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 개정판
미셸 푸코 지음, 김현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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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의 '르네 마그리트論'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미셸 푸코, 1973.


"차라리 그것은 일종의 공간 '부재', 글씨의 기호들과 이미지의 선들 사이의 '공통의 자리(진부한 상투어)'의 말소이리라. 파이프에 이름을 붙여주는 언표와 그것을 형상화해야 하는 데생의 공동 소유물이었던 '파이프', 형태의 윤곽과 말들의 섬유물을 교차시켜 놓고 있던 그 유령 파이프는 결정적으로 달아나 버렸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2. 흐트러진 칼리그람>, 미셸 푸코, 1973.


1990년에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 선생이 독학을 위해 번역해 둔 원고를 문학평론가 정과리 선생이 발문을 붙이고 다듬어서 낸 책이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lt : 1926~1984)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973)라는 짧은 미술 비평문이다.

고전 철학이 지향해 온 '본질'을 해부하고 분열시킨 현대철학의 거장 중 한 사람으로서, 미셸 푸코는 '본질'을 향한 '일자'와 '동일성'의 고전 철학을 해체하면서 그 '불연속성'의 무질서에 정합성을 부여하기 위해 [지식의 고고학](1969)을 선언했다. 근대 독일관념철학을 집대성한 철학자 헤겔의 말마따나 형식은 다를지라도 내용에서는 종교와도 같은 근대의 고전 철학에서 '말'과 '사물', '현상' 등은 궁극의 '본질'에 종속되고 근원으로서의 '본질'로부터 위계화되면서 하나(일자)로서 동일화되었다. 그러나 푸코 같은 20세기 프랑스 현대철학자에게 사물은 그 자체의 실체적인 '본질'은 알 수 없고 '말(언어)'이든 표면적 '현상'이든 이미지든 사물을 지시하는 모든 양태들은 그 자체로 독립된 위치에 있다. 푸코가 연구한 '지식의 고고학'은 바로 이 '동일성'의 고전 철학과 결별하는 해체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초기적 연구였고,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말과 사물](1966)은 그 형이상학적 연구의 준비 작업적인 사전 궤적이었다.

김현 선생이 홀로 번역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973)라는 푸코의 '미술 비평'은 이런 초기 푸코 사상을 담은 책으로서, 이른바 미셸 푸코의 '르네 마그리트論'이다. 

20세기 초중반 유럽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는 미셸 푸코와 편지도 주고받던 사이로 현실의 '재현' 속에서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을 신비스럽고 기묘한 그림으로 표현한 작가다. 그는 초현실주의 1차 선언 시절의 대표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 1888~1978)의 영향을 받았으나 자신만의 독특하고 지적인 화풍을 오래도록 내내 이어갔다.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제1선언]에서 규정한 '초현실주의'는 "순수한 심령의 '자동주의'를 통한... 사고활동에 의한 표현"으로서 "아무런 이성의 통제가 없는" 사고활동이었으나, 후반기 초현실주의 화가에 속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화풍은 다분히 지적이고 이성적 분석이 수반되는 일종의 '철학적 회화'였다.

그렇게 마그리트는 푸코와 철학의 지면에서 만난다.


"어디에도 파이프는 없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2>, 미셸 푸코, 1973.


푸코의 미술 비평 '마그리트론(論)'의 중심 소재는 마그리트의 대표작 <이미지의 배반>이다. 1929년인가부터 반복적으로 수차례 그려진 이 그림에는 일반적 파이프 그림과 함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는 문장이 일종의 '칼리그람(문자로 된 그림)'처럼 박혀있다. 그래서 원제목 <이미지의 배반>보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종종 불리는데, 화가가 그린 파이프는 진정한 파이프가 아니라 그 이미지에 불과하며, 그 이미지는 해당 사물과 동일하지도 않고, 인간의 말 또는 글로 표현된 파이프 또한 그러하다는 '포스트-모던'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즉, 미셸 푸코가 [말과 사물](1966)이나 [지식의 고고학](1969)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철학적 메시지를 미술로서 표현한 것이었다. 


"내가 보기엔, 마그리트는 '유사(類似:ressemblance)'에서 '상사(相似:similitude)'를 분리해 내고, 후자(상사)를 전자(유사)와 반대로 작용하게 하는 것 같다. 유사에는 '주인'이 있다. 근원이 되는 요소가 그것으로서, 그로부터 출발하여 연속적으로 복제가 가능하게 되는데, 그 사본들은 근원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점점 약화됨으로써, 그 근원 요소를 중심으로 질서가 세워지고 위계화된다. '유사'하다는 것은 지시하고 분류하는 제1의 참조물을 전제로 한다. 반면 '비슷'하다('상사')는 것은 시작도 끝도 없고,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으며, 어떤 서열에도 복종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면서 퍼져 나가는 계열선을 따라 전개된다. '유사'는 '재현'에 쓰이며, '재현'은 '유사'를 지배한다. '상사'는 '되풀이'에 쓰이며, '되풀이'는 '상사'의 길을 따라 달린다. '유사'는 모델에 따라 정돈되면서, 또한 그 모델을 다시 이끌고 가 인정시켜야 하는 책임을 떠맡는다. '상사'는 비슷한 것으로부터 비슷한 것으로의 한없고 가역적인 관계로서의 '모의(模擬:simulacre:시뮬라크르)'를 순환시킨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5. 확언의 일곱 봉인>, 미셸 푸코, 1973.


그렇게 사물로서의 '파이프'도 아니고, 이미지(그림)로서 '파이프'에 불과하나, 이를 언어로 표현한 '파이프' 또한 그것들과 동일하지 않으니, 결론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본질'로서의 '파이프'를 그림이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니 원래 '파이프'라는 사물의 '본질'은 알 수 없는 '불가지론'의 영역이고, 우리가 보거나 그리거나 표현한 현상과 행위들만 남게 된다. 

이것이 바로 김현 선생이 '모의'라고 번역한 '시뮬라크르(표면적 현상)'를 강조하는 20세기말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다.


"동일성을 뒤섞는 대신에 '상사'가 그것들을 깨뜨리는 힘을 갖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5>, 미셸 푸코, 1973.


'말'이든 '이미지'든 파이프는 '본질'로 동일화될 수 없다.

그러므로, 
"파이프는 어디에도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현대철학을 미술에서 아주 잘 표현해내고 있는 마그리트에 대한 헌사인 듯, 미셸 푸코는 르네 마그리트의 몇 가지 대표작을 이 책에서 함께 평론하고 있다.

<대화의 기술> - 1950.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사물의 형태 속에 담론이 새겨진 경우였다. 그것은 부정하고 분할하는 모호한 힘이었다. 반면, <대화의 기술>, 그것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자신들 고유의 말을 이루어 내고,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대화를 그들의 일상적 수다 속에 심어 넣는 사물들의 자체 중력이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4. 말들의 은밀한 작업>, 미셸 푸코, 1973.

