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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ㅣ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4년 1월
평점 :
시는 어렵다. 읽기도, 쓰기도 어렵다. 왜 그럴까 가만 고민해 보면 지난 교육과정에서 어렵게 배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어, 문장을 쪼개어 화자의 의도나 속내를 찾아야 했고, 왜 특정 자리에서 줄바꿈을 했는지 추측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시라는 짧은 노랫말로 세상을 향해 확실하고 중요한 의미를 던져야만 하는 것처럼 느꼈다. 사실 학습 차원을 벗어나 접하는 모든 시는, 그 시인의 유명세나 시인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 그저 시였다. 내 마음에 닿는 대로 나름의 운율과 소리를 즐기면 그만이었다. 그럼에도 자꾸만 불쑥불쑥 올라오는 학습된 자아를 마주할때면 불편하게 느껴졌고, 때문에 스스로 찾아서 시를 읽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다.
📍사랑과 고통은 동의어입니다. 시와 산문이 한 몸이듯이 사랑과 고통도 한 몸입니다. 사랑 속에 고통이 있고 고통 속에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과 고통은 결코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고통이 산문이라면 사랑은 시입니다. 시는 고통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꽃입니다. (6p)
시가 있는 산문집이라는 데서 한시름 놓았다. 더군다나 시와 산문에 대한 저자의 소개말만으로도 지난 날 시로부터 막연히 뒷걸음치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책은 단순히 시만 실린 것이 아니라 각 시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한 꼭지씩 함께 소개된다. 초반에는 시의 뒷이야기들이 더 궁금해서 안달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는데, 점점 페이지가 쌓일수록 뒷이야기들에 넘어가기 전에 시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 책은, 그런 매력이 있다.
꼭 한 번, 시간과 공을 들여 필사하고 싶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편의 시들만을 옮겨 써도 좋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시처럼 아름다운 산문들도 옮겨 쓰는 정성을 다하고 싶은 책이다. 마음에 박힌 문장들을 내 손으로 옮겨쓰고, 나만의 단상을 함께 기록하는 일만큼 기분 좋은 몰입도 없다. 그런 생각의 뿌리에는 책의 모든 페이지마다 빼곡이 담긴 정호승 시인만의 강렬한 목소리가 있다. 한 권의 책을 통틀어 삶에 대해, 사람에 대해, 세상에 대해 시인이 외치는 목소리가 시와 산문을 통해 메아리퍼져 흐른다. 부디 많은 이들에게 이 다정하고 힘있는 목소리가 퍼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