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철학자들의 카페 - 천재 교수와 호기심 소녀의 꼬리를 무는 철학 편지
비토리오 회슬레.노라 카 지음, 김선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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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년 전 읽을 때 그 땐 이 책이 좀 어렵다 느껴졌었는데, 그 사이 읽은 철학사와 철학자에 관한 책도 제법 되고 더구나 또 비슷한 성격의 '소피의 세계'도 읽었으니, 이제 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에 손에 잡았지만, 글쎄, 역시 거기서 거기. 하기야 11세 소녀 Nora Kreft는 차치하고라도 22세에 Tübingen大 박사 26세에 Essen大 교수란 믿기지 않는 경력의 저자 V. Hösle 이 두 '철학 천재' 사이에 오간 편지 내용이 어찌 그리 ‘보통 독자’에게 만만할 수 있겠는가.


‘소피의 세계’가 시대적 순서에 따른 철학사조의 흐름을 따라 설명하는 일종의 ‘교과서적 입문서’ 성격이라면, 이 책 역시 철학입문서라지만, 일단 철학사조 전체에 접해본 사람의 입장에서 각종 테마에 대해 생각해보는 ‘철학 가지고 놀기’ 성격이다. 천재성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바로 '죽은 그러나 영원히 젊은 철학자들의 카페'. 회슬레 교수가 노라의 편지내용을 그곳에 들고 가면 철학자 누구누구가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더라는 식의 단선적 설명이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시대 그들이 속했던 문화권과는 상관없이 그 자리에 함께한 철학자들이 때로는 자기들끼리 격론을 벌이는데, 거기에 노라의 궁금증을 풀어줄 견해들을 드러내는 그런 식이다. 때로는 노라 자신이 집 근처에서 철학자를 만나고 회슬레도 길에서 심리학자들을 만나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확장되어가며 종횡무진 그 다루는 테마 등장인물에 한계가 없다.


책의 성격상 그렇기도 하지만 오가는 서신 형태의 대화에 독자도 사색의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진리란 무엇인가. 통념과 교육 또 주변 환경의 의미는? 한 생각이 옳다면 다른 생각은 반드시 그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사고와 대화’라는 관점에서 이 소녀와 교수라는 존재의 의미는? 나 자신은?


또 하나 궁금했던 점. 그 철학소녀. 어떻게 그 나이에 그렇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게 되었으며 어떻게 그렇게 깊은 ‘본질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을까. 책의 마지막 부분, 이탈리아에 갔더니 음식점마다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있더라는 소녀의 편지에 대한 답장에 나오는 구절. ‘너의 부모가 집에 텔레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축복으로 생각하라.’ 사실 나 자신 역시 이 ‘해악상자’와 결별한 후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책과 사색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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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도전 1 - 하늘을 버리고 백성을 택하다 정도전 1
이수광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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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불위의 왕이 전권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출신성분과 상관없이 오직 능력에 따라 인재가 발탁되고, 그런 사람들에 의해 또 올바른 제도에 따라 '오직' 백성을 위해 다스려지는 나라. 오늘 날에도 힘든 이런 이상향을 꿈꾸던 '젊은 이'의 700년 전 이야기.

오랜만에 소설다운 소설을 손에 잡았다. 마치 김동인의 옛 소설을 손에 잡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차분하고 정겨운 장면 묘사, 하지만 무슨 추리소설을 읽듯 첫 페이지부터 끊이지 않는 긴박감. 물 흐르듯 거침없고 시원한 문장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시대상황과 위정자들의 세계 그 큰 틀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그 속에서의 인간 정도전이 어떤 성장과정을 거치며 그의 정치철학 틀을 형성해 나가는지, 어떤 역경을 거치며 그 자신의 길을 열어나가는지 그 과정묘사가 세밀하고 또 치밀하다.

처음 만난 작가 이수광의 소설, 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그의 작품세계에 친숙해져있던 그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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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아프리카사 - 우리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아프리카의 진짜 역사 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하는 역사
김시혁 지음 / 다산에듀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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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나 카르타고 말고도 아프리카에 무슨 '역사적 사건'이란 것이 있을까 하는 미덥지 못한 마음으로, 하지만 다른 한 편 가벼운 호기심으로, 손에 잡은 책인데 흐뭇한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는다. 역사서라기보다는 제목 그대로 전체를 아우르는 '큰 그림'을 보여주는 그런 책. 읽기에 전혀 부담이 없고,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다. 이제는 아프리카의 무슨 나라 이름을 들으면 거기에 얽힌 어떤 이야기가 떠오를 것 같은 그런 '건방진' 느낌까지도 들 정도로 '빠져들어 읽게' 되었었으니 이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또 생각지도 않았던 추가의 소득도 있었으니, 바로 역사적 관점에서의 기독교와 이슬람교 상관관계. 유럽역사를 다루는 책에선 기껏해야 십자군 전쟁이나 동 서 로마제국 편에 단편적으로 취급 될 뿐이라 궁금했고, 아랍 쪽 관점에서의 책이라곤 기껏해야 코란 위주로 쓰인 책들뿐이었기에, 개괄적이고 공평한 그림을 얻을 수 있는 무슨 책이 없을까 항상 아쉬워했었는데, 이 책에 그런 궁금증을 재워줄 수 있는 내용이 듬뿍 들어있을 줄이야. 지금까지는 유럽지도만 보면서 그것이 전체그림이라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북 아프리카 부분이 채워져야 그때 비로소 '전체 역사지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그런 기쁨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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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을 말하다 - 이덕일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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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과문한 탓인지 아니면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에 젖어서 그랬는지, 역사라는 흐름보다 역사 속 권력자의 인간상에 흥미를 느껴 손에 잡았던 책은 주로 중국의 역사나 서양사였다. 이제야 비로소 우리 역사를 바로 보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을 만났다는 생각이다.