<이미지의 배반>처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꿈(reve)'이라는 언어적 상징물 앞에서 '대화'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설령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침묵 속에서 몽환적 상상력을 확산시킨다.
과연 무슨 대화를 하고 있을까?

<떨어지는 저녁> - 1964.

"... 이미지와 말들의 풀릴 길 없이 얽힌 그물망, 그리고, 그것들을 받쳐줄 수 있을 공통 영역의 '부재'에 근거하고 있다. (마그리트에 의하면)... '그림에서 말들은 이미지와 마찬가지의 실체들이다. 그림에서의 이미지와 말들은 보통 때와는 다르게 나타난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4>, 미셸 푸코, 1973.

<떨어지는 저녁>(1964)과 <자유로 가는 문>(1933)에서는 깨져서 파편화된 유리창의 조각을 통해 새겨진 원래의 풍경이 엿보이는데, 유리창에 투영된 해와 나무의 사물과 풍경이 원래의 그 사물풍경인지 이미지인지, 그리고 나의 눈에 비친 그 영상과의 관계는 무엇인지 모호하다.
'본질'은 무엇인가? 
'현상'과 '이미지'는 또 무엇인가?

<레카미에 부인>, <발코니> - 1950~1951.

"... 그는 전통회화의 인물들을 관(棺)으로 바꿔 놓는다. 밀랍 먹인 떡갈나무 널빤지들 사이에 보이지 않게 담겨진 공허가 산 육체들의 부피, 드레스의 펼쳐짐, 시선의 방향, 막 말을 하려던 참의 그 모든 표정들이 이루고 있는 공간을 해체하면서, 그 '비-장소'가 '사람이나 되는 듯 제 스스로' 출현한다 - 인물들 대신에, 그리고 더 이상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그 장소에서."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4>, 미셸 푸코, 1973.

자크 루이 다비드의 <레카미에 부인>에서 부인의 초상과 에두아르 마네의 <발코니> 속 두 여인은 마그리트에 와서 '관'으로 대체된다. 유한한 인물은 현재의 형상 뿐만 아니라 그의 미래가 투영된 삶의 궤적을 결국에는 죽어서 들어가게 되는 '관'을 통해 설명된다. 인물은 '부재'하지만, '관'은 그 인물의 모든 것을 최대한으로 보여준다.

<재현> - 1962.

"... 똑같은 화폭 위에, 이와 같이 '상사' 관계에 의해 옆으로 연결된 두 개의 이미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모델을 바깥의 준거틀로 설정하는 것(유사성의 길을 통하는)은 곧장 불안해지고,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것이 되고 만다. 무엇이 무엇을 '재현'한단 말인가? 이미지의 정확성이 한 모델, 즉 외부에 위치하고 있는 지고한 '주인'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역할을 하는 반면, 상사체들의 (두 개 이상의) 계열은 이상적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유사 재현의) 군주제를 폐지한다. 이때부터 '모의(시뮬라크르)'는 언제나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표면 위를 달린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5>, 미셸 푸코, 1973.

같은 시공간에서 하나의 화면이 작은 화면으로 무한히 복제되고 '재현'된다. '유사'적 '재현'이 아닌 이 '상사'적 '되풀이'는 두 번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이 '상사'적 되풀이를 통해 무한히 증식되고 확장되는 '재현'의 가능성을 본다.

<데칼코마니> - 1966.

"... 유사성의 재생산은 아닌 것... '유사'에 대한 '상사'의 우월성... '유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인지하게 하지만, '상사'는 알아볼 수 있는 대상, 친숙한 실루엣이 감추는, 못 보게 하는,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을 보게 한다. '유사'는 단일한, 언제나 똑같은 단언을 내포한다... '상사'는 상이한 확언들을 배가시킨다. 그 확언들은 함께 춤춘다. 서로 기대면서, 서로의 위에 넘어지면서."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5>, 미셸 푸코, 1973.

그리하여, '상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는 '트롱프뢰유' 같은 붉은 커튼 배경과 대비하여, 사물과 비슷한 현상들을 표현하면서 사물의 이면에 숨겨진 수많은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확장되는 '상사'적 재현은 무한하다.

결국, 마그리트의 <재현(복제) 금지>(1937)라는 작품은 거울을 보고 있음에도 사물이 '있는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절대 불가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마그리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자화상'과 같은 중절모를 쓴 정장의 신사는 아마도 그의 '본질'을 담고 있을 듯한 얼굴을 가린 채 등장한다. 
<사람의 아들>(1964)로 지칭된 그 신사는 인류를 구원한 예수와도 같다고 해석되기도 하는데, 근대의 '신'이 부재한 현대의 자리에서 '사람의 아들'은 바로 '신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마그리트는 언어 기호와 조형 요소들을 연결시키는데, 그러나, 어떠한 선행 동위소(동일성의 요소)도 설정하지 않는다. 그는 '유사'가 태연하게 근거하고 있는 (고전 회화의) 확언적 담론의 바탕을 회피한다. 그리고 그는 지표 없는 용적과 구도 없는 공간의 불안정 속에서 비확언적인 순수 '상사체'들과 '말의 언표'들을 놀이하게 한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말하자면, 바로 그 작동 절차의 기본 형식을 제공한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6. 그림은 확언이 아니다>, 미셸 푸코, 1973.


르네 마그리트는 고전 회화의 전통인 '본질'에 위계적인 '유사'적 '재현'을 초월하여 '본질'과 '현상'이 위계화되지 않고 각 층위에서 동등하게 존재하는 '상사'의 상상력을 통해 무한한 '재현'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데, 푸코가 '마그리트론'의 <6장>에서 결론으로 내세운 5단계는 다음과 같다.

1. 누구나 아는 '공통의 자리'에 칼리그람 실천
2. '유사'가 아닌 '상사'로서 칼리그람이 해체되어 빈 공간을 열기
3. 담론이 떨어져 나가고 가시적인 문자 형태를 얻어 그 자체로 불확실하고 무한하게 얽키고 설키며 '상식적'으로 보이던 공통의 공간 '부재'를 드러내기
4. 근원적 '본질'로 회귀되지 않는 '상사체'들이 자신으로부터 무한하게 증식
5. 유사의 재현 속에 감추어진 메시지가 순환하는 '상사체'로 되었는지 검증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와 함께 위와 같이 '재현'되는 현실은 다음과 같은 푸코의 철학적 선언으로 마무리된다.


"언젠가 이미지 그 자체와 그것이 달고 있는 이름이 함께, 길다란 계열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 상사'에 의해, '탈동일화'되는 날이 올 것이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6>, 미셸 푸코, 1973.


현대철학과 함께 하는 초현실주의 회화의 '재현'은 그래서 더욱 무한하다.

***

1.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1973), Michel Foucault, 김현 옮김, 정과리 발문, <고려대학교출판부>, 2010.
2. [지식의 고고학](1969), 미셸 푸코, 이정우 옮김, <민음사>, 2000.
3. [말과 사물 - 인문과학의 고고학](1966), 미셸 푸코, 이규현 옮김, <민음사>, 2012.
4. [초현실주의(Surrealism)](2008), 카트린ㅍ클링죄어 르루아, 김영선 옮김, <마로니에북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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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비밀 - 호크니가 파헤친 거장들의 비법
데이비드 호크니 지음, 남경태 옮김 / 한길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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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의 '민주주의'적 역사와 '비밀'
- [명화의 비밀], 데이비드 호크니, 2001~2006.


