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 장비가 없었지만 프로이트는 뇌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대충 짐작했던 것 같다. 무의식 속에서 오로지 욕망을 따르고 고통을 피하려고만 하는 ‘이드‘는 뇌의 지하실과 1층을 오르내리며 산다. 양심과 이상을 추구하는 ‘슈퍼에고‘는 2층 거실에 기거한다. ‘에고‘는 서로 대립하면서 공존하는 ‘이드‘와 ‘슈퍼에고‘의 변증법적 통일이다. ‘이드‘는 호시탐탐 ‘슈퍼에고의 통제에서 벗어날 기회를 노린다. ‘이드‘가 탈출에 성공하면 사람은 앞뒤를 가리지 않는 욕망과 충동에 휩쓸린다. - P113

그리고 강간, 폭행, 살인과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 슈퍼에고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타인과 공감하지 못하는 자폐 증세가 생기거나 사이코패스가 탄생한다. 이런 현상이 어떤 이유에서 대중에게 전염되면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스탈린의 대숙청,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크메르 루즈의 킬링필드와 같은 참사가 벌어져 죽음이 강처럼 흐르고 문명이 잿더미가 된다. 생물학적 견지에서 보면 문명은 인간의 대뇌피질이 만든 것이다. 문명은 대뇌피질이 변연계와 뇌간에 대한 관리 통제를 강화하는 데 성공하는 만큼 발전했다. 문명이 억압이라는 말에는 분명 일리가 있다.
삶은 욕망과 규범의 충돌이라는 말에도 나는 공감한다. 나는 주로 규범의 세계에서 살면서 남들한테 욕을 먹지 않을 만큼만 욕망의 세계를 넘나들었다. 이러면 안될 텐데, 늘 자책하면서. 그렇게 산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은 삶을 어떻게 사느냐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해서 계속 지금까지 살았던 것처럼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내게는 매순간 미래의 삶을 새로 설계하고 새로운 도전을 할 권리가 있다. 물론 욕망을 충족하는 것보다는 규범을 따르는 삶이 더 훌륭할 수 있다. 개인을 중심에 놓고 생각할 때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이타성 unselfishness이라는 라인홀드 니버의 말이 옳다고도 본다. 그러나 이타성이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것도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른 행위일 때 기쁨이 되지 않겠는가. 욕망을 억압하면서 규범을 따르는 일이 참기 어려울 만큼 어색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면 욕망을 표출할 수 있는 문을 더 넓게 열러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규범은 자기 자신이 기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따르면 된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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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권세호 옮김 / 서문당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버나드의 본성, 총재와 존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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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전달물질계
재앙적 사고를 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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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잘 되기 위해서는 사랑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서로 융화할 수 있어야 하고 관계에 대한 헌신이 있어야 한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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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데생이나 그림을 ‘제작‘하고 사진작가는 사진을 ‘찍는다‘라는 관습적인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일상 언어는 고야의 동판화처럼 손으로 만든 이미지와 사진 사이의 차이점을 뭔가 확고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지만 사진 이미지도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밀한 모사模寫로 만든 구성물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일종의 모사라는 점에서, 당시에 일어난 어떤 일을 그저 투명하게만 보여줄 수는 없다. 사진 이미지도 누군가가 골라낸 이미지일 뿐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구도構圖를 잡는다는 것이며, 구도를 잡는다는 것은 뭔가를 배제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진에 손장난을 치는 일은 디지털 사진과 포토샵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도 있었다. 사진이 부정확할 가능성도 늘 존재해 왔다. 회화나 데생은 그것을 제작했다고 알려진 예술가가 직접 제작한 것이 아니라고 밝혀질 때 위조품이라고 판명된다. 그러나 사진(아니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영상기록)은 그것이 묘사하려고 했다는 장면을 둘러싸고 뭔가 관람객을 속였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 위조품이라고 판명된다. - P74

로베르 두아노는 1950년 <라이프>를 위해서 자신이 찍은 사진, 그러니까 젊은 남녀 한 쌍이 파리 시청 근처의 보도에서 입을 맞추고 있는 사진이 일종의 순간 포착이었다고 명확히 주장한 적이 결코 없었다. 먼 훗날 40여 년이 지난 뒤 일당을 받고 고용된 한 쌍의 남녀가 두아노의 지휘 아래 입을 맞췄다는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이 사진이야말로 고이 간직해야 할 낭만적인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파리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이 사진작가가 사랑과 죽음이 펼쳐지는 장소를 드나드는 스파이가 되어주기를, 그리고 사진에 찍힐 인물들이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방심 속에서" 사진작가에게 찍히기를 바랬던 것이다. 제 아무리 사진은 무엇이다, 혹은 사진은 무엇이 될 수 있다, 라고 정교하게 말할지라도, 우리는 재빠른 사진작가가 이제 막 진행되고 있는 어떤 예상치 못한 사건을 포착해 놓은 한 장의 사진이 사람들에게 건네주는 만족감을 결코 누그러뜨릴 수 없을 것이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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