/40/coveroff/89979695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7969587&TPaperId=175582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낭송 한비자</a><br/>고미숙 기획, 한비 지음, 구윤숙 옮김 / 북드라망 / 2015년 02월<br/></td></tr></table><br/>우리는 누군가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을 때 흔히 이런 말을 한다.“역린을 건드렸다.”대개 '역린' 이란&nbsp;괜히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의 약점이나 자존심, 혹은 분노를 폭발시키는 지점을 말한다.그런데 이 말의 출전이 2천 년도 더 된 &lt;한비자&gt; 라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br>&lt;한비자&gt; 〈세난(說難)〉에는 용의 비유로 역린에 대해 설명한다.&nbsp;용은 온순할 때 가까이할 수도 있지만 목 아래에는 거꾸로 난 비늘이 있다. 그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다.&nbsp;逆은 거스를 역, 鱗은 비늘 린.역린은 문자 그대로 ‘거꾸로 난 비늘’이다.人主亦有逆鱗군주에게도 역시 역린이 있다.<br>한비가 글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용이 아니다. 바로&nbsp;권력이다.군주에게는 남이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지점이 있다.군주에게 역린은 자신의 권위, 약점, 욕망, 두려움 혹은 상처일 수도 있다.아무리 옳은 말을 하더라도 그 지점을 모르고 건드리면 설득은 실패한다.그래서 이 이야기가 실린 편의 제목도 〈세난〉, 곧 ‘설득의 어려움’이다.논리적으로 옳은 말이라고 해도 실제 권력 속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같은 보고라도 누구에게, 언제, 어떤 방식으로 말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이런 상황은 현대 사회의 정치든 혹은 회사든 어떠한 조직의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그래서 우리는 역린에 대해 처세술로 이해하기도 한다.하지만 그건 오해다. 한비자의 역린 이야기는 단순한 처세술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그는 더 깊은 것을 보았고 그걸 말하고자 했다.<br>높은 산 위의 나무는 그 자체가 특별히 크지 않아도 아래를 내려다본다.그 이유는 낮은 골짜기의 큰 나무보다 산의 위치가 높기 때문이다.&nbsp;사람 또한 그렇다.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가 자신의 능력보다 앞선 힘을 만들어 낸다.&nbsp;한비자는 그러한 위치로 인해 얻어진 힘을 ‘세(勢)’라고 보았다.즉 군주가 반드시 모든 신하보다 지혜롭거나 유능해서 신하를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어리석은 군주라도 군주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 남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그 힘은 개인의 덕이나 재능보다 자리와 위세에서 나온다.이는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위치가 힘을 만든 것이다.<br>그의 이 통찰은 당시로서는 무척 급진적이다. 이것은 2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nbsp;그의 이 통찰은 유능한 사람은 당연히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도덕적 기대를 거꾸로 뒤집는다.현실의 권력은 반드시 능력과 비례하지 않는다.권력은 그 자리가 가진 명령권, 인사권, 정보 접근권, 상벌권을 통해 작동한다.실제로 오늘날의 현대 조직으로 옮기면 더 쉽게 보인다.실력이 뛰어난 과장보다 인사권을 가진 임원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엔지니어보다 예산을 배분하는 부서가 프로젝트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다.한비는 이미 전국시대에 이것을 보고 있었다.그가 깊이 지켜본 권력은 사람의 품성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와 위치에 붙어 있었다.<br>&lt;한비자&gt; 에서는 이에 대해 더 깊게 들여다 보았다.한비는 권력의 중추를 이미 장악한 대신이 있다면, 그 사람이 군주를 위해 자신보다 더 뛰어난 법술가를 추천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둘이 함께 존립하기 어려운 경쟁관계라면, 세력이 없는 유능한 사람이 오히려 가장 위험한 처지에 놓인다.기존의 실권자는 왜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을 추천하겠는가.이것은 단순히 ‘사람은 질투한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한비는 이해관계와 구조를 통해 권력을 보았다.<br>만일 이미 군주의 신임, 인사, 정보, 보고체계를 장악한 중신 앞에 외부의 뛰어난 인재가 등장한다고 치자.그 인재가 군주에게 가까워질수록 기존 실권자의 권한은 줄어들 수 있다.그렇다면 기존 실권자가 경쟁자를 막으려는 것은 개인적 악의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그 자리가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것이다.한비는 바로 그 구조를 통찰했다.&nbsp;실제로 한비 자신이 바로 그 법술지사였다<br>한비는 본래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 왕실 출신이었다.