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의 김남우 김동식 소설집 3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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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3일의 김남우 ㅡ 김동식 , 요다

 

" 세상에 매듭지어지는 일은 거의 없어 . 한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 다만 여러가지 형태로 변하니까 남들도 자신도 알 수 없을 뿐이야 . " 

                                                                 [ 나쓰메 소세키 , 한눈팔기 중에서 ]


공기가 축축하다 . 창 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뭔가가 내리고 있구나 느껴지게 하는 그런 공기이다 . 소리가 없는 걸로 봐서 눈이겠구나 싶어 현관을 열어보니 옆집 남자가 부지런하게도 마당을 쓸고 있다 . 적은 양이라서 였는지 오늘은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 이 겨울의 작은 수확은 이웃과 소통할 구실로 눈이 오는 날의 함께 눈치우기가 있었다 . 제법 쌓이는 날이면 옆집 남자는 윗집과 내 집에도 문을 두드려 함께 눈을 쓸자고 한다 . 그 제안이 기뻐서 입김이 하얗게 나오고 손이 시리고 발목이 차가워져도 기꺼이 나간다 . 옆집 남자는 윗집 할머니와 나와 눈쓰는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 그의 아내는 우리가 눈을 다 쓸었을 즈음 나와서 따끈한 캔커피를 내민다 . 아마도 시간을 보며 캔커피를 데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세상에 나서 완벽하게 혼자일 수 있을까 ? 아무와도 어떤 관계도 , 맺음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가능할까 ? 불가능하다 . 오죽하면 인간의 인 人 자는 서로 기대어 선 모양이라고 하겠는가 . 관계 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는 서로에게 [나비효과] 같은 존재들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 . 뿐만 아니라 [13일의 김남우] 편에서도 역시 혼자일 수 없는 세계를 그려보여 준다 . 어느 때는 [도덕의 딜레마] 를 예를 들어 , 1 : 100 퀴즈 게임의 공간을 차용해 사람들을 선별하는 지독한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 

자신이 세상에 오지 않은 존재가 되지 않는 한은 , 철저하게 작은 연결이라도 되어 있다는 의미가 되는 나비효과 . 작가의 소설 속에선 참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진다 .

외계인이 왔다가고 선물처럼 주고 간 매끈한 구체의 기능은 단계 별로 인과를 조정할 수있는 그런 것이었다 . 정부는 그 구체의 단계를 3단계로 놓고 ,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연쇄고리를 끊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  지하철을 기다리던 김남우는 메시지 한통에 서둘러 자신이 생각없이 버려두고 온 캔콜라를 되돌리러 간다 . 캔콜라 하나가 사람을 죽인다는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이 연쇄의 고리 앞 단계에 있는 작은 행위가 지겨워지고 의미가 없어진다 . 불행의 연속선에 무뎌진다 . 그러자 정부는 연쇄고리를 끊지 않은 사람에게 벌금으로 3만원을 내게 시스템을 만든다 .

그 3만원을 내고 값을 치렀다고 후련해 하는 사람도 있고 , 그마저도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 일이 벌어지고 자신의 일이 되어야만 사람들은 아차하고 후회를 하게 되는데 , 이 모든 과정이 작은 일 때문이라니 ,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일엔 사람들은 금방 지치기 마련인가 보다 .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데도 회의적인 사람들 . 그리고 예방조치 메시지를 받아도 어떤 행위는 되돌릴 수 없어서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일이되는 우연의 촉발들 . 


작가는 어쩌면 , 안전 불감증이란 말로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인재 人災 사고의 사회를 이처럼 그려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 

김남우는 구체의 단계를 더 올려서 바로 앞에 사람들이 직접 뛰어들 수 있게 하려고 시위를 한다 . 그러다 그 단계의 의미가 정부차원에서 이미 손을 쓸 만큼 쓴 단계라는 걸 알게되고 가장 낮은 단계로 내려 버린다 . 그러자 . 온 세계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동시에 도착한다 . 

