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바다 창비시선 403
도종환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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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 사

 

내소사 다녀왔으므로 내소사 안다고 해도 될까

전나무 숲길 오래 걸었으므로

삼층석탑 전신 속속들이 보았으므로

백의관음보살좌상 눈부처로 있었으므로

단청 지운 맨얼굴을 사랑하였으므로

내소사도 나를 사랑한다고 믿어도 될까

깊고 긴 숲 지나

요사채 안쪽까지 드나들 수 있었으므로

나는 특별히 사랑받고 있다고 믿었다

그가 붉은 단풍으로 절정의 시간을 지날 때나

능가산 품에 깃들여 고즈넉할 때는 나도

그로 인해 깊어지고 있었으므로

그의 배경이 되어주는 푸른 하늘까지

다 안다고 말하곤 했었다

정작 그의 적막을 모르면서

종양이 자라는 것 같은 세월을 함께 보내지 않았으면서

그의 오래된 내상 (內傷) 과 함께 있지 않았으면서

그가 왜 직소폭포 같은 걸 내면에 지니고 있는지

그의 내면 곳곳이 왜 낭떠러지인지 알지 못하면서

어찌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의 곁에 사월 꽃등 행렬 가득하였으므로

그의 기둥과 주춧돌 하나까지 사랑스러웠으므로

사랑했다 말할 수 있을까

해 기울면 그의 그리움이

어느 산기슭과 벼랑을 헤매다 오는지 알지 못하면서

포(包)* 하나가 채워지지 않은 그의 법당이

몇백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알지 못하면서

그의 흐느낌 그의 살에 떨어진 촛농도 모르면서

 

*공포 (栱包) : 처마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 .

 

ㅡ본문 10 / 11 쪽에서 ㅡ

도종환 시집 ㅡ[사월바다] 중에

 


 

 

읽을 때는 무심히 지나친 싯귀들 였다 .

요즘은 밤 잠자리에서 오디오북으로 타이머를 해놓고

시를 듣는다 . 성우인듯 싶은 이의 목소리와 어조가

지나친 시를 다시 꺼내들게 만들었다 .

 

오랜시간을 보았다고 안다고 할 수 없다 .

자신이 깊은 애정을 가졌으니 그 상대 역시 그럴거란 법이 없다 .

내 몸짓이나 애정이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고 , 그것이 사랑이 아니란 법도 없다 .

내가 알고 있던 것은 늘 순간이고 , 진심이나 진정으로 믿는 마음 뿐 .

나 혼자 상처받고 아픈 거라는 법도 없다는 말처럼 들려서 ,

준 적 없는 위로를 이 세상으로부터  받는다 .

감사해야지 .

 

길가의 차소리들이 파도 소리 처럼 가까웠다 멀어지는 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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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바다 창비시선 403
도종환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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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날

 

고립에서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이층집을 짓고 살았으면 좋겠네

봄이면 조팝꽃 제비꽃 자목련이 피고

겨울에는 뒷산에 눈이 내리는 곳이면 어디든 좋겠네

고니가 떠다니는 호수는 바라지 않지만

여울에 지붕 그림자가 비치는 곳이면 좋겠네

아침기도가 끝나면 먹을 갈아 그림을 그리고

못다 읽은 책을 읽으면 좋겠네

 

파도처럼 밀려오는 소음의 물결에서 벗어나

적막이 들판처럼 펼쳐진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네

자작나무들과 이야기하고

민들레꽃과도 말이 통하면 좋겠네

다람쥐 고라니처럼 말을 많이 하지 않고도

평화롭게 하루를 살았으면 좋겠네

낮에는 씨감자를 심거나 남새밭을 일구고

남은 시간에 코스모스 모종과 구근을 심겠네

 

고요에서 한계단 낮은 곳으로 내려가

단풍 드는 잎들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에서 살았으면 좋

겠네

나무들이 바람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곳에서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이들과 어울려 지내면 좋겠네

울타리 밑에 구절초 피는 곳이면 어디든 좋겠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굽은 길이면 좋겠네

추녀 밑에서 울리는 먼 풍경 소리 들으며

천천히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네

 

짐을 조금 내려놓고 살았으면 좋겠네

밤에는 등불 옆에서 시를 쓰고

그대가 그 등불 옆에 있으면 좋겠네

하현달이 그믐달이 되어도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듯

내가 어디로 가게 될지 묻지 않으며

내 인생의 가을과 겨울이 나를 천천히 지나가는 동안

벽난로의 연기가 굴뚝으로 사라지는 밤하늘과

나뭇가지 사이에 뜬 별을 오래 바라보겠네

 

ㅡ본문 12 / 13 쪽에서ㅡ

 

도종환 시집 [사월바다] 에서 ㅡ

 

 


 

 

고립에서 더 들어간 곳 , 더 고요해지고 더 적막하려면 얼마나 필요할까 ㅡ 와 ,

얼마나 버려야 할까 중 , 시인은 그 둘을 다 원하는 게 아닐까

 