나라가 쇠퇴하는 것을 보며 여러 차례 개혁을 주장했으나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말더듬이 때문에 말로 설득하는 데 능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가 쓴 글은 탁월했다.아이러니하게도 그 글을 알아본 사람은 자신의 나라 왕이 아니라 이웃의 강력한 진나라의 왕, 영정이었다.&nbsp;바로 훗날의 진시황이었다.&nbsp;<br>사마천 &lt;사기&gt;에 의하면&nbsp;진왕은&nbsp;한비의 글을 읽고 크게 감탄했다. 한비라는 인물을 만나기 위해 한나라 왕을 압박하여 한비를 사신으로 오게끔 요청했다. 이에 한비는 진왕을 만나러 진나라에 들어갔다.하지만 진나라에는 이미 이사(李斯)가 있었다.기록에 따르면 한비와 이사는 모두 순자의 문하에서 공부한 인물이었다.이사는 한비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동시에 한비가 진왕의 신임을 얻으면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았을 것이다.결국 한비는 진에 들어온 뒤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nbsp;그는 이사에 의해 독약을 받고 죽게 된다.진왕이 뒤늦게 마음을 바꾸어 풀어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그의 이 비극적 운명은 자신이 이미 쓴 글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nbsp;그는 자신의 죽음을 마치 예언 하듯이&nbsp;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권력의 구조를 이미 알고 있었다.&nbsp;<br>기존 실권자는 경쟁자를 경계한다.군주는 자신의 역린을 건드리는 신하를 불편해한다.세력 없는 유능한 법술가는 양쪽 모두에게 위험한 존재가 된다.한비는 이 구조를 너무나 알고 있었다.그래서 한비의 죽음은 단순한 불운처럼 보이지 않는다.그는 권력자의 심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또한 신하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자리와 위세가 인간의 능력보다 강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군주의 정보와 판단이 측근에게 장악되는 위험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벗어나는 것은 다른 문제다.&nbsp;그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이 그를 구해주지는 못했다.&nbsp;자신도 그 구조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왜냐하면 한비가 가진 것은 통찰이지 권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구조를 이해하는 것과 구조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br>높은 산의 작은 나무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이유를 너무도 잘 알았지만, 정작 한비 자신은 높은 산 위에 있지 않았다.진왕에게 인정받을 가능성은 있었지만 아직 권세가 없었고, 이사는 이미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법가가 냉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현실을 정확히 본다고 해서 현실에서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br>그렇다면 한비를 제거한 이사는 승리했을까.역사적으로&nbsp;이사는 진시황의 통일 사업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고 승상의 자리에 올랐다.그러나 진시황이 죽자 궁정의 권력구조가 흔들렸다.환관 조고는 어린 황제 호해 곁에서 정보와 접근권, 명령체계를 장악해 갔다.결국 이사는 조고와의 권력투쟁에서 패하고 처형된다.한비를 막았던 사람이 결국 자신보다 더 강하게 군주의 귀와 눈을 장악한 사람에게 제거된 것이다.한비를 죽인 구조가 이사에게도 돌아온 것이다.이처럼 한비는 권력의 작동방식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보았고, 그 구조는 실제로 반복되었다.<br>냉혹한 권력의 구조를 직시한 법가는 유교와 완전히 상반된다는 느낌을 받는다.유교를 대표하는 &lt;논어&gt; 나 &lt;맹자&gt;, &lt;중용&gt; 같은 책을 보면 인간에게 희망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우리는 배울 수 있고, 수양할 수 있고, 부끄러움을 알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법가는 그러한 기대와는 다르다.사람은 이해관계에 흔들리며&nbsp;권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권한을 지키려고 한다.군주의 눈과 귀는 왜곡될 수 있다.능력 없는 사람도 위치가 높고 위세가 있으면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즉 법가는 이상적인 희망을 품기보다 냉혹한 현실을 직시했다.유교가 인간이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다면,&nbsp;법가는 인간이 쉽게 이해관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현실을 보았다.그래서 &lt;한비자&gt; 는 읽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그러나 그 불편함 때문에 오히려 현실을 정확하게 보게 한다.한비의 삶은 그 사상의 가장 냉혹한 주석인 셈이다.그는 현실을 누구보다 똑바로 보았지만, 그 현실이 결국 자신을 삼켰다.<br>결국 춘추전국의 오랜 분열을 끝내고 마침내 천하를 통일한 진의 국가 운영에는 상앙이래의 강력한 법가적 제도와 통치 방식이 통한 것이다.하지만 그 강력한 진은 너무나 빨리 무너지고야 말았다.불과 15년 만에 무너진 것이다.