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구데리안의 서재 (구데리안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8403125</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전쟁사를 탐독하는 책덕후입니다.</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30 Oct 2026 05:41:30 +0900</lastBuildDate><image><title>구데리안</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78403125403915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78403125</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구데리안</description></image><item><author>구데리안</author><category>인문</category><title>KBS특파원의 눈으로 본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나.˝ - [전쟁 이후의 세계 이미 시작된 미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8403125/17456007</link><pubDate>Mon, 17 Aug 2026 17: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8403125/1745600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138632&TPaperId=174560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6/43/coveroff/k83213863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138632&TPaperId=1745600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전쟁 이후의 세계 이미 시작된 미래</a><br/>금철영 지음, 강인경 그림 / 이든하우스 / 2026년 05월<br/></td></tr></table><br/>미국-이란 전쟁이 시작된 지 3주 즈음이었던 지난 3월 중순, 자칭 '세계의 보스'이자 타칭 '트러블 메이커'인 트럼프가 특유의 장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그 상대는 이란이 아니라 어이없게도 오랜 우방인 나토 동맹국들이었다.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의 안보 우산에 무임승차한 주제에 미국이 급박할 때에는 돕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는 나토 탈퇴까지 운운하면서 앞으로는 당신네들끼리 잘 해보라며 으름짱을 놓았다. 나토 동맹국들에게는 그야말로 적반하장이자 배은망덕일 것이다. 걸프전쟁을 비롯하여 아프간-이라크 침공 등 그동안 미국의 전쟁에 부지런히 동참하면서 적지 않은 비용과 인명희생까지 감당해 왔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주장은 사실 왜곡일 뿐더러, 정작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아프간에서 철수할 때 아무런 사전협의나 정보공유도 없이 일방적으로 손을 떼기로 결정하여 미국만 믿고 있던 동맹국들을 곤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게다가 트럼프가 중동의 문제아 이스라엘과 야합하여 멋대로 사고치는 바람에 전 세계가 피해를 보고 있는데 이제와서 뒷수습은 나토를 들먹이고 있으니 뻔뻔함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안그래도 그동안 나토를 가리켜 종이 호랑이라며 공공연히 무시한 트럼프에게 쌓인 것이 많은 이들로서는 "뭐 우리는 베알도 없는 줄 아냐?"라고 할 듯. 전쟁은 일으키기는 쉬워도 끝내기는 어렵다는 만고의 진리를 무시한 트럼프는 한층 기고만장해진 이란이 이참에 해협 통행료를 뜯겠다고 하자 남이 삥 뜯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내가 뜯겠다는 부동산 투기꾼다운 기똥찬 발상 전환으로 가뜩이나 기름값 상승에 격앙된 인류의 염장에 불을 질렀다. 고집센 성격에 입만 열면 허세지만 속내는 자기가 사고치기 전으로 로드 신공을 하고 싶은 심정 아닐지.<br>한편으로 트럼프의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제아무리 아니꼽다고 한들, 나토는 미국 없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의 엄포가 전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는 점이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나토 동맹국들의 딜레마이다. 네덜란드 전 총리이자 나토 사무총장인 마르크 뤼터(Mark Rutte)는 트럼프가 유럽을 무시한다며 분노한 일부 회원국들의 자강론에 대해 "꿈같은 소리"라면서 일축했다. 냉전 종식 이후 평화에 젖어 전쟁을 잊은 결과였다. 유럽 국가들은 국방비를 대폭 줄이는 대신 경제 성장과 복지에 지출했고 젊은 세대의 표를 얻을 요량으로 징병제를 폐지했다. 군대는 최소한의 수준으로 억제되었으며 무기와 장비는 노후화되었다. 냉전 시절 소련의 위협에 맞서 각기 수천대의 전차를 보유했던 영국, 프랑스, 독일은 이제 탈탈 털어봐야 200~300여대 남짓에 불과하다. 해공군의 사정도 다를 바 없다. 사실상 무장을 해제한 셈이다. 구소련이 무너진 이상 더 이상 유럽에서 과거와 같은 전면 총력전이 벌어질 일은 없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저널리스트가 쓴 &lt;노르트스트림의 덫&gt;은 서방 지도자들이 푸틴을 얼마나 안이하게 여겼는지를 신랄하게 지적한다. 이들은 푸틴이 구소련 지도자들과 달리 말이 통하는 상대라고 여겼고 그가 값싸게 공급하는 러시아산 에너지는 유럽인들을 방심시켰다. 심지어 프랑스는 자국 최신 기술이 집약된 미스트랄급 강습상륙함 2척을 러시아에 판매하려고 했을 정도였다. 서방과 푸틴의 밀월은 2014년 우크라이나 마이단 혁명과 러시아의 크림 반도 전격 합병과 함께 끝났다. 서방 지도자들은 그제야 푸틴이 무해하기는 커녕 속이 시커먼 야심가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알맹이 없는 비난과 경제제재 외에 서방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나토 가입을 호소하는 우크라이나의 요구는 거부되었다. 이들로서는 오랜 평화와 값싼 러시아산 에너지를 포기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만 눈딱감고 희생하면 우리한테 불똥 튈 일은 없을 거라는 게 서방의 믿음이었다. 아프간과 이라크의 수렁에서 10년 넘게 허우적거리던 미국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이런 시절도 있었다며. 2001년 9월 25일 독일 의회에서 기립 박수를 받는 푸틴. 러시아의 젊은 신임 대통령이었던 그는 철지난 대결 대신 화해와 협력을 강조하여 그때까지 러시아를 경계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서방에게 자신이 무해한 존재임을 각인시켰다. 서방 지도자들은 자신들만 코트를 벗으면 '우리 시대의 평화'가 올 거라고 믿었지만 정작 푸틴이 코트를 벗지 않았다는 사실은 간과했다.<br>2022년 2월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했을 때 서방 내 친러 좌파 지식인들은 그의 상투적인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유럽의 위기는 푸틴 때문이 아니라 나토의 동진 탓"으로 돌렸지만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서방의 진짜 실수는 나토를 동진시키지 말라는 푸틴의 경고를 한귀로 흘려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자극할까봐 저자세로 일관하면서 전쟁을 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남을 위협하지 않으면 남도 나를 위협하지 않을 거라는 안이한 발상이었고 그 댓가를 푸틴의 공갈과 트럼프의 멸시로 단단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유럽의 처지는 대공황 이후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영국과 프랑스가 주변국들을 거침없이 집어삼키는 히틀러의 야망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던 1930년대 말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와 코로나의 여파로 극심한 경제 불황에 시달리는 유럽의 여론은 분열되고 뒤늦은 군비 확충과 징병제를 부활하려는 시도는 기성세대가 수혜만 누리고 책임은 우리에게 떠넘긴다는 젊은 세대의 거센 저항에 부딪치는 판국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신들의 피로서 귀중한 시간을 벌어주었지만 정작 서방은 어영부영하면서 날리고 있다. 