버리는 것이 가지는 것에서 가능하단 것을 비밀처럼 물으며 , 그정도는 삶에서

바라는 게 죄 되지 않을 세상이 되면 어떨까

 

다 좋다 , 하는 성탄의 밤에 놀다 들어 온 건지 이웃 집 아들내미 명랑한 소리에

이얘 , 너는 낮의 폭력을 모르니 참 좋겠구나

 

나는 얼마나 더 먼 ,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맘이 진정이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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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5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6-12-25 22:00   좋아요 1 | URL
무서워서 ..오늘은 제 집에도 아이가 없어서 혼자 어쩔까 ..그러다 아저씨한테 말걸었잖아요. 왜그러냐고.. 그래도 말거니까 꼬박꼬박 대꾸해주더라고요. 후유.. 늦게 들어온 아들은 아무것도 모르는거 같더라고요. 참 ..뭐랄 수 없는 기분 .. 아들은 아는지 모르겠어요. 넘 해맑은 소리 ㅡ 들려서..더 무서웠네요..저는..

2016-12-25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6-12-25 22:03   좋아요 0 | URL
음..저요? 네~!^^;

2016-12-25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5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5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5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5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6-12-25 22:52   좋아요 0 | URL
날씨가 추워지려는지 급 , 피곤이 몰려오네요.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ㅎㅎㅎ비 소식이 있는데 기다렸다 오는걸 보고 누울까 하다가 그냥 저도 일찍 쉬려구요. ^^ 공부하시다 심심하면 또 댓글 나눠요!^^

2016-12-25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구름물고기 2016-12-26 0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립에서 더 들어간 곳, 더 고요해지고 더 적막하려면 얼마나 필요할까..와닿는 문장이에요 얼마나 더 심연에 다가가야 할까요

[그장소] 2016-12-26 07:31   좋아요 1 | URL
심연이라 쓰고 욕망이라고 읽네요. ^^
욕망해야 하고 바랄수록 들여다 봐 지겠죠...
그 심연이란 것.( 아닐까요?)
 
이별의 재구성 - 제28회 신동엽창작상 수상작 창비시선 306
안현미 지음 / 창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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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으로 ㅡ

 

    엉뚱해지고 싶은 밤이고 편두통은 두통보다 슬프다는

게 네 생각이야 말의 어원을 거슬러가다보면 '사랑'은 '생

각'에 도착해 알면 알수록 엉뚱해질 수 없다는 건 내 생각

이고 말을 더듬은 녀석은 엉뚱을 'ㅇㅓㅇㄷ ㅓ ㅇ ㅣㄱ ㅏ

ㄸㅜㅇㄸㅜㅇㅎㅐ' 로 분열시키고 있지 그런 점에서 우리

는 조금씩 기우뚱하다고 고백해도 될까 ? 고백 같은 건 역

시 하지 않는 게 옳아 우리가 언제 슬픔을 홀대한 적이 있

던가 ? 슬픔이 우리를 홀대한 적 없듯 사각사각 갈아마시는

주스처럼 사각사각 갈아마시는 슬픔 아무도 주목하지 않

은 가운데 태어난 불만이 불편을 죽이고 불만이 가득한 불

편한 사랑이 되는 너무도 상투적인 이야기 , 혹은 동어반

복 ,혹은 이구동성 , 혹은 무한 루핑의 생각 생각들 말의 엉

덩이를 따라가보면 '생각'은 '사랑'에 도착해 엉덩이가 뚱

뚱해도 엉뚱해도 된다면 나는 너를 생각해 랑만적으로 !

 

ㅡ본문 30 쪽에서 ㅡ

안현미 시인의 시집 [이별의 재구성]중 ㅡ

 


 

쇼스타코비치 / 영화  [등에]ㅡ 에 나왔다는  모음곡

Romance from The Gadfly suite , Op . 97 No . 8

 

등에라는 영화를 찾다가 밤을 꼬박 새워버리고 말았다 .

이웃의 노래 블로그에서 겨우 몇 개의 정보만 건졌다 .

아내의 죽음 , 그 황망함과 쓸쓸함 ... 아름답고 슬픈 선율 ㅡ

이라는게 그 곡을 알려준다 .

 

영화는 못보고 밤 새 음악만 반복 듣기한 오늘 ,

미치게 피곤한데 왜 누우면 쇠파리가 성가시게 하는 것처럼

달라붙은 생각이 잠으로 떨어지지 못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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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문학과지성 시인선 R 1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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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이마에는물결무늬 자국」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알록달록한' 허기들 ,

삶의 풍경들을 만들어나가는 허기의 정체에 대해 말하고 있는 시집이다 . 그리고 그 제일 앞에 오는 것이 시인 자신의 , 시인으로서의 허기 , 시에 대한 허기이다 .