"나는 (장 오귀스트) 앵그르가 모종의 광학장치를 작품에 이용했다고 확신한다. 드로잉의 경우에는 카메라 루시다였겠지만, 회화의 섬세한 세부를 그릴 때는 카메라 오브스쿠라(옵스큐라)로 사용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만이 유일한 설명이다. 그러나 앵그르가 처음으로 광학을 이용한 화가는 아니다. 베르메르(페르메이르)도 카메라 오브스쿠라를 사용했다고 생각되는데, 이 점은 회화에 나타난 광학적 효과로 추측할 수 있다. 그가 처음이었을까? 나는 많은 책과 목록을 뒤져 찾을 수 있는 모든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기에 이르렀다. 내 호기심은 점점 커졌다."
- [명화의 비밀], <시각적 증거>, 데이비드 호크니, 2001.


다시, '재현'의 문제다.

14~16세기 르네상스 미술가들의 '열전'을 남긴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 1511~74)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 등의 거장들로 완성되는, 특히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기법'을 확정된 '마니에라(manner)'라 규정하며 이후 예술가들이 이 '기법(방식/매너)'을 따라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에 따르면, 14세기(트레첸토:300년대) 조토 디 본도네의 사실성의 '혁신'으로부터 미술사의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열렸고, 15세기(콰트로첸토:400년대)에 회화의 마사초 디 산 조반니와 건축의 필리포 브루넬리스키의 '선형 원근법', 도나텔로(혹은 도나토)의 일방향 부조를 넘어선 입체적 사방 조각을 거쳐, 16세기(친퀘첸토:500년대) 회화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조각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색채의 라파엘로 산치오 등의 거장들에 이르러 르네상스 미술의 '기법(방식/매너/마니에라)'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화가들이 바사리가 규정한 이 '방식'을 '답습'하는 행태가 지금 우리가 아는 '매너리즘'이다. 

일제강점기에 의학을 전공한 이근배(1914~2007) 조선대 의대 교수는 자신의 전공도 아닌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취미적 관심 하나로 자그만치 18년간 조르조 바사리의 '열전' 영문판을 우리말로 옮기셨단다. 그가 번역하면서 본 16세기 바사리의 예술관은 '자연의 철저한 모방'이었다. 즉, 신이 창조한 자연은 그 자체가 완벽 그 자체이므로 인간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예술의 지상명령'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열전의 첫문장은 위대한 미술가들의 뛰어난 디세뇨(기교)가 '신의 의지'라는 바사리의 찬사로 시작한다.

2018년에 <한길사>에서 2007년 작고하신 이근배 선생님의 번역본([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 <탐구당>, 1986)을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내면서 고종희 미술학박사의 해설을 함께 엮었는데, 그는 <해설>에서 "바사리는 자연의 충실한 '모방'과 그것의 '초월'이라는 두 딜레마의 관계를 처음으로 지적하면서 '주관성'이 '객관성'에 우선한다는 이론을 남겼다. 이것이 바로 '매너리즘' 이론의 핵심이자 미켈란젤로 미학의 핵심이기도 하다"([르네상스 미술가평전], <한길사>, 2018)라고 쓰며, '마니에라'의 이 모순된 중층적 의미를 이해하면서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을 읽을 것을 권한다. 

즉, 예술 또는 미술은 '자연의 충실한 모방'을 임무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연의 '객관성' 보다는 예술가 또는 미술가의 '주관성'의 우위를 통한 자연의 '초월'을 목표로 한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그렇게 미술사에서는,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말처럼 "미술은 없고 혁신적 미술가만 존재"([서양미술사], <서론>, 1950)하는 것이며,
게오르그 루카치의 사실주의 예술관처럼 '예술은 현실의 단순한 모방이 아닌 현실의 특수한 반영'이 된다.

영미권의 현대 사실주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 1937~)는 18~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장 오귀스트 앵그르(1780~1867)의 명화들을 보면서 그 '사실주의'적 기법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하여 2001년부터는 화가로서 작품활동을 잠시 멈추고 16세기 화가들의 '사실주의'적 작풍을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그 명화들의 '비밀'을 파헤친다.

우선, 그는 앵그르는 물론 그 이전 화가인 남유럽 이탈리아의 카라바조와 북유럽 플랑드르의 페르메이르(베르메르) 등의 '사실주의' 그림이 카메라 기술의 전신인 '광학' 기법을 사용한 것이라는 전제로 '광학' 이전과 이후의 초상화들을 하나의 '장벽'으로 담았다. 그의 실험적 연구서와 같은 [명화의 비밀]은 그가 만든 초상화의 [대장벽](2000)으로부터 시작한다. 


"나의 [대장벽]은 예술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점점 사실성이 향상되어온 변천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많은 그림들을 놓고 볼 때 분명한 것은 그 과정이 점진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광학'은 갑자기 도입되어 금세 정착되고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내가 경험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화가들이 사용하는 방법(재료, 도구, 기법, 통찰력)은 그들이 제작하는 작품의 성격에 중대하고 직접적이며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내가 보기에 그 급작스런 변화는 새로운 관찰방식이라기보다 '기술적 혁신'이며, 그것이 점진적인 그림 기술의 발달로 이어졌다고 생각된다. 15세기 초에 이루어진 그러한 혁신 중의 하나가 바로 분석적 '선형 원근법'의 발명이다... '광학'의 기술과 지식은 그보다 훨씬 이후에 탄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 [명화의 비밀], <시각적 증거>, 데이비드 호크니, 2001.


조토는 그림에 '원근법'적 요소를 도입하여 중세 미술의 평면성을 혁신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마사초는 브루넬리스키의 분석적이고 과학적인 '선형 원근법'을 그림에 적용하였고, 브루넬리스키는 '선형 원근법'의 혁신을 주도한 르네상스 예술가(건축가)가 되었다. 르네상스 미술 혁신의 핵심은 '원근법'이었다. 중세 미술의 평면성은 근대 르네상스 '선형 원근법'을 통해 입체적 사실성을 획득했다.

그런데 16세기 카라바조 풍의 그림은 그 이전 그림에 비해 확연한 '사실주의'적 재현을 보여주고 있는데, 데이비드 호크니가 발견한 [명화의 비밀]이란 바로, '광학(光學)'이었다.


"... 카라바조가 1596년에 그린 과일(앞쪽)의 사실성과 세잔이 1877~78년에 그린 사과(아래)의 '새로운 어색함'을 비교해 보라. 이 부분을 좀 멀리 떼어놓고 보라. 책에서 멀어질수록 카라바조의 사과는 점점 알아보기 어려워진다. 반면에 묘하게도 세잔의 사과는 점점 더 확고해지고 선명해진다. 카라바조의 이미지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세잔의 이미지는 감상자에게서 나오는 것, 즉 감상자의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한 눈의 렌즈로 보는 시야와 두 눈을 가진 인간의 시야의 차이다."
- [명화의 비밀], <시각적 증거>, 데이비드 호크니, 2001.