[ 당신의 탄생으로 인해 , 사람 33명이 죽었습니다 . ]

[ 당신의 탄생으로 인해 , 사람 61명이 죽었습니다 . ]

[ 당신의 탄생으로 인해 , 사람 29명이 죽었습니다 . ]
[ 당신의 탄생으로 인해 , 사람 101명이 죽었습니다 . ]

그제야 깨달았다 . 왜 정부가 레버를 3단계에 맞춰두었는지 .
그제야 인류는 깨달았다 . 우리는 태어난 것만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
누구 하나 예외 없이 , 전 인류가 서로에게 나비효과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

(본문 44 쪽 13일의 김남우 ㅡ 나비효과 ㅡ중에서 )


이번 [13일의 김남우] 는  이전권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 [회색인간] 보다 문장이 매끄럽게 읽히는 걸 느낀다 . 처음 권의 문장 파괴가 준 충격이 이제 익숙해진 것인지 , 작가의 글 다듬기가 좋아진 것이 순차적으로 드러난 것인지 잘 모르겠다 . 다만 확실한 건 각각 다른 단편임에도 단편으로만 읽히지 않는다는 거였다 . 그건 그것대로 즐거운 발견이었다 .

[13일의 김남우]를 읽고 느낀 건 작가가 구상하는 작품 세계가 어쩌면 , 영화나 미디어일지도 모른단 상상을 하게 했다 .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신기했는데 이야기 구성을 보니 , 각각 어떤 영화들을 보고 그려낸 것을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 마치 내가 정유정의 [7년의 밤] 을 읽고 , 아 ! 작가는 분명 그 세계를 그림으로 그려놓고 스토리라인에 힘을 실었구나 느꼈듯이 ... 또 , 내가 어떤 시를 읽고 이어서 단상 끝에 시의 힘을 뭍힌 글을 쓰듯이 , 작가의 작업과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 그러니 어떤 면에서 새롭지만 이 세상에 ,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도 맞는지 모른다 . 


눈이 제법 쌓이고 있다 . 아까는 옆집 남자가 눈을 쓸었으니 , 이번엔 바톤 터치를 하듯 내가 나가볼 차례 같다 . 나만 혼자 밟는 공간이 아닌 이상 누구도 저 고운 눈으로 인해 다치는 일이 없도록 , 예쁜 길을 내고 와야겠다 . 우리는 관계 속에 살아가는 족속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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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김동식 소설집 2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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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ㅡ 김동식 , 요다

회색인간 리뷰를 끝냈다 . 고민이 끝나지 않으면 글을 시작했어도 미완으로 두는 버릇이 있다 . 개인 노트에선 그게 상관 없지만 그래도 리뷰를 하겠노라 받은 책이니 그럴 수 없었다 . 내 고민은 앞으로 이 작가의 신간이 또 나온다면 나는 읽을것인가 였다 .  이런 문체로 중편도 장편도 가능할까 ? 독자는 욕심이 많다 . 단편에 만족하면 중편을 , 중편에 만족하면 장편을 꿈꾼다 . 읽고 싶다 욕망하게 된다 . 이 찰나의 에피소드같은 글들을 그는 확장시킬 수 있을거며 , 그렇게해서 그의 글에 있는 매력은 여전히 건재할건가 ?  독자인 나를 계속 만족 시켜줄 건가 ? 

첫권의 매력은 너무 확 다가왔고 두번째 권에선 걱정과 염려가 ,  오래 오래 나 자신을 갈등하게 만들었다 . 어차피 읽은 거지만 그렇다고 마음 없는 글은 , 나는 못쓴다 . 좋아도 내가 좋아야하고 싫어도 내 결론이 그래야 한줄이라도 나를 믿고 쓸 수가 있다 . 내 감정의 확신이 결론나기까지 좀 오래 걸렸다 . 