인간이란 바로 옆집에 불이 나도 내집에 옮겨 붙기 전까지는 절박감이 없는 법이니 말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되풀이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어리석음"이라고 했던가.<br>이든하우스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도서 &lt;전쟁 이후의 세계, 이미 시작된 미래&gt;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꾸어놓은 유럽의 모습, 그리고 지구 반대편 우리에게는 또 어떤 여파가 미치고 있는지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KBS 베테랑 종군기자로 30여년 동안 이라크, 우크라이나, 중동 등 세계 각지의 분쟁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우리가 TV로만 보는 전쟁의 잔혹한 참상과 그 속의 비극을 몸소 체험했다고 한다. 덧붙여, 작년 KBS 시사기획창에서 &lt;우크라이나 임팩트&gt;라는 제목으로 2부작을 방영한 것이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던데 봐야 할 듯.<br>&lt;우크라이나 임팩트&gt;에서 러시아의 드론 공격으로 파괴된 키이우 도심을 촬영하는 저자와 취재팀. 미국이 내전에 빠진다는 가상 영화 &lt;시빌워&gt;에서는 전장에서 비무장한 언론인들이라고 해서 결코 안전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저자 또한 현장을 취재하는 동안 위험천만한 경우가 많았으며 그로 인한 트라우마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br>이 책은 제일 먼저 전쟁이 바꾸어놓은 우크라이나의 일상을 다룬다. 그러고보니 우크라이나 전쟁도 어느새 4년 반이 지났다. 한국전쟁의 3년 1개월과 제1차 세계대전의 4년 4개월을 갱신한 것이다. 그러고도 여전히 끝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도 어마어마한 파괴와 살육이 벌어졌지만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나은 점은 있었다. 적어도 전후방의 구분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잠깐의 안식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로 날아올지 모르는 미사일과 드론 공격, 밤낮없이 울리는 공습 경보, 폭격이 내 머리에도 떨어질지 모른다는 극한의 공포심, 공습이 지나간 뒤 돌무더기로 변한 건물과 그 안에서 구조대원들이 필사적으로 꺼내는 시신과 부상자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울음소리. 전쟁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기는 쉬워도 그 난장판 속에서 과연 이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럼에도 우크라이나인들은 견뎌내고 있다. 그들은 푸틴에게 굴복할 생각이 없다. 그게 이 전쟁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이 아닐까 싶다.전쟁 전에도 다큐멘타리 제작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겨울철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미소를 지으며 한결같이 말했다. "아름다운 5월에 오세요." 하지만 2022년 2월 이후 그런 5월은 오지 않았다. - p.28<br><br>미사일과 드론 공습으로 사이렌이 울리면 방공호로 달려가야 한다. 그게 싫다면 집안에 그대로 머물며 운이 좋기를 바라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긴장 속의 밤은 계속된다. 무엇보다도 전쟁 기간에는 뭐든 익숙해진다고 해도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 사이렌 소리이다. '에에엥' 하는 사이렌 소리의 그 기묘한 음색은 들을 때마다 생경하고 소름이 끼친다. 특히 자신이 머무는 집이나 호텔 등에서 공습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면 사이렌 소리에 대한 공포는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 p.31<br><br>전쟁이 없었다면 그저 하루하루의 고된 일상을 마치고 맥주 한잔 또는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겼을 것이다. 아니면 거리에 즐비한 멋진 책방들이 늦게까지 문을 여는 만큼 그곳에서 고즈넉하게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고 드론의 기계음으로 뒤범벅이 된 전장 한복판에서 스러져가고 있는 것이다. 수도 키이우를 벗어나 한적한 마을이나 지방 소도시에 가면 남편이나 자식, 손주들을 전장에 보낸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된다.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은 가족 전체가 온 몸으로 전쟁의 비극을 맞닥뜨린다. - p.45<br>귀환병들은 허리를 굽혀 사진을 자세히 쳐다보고 가급적이면 어떤 말이라도 하려고 애를 써본다. 간혹 어떤 귀환병들은 실종자 가족들이 들고 있는 사진 속의 주인공을 알아보고 어디서 함께 싸웠는지, 실종되었다면 어디로 끌려갔을 것이라고 얘기해 주기도 한다. 가족과 관련된 아무런 정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고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다. 곳곳에 비통함과 울음 소리가 가득하다. 함께 따라온 어린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우크라이나 깃발을 펼치고 우크라이나어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훗날 이 아이들이 자라서 돌아오지 않은 아빠를 기다렸던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또 어떤 상흔으로 간직하게 될지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도 먹먹할 수밖에 없다. - p.89<br><br>그러나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연민을 떠나서 우리가 정말로 주목할 부분은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일상만 바꾸어놓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책의 2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 최초의 '드론전쟁'이다. 1991년 걸프전에서 미군이 순항미사일과 스텔스 전투기같은 최첨단 병기와 고도로 훈련된 병사들을 결합시킨 기동전으로 이라크군을 단숨에 분쇄함으로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면 이번전쟁의 주인공은 우크라이나군의 드론들이다. 전쟁 초반에만 해도 서방을 향해 무기를 달라며 애걸했던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원조에만 의존하는 대신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무기를 만들어냈다. 이점이 미국에만 매달리다가 폭망한 남베트남이나 아프간과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하늘에서 쏜살처럼 날아오는 드론들은 러시아군의 기갑부대들을 괴멸시키고 이제는 모스크바 상공까지 위협하여 푸틴에게 잠 못 드는 밤을 선사하고 있다. 