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세트] 봄을 삼킨 신부 (총2권/완결)
5月 돼지 지음 / 윈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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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과 키워드 보고 선택. 역시나 옛시대물 보는 맛 제대로. 경계를 무너뜨려 저울추를 버리고 스스로에게만 ‘그럴수도 있는 일‘이 되는 순간 어두운 지대에 발을 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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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폐당하고도 감정이 평탄하단 사실은 위험 신호였다. 이건 절대로 안스카리우스를 사랑해서 스스로를 다독인 게 아니었다. 그보단 지킬 것이 사라져서다. 이제 그녀에겐 모욕을 받을 만큼의 자아도 없었다.
티티라 돔니니는 이제 상주도, 시민도, 자유인도, 심지어 신민조차 못 되었다. 그저 교국인의 일개 첩실이자 법황의 노예일 뿐…….
전부 자신이 원했다. 스스로 걸어 들어왔다.
티티라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꼼짝없이 갇힌 느낌이 들었다. 안스카리우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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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대 조용해지지 않겠지.
그건 ‘욕망’이나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도 참 너무했다.
인간의 단어는 처절한 모사품이다.
기억 또한 마찬가지였다.
존재했던 감정을 단어로 녹일 때 볼품없는 가짜가 되는 것처럼, 바깥세상에서 살아온 증거를 기억으로 녹이자 힘없이 쓰러졌다. 바다 하나만 건너면 사람과 문서, 건물과 배가 나를 증명할 텐데, 이 방에 갇힌 그는 기억이 죽어 스스로를 잃고 있었다.
정말 수많은…… 기억들…….
그 속에 손을 넣어 휘저으면 한순간 요란하다가도 결국 지독한 정적으로 끝났다. 그리고 뒤늦게야 어둠이 손목을 베어 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까지 정신을 못 차린 제 탓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안스는 살이 끊기는 고통을 겪었다. 누군가 산 채로 기억을 뜯어내고 있었다. 그 모든 과정을 시시각각 느끼고 있었다.
되새길수록 사라지고, 쫓아갈수록 멀어졌다.
그는 무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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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이 갑자기 신발의 끈을 풀어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상대를 걷어차려 했지만 그가 훨씬 빨랐다. 얇은 신발이 순식간에 떨어져 나갔다.
끈 자국대로 탄, 건강한 맨발등이 보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신발 탓에 유난히 흰 발가락들이 그녀를 약한 인간으로 전락시켰다.
발가락이, 발등이, 발목이, 발작하듯 툭툭 튕겨 올랐다.
그가 양손으로 발을 완전히 감쌌다. 뜨끈한 열기가 확 올라왔다. 그제야 제 발이 얼음장처럼 차갑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깥으로, 바깥으로 맴돌던 미지근한 공기가 다시 안으로, 안으로……. 그의 손아귀 안에 갇혔다. 피가 점차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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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스는 소조폴에 돌아오자마자 연약한 인간이 되었다. 도시가 진압당한 것은 괴롭지 않았으나, 추억을 건드린 변화들이 그를 흔들었다. 무엇이라도 제게 닿으면 당장 상처 입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베오메네스가 ‘이곳에서 자라셨느냐.’ 한마디만 해도 갑자기 울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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