카메라 루시다는 막대기에 프리즘을 얹어 앞의 상을 아래 종이에 투영하는 방식의 광학 기술이라고 하는데 미술가의 눈으로만 묘사하는 이른바 '눈 굴리기' 방식과 달리 움직이지 않는 상을 그대로 모사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한다. 

호크니는 [명화의 비밀]에서 '광학' 이전의 조토, 치마부에, 프라 안젤리코 등의 15~16세기 이전 르네상스 화가들의 그림 그리기 방식을 전통적 '눈 굴리기'라고 명명한다. 즉, 모델을 보고 지면을 보는 화가의 '눈 굴리기'로는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카메라 루시다는 18세기 이전에도 존재했었을 수도 있고 16세기 북유럽 플랑드르 화가인 얀 반 에이크나 17세기 요하네스 얀 페르메이르(베르메르) 등은 이미 이 카메라 루시다 또는 카메라 옵스큐라 같은 '광학' 기술을 이용하여 사실을 사진처럼 '재현'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페르메이르가 카메라 옵스큐라로 추정되는 모종의 카메라 기술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렸다는 기존 의심을 호크니는 19세기 앵그르와 그 이전 16세기 카라바조, 17세기 페르메이르 등의 그림 등으로 미술가 영역을 확장하면서 화가 본인의 실험을 통해 파헤치고 있다.

카메라가 대중화된 19세기 초중반 이전부터 카메라 옵스큐라(오브스쿠라)라는 암실 상자 속 렌즈를 통해 상을 거꾸로 맺히게 하는 또 다른 '광학' 기술은 미술의 '사실주의'적 '재현'을 한층 더 가능토록 했다. 카메라처럼 맺혀지는 상 위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메라가 대중화된 1839년 이후 그림은 더 이상 사진을 따라갈 수 없었다. 미술은 시간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사진만큼 현실을 '재현'할 수 없었다. 2차원적 평면 그림에서 튀어나오는 듯한 '트롱프뢰유'의 신기함도 있지만 그림이 사진과 경쟁하는 것은 예술적으로 별 의미는 없어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한 눈의 렌즈를 통해 보는 것과 같은 카라바조 풍의 그림은 언뜻 사진과도 같이 '사실주의'적이지만, 멀리서 보면 세잔의 입체적 묘사가 더욱 '사실주의'적일 수 있다. 

미술의 역사에서 '재현'의 '사실성'은 현실과 그림의 '객관성'에서 나오는 것 보다는, 두 눈을 통해 입체적으로 현실을 보는 감상자의 '주관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인간의 '주관성'이 자연의 '객관성'에 우선한다는 조르조 바사리의 예술관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문제는,
사실의 '재현'이 된다.


"... 렌즈는 권력과 관계가 있을까? 1839년까지 카메라를 비밀로 숨겨왔고 교회가 사회적 힘(그림을 통제하는)을 갖고 있었다면, 그 힘은 '카메라의 대중화'와 함께 쇠퇴했고, 렌즈 이후의 사회적 힘은 미디어로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수백만 개의 카메라가 추가로 만들어졌으며(심지어 휴대전화에도), 이미지의 유통방법이 변하고 있다. 거울과 렌즈는 연속체다. 흥미로운 시간은 과거에도 역시 존재했다."
- [명화의 비밀], <시각적 증거>, 데이비드 호크니, 2001.


그림과 조각 같은 미술과 이들이 장식하는 건축을 포괄하는 예술 전체를 '신의 의지' 실현에 이용하려는 교회의 힘이 쇠퇴하기 시작한 근대 르네상스 말기에는 '광학'을 비롯한 과학 기술의 힘으로 더 많은 미술가가 등장할 수 있었고, 그보다 더 많은 감상자도 양산되었을 것이다. 칼로 무장한 기사들이 총으로 무장한 일반 민중들에게 패배한 전쟁의 역사와도 같다. 과학기술 발전은 모든 역사에서 다수의 '평등'한 점유를 향한 '민주주의'적 요소를 동반한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명화의 비밀]의 원제는 [Secret Knowledge :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다. 
직역하면, [숨겨진 진실 : 거장들의 잊혀진 기법을 다시 찾아서] 정도 되겠다. 즉, 카라바조를 추종한 '카라바지스티'들의 기법은 '광학'의 증거로서 빛과 어둠의 극단적 대조인 '키아로스쿠로(명암대비법)'를 그 특징으로 하는데 이는 당시 '광학'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켜두었던 강한 조명의 증거라고 한다. 

루벤스 조차도 배우고자 이탈리아를 찾았다던 그 '기술'은 아직까지도 전하는 기록도 없이 비밀에 싸여 있다고 한다. 호크니가 화가로서 카메라 루시다, 카메라 옵스큐라 등의 '광학' 기술을 통해 실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하지 않는 기술을 화가 본인의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책 [명화의 비밀](2001~2006)은 이렇게 <시각적 증거>와 <문헌적 증거>의 방식으로 잊혀진 명화의 '사실주의'적 '재현'의 기법 속 '비밀'을 추적하는 생생한 연구서다.

'광학' 기술과의 결합으로 혁신을 이끌었던 미술가들의 '재현'은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기술의 대중화와 '민주주의'적 미술관을 통해 다시금 혁신된다.

그래서 예술의 문제는 여전하다.

'비가시적인 것의 가시화'를 지향한다는 예술에서 '재현'이란 과연 무엇인가.

***

1. [명화의 비밀(Secret Knowledge :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2091~2006), David Hockney, 남경태 옮김, <한길사>, 2019.
2.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1550~1568), Giorgio Vasari, 이근배 옮김, 고종희 해설, <한길사>, 2018.
3. [오직, 그림 - 세계 미술사의 획기적인 그림 51], 박영택, <마음산책>,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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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2 한길그레이트북스 156
조르조 바사리 지음, 이근배 옮김, 고종희 / 한길사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재현'의 '민주주의'적 역사
- [명화의 비밀], 데이비드 호크니, 2001~2006.


"나는 (장 오귀스트) 앵그르가 모종의 광학장치를 작품에 이용했다고 확신한다. 드로잉의 경우에는 카메라 루시다였겠지만, 회화의 섬세한 세부를 그릴 때는 카메라 오브스쿠라(옵스큐라)로 사용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만이 유일한 설명이다. 그러나 앵그르가 처음으로 광학을 이용한 화가는 아니다. 베르메르(페르메이르)도 카메라 오브스쿠라를 사용했다고 생각되는데, 이 점은 회화에 나타난 광학적 효과로 추측할 수 있다. 그가 처음이었을까? 나는 많은 책과 목록을 뒤져 찾을 수 있는 모든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기에 이르렀다. 내 호기심은 점점 커졌다."
- [명화의 비밀], <시각적 증거>, 데이비드 호크니, 2001.