엊그제에는 독일에서 열린 미국과 나토 동맹국 간의 '컴파인드 리졸브(Combined Resolve)'훈련에서 우크라이나 드론부대가 미 기갑부대를 일방적으로 쓸어버렸다는 뉴스 기사가 떴더라. 물론 어디까지나 가상 훈련이며 미군이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니기에 '천지이변'이라도 일어난 양 호들갑을 떠는 국내 언론들의 행태는 걸러 읽어야겠지만 전쟁 이전이라면 우크라이나군이 미군을 이기는 것은 결단코 상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틀린 말도 아니랄까.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로봇이다. 푸틴이 보이스 피싱으로 멋 모르는 외국인들을 낚아서 용병으로 쓰거나 심지어 김정은에게 손을 벌여서 북한군으로 머릿수를 채움으로서 체면 깎이는 꽁수를 부린다면 그런 방법을 쓸 수 없는 우크라이나군은 로봇으로 대체하고 있다. 심지어 로봇이 러시아군 진지를 점령하고 인간 병사들을 포로로 잡아서 세상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아직은 드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조종하지만 요근래 급성장하는 AI가 대체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터미네이터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히틀러의 야망이 인류로 하여금 핵무기라는 금단의 무기에 손대게 했다면 푸틴이 또 다른 금단의 사슬을 끊게 만든 셈이다. 우크라이나군의 독특한 실적 보상도 주목할 부분이다. 구태의연한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전과를 올릴 때마다 포인트를 지급하여 필요한 무기와 물자를 쇼핑몰에서 직접 주문하고 순위를 매겨서 부대간의 경쟁을 유도한다. 뇌굳은 기성세대가 흉내내지 못할 MZ세대다운 유연한 발상이다. 바깥 세상에서는 전쟁을 게임화한다며 윤리가 어쩌구한다지만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드론 조종사 훈련장은 축구장 크기의 콘크리트 건물 안이었는데 여기서 야구를 해도 홈런을 날릴 수 있을 만큼 높이도 대단했다. 이 안에는 각종 장애물들이 있었는데 다양한 크기의 원형, 정사각형 구조물들이 주를 이뤘다. 조종사들이 드론을 이 구조물을 피하거나 안을 통과시키는 등 자유자재로 다루는 훈련을 받고 있었다. 기둥을 돌아서 숨어 있는 표적을 식별하고 공격하거나 땅을 파놓은 참호 같은 곳 안으로 들어가 드론이 부딪히거나 추락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조종하는 훈련도 이뤄지고 있었다. - p.119<br>일부 드론에서 촬영된 영상에서는 러시아의 전략폭격기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의 기체날개와 연료탱크 등 취약지점이 정밀 공격을 받아 화염이 치솟는 모습이 생생히 담겼다. 배터리로 움직이는 드론이 갈 수 있는 거리의 제약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주파수나 통신교란 등 전파방해도 피하면서 전략 목표를 타격한 일대 사건이었다. 위성 사진을 통해서도 지상에 있는 러시아 전략 폭격기들이 드론 공격으로 불에 탄 흔적이 선명하게 확인되면서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지상 활주로에 있는 항공기들이 이제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 역시 입증되는 사건이었다. - p.127<br><br>세상은 그때까지도 드론의 진가에 대해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러우전쟁이 발발하고 러시아의 전차부대가 줄줄이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무력화되는 것을 본 뒤에야 깨닫게 된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장은 현대전에서 대규모 기갑전력의 기동을 보기 힘들게 된 첫번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차들이 드론을 탐지하고 대항하는 호위 전력 없이 움직였다가는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는 드론의 손쉬운 표적이 되어 순식간에 파괴된다. - p.143<br>3부와 4부는 갈수록 각자도생으로 치닫는 새로운 국제 질서에 대한 얘기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도 미국 패권 시대는 내리막길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층 가속시켰다는 것. 푸틴이 2008년 조지아 침공 때처럼 제한전이 아니라 아예 우크라이나를 먹겠다며 덤빈 것 자체가 미국의 이빨이 무뎌졌다고 판단한 결과이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를 제지할 엄두도 못낸 채 젤렌스키더러 탈출을 종용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전진을 막은 것은 미국의 개입이 아니라 스스로 총을 잡고 일어선 우크라이나인들이었고 국민들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맹세한 젤렌스키의 용기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강대국들이라고 해서 약소국의 운명을 멋대로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과 약소국들 입장에서는 강대국들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존재이며 결국 내 나라의 운명은 나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했다. 너무 당연하면서도 쉽게 망각하는 진리 말이다. 저자는 '우크라이나 임팩트'가 흑해와 중동을 넘어서 우리네 세상을 어디까지 바꾸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조지아는 러우전쟁을 자국의 안보 위기로 규정하고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이를 극복할 다양한 방법을 고민했다. 단순히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조심스러운 행보만으로는 부족해 보였다. 미국이나 나토 역시 위기 시 조지아 문제에 적극 개입하도록 하려면 조지아의 전략적 가치가 더 커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유럽으로 가는 주요 에너지 수송로의 허브가 되는 것이었다. 이 전략이 성공한다면 조지아와 유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윈원 전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p.167<br><br>튀르키예가 해협을 봉쇄하지 않고 바닷길을 러시아에 활짝 열어주었다면 러시아는 북해함대와 발틱함대에서 최신예 군함과 잠수함을 파견하여 흑해를 완전히 장악한 뒤 우크라이나의 해상 곡물 수출을 차단하고 남부 해안을 초토화시켰을지 모른다. 하지만 해협의 수문장 역할을 톡톡이 해낸 탓에 튀르키예는 나토의 강력한 '동쪽 방패'라는 사실이 깊이 각인되었다. 미국은 F-35는 주지 않았지만 튀르키예의 F-16 전투기 현대화 사업을 지원하기로 하고 신형 기체 판매도 승인했다. - p.188<br><br>2026년에 시작된 중동 전쟁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시작된 나비효과의 결과물이다. 이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러우전쟁으로 러시아의 국력이 소진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중동 거점인 시리아에 대한 지원이 약화되었다. 그 결과 아사드 정권이 붕괴했다. 반군이 집권했지만 시리아 내 힘의 공백이 생기고 러시아가 구축한 방공망은 무력화되었다. 이스라엘이 이란 공격의 '기회의 창'을 확보한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이란 본토를 사상 처음으로 직접 공격했다. 대리인을 내세운 그림자 전쟁이 끝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8개월 만에 전면전이 발발했다. 