그런데 내려놓아도 이내 마음속에 되살아나는 그 열망 , 우리가 지상의 가장 낮은 곳을 지나갈 때를 기다렸다가 불쑥 솟아오르는 그 '노래' 를 , 헛것이라고 내칠 수 있을까 . 그런 열망을 우리는 , 은유적으로 , '깊은 오후의 열망' 이라 이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

ㅡ 심재중 해설 중에서 ㅡ

 

 

비에 젖어 , 슬픔에 젖어

 

그러니까 그 나이였다 ...... 시가

날 찾아왔다 . 난 모른다 . 어디서 왔는지

 

ㅡ 파블로 네루다 , 「시」

 

오래 시를 쓰지 못했다 . 그리고 추석이 왔다 . 추석에는 어

머니 사시는 고덕동에서 대치동 형님 집까지 올림픽대로를 타

고 갔다 . 영동대교를 지날 때 주현미의 ' 비 내리는 영동교 ' 가

생각나 , 그 노래를 부를까 하다가 아내가 한소리 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 그러나 막 영동대교 다리 밑을 지나자마자 , 그

노래의 다음 구절인 ' 비에 젖어 , 슬픔에 젖어 ' 가 입속에서 터

져 나왔다 . 내가 부르지 않아도 노래는 흐르고 있었다 . 비에

젖어 , 슬픔에 젖어 노래는 내가 영동대교 다리 밑을 지나가기

를 , 지나갈 때는 좀더 유치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21쪽 .

 


 

 

밤 비 내리는 영동교 - 주현미

밤비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이마음
그사람은 모를거야 모르실거야

비에젖어 슬픔에 젖어 눈물에 젖어
하염없이 걷고있네 밤비내리는 영동교

잊어야지 하면서도 못잊는것은
미련 미련 미련 때문인가봐


밤비내리는 영동교를 헤매도는 이마음
그사람은 모를거야 모르실거야

비에젖어 슬픔에 젖어 아픔에 젖어
하염없이 헤매이네 밤비내리는 영동교

생각말자 하면서도 생각하는건
미련 미련 미련 때문인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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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문학과지성 시인선 R 1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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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달에는 물로 된 돌이 있는가?

금으로 된 물이 있는가?

 

ㅡ파블로 네루다, 「遊星」

 

 

    불 끄고 자리에 누우면 달은 머리맡에 있다 . 깊은 밤 하늘

호수에는 물이 없고 , 엎드려 자다가 고개 든 아이처럼 달의

이마엔 물결무늬 자국 . 노를 저을 수 없는 달은 수심 없는 호

수를 미끌어져 가고 , 불러 세울 수 없는 달의 배를 탈 것도 아

닌데 나는 잠들기가 무섭다 .

    유난히 달 밝은 밤이면 내 딸은 나보고 달보기라 한다 . 내

이름이 성복이니까 , 별 성 자 별보기라고 고쳐 부르기도 한다 .

그럼 나는 그애보고 메뚜기라 한다 . 기름한 얼굴에 뿔테 안경

을 걸치면 , 영락없이 아파트 12층에 날아든 눈 큰 메뚜기다 .

그러면 호호부인은 호호호 입을 가리고 웃는다 . 벼랑의 붉은

꽃 꺽어 달라던 水路夫人보다 내 아내 못할 것 없지만 , 내게

는 고삐 놓아줄 암소가 없다 .

   우리는 이렇게 산다 . 오를 수 없는 벼랑의 붉은 꽃처럼 , 절

해고도의 섬처럼 , 파도 많이 지는 밤에는 섬도 보이지 않는 ,

절해처럼 .

 

(26쪽)

이성복 시집 ㅡ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ㅡ중에서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ㅡ ㅡ ㅡ ㅡ ㅡ ㅡ

이틀째 돌아가는 드뷔시의 달빛.

혹시나 보일까 나가본 베란다로는

오늘의 달빛이 미치지 못한다 .

안보인다고 없는 것이 아닐테니

내일의 소원 중에서 하나를

미리 당겨 빌어보는 밤 .

아 , 아 , 딱 그만 사는 것도  좋겠어.

내가 없어도 이야기들은 어차피 계속일텐데

그 호기심에 하루하룰 미루며 연명하는게

그래, 무슨 의미가 있지 ?

널 낳고 죽을 수 있어서 기뻐 울었다는

영화 속 어미처럼 , 내 마음도 그리 흥건한가?

차갑게 느껴지는 달일때도 살아와 놓고

새삼 온기가 느껴지는 드뷔시의 달빛에

이상토록 마음은 차게 식는다 .

의미따윈 모르고 돌고 있을 달 .

이러고도 살아야하나 의미를 괜히 달에

물어보는 오늘의 하찮음 .

사는게 무료한 모양이다 .

*우리는 이렇게 산다 .

 

*표시는 이성복 시인의 싯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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