그도 그럴 것이 작가 역시 신나서 , 재미있어서 글을 썼듯 , 읽는 나도 읽은 것에 만족감이 분명해야 그걸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 특히나 말과 글을 , 말과 글로 전달하는 일이니까 . 

300여편에서 66편을 골랐다고 했었다 . 회색인간에선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 지금 리뷰할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에선 말 그대로 요괴, 외계인 등이 주를 이룬다 . 내 고민을 끝냈다 . 앞으로의 책도 소장할 것이고 그만한 가치가 있을 작가라는 걸로 . 나는 오늘의 유머를 모르기에 그의 유명세를 모른다 . 그가 베오베 인기 작가라는 걸 추천사에서 읽었을 정도다 . 요즘 같은 시대에 누군가에게 응원을 받고 , 서로 좋은 기운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하나가 잘 됨으로 다른 누군가의 희망도 될 수 있겠지 싶어졌다 . 

사실 내 고민은 작가와 하등 상관이 없는 일이다 . 그저 내 확신의 일일뿐 . 그렇지만 그가 잔뜩 그려놓은 디스토피아의 세계에 , 때로 나는 장기말처럼 이리 놓여졌다 저리 놓여졌다 했고 , 나 스스로를 우주 밖으로 보내기도 하고 보편이란 측에 서서 힘을 갖는 척도 했고 ,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불쌍한 요괴가 됐다가 느닷없는 외계인이 되기도 했으니 그를 걱정하든 , 그의 미래의 소설을 걱정하든 그건 내가 그 소설에서도 그렇게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말아닐까 했다 . 독자로서 지나친 권리를 내세운 폭력은 아니길 바라면서 , 한편 한권의 책을 내기도 힘든 시대에 세권이나 연달아 낸 편집자들의 마음을 어느정도 알 것도 같았다 . 이 작가는 원석 그 자체이다 . 무궁한 아이디어 창고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 웹시장이야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지만 종이책은 확실하게 남아서 두고 두고 꺼내 볼 수 있을 것이다 . 그의 한편 한편의 에피소드들은 어디에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찬란해질 것이다 . 

예를 들자면 김영하의 소설 [옥수수와 나 ]에 보면 지젝의 유머가 나온다 . 자신을 옥수수라 믿고 정신 병원에 오래 다닌 환자가 치료가 끝나 더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는데도 한 날은 찾아와 닭들이 자꾸 쫓아 온다고 심각하게 말한다 .  자신은 옥수수가 아닌 걸 안다 . 그런데 닭들은 그걸 모르지 않냐 ! 의사는 이제 닭들을 치료해야 한다 . (응?) 

그를 슬라보예 지젝식 농담으로 인용해도 하나 빠지지 않을 거란 확신이 이 두번째 책의 중간쯤을 읽었을 때 들었다 . 그가 허무는 경계는 참으로 다양하다 . 보통의 경계를 허물고 , 지구와 지구 밖을 허문다 . 지상과 지하(지저) 를 파면서 매운다 . 인간과 인간 외적인 경계를 허문다 . 그 감각이 신박하기 짝이 없다 . 그래서 경계를 하게 되기도 한다 . 이래도 괜찮을까 하고... 하지만 기껍다 . 한국의 김동식식 재치와 농담이 마구 날뛰는 날을 상상해보게 된다 . 

그때까지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가 되어 야금야금 이 기존 문단을 잡아먹는 스킬을 시전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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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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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회색인간 ㅡ 김동식 , 요다


포털 사이트 다음 웹에 " 사컷 : 죽음의 소리 " 란 제목으로 연재되는 웹툰이 있다 . 단 네 四 개의 컷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 사 死 컷이란 의미도 있는 걸로 안다 . 또 생각할 사 思 도 될 수 있을지 모른다 . 이 웹툰엔 늘 분분한 댓글이 따른다 . 온도차가 극명한 호불호가 존재하는데도 연재는 이어지고 있다 . 나는 이 웹툰의 장점이 단 사컷 안에 표현되지 않은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 그림과 글로 대사로 채 표현 되어지지 못한 , 미쳐 쓰이지 않은 스토리의 상상이 가능한 지점에 그 모든 장점이 있는 웹툰 . 