미국도 개입하고 이란이 중동 내 미군 기지를 미사일 공격하여 전장은 중동 전역으로 확대했다. - p.213<br><br>폴란드가 추진 중인 바르바라 프로젝트는 4킬로미터 상공에 레이더를 띄워 반경 300킬로미터 범위를 감시하며 미사일과 드론을 포착해 요격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일종의 거대한 기구에 레이더를 장착하는 방식의 이 응용 레이더 시스템은 산이나 건물 등 장애물과 사각지대를 이용해 은밀히 날아오는 미사일과 드론을 포착할 수 있다. 실전 배치가 완료되면 폴란드는 동북부 국경지대는 물론이고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벨라루스 국경지대 깊숙한 곳까지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 p.224<br><br>러시아를 향한 경계심은 이 나라 지식인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라트비아의 사회 지도층은 러우전쟁 이전 러시아가 나토의 동진을 공개적으로 경고했던 것을 상기하면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경고를 과소평가했다는 자성도 나오고 있다. 상대방의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바람에 침공에 대비한 어떤 대비책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 p.255<br><br>러시아와 가장 긴 국경선으로 맞댄 핀란드가 나토에 합류함에 따라 북극해에서 발트해를 지나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철의 장막'이 완성되었다. 러시아로서는 지난 냉전 시대 철의 장막보다 더 길고 촘촘한 새로운 철의 장막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푸틴이 서방 세계를 향해 또다시 '러시아의 안전을 보장하라'고 외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 p.278<br><br>미국이 유럽의 안보 전선에서 사실상 후퇴하면서 '이제 유럽은 유럽 스스로 지켜라'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자 유럽에선 핵전쟁은 물론, 이로 인한 초대형 재난이 닥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제 미국이 주둔 미군 병력의 감축 등 추가적인 조치를 본격화한다면 유럽 내 위기감은 올라가고 혼란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 p.302<br><br>마지막장인 5부는 다름아닌 한반도에서의 '우크라이나 임팩트'에 대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머나먼 세상의 얘기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2024년 6월 18일 푸틴은 북한을 전격 방문했다. 유엔이 지정한 테러 국가이자 구 소련 붕괴 이후 사실상 방치했던 나라를 몇 십년 만에 찾은 것이다.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그 자리에서 북러 군사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미국이나 우리가 김정은 체제를 흔들거나 북한을 상대로 무력 행사를 한다면 러시아에 대한 공격으로 여기고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는 것이다. 1990년 한러 수교 이후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한 우리의 '북방외교'가 한순간에 허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북한 또한 그 댓가로 대규모 병력을 파견했고 푸틴은 이들을 총알받이로 삼아 쿠르스크를 되찾았다. 저자는 여기에 중국까지 끼어들어 북중러가 전에 없이 단단히 결속하고 있음을 경고한다.<br>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탄약과 포탄이 부족해진 푸틴은 북한에 손을 벌리는 신세가 되었고 결국 폐기했던 북러 군사동맹을 복원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 명기된 새로운 동맹조약은 그 자체로서 강력한 힘을 지닌다. 러시아는 북한과 조약 체결 이후 "한국이 북한을 침공할 리 없기 때문에 북러 조약 4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이런 황당한 설명을 늘어놓게 된 안팎의 배경을 상세히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 p.333<br>분명한 것은 이미 동유럽 지역 차원의 분쟁을 넘어 중동을 뒤흔든 전쟁의 여파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어떤 결말로 끝날지는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분단으로 길이 끊어지고 높아지는 철조망을 눈앞에서 지켜봤던 한반도로서는 지금 유럽이 던지는 질문들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이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과연 무엇인지, 대한민국은 답을 준비해야 한다. - p.342<br>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지구라는 좁은 세계에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라고 해서 우리와는 상관없다며 태평스럽게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당장 트럼프가 이란을 상대로 불장난을 한 덕분에 기름값이 폭증하고 우리 일상 생활에 여파를 주지 않던가. 우리네 세상은 급변하는데 여전히 작디작은 한반도에 갇혀서 국민들 앞에서 소모적인 정쟁에만 열을 올리며 제 밥그릇 지키기에만 여념이 없는 것이 대한민국 높으신 분들의 한결같은 모습이다. 이들이 둔감하다기보다 워낙 세상 바뀌는 속도가 빠르기에 인간의 두뇌가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정치인들을 탓하기 앞서 우리같은 소시민들의 관심사 또한 국내 방산업체들이 전쟁에 편승하여 어떤 수혜를 보고 그래서 내 주식이 얼마나 재미를 보는가이지 더 복잡한 차원의 얘기가 아니니까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진화되어 있다. ​한편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역사는 언제나 강대국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에 의해 수렁에 빠진 푸틴은 그 돌파구를 북한에게서 찾았다. 김정은은 자신의 존재감을 처음으로 장거리 미사일이나 핵실험같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방법으로 세상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정작 트럼프는 자신이 백악관에 재입성하면 24시간 내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큰소리 친 것이 무색하게도 전쟁 종식은 커녕 자신이 푸틴과 똑같은 수렁에 빠진 꼴이 되었다. 올초 출간한 &lt;약소국의 제2차 세계대전사&gt;에서는 약소국은 강대국들이 만든 국제질서에 순응하는 피동적인 존재가 아니며, 때로는 약소국이 강대국의 운명을 휘두르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운명의 주체로서 우리 자신의 의지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읽어보기를 권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6/43/cover150/k83213863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564316</link></image></item><item><author>구데리안</author><category>인문</category><title>트럼프가 미국을 바꾼 게 아니라 바뀐 미국이 트럼프를 선택했다? 