다시, '재현'의 문제다.

14~16세기 르네상스 미술가들의 '열전'을 남긴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 1511~74)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 등의 거장들로 완성되는, 특히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기법'을 확정된 '마니에라(manner)'라 규정하며 이후 예술가들이 이 '기법(방식/매너)'을 따라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에 따르면, 14세기(트레첸토:300년대) 조토 디 본도네의 사실성의 '혁신'으로부터 미술사의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열렸고, 15세기(콰트로첸토:400년대)에 회화의 마사초 디 산 조반니와 건축의 필리포 브루넬리스키의 '선형 원근법', 도나텔로(혹은 도나토)의 일방향 부조를 넘어선 입체적 사방 조각을 거쳐, 16세기(친퀘첸토:500년대) 회화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조각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색채의 라파엘로 산치오 등의 거장들에 이르러 르네상스 미술의 '기법(방식/매너/마니에라)'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화가들이 바사리가 규정한 이 '방식'을 '답습'하는 행태가 지금 우리가 아는 '매너리즘'이다. 

일제강점기에 의학을 전공한 이근배(1914~2007) 조선대 의대 교수는 자신의 전공도 아닌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취미적 관심 하나로 자그만치 18년간 조르조 바사리의 '열전' 영문판을 우리말로 옮기셨단다. 그가 번역하면서 본 16세기 바사리의 예술관은 '자연의 철저한 모방'이었다. 즉, 신이 창조한 자연은 그 자체가 완벽 그 자체이므로 인간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예술의 지상명령'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열전의 첫문장은 위대한 미술가들의 뛰어난 디세뇨(기교)가 '신의 의지'라는 바사리의 찬사로 시작한다.

2018년에 <한길사>에서 2007년 작고하신 이근배 선생님의 번역본([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 <탐구당>, 1986)을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내면서 고종희 미술학박사의 해설을 함께 엮었는데, 그는 <해설>에서 "바사리는 자연의 충실한 '모방'과 그것의 '초월'이라는 두 딜레마의 관계를 처음으로 지적하면서 '주관성'이 '객관성'에 우선한다는 이론을 남겼다. 이것이 바로 '매너리즘' 이론의 핵심이자 미켈란젤로 미학의 핵심이기도 하다"([르네상스 미술가평전], <한길사>, 2018)라고 쓰며, '마니에라'의 이 모순된 중층적 의미를 이해하면서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을 읽을 것을 권한다. 

즉, 예술 또는 미술은 '자연의 충실한 모방'을 임무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연의 '객관성' 보다는 예술가 또는 미술가의 '주관성'의 우위를 통한 자연의 '초월'을 목표로 한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그렇게 미술사에서는,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말처럼 "미술은 없고 혁신적 미술가만 존재"([서양미술사], <서론>, 1950)하는 것이며,
게오르그 루카치의 사실주의 예술관처럼 '예술은 현실의 단순한 모방이 아닌 현실의 특수한 반영'이 된다.

영미권의 현대 사실주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 1937~)는 18~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장 오귀스트 앵그르(1780~1867)의 명화들을 보면서 그 '사실주의'적 기법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하여 2001년부터는 화가로서 작품활동을 잠시 멈추고 16세기 화가들의 '사실주의'적 작풍을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그 명화들의 '비밀'을 파헤친다.

우선, 그는 앵그르는 물론 그 이전 화가인 남유럽 이탈리아의 카라바조와 북유럽 플랑드르의 페르메이르(베르메르) 등의 '사실주의' 그림이 카메라 기술의 전신인 '광학' 기법을 사용한 것이라는 전제로 '광학' 이전과 이후의 초상화들을 하나의 '장벽'으로 담았다. 그의 실험적 연구서와 같은 [명화의 비밀]은 그가 만든 초상화의 [대장벽](2000)으로부터 시작한다. 


"나의 [대장벽]은 예술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점점 사실성이 향상되어온 변천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많은 그림들을 놓고 볼 때 분명한 것은 그 과정이 점진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광학'은 갑자기 도입되어 금세 정착되고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내가 경험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화가들이 사용하는 방법(재료, 도구, 기법, 통찰력)은 그들이 제작하는 작품의 성격에 중대하고 직접적이며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내가 보기에 그 급작스런 변화는 새로운 관찰방식이라기보다 '기술적 혁신'이며, 그것이 점진적인 그림 기술의 발달로 이어졌다고 생각된다. 15세기 초에 이루어진 그러한 혁신 중의 하나가 바로 분석적 '선형 원근법'의 발명이다... '광학'의 기술과 지식은 그보다 훨씬 이후에 탄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 [명화의 비밀], <시각적 증거>, 데이비드 호크니, 2001.


조토는 그림에 '원근법'적 요소를 도입하여 중세 미술의 평면성을 혁신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마사초는 브루넬리스키의 분석적이고 과학적인 '선형 원근법'을 그림에 적용하였고, 브루넬리스키는 '선형 원근법'의 혁신을 주도한 르네상스 예술가(건축가)가 되었다. 르네상스 미술 혁신의 핵심은 '원근법'이었다. 중세 미술의 평면성은 근대 르네상스 '선형 원근법'을 통해 입체적 사실성을 획득했다.

그런데 16세기 카라바조 풍의 그림은 그 이전 그림에 비해 확연한 '사실주의'적 재현을 보여주고 있는데, 데이비드 호크니가 발견한 [명화의 비밀]이란 바로, '광학(光學)'이었다.


"... 카라바조가 1596년에 그린 과일(앞쪽)의 사실성과 세잔이 1877~78년에 그린 사과(아래)의 '새로운 어색함'을 비교해 보라. 이 부분을 좀 멀리 떼어놓고 보라. 책에서 멀어질수록 카라바조의 사과는 점점 알아보기 어려워진다. 반면에 묘하게도 세잔의 사과는 점점 더 확고해지고 선명해진다. 카라바조의 이미지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세잔의 이미지는 감상자에게서 나오는 것, 즉 감상자의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한 눈의 렌즈로 보는 시야와 두 눈을 가진 인간의 시야의 차이다."
- [명화의 비밀], <시각적 증거>, 데이비드 호크니, 2001.


카메라 루시다는 막대기에 프리즘을 얹어 앞의 상을 아래 종이에 투영하는 방식의 광학 기술이라고 하는데 미술가의 눈으로만 묘사하는 이른바 '눈 굴리기' 방식과 달리 움직이지 않는 상을 그대로 모사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한다. 

호크니는 [명화의 비밀]에서 '광학' 이전의 조토, 치마부에, 프라 안젤리코 등의 15~16세기 이전 르네상스 화가들의 그림 그리기 방식을 전통적 '눈 굴리기'라고 명명한다. 즉, 모델을 보고 지면을 보는 화가의 '눈 굴리기'로는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카메라 루시다는 18세기 이전에도 존재했었을 수도 있고 16세기 북유럽 플랑드르 화가인 얀 반 에이크나 17세기 요하네스 얀 페르메이르(베르메르) 등은 이미 이 카메라 루시다 또는 카메라 옵스큐라 같은 '광학' 기술을 이용하여 사실을 사진처럼 '재현'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페르메이르가 카메라 옵스큐라로 추정되는 모종의 카메라 기술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렸다는 기존 의심을 호크니는 19세기 앵그르와 그 이전 16세기 카라바조, 17세기 페르메이르 등의 그림 등으로 미술가 영역을 확장하면서 화가 본인의 실험을 통해 파헤치고 있다.