소설에선 아마 문장의 설득력이나 개연성 , 충분한 서사 , 그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그런데 이번에 나는 텅빈 그루터기 같은 , 사컷 같은 소설을 만났다 . 웹툰으로 치면 사컷으로 봐야할 만큼 충분한 서사가 없는 만화면서 , 나무로 치면 기둥도 가지도 잎도 다 쳐낸 밑둥만 남은 그루터기 같은 그러한 소설 말이다 .  사컷 뿐이어서 상상의 여지가 있듯 , 그루터기 뿐이어서 넉넉한 어떤 여유 , 어떤 가능성 , 그런 것을 본다 . 그에게 표현 가득한 서사를 요구해선 안될 것만 같은 절대적인 느낌마저 든다 .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 구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 잊혀져서 그렇지 , 분명 이전에도 존재는 했다 . 다만 그 유명했으나 익살에 그치고 농담에 머물렀다 . 너무 오래전의 가치라 제목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 친구네 집에 가면 화장실에 , 책장에 , 낡은 탁자에 , 라면가닥이 말라 붙은 채 뒹굴던 유머집과 개그책으로 분명 있었던 적이 있다 . 그런 구전같이 떠도는 이야기를 웹소설 하나로 만들어 냈다가 책으로도 만든 작가를 기억할 정도니까 , 음 , 장르는 달라도 말이다 . 

하지만 이 작가의 이야기엔 독특한 구석이 있다 . 자세한 서사를 무시하는 스피디한 전개법 외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가치랄까 . 세상을 읽는 자기만의 고유한 시선처리법이 있는 것 같다고 밖에 표현 못할 , 그래서 책을 묶어내고 애정 가득한 후기를 적어낸 편집인의 글을 읽으면 대번에 이 작가에게 없는 게 무엇인지 드러나지만 그럼에도 그만한 애정을 드러낼 수 밖에 없던 이유를 끄덕이게 하는 독특한 시선 처리법 .

한 권에 무려 24 편이 담겨있어 모두 다 짚어내진 못하겠지만 , 그중 인상적인 작품을 말하라면 어린아이들의 무구함이 주는 공포를 새삼 일깨워준 <신의 소원> , 그와 비슷한 반전을 담은 소나무가 되고 싶은 < 피노키오의 꿈 > , 자신의 딸이 죽자 다른 사람의 시신을 가져다 서로 잘라 배합해 주문을 외면 딸이 되살아 날수도 있단 말에 죽은 딸을 수십조각을 내고 , 더불어 타인의 시체도 계속 구해오는 두석규의 이야기 <인간 재활용 >이 주는 끔찍함과 그 너머의 진실 , 그리고 저승에서 온 통보로 이승의 정책들이 달라지자 저승도 같이 변화하는걸로  < 사망 공동체 >가 보여주는 어쩌면 이 세계의 진면목 등등 짧은 이야기지만 시사하는 바는 다채롭기 그지없는 얘기들이라 읽는 내내 웃기도하고 , 감탄도 했다 .

이야기들이 짧기 때문에 기억하기 좋다는 최대 장점도 있을 줄 안다 . 더우기 요새는 기성 작가들도 틈새 시장을 노리고 손바닥 소설이나 , 티저북이나 , 문고판 내지 주머니에 들어갈 만한 크기의 책들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독자들과의 거릴 줄이려고 모색을 하는 때이니만큼 , 기억하기 좋은 구성의 글이란 그만큼 매력이 아닐 수없단 생각을 했다 . 이런 성긴 문체로 기존의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을건가 고민을 오래해봤지만 , 이미 그는 검증을 끝낸(베스트오브베스트의) 작가이니 계속 흔들림없는 자기만의 시선을 가져가면 좋겠다는 바램을 소박하게 적어본다 .  