팍스아메리카나의 민낯 - [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흔들리는 제국의 초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8403125/17439512</link><pubDate>Sat, 08 Aug 2026 19: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8403125/174395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9511&TPaperId=174395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8/8/coveroff/k50213951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9511&TPaperId=174395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흔들리는 제국의 초상</a><br/>이정민 지음 / 사이드웨이 / 2026년 06월<br/></td></tr></table><br/>"현재의 미국은 트럼프가 만든 것이 아니라 트럼프를 선택한 나라에 더 가깝다" - 머릿말 중에서.<br>4년에 걸친 국공내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49년 4월 24일 새벽 난징의 총통부 꼭대기에서 앳띤 공산군 병사들이 붉은 깃발을 내걸었다. 그것은 26년 뒤의 사이공이나 72년 뒤 카불에서 벌어질 모습의 전주곡이기도 했다. 물론 남베트남 최후를 다룬 다큐멘타리라던가 작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lt;카불 13일 낮, 13일 밤&gt;에서 나오는 것마냥 겁에 질린 사람들이 정복자들의 보복을 피해서 외국 대사관으로 좀비떼처럼 몰려들고 막 떠오르는 헬기에 목숨 걸고 매달리는 참혹한 엑소더스가 그 시절 난징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시청자들에게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공내전이 사실상 잊혀진 전쟁이다보니 외국 기자들이 남긴 단편적인 증언 외에 오늘날 대중 매체들을 통해서 접하는 내용은 거의 전적으로 공산당 공식 사료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한국전쟁 초반 북한군이 서울에 입성했을 때 서울 시민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북한 쪽 기록으로 얘기하는 꼴이나 다를 바 없다.<br>상하이에 입성한 공산군 병사들이 건물을 징발하는 대신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광경. 장제스의 국민정부군이 약탈을 일삼았다면 공산군은 "3대 기율, 8항 주의"를 내세워 인민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다는 서사는 오늘날까지도 민심을 얻어 천하를 차지했다는 마오쩌둥의 신화로 남아 있다. 하지만 공산당 정통성을 세우기 위한 프로파간다일 뿐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br>보다 중요한 점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미국의 국제 전략이 처음으로 쓴맛을 봤다는 사실이다. 국공내전은 2천여년 전의 초한지쟁과 달리 장제스와 마오쩌둥 두 사람만의 대결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유럽에서 점차 긴장이 고조되고 있던 미국과 소련도 얽혀 있었다. 특히 미국은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처럼 직접 군대를 보내어 싸우지 않았을 뿐 누구의 눈으로도 빼박할 수 없을 만큼 깊숙이 개입했다. '마셜 사절단(Marshall Mission)'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조지 마셜 원수는 군에서 예편한 뒤 트루먼의 특사로 중국에 파견되어 국공의 중재와 갈등 조정을 맡았다. 강직하고 깐깐한 원칙주의자로서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았던 그는 중국인들에게도 처음부터 불청객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양쪽 모두에게 불신과 증오만 샀고 자기 경력의 오점으로 남긴 채 1년 만에 진절머리를 내면서 떠나야 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임무였고 마셜 자신도 금방 깨달았지만 트루먼이 무시한 결과였다. 미국의 목적은 중국의 평화가 아니라 중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최소한의 비용만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마셜의 끊임없는 딜레마였다. 무엇보다도 그가 간과한 점은 당사자들에게는 단순히 누가 더 가지고 덜 가지고의 제로 섬 게임이 아니라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흥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마셜이 자신의 권위와 미국의 위세를 내세워 알맹이 없는 말 몇 마디만으로 중국인들을 억누를 수 있다고 믿은 것 자체가 오만함이자 무지였다.​나중에 마셜의 비판자들은 그를 가리켜 "중국을 잃었다."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마셜이 좀 더 잘했더라면 중국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장제스를 철저히 지원하던가, 반대로 공산당에게 보다 우호적으로 접근했더라면 냉전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며 베트남전쟁의 15년 악몽 또한 없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이자 &lt;Decisive Encounters: The Chinese Civil War, 1945-1950&gt;의 저자인 오드 아르네 웨스타드(Odd Arne Westad)는 "미국의 전능함에 대한 믿음이 만들어낸 신화"라고 반박한다. 맞는 말이지만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이 전능하지 않기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능한 존재라고 믿고 충분한 고민 없이 남의 일에 어줍잖게 끼어들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었다. 원래 미국은 국공의 게임판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다. 마셜 사절단은 중국인들의 요청이 아니라 태평양전쟁 말기 장제스와 스틸웰의 갈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자신의 본분을 잊고 사실상 중국의 총독이 되기를 원했던 스틸웰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장제스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의 가장 강력한 위협이었던 공산당에 눈을 돌렸고 옌안에 '딕시 사절단'을 파견하여 미국이 국공 문제에 발을 들이도록 끌여들었다. 스틸웰의 뒤를 이은 마셜 또한 미국의 원조를 무기삼아 장제스의 손발만 묶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여겼지만 어림없는 소리였다. 장제스의 승리를 돕지도, 마오쩌둥이 스탈린에게 접근하는 것도 막지 못한 채 빈손으로 떠남으로서 굳이 먹지 않아도 될 욕만 먹은 꼴이 되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나서지 않는 쪽이 더 나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국공내전은 미국 입장에서 어떤 교훈을 얻기에 수업료가 너무 적었다. 실패한 쪽은 자신들이 아니라 장제스였고 애초에 중국은 미국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나라였다. 바꾸어 말해서 더 작은 나라에서는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착각이었다. 한반도에서는 마오쩌둥에게 통렬한 일격을 허용했지만 간신히 체면치레라도 했다면 베트남전쟁은 미국의 완패였다. 미국인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전능한 존재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세계 패권국가로서 전능함에 대한 미련을 순순히 내려놓지는 못했다.