카메라가 대중화된 19세기 초중반 이전부터 카메라 옵스큐라(오브스쿠라)라는 암실 상자 속 렌즈를 통해 상을 거꾸로 맺히게 하는 또 다른 '광학' 기술은 미술의 '사실주의'적 '재현'을 한층 더 가능토록 했다. 카메라처럼 맺혀지는 상 위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메라가 대중화된 1839년 이후 그림은 더 이상 사진을 따라갈 수 없었다. 미술은 시간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사진만큼 현실을 '재현'할 수 없었다. 2차원적 평면 그림에서 튀어나오는 듯한 '트롱프뢰유'의 신기함도 있지만 그림이 사진과 경쟁하는 것은 예술적으로 별 의미는 없어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한 눈의 렌즈를 통해 보는 것과 같은 카라바조 풍의 그림은 언뜻 사진과도 같이 '사실주의'적이지만, 멀리서 보면 세잔의 입체적 묘사가 더욱 '사실주의'적일 수 있다. 

미술의 역사에서 '재현'의 '사실성'은 현실과 그림의 '객관성'에서 나오는 것 보다는, 두 눈을 통해 입체적으로 현실을 보는 감상자의 '주관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인간의 '주관성'이 자연의 '객관성'에 우선한다는 조르조 바사리의 예술관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문제는,
사실의 '재현'이 된다.


"... 렌즈는 권력과 관계가 있을까? 1839년까지 카메라를 비밀로 숨겨왔고 교회가 사회적 힘(그림을 통제하는)을 갖고 있었다면, 그 힘은 '카메라의 대중화'와 함께 쇠퇴했고, 렌즈 이후의 사회적 힘은 미디어로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수백만 개의 카메라가 추가로 만들어졌으며(심지어 휴대전화에도), 이미지의 유통방법이 변하고 있다. 거울과 렌즈는 연속체다. 흥미로운 시간은 과거에도 역시 존재했다."
- [명화의 비밀], <시각적 증거>, 데이비드 호크니, 2001.


그림과 조각 같은 미술과 이들이 장식하는 건축을 포괄하는 예술 전체를 '신의 의지' 실현에 이용하려는 교회의 힘이 쇠퇴하기 시작한 근대 르네상스 말기에는 '광학'을 비롯한 과학 기술의 힘으로 더 많은 미술가가 등장할 수 있었고, 그보다 더 많은 감상자도 양산되었을 것이다. 칼로 무장한 기사들이 총으로 무장한 일반 민중들에게 패배한 전쟁의 역사와도 같다. 과학기술 발전은 모든 역사에서 다수의 '평등'한 점유를 향한 '민주주의'적 요소를 동반한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명화의 비밀]의 원제는 [Secret Knowledge :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다. 
직역하면, [숨겨진 진실 : 거장들의 잊혀진 기법을 다시 찾아서] 정도 되겠다. 즉, 카라바조를 추종한 '카라바지스티'들의 기법은 '광학'의 증거로서 빛과 어둠의 극단적 대조인 '키아로스쿠로(명암대비법)'를 그 특징으로 하는데 이는 당시 '광학'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켜두었던 강한 조명의 증거라고 한다. 

루벤스 조차도 배우고자 이탈리아를 찾았다던 그 '기술'은 아직까지도 전하는 기록도 없이 비밀에 싸여 있다고 한다. 호크니가 화가로서 카메라 루시다, 카메라 옵스큐라 등의 '광학' 기술을 통해 실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하지 않는 기술을 화가 본인의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책 [명화의 비밀](2001~2006)은 이렇게 <시각적 증거>와 <문헌적 증거>의 방식으로 잊혀진 명화의 '사실주의'적 '재현'의 기법 속 '비밀'을 추적하는 생생한 연구서다.

'광학' 기술과의 결합으로 혁신을 이끌었던 미술가들의 '재현'은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기술의 대중화와 '민주주의'적 미술관을 통해 다시금 혁신된다.

그래서 예술의 문제는 여전하다.

'비가시적인 것의 가시화'를 지향한다는 예술에서 '재현'이란 과연 무엇인가.

***

1. [명화의 비밀(Secret Knowledge :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2091~2006), David Hockney, 남경태 옮김, <한길사>, 2019.
2.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1550~1568), Giorgio Vasari, 이근배 옮김, 고종희 해설, <한길사>, 2018.
3. [오직, 그림 - 세계 미술사의 획기적인 그림 51], 박영택, <마음산책>,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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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 세상에서 가장 쉬운 미술 기초 체력 수업
노아 차니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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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 자신있게 말하자
-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노아 차니, 2022.


"엉터리 같은 작품을 보면 엉터리라고 자신있게 말하자."
-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11. 미술의 미래>, 노아 차니, 2022.


러시아 미술가가 반정부 '예술' 행위라 부르며 붉은 광장에서 자신의 음낭을 자갈바닥에 못박든, 이탈리아 예술가가 자신의 배설물을 90개의 깡통에 담고 '예술'이라 우기든, 엉터리는 엉터리라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대중들 앞에 책을 내민 미술사학자가 있다. 

슬로베니아에 사는 미국인 미술사학자 노아 차니(Noah Charney : 1979~)다. 
미술사학자이면서 작가로 활동한다는 그의 현재 주 전공분야는 '미술 범죄(art crime)'인데, 유럽의 미술관에서 사라지는 예술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미술사 서술 또는 소설 등으로 풀어낸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라는 책에서 소개하는 역사상 가장 많이 도난의 수난을 겪었던 작품은 15세기 얀 반 에이크의 <신비한 어린 양에 대한 경배>를 담은 '헨트 제단화'다. 아마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 리자>가 그 다음일 게다.

노아 차니의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는 전술한 대로 단 시간에 일반 대중을 '예술', 특히 '미술'의 '전문가'로 만들어주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내내 유지하고 있는 책이다. 원제는 'The 12-Hour Art Expert'로 '한나절만에 미술 전문가' 또는 '한나절이면 나도 미술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정도로 직역이 가능할텐데, 실제로 저자는 책의 '서문'인 <들어가며 - 미술은 열려있다>에서 성인 평균의 독서속도로 4시간 반이면 읽을 수 있는 11장으로 구성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일반인도 미술 전문가 못지 않게 될 수 있다며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다 읽는 데 '반나절', 생각을 정리하는데 '한나절', 그래서 '12시간'만에 일반 독자가 '미술(예술) 전문가(art expert)'가 된다. 
말도 안되는 이 자부심을 완화하고자 국역은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라는 다소 겸손한 번역본을 낸 듯 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노아 차니가 말한 '예술 전문가(art expert)'는 미술사학자가 아니라 '엉터리'를 주저없이 '엉터리'라 말할 정도로 예술 작품을 주눅들지 않고 보는 사람이 될 수 있게 저자가 도와주겠다는 의미였다.