그렇다면 법가는 천하를 얻는 데 성공했지만 왜 천하를 지키는 데는 실패한 사상이었을까?&nbsp;아니면 한비가 추구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br>2천년 이나 지난 지금 나는 왜 다시 &lt;한비자&gt;를 읽어야 할까?내일은 이 질문에서 다시 시작해 보기로&nbsp;하겠다.1일차 마침.<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268/40/cover150/89979695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2684003</link></image></item><item><author>마힐</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나의 이타카 그리고 구원 (오딧세이, 백치 그리고 지혜와 자비에 대하여) - [원서발췌 백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8719259/17526948</link><pubDate>Sun, 20 Sep 2026 12: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8719259/175269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K44253480&TPaperId=175269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917/84/coveroff/ek4425348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K44253480&TPaperId=175269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원서발췌 백치</a><br/>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정아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8년 11월<br/></td></tr></table><br/>얼마 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lt;오딧세이&gt;를 봤다.오딧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자신의 고향 이타카로 향하는 여정속에서 나는&nbsp;문득 중국 한나라의 이릉과 소무 그리고 조선의 강항이 떠올랐다.<br>이릉과 소무는 각기 다른 사정으로 흉노 땅에 남게 되었고 모두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둘 모두 흉노 땅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지만 결말은 달랐다.바이칼 호 근처에서 양을 치던 소무는 돌아올 수 있었지만, 이릉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nbsp;흉노에 남게 되었다.젊고 유능한 장수였던 이릉을 한무제에게 변호했던 사마천은 한무제의 노여움을 사고야 말았다.곧&nbsp;사마천은 궁형을 받게 되었고, 결국 &lt;사기&gt;라는 인간의 불굴의 의지로 태어난 역사서를 후세에 남겼다.임진왜란 시기 일본에 포로로 끌려 갔다가 조선으로 돌아온 강항은 자신이 일본에서 보고 겪었던 일과 당시 일본의 정세를 &lt;간양록&gt;에 남겼다.간양록(看羊录）이란 제목 그 자체가 자신을 흉노 땅에서 양을 보던 소무에 비유한 글이다.<br>오디세우스, 소무, 이릉, 사마천 그리고 강항.서로 다른 시대와 다른 문명 속의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삶에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이들은 모두 타향, 고난, 귀환, 그리고 기록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br>인간은 왜 그토록 돌아가려 하는가.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에게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어떤 상징 같은 것이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br>나 역시 오늘까지 중국에서 9,755일째 살고 있다.이제 돌아갈까.아니면 중국에서 조금 더 있어야 할까.취직하는 것만이 한국으로 돌아갈 길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회사와의 노동분쟁이 마무리되어야 하고, 동시에 중국보다 한국에서, 혹은 중국의 파견직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갈 기회도 잡아야 한다.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귀환은 단순히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br>요즘 나는 이력서를 쓰고 또 수정하면서 또 다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과연 나는 누구인가.몇 장의 이력서가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회사명, 직책, 경력연수, 산업군, 성과, 나를 규정하는 키워드.그것들이 과연 나인가.<br>나뿐만 아니라 현대의 취업이라는 행위 자체가 과연 사람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회사들이 올린&nbsp;공고도 애매하고, 사람마다 살아온 경험도 모두 다르다.그런데 몇 장의 서류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분석하고, 뽑거나 떨어뜨린다.그래서 취업은 뽑는 쪽이나 구직자 모두 어쩌면 제비뽑기에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신중하게 판단하지만 결국 어느 순간에는 복불복이 되어 버린다.이왕 그렇다면 차라리 복이나 짓고 착하게 살아야 취직도 잘 되는 것일까.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착하게 살자.