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하고 미국의 방식으로 그 나라들을 바꾸겠다며 헛된 애를 쓰다가 쓸데없이 힘만 뺀 채 더 큰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경쟁자들에게는 도전의 기회를 준 꼴이었다. 푸틴은 기다렸다는듯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얼마 전에는 베네수엘라 독재자 마두로를 포획하는 성공에 고무된 트럼프가 성급하게 이란을 쳤다가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수렁에 빠뜨렸다. 미국인들에게 전능함이란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이라는 얘기이다. <br><br>지지난달 사이드웨이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 도서 &lt;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흔들리는 제국의 초상&gt;은 80년에 걸친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보여주는 것같은 트럼프 시대 미국의 민낯을 신랄하게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KBS의 24년 차 베테랑 여성 기자로서 지난 수년 동안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면서 바이든 시절 아프간 철수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가자전쟁, 트럼프 집권 등 굵직굵직한 미국의 국제 현안을 체험하고 이와 관련된 주요 인사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고. 그런 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 바로 이 책인 셈.<br>2024년 11월 5일 미국 대선의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였다. 그것도 8년 전에는 힐러리가 선거인단에서는 졌어도 총 득표에서는 이겼던 반면 이번에는 민주당의 완패였다. 트럼프를 가리켜 미국 대통령 치고는 그나마 말이 통하는 상대라고 여기는 푸틴이나 '이스라엘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네타냐후를 제외하고 전 세계 80억 인류 중 대다수에게는 그야말로 기막힌 광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앞서 1기 때에도 딱히 치적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을 뿐더러 말년에는 의회와의 갈등으로 사실상 식물 대통령 신세였다. 게다가 말만 번드르할 뿐,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는데다 2020년 대선에서는 극렬 지지자들을 선동하여 의회를 습격하여 민주주의를 위협했으며 심지어 무늬만 공화당이지 오만방자하고 제멋대로의 성격 탓에 공화당 내부에서도 극혐인지라 부시를 비롯한 전직 대통령 중에서 그를 위해 어느 한 사람 유세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리 민주당이 인기가 없다고 해서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선택한 것은 차악 대신 최악을 고른 꼴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미국에 대한 몰이해라고 일축한다. 트럼프의 당선은 단순히 위대한 미국을 들먹이는 그의 뻔뻔한 거짓말과 극우 매체들의 선동에 어리석게 넘어간 미국인들의 충동이나 변덕의 결과가 아니며, 트럼프가 집권하자마자 동맹국들을 상대로 관세 폭탄을 터뜨리고 여기저기서 좌충우돌식으로 일을 벌이는 것 역시 나름대로는 지지층의 여론을 고려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무뇌아가 아니라는 것. 그게 그 양반의 머릿속 계산이나 대다수 미국인들이 바라는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는 별개의 얘기지만 말이다.많은 사람들은 지금 우리 눈앞에 직면한 미국의 변화를 트럼프 개인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과연 미국과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건 한 명의 '돌연변이' 리더일까.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국가의 합리적 이성, 그리고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미국인들의 정서와 미국 사회의 선택이 그것이다. 트럼프는 거칠지만 단지 즉흥성에만 기대고 있는 건 아니다. 트럼프는 정치인이다. 여론을 읽고 지지층의 요구에 반응하며 움직인다. 재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쥐고 싶어 하는 성향상 더욱 그러하다. - p.11 <br>이 책은 제일 먼저 한국에 대한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시각을 다루고 있다. 우리로서는 가장 관심사이다. 그 중에서도 미 국방부 정책차관 엘브리지 콜비는 트럼프식 안보 실리주의의 단면을 보여주는 인물이며 저서인 &lt;거부전략&gt;은 2023년에 국내에도 출간되었더라. 나중에 읽어봐야 할 듯. 그는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은 우리의 주적인 북한이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것이며 북한에 대한 방어는 우리가 알아서 할 몫이라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한미동맹이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이 우리를 지켜주기 위함이었다면 이제는 중국 견제를 위한 수단으로 우리가 미국에 기여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심지어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핵무장도 용인할 수 있다는 것. 요근래 우리도 북핵에 맞서 핵무기를 만들자는 국내 핵무장론자들 입장에서는 고무될 얘기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양반 개인의 생각일 뿐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닐 뿐더러 NPT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문제이므로 트럼프가 승인하고 말고 할 부분이 아니라는 점에서 걸러들을 필요는 있다. 정말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더 이상 한미동맹에서 '공짜점심'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국 입장에서 제아무리 동맹이라도 자기네들에게 이용가치가 없으면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남베트남이나 아프간 등지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그들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앞으로는 가식과 위신으로 숨기지 않을 것이며 한국은 미국에 과연 쓸만한 동맹인지 스스로 증명해 보라는 게 콜비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br>"현재 주한미군은 북한에 집중하고 있지만 미국은 북한과 큰 충돌에 휘말릴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북한은 남한만큼은 아니더라도 매우 가공할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핵심은 한국이 북한에 대한 방어, 특히 재래식 군사력 단계에서 1차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 p.36 <br>"아시아에서 핵 비확산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한국과 대만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막았지만 북한과 중국에서는 실패했죠. 특히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이 확장억제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핵 비확산 정책을 고집하는 건 우스운 거죠. 