가끔(?)이 자주이지만 재미있는 웹툰이나 웹소설을 읽게 되면 거기에 달린 베스트 댓글까지 찾아 읽게 될 때가 있고 ,  웹툰도 , 웹소설의 재미도 대단하지만 댓글 역시 기발함의 경지가 대단해서 그 톡톡 튀는 말잔치를 구경하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감상에 빠지던 때와 흡사한 감각을 느꼈다 . 글도 재미있지만 분명 거기 달렸을지 모를 가상의 댓글들이  3D로 보이는 듯 했다 .  아 , 이 소설 누가 웹툰으로 안그려 줄까나 ? 그런 기대를 또 해보게 된다 . 

덧 ㅡ 리뷰가 늦어 죄송합니다 .
ㅡ 

[ 소원을 말하라 . ]

천진난만한 소녀는 밝은 미소로 소원을 빌었다 .

그것은 인류가 잭에게 상상했던 , 마르크스에게 상상했던 , 김군에게 상상했던 스크류지에게 상상했던 그 어떤 소원들보다

더 , 재앙이었다 .

[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인간처럼 똑똑해졌으면 좋겠어요 ! ]

사람들은 물었다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

바퀴벌레도 그 물음에 대답해줄 수 있는 세상이 , 와버렸다 .




( 본문 85 쪽 ㅡ 신의 소원 ㅡ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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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한파이다 . 그냥 썽클이라고만 표현하기엔 지나치게 너그러운 표현이란 생각이 들만큼 거실의 공기가 숨쉴 때마다 박하 향처럼 싸아하게 온 몸에 들러 붙는다 .

분명 경보 메세지를 보았다 . 내 깜냥에 이 정도면 되겠지하고 똑 , 똑 떨궈질 만큼만 수도꼭지를 열어 두었는데 그것이 영 시원찮았던지 한파경보 다음날의 오전 , 그러니까 어제는 , 그 전날의 공기보다 더한 싸아함으로 온 집을 칭칭 감싸고 들었고 , 기어이 수도는 얼어붙은 달 그림자처럼 창백해져서 오전의 시간을 내내 그 창백함을 달래는데 집중해야 했다 .

 

그래도 오전의 시간만 온통 들어낸 것으로 어제의 한파는 물러가 주었었다 . 얼었던 수도관은 다시 쿨럭 쿨럭 쿠울럭 ~ 몇 번의 기침을 토해 낸 끝에 콰르르 온수를 뱉어내 주었다 . 아직 한 낮이니 괜찮겠지 , 보일러 배관을 감싼 보온재들을 망연하게 쳐다보며 , 안일하게 생각했다 .

 

해 질 무렵에 온수를 흘려놓아야 할지 모른다 . 계속된 고민과 날씨를 검색하느라 바빴다 . 건조주의보만 뜨고 , 다시 동파를 조심하라는 메세지는 없다 . 그저 내 동동거리던 마음을 내려 놓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 설마 설마 , 설마가 ... 사람을 잡는다더니 ,  한파에 이렇게 붙잡힐 줄이야 .

 

배관을 감싸 안은 옷들은 몇 겹이나 되었다 . 맨 겉은 에어캡 포장제였고 , 그 안으로 습기가 가득 찬 채 옷들의 뭉치는 꽁꽁 얼어있었다 . 어제는 수도꼭지에만 뜨거운 물을 몇 시간 부어주고 , 보일러가 있는 베란다엔 난로를 켜 놓는 걸로 그만그만 했는데 , 오늘은 아무리 뜨거운 물을 몇 시간 째 벌서듯 서서 흘려주어 봐도 꼼짝을 않는다 . 기어이 배관을 감싼 , 저 뭉치들을 해체해 보아야 하는 가보다 . 내가 감싼 것들이 아니어서 , 몇년을 거기서 서로 끌어 안고 있었는지 모를 겉 옷들의 젖은 포옹을 풀자니 마음이 찜찜함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