"... (조르조) 바사리가 미술에 관한 글을 최초로 쓴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미술과 미술관에 대한 현대인의 생각 대부분이 그의 글과 관련 있다. 1550년과 1568년에 출간한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한길사>,2018)은 최초의 미술사 책으로 평가된다. 이 책은 미술가에 관한 짧은 전기들로 구성되었고, 거의 처음으로 '미술가' 개인에 초점을 맞췄다... 미술을 처음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미술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을 처음 만들어냈다는 의미에서 조르조 바사리가 '미술사'를 '발명'했다고 말할 수 있다."
-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1. 이것도 예술일까?>, 노아 차니, 2022.


동양의 역사에서 사마천 [사기](기원전 1세기)로부터 시작된 기전체 역사서와 서양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기원후 1~2세기)의 백미는 '열전', 즉 각 인물들의 '전기'다. 

서양미술사에도 그런 고전이 있는데 바로 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회화, 조각, 건축가로 알려진 예술가 조르조 바사리(Giorgo Vasari : 1511~1574)의 미술가 '열전'이다. 
바사리는 조토 디 본도네의 스승인 13세기 미술가 조반니 치마부에로부터 16세기 당대 플랑드르 여러 미술가들까지 여러 미술가의 '전기'를 남겼다. 그의 책은 국역으로는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한길사>,2018)으로 번역되어 있다. 한참 오랜 후의 20세기 미술사학자 곰브리치가 [서양미술사](1950)에서 따랐듯 바사리는 이미 16세기에 조토 디 본도네의 '혁명성'을 최초로 주장했고(<1권>), 그랬기에 '열전'의 시작을 조토의 스승 치마부에로부터 시작했다(<1권>). 외모든 미술 실력이든 '신의 행위'와 같다는 칭송을 담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같은책 <3권>에서 소개하고 있지만, 결국 바사리의 결론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5권>)다.

미켈란젤로는 같은책 <5권>의 1/3 정도를 차지하는데, 르네상스 예술은 미켈란젤로에서 완성되었고, 그의 방식 또는 '양식'(매너/마니에르:manner)을 넘어서지 못한 '매너리즘'을 규정하는 1차적 문헌자료가 바로 조르조 바사리의 '열전'이다.


"... 조각과 회화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지력의 모든 부분을 육성하는 생명이라고 할 '디세뇨(disegno : 소묘 또는 의장, 조형력)'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늘을 눈부신 빛으로 장식하고서 맑은 대기를 뚫고 견고한 대지에 지력을 가지고 내려와 마지막에 인간의 형상을 창조했을 때, 다른 아름다운 창조물들과 함께 조각과 회화에서 최초로 매혹할 만한 형상을 발견했을 때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 1], <전기에 대한 서설>, 조르조 바사리, 16세기.


노아 차니는 미술가의 자질로서 '인벤치오네(invention)'와 '디세뇨(design)'를 그의 책 <2장>에서 소개하는데 이러한 개념들 또한 16세기 바사리의 저작들로 인해 형성된 미술사 개념들이다. 물론 바사리가 '미술가', '인벤치오네', '디세뇨' 등의 예술 개념을 발명한 것은 아니다. 16세기에 이른 '친퀘첸토(500년대)' 르네상스는 이미 예술가들에게 지금의 헐리우드 제작자 못지 않은 명성을 안긴 시대였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은 이미 예술가 본인의 이름을 내건 당대의 유명인이었다. 
바사리는 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여 남긴 사람인 것이다.

'소묘', '의장(意匠:design)', '조형력'으로 번역되는 '디세뇨(disegno)'는 노아 차니에 의하면, 모사하는 기술적 능력이다. 이에 반해 '인벤치오네'는 '아이디어'또는 '개념' 등으로, 르네상스 미술가 공방을 예로 들면 미켈란젤로 같은 대 화가 또는 공방 사장님은 주로 큰 구상을 짜는 '인벤치오네'를 맡고, 공방의 도제들은 '디세뇨'를 맡는 것으로 보면 된다. 물론 공방 사장님은 '인벤치오네'와 '디세뇨' 둘 다 잘 해야 하지만 부자들로부터 의뢰받은 대작을 유명 미술가 혼자 다 생산하기란 불가능했기에 유명 미술가의 공방을 통한 매뉴팩처 분업이 당시 미술에서는 불가피했다. 동료들의 실력이 미덥지 않아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를 미켈란젤로 혼자 문 잠그고 다 그렸다는 전기는 어느 정도는 조르조 바사리의 과장일 수도 있으며, 미술가 홀로 작은 캔버스를 마주한 고독한 장면은 이후 19세기 인상주의 정도 가야 전형이 되는 장면이다. 
르네상스 미술가의 작업장인 '공방'은 지금의 헐리우드 종합예술 '공장'과 같았다.


"추상미술은 우리 두뇌가 진화하면서 익숙하게 재구성해 온 이미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이미지를 해석하라고 우리 시각 체계를 부추긴다."
-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8. 프로이트는 뭐라고 말할까?>, 노아 차니, 2022.

노아 차니는 미술의 몇 가지 기본 개념만을 익힌 일반 대중이 주눅들지 말고 '예술'을 바라보라 권한다. 물론 '알고 봐야 보인다'는 강령에 맞게 시작은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에서 규정한 '예술'의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요건이다.

1) 훌륭한가 : 기교있게 기술적으로 잘 만들어졌는가,
2) 아름다운가 : 미적 뿐만 아니라 도덕적, 지적으로도 감흥을 주는가,
3) 흥미로운가 : 재미가 있어 계속 끌리는가,

위 3요건을 갖춘 것이 '예술'인 바, 그 다음은 현실의 '모방'으로서 역시 사실의 '재현' 문제가 온다.

이미 사실의 '재현'은 카메라 옵스큐라는 물론 사진 기술의 발전을 시작으로 현대 과학기술의 몫이 된지 오래되었다. 
본격적인 사진 기술은 19세기가 되어서야 눈앞의 현실을 재현해내었지만 프리즘을 이용한 카메라 루시다, 거울처럼 상을 거꾸로 맺히게 하는 카메라 옵스큐라 등의 광학 기술은 이미 사진 기술 보다 오래 전부터 발전되어 왔다. 

현존하는 화가 중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린다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 1937~)는 15세기 화가 얀 반 에이크는 물론 16세기의 브론치노와 카라바조, 17세기 페이메이르, 18세기 앵그르 등이 눈에 보이는 사물을 사진 이상으로 '재현'해낸 사실로부터 새삼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호크니는 화가인 본인이 직접 실험을 하면서 앵그르 같은 선배 화가들과 비슷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고, 르네상스 이후의 화가들이 광학 기술을 이용하여 그려낸, 공식적으로 전해지지 못한 채 지금은 잊혀진 기술적 사실을 과학적, 문헌적으로 증명하는 글쓰기를 위해 미술작품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고 한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명화의 비밀](2001~)이라는 책에서 증명하고자 하는 대로, 이미 미술에서 사실의 '재현'은 오래 전부터 과학의 힘과 함께해 왔던 것이며, 인간의 기교만으로는 눈앞 사물의 오롯한 '재현'이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다.