지난번 이 작가의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를 읽고 오래 기다리다가 이 '조선왕을 말하다'를 손에 잡았다. 이 책은 우리나라 이 땅의 오백년을 다스렸던 임금들의 인간상을, 악역을 자처한 임금들로 태종과 세조, 신하들에게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 전란을 겪은 인조와 선조, 절반만 성공한 영조와 성종을 예로 들어, '승리자의 기록'인 '왜곡된' 1차 사료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작가의 예리한 통찰력과 비판력으로 관찰된 시각에서 풀어나간 책이다.

역사의 흐름 그 자체가 반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그때의 시대상황과 권력자 주변의 모습 또 거기에 처한 권력자의 심리상태와 통치행위 그 행태가 반복되는 것은 사실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 책은 오늘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정치현실을 바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지침서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을 읽으며 느낀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대신, 작가가 '웅변'하고자 하는 문장 중 몇몇을 기록한다.

- 모든 군왕은 성군으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성군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군주의 피나는 노력이 시대의 요구와 합치될 때 탄생할 수 있다.   

- 후계자가 안 보이는 정치는 미래가 불안하다. 후계자를 경쟁자로 여겨 꺼리게 되면 검증된 적이 없는 인물이 혜성같이 등장해 정권을 잡게 된다.

-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시대를 읽는 능력이다. 시대를 읽는 능력이 있어야 미래를 조망할 수 있다.

- 명분은 때로 실용보다 중요하다. 행위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 가치관은 그 어떤 물질보다 중요하다.

- 권력은 시장과 같다. 권력자는 사람장막에 갇혀 이들이 보여주는 환상에 도취된다.

- 객관적 사실(fact)과 주관적 의견(opinion)은 다르다. 그러나 세상에는 늘 의견을 사실로 만들려는 세력이 존재해왔다.

- 정적에 대한 탄압은 거꾸로 그를 도와주는 결과로 나타나기 쉽다.

- 정치일정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은 사회 안정의 중요한 요소이다.

- 아무리 좋은 정책도 주위의 뒷받침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 절차의 투명성은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

- 최고 지도자의 콤플렉스를 씻는 방법은 성공한 정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 콤플렉스에서 허우적거리다 실패한 정치가로 끝나기 마련이다.

- 유능한 지배층은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지만, 무능한 지배층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한다.

- 지배층이 피지배층의 신뢰를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노블레스 오블레쥬를 실천하면 된다.

-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민심을 얻는 것이다. 민심 획득의 요체는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제도와 관습의 개혁이다.

- 정치는 상대방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 정치가는 냉정한 현실 인식 위에서 이상을 추구하는 직업이다.

- 현안을 바라보는 정치가와 일반국민들의 시각이 서로 다를 때 비극이 온다.

- 사회불안요소 해소의 최선의 방법은 그 불안요소의 정책적 수용이다.

- 세상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경쟁할 때 발전하는데, 정치도 마찬가지다.

- 지도자가 후세에 기여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 좋은 후계자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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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 이진우 교수의 철학적 기행문
이진우 지음 / 책세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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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학 이진우 교수가 고뇌 속 니체의 방랑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면서 니체의 편지글과 그의 책에 나오는 문장들을 곁들여가며 쓴 '철학적' 기행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 그 말 대신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다. 생각하는 만큼 보이는 법.

작가는 말한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라는 Übermensch로서의 자아를 찾아 나섰듯 자기도 그 발자취를 좇으며 자신의 자아와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섰던 것이라고.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는 자세를 권하는 마음에서이리라. 그렇다고 니체의 방랑 도시를 기계적으로 밟아나간 것은 아니고, 그중 대표적 장소라 할 수 있는 Röchen의 니체의 생가, Schulpforte 기숙학교, 대학시절의 Leibzig등 독일 도시와, 병마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 애쓰던 요양지이자 Zarathustra의 생각이 잉태되던 스위스의 Luzern과 Sils-Maria, 또 구토와 발작이 계속되는 가운데 마지막 힘을 다해가며 집필의 정열을 놓지 않았던 제노아 토리노 밀라노 등의 이탈리아 도시들을 찾은 사색여행이 그 내용이다.

철학하는 사람들, 그들은 일반적으로 아는 것도 많고 생각도 깊어 자신들이 쓰는 단어 문장 그 하나하나에 무슨 뜻인가를 심어 넣으려 그 사유의 깊이만큼 딱딱한 글을 쓰기 십상이라는 것이 내 선입견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성격 상 그럴까? 어떻게 이렇게 문체가 수려하며 그 흐름이 이렇게 시원시원할 수 있을까. 창밖을 스쳐가는 경치, 산책하며 관찰하는 마을의 모습, 살로메와 함께하는 니체의 심경, 어머니와 누이동생의 보살핌, 그 어떤 묘사에도 '어깨에 힘 들어감'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문학적 필치다. 그렇다고 미사여구의 나열이란 뜻은 아니다. 독일에서 니체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니체학회의 회장을 지낸 저자이니 만큼 그 이야기 흐름 속에는 깊은 생각과 철학이 자연스럽게 배어있다.

오랜만에 좋은, 아주 좋은,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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