더 나은 옵션을 찾을 수 없다면 '우호적인 핵확산'에 직면할 준비를 해야 해요. 동맹이 깨져서는 안 되니까요. 이스라엘의 경우 핵 보유가 나쁜 게 아니라 안보를 안정시키는 요소로 간주된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 같은 논리를 적용하는 게 왜 안되나요?" - p.42<br>미국은 더 이상 동맹을 지켜주는 패권국이 아니다. 오히려 동맹의 지원이 패권 유지의 필수 조건이 된 나라이다. 팔목을 비틀어서라도 동맹을 곁에 두어야 하지만 그들이 기댈만한 지원은 제공할 수 없는 나라, 약해지는 패권을 되살리려 시간을 벌어 힘을 비축하는 대신 위험은 동맹과 우방에 외주를 주는 나라. 그간 세계의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외양도, 내면도 작아진 미국을 우리는 앞으로 상대해야 한다. - p.52<br>본문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프간과 우크라이나에서 드러난 팍스아메리카나의 현실과 세계 최강 미국이 어쩌다가 그렇게 몰리게 되었는지, 그 빈틈을 사정없이 파고드는 중국의 거센 도전 속에서 여전히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미국의 딜레마, 그리고 그런 딜레마가 미국인들로 하여금 트럼프를 선택하게 되었고 설사 트럼프가 아니라 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건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는지를 이 책은 다루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을 바꾼 것이 아니라 트럼프 집권 이전부터 이미 미국은 바뀌고 있었다는 얘기.<br>작년에 개봉한 &lt;수퍼맨 리부트&gt;. 이전의 수퍼맨들이 절대적인 힘으로 희망을 주는 지구 지킴이였다면 여기서는 누명을 쓴 수퍼맨이 미국 정부에 의해 구금되고 다른 초인들은 그걸 알면서도 함께 엮일까봐 눈치만 보는 장면이 나온다. 수퍼맨도 미국에 까불면 혼난다는 트럼프 시대의 메세지를 보여준다랄까. 정작 수퍼맨은 커녕, 이란한테도 쩔쩔 매는 것이 이빨 무뎌진 미국의 현주소지만 말이다.<br>흔히 미국을 가리켜 국방비가 천조원이 넘는다고 '천조국'이라며 그 넘사벽적인 재력과 무궁무진한 군사력에 감탄한다지만(지금은 2천조가 넘었다.) 상당부분 허상이기도 하다. 그 많은 돈을 도대체 어디에 썼는지 병사들의 복지는 갈수록 형편없고 첨단 무기는 정비 불량에 허덕이고 있으며 탄약도 부족하다. 얼마 전에는 트럼프가 말 안 듣는 이란에 미국의 분노를 보여주려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재고가 바닥났다는 보고에 물러섰다는 기사가 떳더라. 특히 11척의 핵항모로 대표되는 해군력은 미국의 힘을 전 세계에 투사하는 수단이지만 군함의 태반이 심각하게 노후화된 반면, 신조함의 건조는 지연되는 판국이다. 그동안 제조업과 조선업을 등한시한 결과이다. 이제와서 트럼프가 아무리 '마스가(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친들 거의 숨이 끊어진 조선업을 당장 살릴 수는 없다보니 덕분에 우리 조선소들이 어부지리를 얻게 되기도. 얼마 전에 읽은 &lt;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gt;에서는 냉전이 끝난 뒤 천조국 미국이 국방비를 줄이기는 커녕 천정부지로 늘리고 있음에도 정치인들과 유착한 거대 군산복합체들의 비효율적인 구조와 중복 투자 때문에 미국인들의 세금을 얼마나 낭비하고 있는지 신랄하게 고발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저자 또한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br>미국의 힘은 자국의 군사력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뒤에는 유럽의 동맹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 혼자만이 아닌 나토의 작전이었다. 나토의 상호방위조약 의무에 따라 그간 미국의 도움만 받던 유럽 국가들이 처음으로 미국을 도우려 전장에 나섰다. 그런데 '동맹의 전쟁'은 '동맹없는 철수'로 끝났다. 미국의 황급한 철군은 나토 동맹국들에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유럽 국가들은 우왕좌왕했다. 수백, 수천명씩 현지에 뒀던 자국민과 현지 조력자들을 대피시킬 탈출계획도 마련하지 못했다. - p.57<br><br>우크라이나 전쟁은 갑작스러운 전시 상황에서 미국의 무기 공급망이 버텨낼 수 없음을 중명했다. 미국에는 오랫동안 '두 개의 전쟁은 어려우니까 한꺼번에 치르지 말자'라는 명제가 존재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은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과연 한개의 전쟁이라도 고스란히 단독으로 치를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 p.81<br>소련이라는 적이 사라지고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 되자 미국의 방위산업은 갈 길을 잃었다. 미국 정부는 1988년부터 총 다섯 차례에 걸쳐 350개 주요 군사 기지와 시설을 꾸준히 폐쇄하고 이에 딸린 정비 시설도 감축했다. 한때 비축했던 무기 제조용 광물과 금속들도 민간에 매각했다. 방위산업 역시 축소의 길로 접어들었다. 냉전 종식 직후인 1992년 미 의회에 제출된 보고서는 주요 방위산업체들이 투자처 부족으로 엄청난 부채를 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키웠던 방산 기업들도 정부 주도로 하나둘 매각되었다. 1990년대 말까지 미국 주요 방산업체 수는 51개에서 5개로 급감했다. - p.147<br><br>트럼프의 영토 집착은 그린란드에만 그치지 않았다. 파나마 운하나 그린란드처럼 거점 영토가 아닌 북쪽의 엄연한 주권 국가 캐나다도 건드렸다.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부르며 캐나다 총리를 면전에서 '주지사'로 부르는 결례도 서슴지 않았다. 트럼프는 잊을 만하면 소셜 미디어에 성조기가 캐나다 영토를 뒤덮은 그래픽 등을 올리면서 캐나다 국민들의 신경을 긁었다. 2026년 1월 캐나다군은 가상의 자국 침공 시나리오를 상정해 게릴라전까지 포함한 대응 방안을 모의실험했다. - p.178<br>미국이 자국에 직접적인 이익이 되는 영역에만 집중하면서 곳곳에 외교적 공백이 생겨났다. 중국은 그 틈을 파고들어 경제와 산업, 투자와 시장 접근을 앞세운 방식으로 개발도상국에 대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세계의 생산기지이자 거대한 시장을 동시에 갖춘 중국으로서는 자국 기업의 해외시장을 넓히는 동시에 자원기지를 선점하고 외교적 영향력도 키울 수 있는 효율적 전략이었다. 미국이 비워 둔 공간은 곧 중국이 새로운 파트너를 확보하는 외교 무대로 바뀌고 있다. - p.222<br>미국이 찾은 답 중의 하나가 동맹이다. 미국은 그간 자신들이 만든 질서의 혜택을 누려왔으니 이제 그 비용도 함께 부담하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책임 분담'이라는 명목 아래 군사비 증액과 역할 확대를 강압적으로 동맹에 청구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독주와 독단이 빚어낸 비용까지 청구서에 얹힌다는 점이다. 미국의 일방통행과 전략적 오판이 빚어낸 지정학적 리스크마저 동맹의 몫으로 넘겨진다. - p.288<br>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날 미국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 위기감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외치는 트럼프라는 협잡꾼을 선택하게 된 이유겠지만 엄밀히 말해서 오늘의 미국이 리즈 시절이라는 루스벨트 때보다 더 약할 리는 없을 것이다. 인구와 경제력, 군사력은 물론이고 대다수 일반 국민들 또한 자신들의 할아버지 때보다 훨씬 풍요로운 물질의 이기를 누리고 있다. 하물며 팍스아메리카나가 아무리 종말을 맞이한들 과거 로마제국이 그러했듯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대영제국처럼 갈가리 찢겨나가게 되리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미국이 정체된 반면 우리같은 신흥국가들이 빠르게 쳐올라오면서 한때 위대했을 자신들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두려움이다. 