과연 이게 답일까.<br>도스토옙스키의 &lt;백치&gt; 를 읽으면서 나는 미시킨 공작이 지닌 연민에 대해 연민을 느꼈다.그는 너무 순수하고, 타인의 고통을 너무 깊이 느낀다.작가 도선생의 표현대로 공작은 예수를 모델로 삼았을 정도로 연민의 상징으로 보였다.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기는 나스타샤 필리포브나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인물이 미시킨이었다.하지만 그는 결국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나스타샤는 죽고, 로고진은 시베리아로 가며, 미시킨은 결국 다시 백치가 된다.&lt;백치&gt; 모든 등장인물들이 비극으로 끝나고야 만다.과연 연민 만으로는 누군가를 또는 자신 조차 구원하지 못하는 것일까.<br>나는 이 부분에서 &lt;백치&gt; 를 다분히 불교적으로 읽게 되었다.연민만으로는 사람을 구할 수 없다.미시킨은 순수하고 착했지만 지혜롭지 못했다.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것과 그 고통의 원인을 보고 끊어내는 것은 다른 일이다.그래서 연민은 단순한 착함이 아니다.지혜로워야 한다.지혜는 연민이 현실에서 균형을 잡도록 하는 중심추가 되고,&nbsp;연민은 지혜가 차가운 계산으로 흐르지 않게 한다.그래서 지혜와 자비는 둘이 아니다.<br>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가 지혜로웠기 때문일 것이다.그는 완전 무결한 인간이 아니었다.그는&nbsp;오만했고, 무모했고, 욕망도 가득했다.그러나 그는 점점 성숙해지고 둥글어져 갔다.그는 기다렸고,&nbsp;싸워야 할 때와 숨겨야 할 때를 구분했고,&nbsp;수없는 실패 속에서 다시 시도했다.그러자&nbsp;인간적인 결핍을 지혜가 채워가기 시작했다.<br>그래서 오디세우스의 귀향은 단순히 착한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다.결함 많은 인간이 경험을 통해 지혜를 배우며 귀환하는 이야기다.그리고 지혜의 끝에는 다시 자비가 있어야 한다.살아남는 것만으로 귀환의 여정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나와 함께 떠났지만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을 때, 지혜는 비로소 자비를 만난다.내가 영화 &lt;오딧세이&gt; 의 마지막을 죽어간 전우들의 명복을 비는 여행으로 읽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br>살아간다는 것은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의 다른 말이다.살아 있다는 것은 순수 체험이다.체험은 느낌이고 감정이다.영화를 보는 것도,&nbsp;책을 읽는 것도,&nbsp;일을 하는 것도,&nbsp;사람을 만나는 것도,&nbsp;모두 살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체험이다.죽음은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방식의 체험이 끝나는 문이다.그래서 살아 있음은 생생히, 여실히 체험하는 것을 즐겨야 한다.그러나 생생하게 산다고 해서 반드시 잘 사는 것은 아니다.<br>욕심도 생생하고,&nbsp;질투도 생생하고,&nbsp;오만도 생생하고,&nbsp;분노도 생생하다.우리는 자주 나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업들에 휩쓸린다.이기심, 욕심, 투쟁, 오만, 피해의식, 과망상.그 속에서 지혜는 사라지고 연민도 사라진다.<br>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나야 한다.잊었다가 다시 알아차리고,&nbsp;휩쓸렸다가 다시 돌아오고,&nbsp;닫혔다가 다시 연민을 회복해야 한다.이것이 지혜를 놓치지 않고 연민이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하는 이유다.<br>그러고 보면 이타카란 단순히 돌아가야 할 귀환처가 아니다.나의 이타카.그곳에는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그러나 이타카가 중요한 것은 단순히 고향이기 때문이 아니다.그곳으로 가야만 본연의 내가 되기 때문이다.즉&nbsp;지혜와 자비를 지닌 내가 되기 때문이다.<br>본래 돌아갈 곳이 따로 없으면서도 우리는 돌아간다.오디세우스에게 이타카가 있었고,&nbsp;소무에게 돌아갈 한나라가 있었고,&nbsp;강항에게 돌아갈 조선이 있었다.나에게도 이타카가 있다.나는 아직 그곳에 도착하지 않았다.나는 아직 길 위에 혹은 바다 위의 여정에 있는 중이다.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귀향이란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다.자비와 지혜를 잃지 않는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일이다.완성이란 한 번도 길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nbsp;길을 잃을 때마다 다시 돌아올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br>그래서 나는 여전히 나의 이타카로 향하는 중이다.&nbsp;그곳에는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고,&nbsp;그곳으로 가야 내가 다시 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어쩌면 우리 모두 자신만의 이타카로 향하는 오딧세우스일지도 모른다.<br>나는 오딧세우스다.<br>이로서&nbsp;미시킨 공작은 나스타샤 필리포브나를 이미 구원시켰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917/84/cover150/ek442534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917846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