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포와 벨몬트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죠. 하지만 왜 완전히 다른 두 지방의 스튜에서 비슷한 맛이 나는지는 알겠어요."
"어째서요?"
모두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며 주시했다. 헤이즐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비밀은 대가족 요리법이에요."
"그게 뭔데요?"
"아시다시피 스튜는 각자 그릇에 담아 먹는 음식이잖아요. 그런데 대가족이 둘러앉아 나눠 먹다 보면, 어떤 그릇에는 고기가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런 경우에도 모두 공평하게 맛있는 한 그릇을 대접받을 수 있도록, 모든 재료에 정성껏 밑간을 하는 것이 바로 대가족 요리법이에요. 비록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캄포의 그 할머니는 생각하셨던 거예요. 모두 이 스튜를 사이좋게, 그리고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고요."

"발렌타인 경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가만 놔둘 수가 없죠? 어떻게든 자기 방식대로 바꿔 놓아야 직성이 풀리죠?"
"누구나 그렇지 않나?"
"천만에요."
헤이즐은 도감 속의 원주민들을 가리켰다.
"이 사람들은 몹시 당황했을 거예요. 표류하는 여행자들을 끌어들이기 좋은 허름한 섬나라가, 갑자기 번쩍번쩍한 새것으로 변해 버렸으니까요. 어쨌든 살기 좋아진 건 맞으니 고맙긴 했겠지만, 속으로는 생각했겠죠. ‘이 사람 뭐지? 사서 고생하고 있어!’ 그래서 그런 아련한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이 씨앗을 선물한 거예요. 이제 수수께끼가 풀렸어요. 발렌타인 경도 슬슬 짐작이 가시죠? 섬나라의 늙은 현자가 전해 주고 싶었던 심오한 진리란……."
"……이 꽃을 키우면서 좀 잊어라."
이스칸다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여유를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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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황제궁 옆 마로니에 농장 1 황제궁 옆 마로니에 농장 1
정연 / 연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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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아기자기한 동화스러움이 풍기는 듯한 글로 산책하며 듣다가 결국 동네 베이커리 카페로 발길을 향하게 하는 1권은 ‘먹방 소설‘이다. 마치 그 농장 살롱을 기습한 ‘야생 멧돼지‘처럼 여기 아무개도 유혹 당해버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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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트] 로잔의 가시덤불 (총9권/완결)
김다현 / 로즈엔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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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쟁.고뇌.치열한 경쟁으로 삶 조차 버거운 이들로 인해 초반부터 제법 묵직 했다.  

늦은 밤과 새벽의 경계에서 자꾸만 가물거리는 눈치 없는 나의 신체 시계를 탓하며 야금야금~ 깊은 몰입감으로 [로잔의 가시덤불] 그 시작은 좋았다.    


어딘가 퇴폐적 일 듯 싶고 무자비한 폭군이 되어버릴 듯한 예후르, 피폐의 한 꼭지를 차지 하겠구나 싶었던 페기.  크게 터트릴 듯 아슬하게 보였던 안드레아.  하나의 장치처럼 보였던 가면을 쓴 교황... 선한 종교를 덧씌운 어둠이 꿈틀대는 듯한 원탁 분위기 등으로 인해 글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어서 등장 인물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아껴가며 읽어야지 했었다.   그러나, 여기 1인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내용을 보며 좋은 만큼 아쉬움 또한 컸다.    


동행하며 이해하기를 선택한 차라 와 동부 전선 에피소드에서 반격하는 황녀는 약간의 씁쓸함과 안스러움을 남겼고, 왜 실체화 했니?  예리엘... 반면 글 대부분을 이끌어 가는 페기.  그녀에게 카리스마까지 바라지는 않아도 아주 조금의 여유로움은 기대 했는데 조금 실망.  어쨌거나 최종 승자이지 않나?   

착한 사람. 정의로움에 대한 컴플랙스가 쥐똥만큼 남아 있는 아무개는 그렇다.  파란만장 난장판 다 겪은 그녀의 대범함이 아쉽다. 

또한.    

다크 하고 무거운 주제로 로맨스 속에 무엇을 담을까 기대했던 아주 오래된 고대 이야기.   

천사와 뱀. 영원의 불꽃. 권력을 향한 음모 등 소재 자체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초반에 비해 길게 반복 서술 되는 고대의 설정에 현재가 먹혀버린 듯했고, 지속적으로 펼쳐지는 대결 구도에 오히려 긴장이 빠져버린 듯 했다.  누군가 소리 질러가며 싸우는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각 에피소드가 흥미로웠으나, 약간의 느긋함으로 쉬어가는 한 코너가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마지막 9권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으나 잘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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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벗들을 잃고, 너를 잃고, 심지어는 나 자신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은 만신창이가 여기 있다. 상실의 고통은 가시질 않고 더 커져만 가는데, 정작 이 고통을 해갈할 곳이 없다. 미친 듯이 피어오르는 이 분노가 갈 길 잃은 방랑자처럼 나를 맴돌기만 한다.
네가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어 애가 탄다.
이것이 그리움이라면, 나는 네가 그립다. 너희가 그립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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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녀로 팔릴 뻔하고, 사선을 넘나드는 전장에서 수개월을 보내며 그런 생각을 했다. 평생을 온실 속의 화초로 살아온 비올라를 보며 조금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고, 한편으로는 묘한 우월감을 느꼈다. 다르게 살아 본 만큼 눈이 트이고 견식이 넓어졌다고.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병자가 있는 곳에 의사가 있고, 모든 마을에 자격 있는 의사가 있으리라 여겼던 것이 어쩌면 지나친 자만이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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