특히 광대한 영토와 세계 최대의 인구, 무한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중국은 미국을 거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을 가진 나라이다. 게다가 중국이 구소련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먹여 살려야 할 짐짝같은 위성국들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늘날 중국 지도자들은 쿠바나 이란, 북한의 김정은에 비하여 훨씬 뛰어난 식견과 통찰력을 갖추고 있으며 더 이상 마오쩌둥 시절의 국가적 자폭이나 다름없는 무모한 실험에 매달리지 않는다. 미국으로서는 가장 무서운 적수일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상황이 트럼프 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큰소리친 것마냥 미국을 제대로 위대하게 만들고 있는걸까.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극소수의 엘리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누리는 반면,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으며 하류층들은 극빈층으로 전락했다. 현실의 희망이 사라지면서 청소년들은 마약에 빠져들고 있다. 정작 트럼프는 해결해야 할 문제는 덮어둔 채 시대착오적인 자기 우상화와 이민자 추방에 열을 올리고 중국, 러시아같은 힘 있는 강대국은 존중하면서 우리처럼 만만한 동맹국들만 군기잡기로 미국의 권위를 세우겠다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그게 지지층을 얼마나 만족시킬지는 모르겠지만 국론 분열과 이미지 실추는 물론, 동맹국들의 분노를 자아내어 트럼프 자신에게도 그리 도움될 것같지는 않다. 하물며 그가 동맹국 지도자들 앞에서 거들먹거리면서 미국에 충성과 복종을 요구한들 순순히 따를 리도 없다. 링컨과 아이젠하워를 배출한 공화당에서 하필이면 이런 인간을 대통령으로 세웠는지 세상은 요지경이다. 미국이 4개로 분열되어 내전에 빠지는 상황을 가정한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영화 &lt;시빌워&gt;. 여기서 한 군인이 주인공들을 향해 "당신네들은 어느 쪽 미국인이냐?"라는 질문은 경쟁국의 추격만이 아니라 갈수록 심화되는 미국 내부의 분열상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br>물론 트럼프 하는 꼴이 마음에 안 든다고 동맹국들이 당장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 국제 질서는 미국이 창조한 것이며 중국이나 러시아같은 더 탐욕스럽고 믿을 수 없는 나라가 대신한다고 더 낫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고압적이고 이기적인 행태가 협력보다 반감을 살 것은 분명하다. 더욱이 저자의 지적처럼 트럼프 이후에도 미국이 바뀌지 않는다면 동맹국들은 미국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려고 할 것이다. 19세기 영국 총리 파머스턴 경의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우군도 없으며 영원한 것은 오직 우리 국익 뿐"이라는 유명한 말마따나 미국의 국익이 자신들의 국익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달라지는 세계를 받아들이고 변한 미국을 인정하며 그에 따라 우리를 움직였던 동맹의 메커니즘도 수술대에 올릴 때가 왔다." 당연하면서도 쉽지 않은 얘기이다. 왜냐하면 해방 이후 우리는 80여년 동안 미국의 그늘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 정세는 급변하지만 인간의 사고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대미 외교가 국익이 아니라 국내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우리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누가 미국에 충성할 자격이 있는지를 놓고 서로 싸우고 국익은 커녕 미국을 상대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한미동맹을 흔든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판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바뀌었고 더 이상 과거의 미국이 없음은 분명하다. 제아무리 미국의 바짓가랭이를 붙잡고 애걸한들 한미동맹은 우리가 아니라 미국에게 가치가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 우리가 인정하건 말건 말이다. 이제는 우리끼리 충성 경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미국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읽다보니 문득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 p.78에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대표 무기는 대포와 박격포의 중간 형태인 곡사포인데 우크라이나가 여기에 들어가는 155mm 포탄을 경악스러운 속도로 소모하고 있었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뭐가 중간 형태인지는 모르겠으나 곡사포와 박격포 모두 대포의 일종이다. 저자가 착각한 모양. 참고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넘긴 것은 M198 155mm 견인 곡사포를 경량화한 M777 곡사포. 포탄 부족도 문제이지만 수량 자체가 부족한데다 자주포가 아니라 견인식이다보니 방어력과 기동성에서 취약하여 제공권을 쥐고 있는 러시아군의 대포병 사격으로 절반 이상 손실한 모양. p.145에서는 연합군이 공포의 티거 중전차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것이 M4 셔먼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셔먼은 티거 상대용이 아니라 M3 리 전차를 대체하기 위한 다목적 중형 전차로 개발에 착수한 것은 미국이 참전하기 이전부터이며, 서방 연합군이 티거를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12월 튀니지에서였다. 영화 &lt;퓨리&gt;에 나온 것마냥 셔먼이 물량에서 티거를 압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연합군의 수단이 셔먼만 있었던 것은 아닌지라. 동부전선에서는 티거보다 더 한 괴물도 등장했으니. 아무튼 밀덕의 습성인지 이런 것만 눈에 들어온다는. 전쟁을 가장한 호러였던 독일 영화 &lt;티거&gt;에서 티거의 포탄을 튕겨내는 소련 SU-100 구축전차. 영화 &lt;퓨리&gt;에서 티거가 셔먼의 포탄을 튕겨내어 빵형과 관객들에게 공포를 선사했다면 여기서는 이놈이 그대로 재현한다. 퓨리의 오마주인 셈. 하지만 이보다 한체급 위의 괴물이 ISU-152. 엄밀히 말해서 우리가 아는 티거의 명성은 전차 성능보다도 독일 전차병들의 탁월한 숙련도 덕분인지라.<br>그럼에도 국제 전문가다운 저자의 치밀한 분석과 날카로운 통찰력은 오늘날 미국의 시대가 어떻게 저물고 있는지 알려준다. 트럼프의 허세 뒤에 감추어진 절박감도 함께 말이다. 단 한번도 전능한 적이 없음에도 스스로 만들어낸 전능함의 환상에 빠져서 힘을 낭비한 댓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랄까. 300여 페이지를 하루 만에 읽었다. 미국 싱크탱크 연구원들이 쓴 &lt;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gt;와 더불어 꼭 읽어볼 책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8/8/cover150/k50213951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98089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