 

사이즈는 95호 쯤 되는 기성브랜드의 검은 겨울 점퍼가 꽁꽁 얼어서 그 안의 털을 누빈 조금 더 작은 사이즈의 누비점퍼를 끌어 안고 있었고 , 또 그 팔을 풀자 , 세탁기 안의 엉킨 세탁물들처럼 엉킨 겨울옷들 뭉치가 실타레처럼 엉켜서 , 풀어도 풀어도 계속이었다 . 대체 몇몇의 사람이 이렇게 깊이 서로를 안고 얼어 죽을 수 있단 건지 , 나는 이들을 , 아니 내가 이들을 얼어 죽인 것일까 ?

 

짙은 풀색의 울셔츠는 골지 타입의 검은 목폴라를 끌어 안고 있었다 . 그것들은 시체같아서 잡아 뜯을수록 생살이 뜯기는 미묘한 감각과 질감을 불러일으켰다 . 물론 나는 아직 생살을 뜯어 본 적은 없다 . 하지만 얼어 붙은 사람들을 뜯어내면 이와 같지 않을까 , 그런 생각들이 진저리치게 만들었다 .

 

쓰레기봉지 100리터들이는 되었을텐데 , 젖어서 꽁꽁 뭉치자 그것들은 부피가 퍽 작아져서 50리터들이 봉지안에도 들어갔다 . 다만 봉지는 물 먹은 옷들이 대게 그렇듯 무거웠다 . 그것들을 말려 줄만한 공간도 여유도 내겐 없었다 . 그저 잘 치워주는 수밖에 .

 

사람의 뼈대를 드러내듯 보일러의 배관선이 온전히 제모습을 드러냈다 .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의 깊은 포옹을 받으며 몇 해를 보냈을 보일러 배관들 . 얼마나 깊은 관계면 서로가 축축해 질까 , 서로를 뜯어내야할 만큼 .

 

오전과 오후를 다 보내고 , 전기세 폭탄을 각오하고 종일 틀어놓은 난로와 , 수도꼭지에 들이붓느라 펄펄끓었던 1리터들이 찻 주전자 , 윤이 오면 쓰던 헤어 드라이기를 잠시 내버려두고 덜덜 떨며 끄적거린다 .

 

꽁꽁 언 마음이 , 수도관이 내 성의가 부족했다며 , 내 관심이 열의없다며 항의하느라 풀어질 기미조차 없는 이 시간 . 사람의 마음을 , 얼어붙은 옷을 잡아 뜯던 감각을 잊으면 안될 것 같아서 토닥토닥 자판을 두들긴다 . 어제는 한나절 , 오늘은 그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한파 .

 

지독한 한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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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의스케치북 2018-01-25 2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전철이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아니 풀로 틀었지만 추위에 무색해져 위장이 아프기까지 했습니다.. 대단하고 놀라운 추위입니다..^^

[그장소] 2018-01-25 21:08   좋아요 2 | URL
너무 추워 각자 웅크리느라 , 온기조차 퍼질 새가 없었나봐요. 그만한 한기의 기세라는 거겠죠? 건강 챙기세요. 정말 덜덜 떠느라 온 몸이 아프네요. ㅎㅎ

벤투의스케치북 2018-01-25 2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2018-01-26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8-01-26 00:48   좋아요 2 | URL
도시가스요금만인가요..전기세..수도세.. 덩달아 폭등일거예요.
보일러 어는 곳을 모르니 녹일 곳도 모르고.. ㅎㅎ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할 듯 합니다. 동파 예방 경보는 왜 하루만 보내준건지.. 날씨만 봐서는 실감을 못하는데 말이죠. 정말 속상해요. ㅎㅎ

