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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센티미터 ㅣ 웅진책마을 113
이상권 지음, 째찌(최현진) 그림 / 웅진주니어 / 2021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만 봐서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기 어려운 내용의 책입니다.
그래서 왠지 주제랑 더 일맥상통한 느낌이랄까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고정관념이 바로 성역할에 대한 게 아닌가 싶어요.
남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 라는 생각들이 예전 어른들부터 내려와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조차도 핑크색은 여자색, 파란색은 남자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요.
한때는 산부인과에서도 성별을 알려줄 수 없으니 핑크색 옷을 준비하셔야 겠네요, 파란색 옷을 준비하셔야 겠네요로 성별을 스포해주시곤 했었죠.
예전에 EBS에서 방영한 관찰 프로그램에서 6살 정도 되는 아이들에게 어떤 남자분이 치마를 입고 가발을 쓰고 변장한 다음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이들에게 남자인지 여자인지 물어보니 아이들 대부분이 여자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머리가 길고 치마를 입으면 여자.. 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거겠죠?
이 책은 그런 고정관념 뿐만 아니라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어요.
주인공 아이는 가위때문에 귀를 다치고 가위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깁니다.
요새는 소아정신과가 따로 있을 정도로 아이들에게도 정신적인 문제가 많이 생긴다고 해요.
트라우마 역시 치료받고 극복해나가야 하는 증상으로서, 주변 사람들의 믿음과 사랑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너무나도 다행스럽게 이 책 속 시하도 부모님으로부터는 트라우마를 존중받고 있더라구요.
물론.. 부모님을 제외한 주변인들은 아닙니다. 학교 선생님조차도 시하의 긴머리를 불편해하시죠..
책 맨 뒤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고난 뒤에 책 앞에 있는 이 멘트가 이해가 되었어요.
사실 작가님이 이 책을 쓰시게 된 계기는 어떤 아이가 쓴 글을 읽고서 받은 영감때문이라고 합니다.
한 남자아이가 주인공 시하의 모델이었던거죠.
그 남자 아이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다가 피가 나고 그 트라우마로 머리를 자르지 않았어요.
그리고는 고정관념때문에 학교나 지하철, 공원 화장실 등에서 여자로 오인받으며 마음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런 자신의 처지에 대해 아이가 글을 썼고, 작가님은 그 이야기에 살을 붙여 이 책을 탄생시켰다고 하시네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 그런지 좀 더 마음이 아파오더라구요.
어린 아이가 가위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싶기도 하고...
책 속 주인공 시하는 엄마의 단골 미용실 설라딘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게 됩니다.
설라딘 원장님은 자신이 마법사라하며 묘기를 보여주고 아이의 긴장을 풀어주는데요.
머리를 자르는데 그만 시하가 고래를 흔들어 버리고 그 때문에 왼쪽 귀를 다치게 됩니다.
그 후 시하는 가위만 보면 질겁을 해서 종이접기를 하는 것도 힘들어해요.
바리깡을 사용하는 이발소에도 가보았지만 역시나 머리를 잘라야 하는 순간이 오면 배가 아프고 엄마를 찾습니다.
처음에는 답답해하고 재촉하던 엄마 아빠는 해가 거듭되도 변하지 않는 시하의 모습에 시하의 트라우마가 깊다는 것을 알고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이해해줍니다. 머리카락이 눈을 질러 괴로워하니까 머리띠도 사주지요.
하지만 친척들은 다릅니다..
친척 모임에 가서는 어른들로부터 갖은 잔소리와 구박을 듣고, 특히 할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시고서도 시하가 머리를 자르지 않을거면 다시는 오지말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지요.
그리고.. 학교의 친구들 역시 다르지 않더라구요.
시하의 어릴때부터 단짝인 리라도 시하보고 이상하다고 하는데.. 제 마음이 다 아프더라구요..
어쩜 아이들이 순진하기에 더 잔인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볼 땐 그냥 머리 긴 남자얘구나 생각할텐데 말이죠 ㅠ_ㅠ
그런 시하는 할아버지 병문안을 갔다가 재은이라는 소아암 환자를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인정해주고, 머리 긴 모습을 부러워하기도 하는 재은이를 보며 시하는 용기를 얻고,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있는 그대로의 시하의 모습을 멋지다고 해주는 재은이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재은이에게 큰 선물을 해주려고 하지요~
과연 그 선물은 무엇일까요? ^^
딸 아이는 이 책을 다 읽고는 저보고 왜 하필 제목이 29cm지? 기억하기 어렵게~ 라며 투덜대더라구요 ㅎㅎ
처음엔 딸 아이 말처럼 20cm나 30cm처럼 딱 떨어지고 기억하기 쉬운 숫자가 있는데 왜 29cm일까 궁금하더라구요.
좀 더 생각해보니 이 책이 고정관념과 관련된 책이라는 게 떠올랐고...
그래서 틀에 박힌 딱 떨어지는 숫자보다 어딘가 모자란 듯한 29cm를 고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이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실제로 아이의 주변에 소위 우리가 "남자답다" "여자답다"에 크게 벗어나는 친구는 없어서 아이가 실 생활에 적용하기는 힘들겠지만 혹시 그러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친구를 만나더라도 재은이처럼, 시하의 엄마아빠처럼 넓은 마음을 받아줄 수 있길 바랍니다. 껍데기가 아니라 그 친구의 진정한 내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