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강간, 폭행, 살인과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 슈퍼에고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타인과 공감하지 못하는 자폐 증세가 생기거나 사이코패스가 탄생한다. 이런 현상이 어떤 이유에서 대중에게 전염되면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스탈린의 대숙청,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크메르 루즈의 킬링필드와 같은 참사가 벌어져 죽음이 강처럼 흐르고 문명이 잿더미가 된다. 생물학적 견지에서 보면 문명은 인간의 대뇌피질이 만든 것이다. 문명은 대뇌피질이 변연계와 뇌간에 대한 관리 통제를 강화하는 데 성공하는 만큼 발전했다. 문명이 억압이라는 말에는 분명 일리가 있다.
삶은 욕망과 규범의 충돌이라는 말에도 나는 공감한다. 나는 주로 규범의 세계에서 살면서 남들한테 욕을 먹지 않을 만큼만 욕망의 세계를 넘나들었다. 이러면 안될 텐데, 늘 자책하면서. 그렇게 산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은 삶을 어떻게 사느냐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해서 계속 지금까지 살았던 것처럼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내게는 매순간 미래의 삶을 새로 설계하고 새로운 도전을 할 권리가 있다. 물론 욕망을 충족하는 것보다는 규범을 따르는 삶이 더 훌륭할 수 있다. 개인을 중심에 놓고 생각할 때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이타성 unselfishness이라는 라인홀드 니버의 말이 옳다고도 본다. 그러나 이타성이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것도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른 행위일 때 기쁨이 되지 않겠는가. 욕망을 억압하면서 규범을 따르는 일이 참기 어려울 만큼 어색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면 욕망을 표출할 수 있는 문을 더 넓게 열러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규범은 자기 자신이 기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따르면 된다. - P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