2018-01-26 0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8-01-26 23:43   좋아요 1 | URL
환경, 날씨가 만들어 내는 공통의 화제가 그만큼 큰 탓이겠네요 .^^
이 추위가 여름의 혹서와 좀 나눠진다~ 생각하니 , 기발하기도 하고 한편 계절이란 것 자체가 무경계해지는 것이니 그래도 될까 싶기도 해요 .
저는 다만 , 오래전 옷을 켜켜이 쌓아 놓고 간 얼굴모를 사람들의 겨울을 생각하고 싶었어요 . 그랬을 뿐이랍니다~^^

2018-01-27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8-01-27 04:28   좋아요 1 | URL
ㅎㅎ제 글을 기억해주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넘 부끄럽고 기쁘네요 .
아마 정말 감정이 상할만한 것들은 쓰지 못하는 탓에 일기에 관한 것이나 끄적거린게 .. 기억에 남게 되셨나봐요. 다음엔 좋은 일, 행복한 일을 나누는 글로 뵐수있으면 싶어요. 저도.. ㅎㅎ 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8-01-26 2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너무 추워요. 저희집 다육식물은 많이 얼어서 엄마가 무척 ....
내일은 기온이 그래도 낮이 되면 올라간다고 합니다. 희망적인 뉴스인데, 오늘 밤 따뜻하게 잘 보내세요.^^

[그장소] 2018-01-26 23:39   좋아요 2 | URL
난로를 40시간이상 풀가동한 결과 주위 온도가 높아져 스스로 녹은 배관 . ^^
오늘 오후3시 넘어 온수가 다시 콰르르 ~
ㅎㅎㅎ 범위가 넓으니 시간도 오래 걸렸네요 . 주말까지 한파는 계속된답니다 .
사실 온수 쓸 일만 아니라면 , 난방은 그대로 되기에 , 큰 불편은 아닌데 .. 말이죠 . 옛날의 삶에선 찬물이 일상였는데... 세상 새삼 좋아진걸 느끼네요 .^^ 서니데이님도 굿밤하세요!^^
 

ㅡ 오늘 도착한 책 ㅡ

#내가누군지도모른채마흔이되었다
#제임스홀리스
#김현철_옮김
#더퀘스트
#도서출판길벗

#마흔도아님서마흔인척할래?
#나이는숫자일뿐이람서효!
#생각같아선영원한계란한판이고싶습니다만,



그리고 나는 또 다른 거대하고도 영원한 삶의 공간이 내 안에 있
음을 알게 된다 .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 내 존재의 어두운 시간을 사랑하네 > 중
에서 -



지은이 제임스 홀리스는 미국 위싱턴에서 융학파 정신분석가로
활동 중이며 중년의 삶을 돌아보는 융 심리학 대중서 15권을 집
필 . 이 책은 그중 첫 책이라고 한다 . 홀리스는 마흔에 겪는 위기
를 ‘ 중간항로 ‘ 라 표현하며 이 시기를 현명하게 보내기 위한 심
리학적 가이드를 제시하며 미국에서 많은 독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

나는 이 책을 이 앞에 읽은 < 마흔 ,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 > 와
함께 읽고 싶은 욕심에 신청을 했다 . 시간은 어긋났고 먼저 읽
은 와다 히데키 교수 역시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사람이었지만
마흔이란 인생의 시기를 접근하는 방식은 사뭇 다른 것 같아 보
인다 . 시간차를 두고 보는게 차라리 잘 된 것 같기도 하다 .

서문을 훑어보자니 문학적 감수성이 짜르르 하다 . 책을 여는 문
부터가 이렇게 다른 두 마흔의 충돌 . 융학파가 전하는 중간항로
는 어떤지 항해를 시작해본다 .

어디서 봤더라 ... 잔잔한 바다에서는 훌륭한 선원이 나오지 않는
다는 말을 ... 마흔의 바다는 , 물결치고 있는지 시작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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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2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8-01-22 22:06   좋아요 2 | URL
음~ 저도 지나고 보니 , 미친듯 책에 빠져 바빴네요!( 뭥??!!) 하아아~~~ 허무해라~~ 이 뭐꼬,,,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