결국 미술의 임무는 눈에 보이는 대로의 '재현'일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원래부터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미술은 눈에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 '재현'해야 하는 본연의 소임을 끊임없이 완수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그 역사에 복무할 것이다.

이 길에서 '미술가'의 '혁신성'은 필수 요소로서 미술사를 전진시켰지만, '새로운 시도'라고 해서 다 '예술'은 아니다. '예술'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반 대중도 미술에 대해 조금만 '알고 보면' 주눅들지 않고 '예술'을 구분해낼 수 있다.

'내가 볼 때 아름다운 것'이 결국 '예술'이다.

이제, 
자신있게 말하자. 

***

1.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The 12-Hour Art Expert)](2022), Noah Charney, 이선주 옮김, <현대지성>, 2025.
2.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1550~1568), Giorgio Vasari, 이근배 옮김, <한길사>, 2018.
3. [명화의 비밀(Secret Knowledge :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2001~2006), David Hockney, 남경태 옮김, <한길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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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이용대 옮김 / 한겨레출판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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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미'로 돌아왔을 때 이미 그곳에 '왕'은 없었으나
- [황금가지], 제임스 프레이저, 1890~1915.


1.

'목생화(木生火)'

아버지는 삼형제 중 둘째였다. 아버지 삼형제의 성함은 모두 '동(東)'으로 끝난다. 삼형제로부터 나온 아들은 큰아버지댁 외아들인 사촌형과 둘째네 외아들인 나, 이렇게 둘 뿐이다. 사촌형 이름에는 '찬(燦)'이 있고, 내 이름에는 '용(容)'이 들어가 있다. 

어렸을 적 산소를 같이 둘러보시던 큰아버지께서 내 이름 '용(容)'의 가운데 부분에 불 '화(火)'가 들어있다 하셨는데, 오행의 원리에 따라 지은 이름이라고 하셨다. 아버지들의 '동(東)'을 관통하는 건 나무 '목(木)'인 것이고, 그들의 아들 둘의 이름에 '화(火)'가 들어간 것은 '나무가 불을 낳는다'는 '목생화(木生火)'의 원리였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냉큼 더 위로 올라가 할아버지들의 비석을 둘러보았다. 아버지들의 아버지들인 나의 할아버지들은 물 '수(水)'가 있는 '태(泰)'자 돌림의 성함들이었으니, 과연 '수(水)'가 '목(木)'을 낳은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나온 나의 세 자녀들에게 아들딸 구별없이  흙 '토(土)'가 들어간 '규(奎)'를 넣어 직접 이름을 지었다. 이제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내 자식의 자식을 쇠 '금(金)'으로 작명하면, 우리 집 5대는 '목-화-토-금-수'의 '오행상생설'을 한 순배 완성하게 된다.


2.

"고대사회에서 왕은 흔히 사제이면서 동시에 주술사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종종 사술이나 법술에 능란해 보인 덕택에 왕권을 획득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왕권의 발달과정과 미개인이나 야만인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직책의 신성한 성격을 이해하자면 '주술'의 원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며, 또 고대의 미신 체계가 모든 시대, 모든 나라에서 인간 정신에 미친 비상한 지배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나는 그 주제를 약간 상세하게 검토해 보고자 한다."
- [황금가지], <1-2. 사제의 왕>, 제임스 프레이저, 1890.


영국의 민속학자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 : 1843~1941) 평생의 역작은 [황금가지(The Golden Bough)]인데, 1890년 2권짜리 초판으로 나온 후 1900년에 3권으로 엮은 재판, 1906~1915년에 총 12권으로 편집된 3판으로 알려져 있단다. 

고대의 세계 각지 원시 문명과 미개인들 사회로부터 전해내려온 미신과 '주술'의 사례들을 '사회과학'적 방법으로 수집하고 분류하여 인류 문명에서 미신과 주술의 지대한 영향력을 증명하고 있는 '민속학'의 고전이다. 
아마도 초판 이래 기독교 사회였던 유럽사회에서 강한 비난과 반발을 받은 듯, 재판과 3판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형'(같은책, <3-5>) 이야기와 같은 민감한 논쟁적 사안은 부록처리 되었고, '신성한 매춘'(<2-7>)이나 '모계근친제'(<2-14>) 같은 내용들은 편집되거나 했던 것 같다. 아마도 프레이저 집안의 후대 학자로 추정되는 로버트 프레이저가 1994년 '옥스포드판 서문'을 쓰고 낸 판본은 총 4권(1. 숲의왕 / 2. 신의 살해 / 3. 속죄양 / 4. 황금가지)으로 편집되었다. 
내가 최근에 읽은 책은 <한겨레출판사>에서 2003년에 번역한 '옥스포드판'인데, 방대한 미신 사례집과 같이 온갖 잡다하게 수집된 세계각지 미신주술 사례들을 또 다시 편집한 작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근현대 과학의 진보시대를 목격하기 시작했을 프레이저는 [황금가지]의 '서설'과도 같은 <1권. 숲의왕>에서 인간 사상이론의 흐름에서 그 기원과도 같은 '미신'과 '주술'의 상세한 검토를 연구의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황금가지], <1-2>). 
그러면서 당대의 화가 윌리엄 터너의 그림 [황금가지]로부터 시작되는 모티브를 소개한다.

즉, 터너 그림의 배경이 되는 '네미'라는 호숫가에서 일어나는 '숲의왕' 살해의식이 이 장대한 연구의 단초였다는 건데, 사실 이후 밝혀진 바에 의하면 토너 그림의 배경은 전설속 아베르누스 호숫가를 그린 것으로, 프레이저가 모티브로 삼은 로마 동남쪽 18km 거리의 '네미'와는 무관했다고 한다. 

그래도 어쨌든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네미'의 사제왕 또는 숲의왕은 호숫가에 서 있는 참나무 가지인 '황금가지'가 꺾이면서 동시에 살해당하게 된다는 그 전설은 시공간을 초월하며 그리스신화의 '아도니스' 신화로, 프리지아의 '아티스' 신화로,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로 접속된 후였다.
프레이저의 '미신'과 '주술' 연구는 이미 '네미'의 전설을 떠나 겉잡을 수 없게 되었다.


"요컨대 인류문화의 물질적 측면에서 석기시대가 보편적으로 존재했듯이, 지적 측면에서는 '주술의 시대'가 보편적으로 존재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 [황금가지], <1-3. 주술과 종교>, 제임스 프레이저, 1890.


프레이저 [황금가지]의 결론은 인류사에서 미신과 주술은 석기시대만큼 분명한 역사이며, 주술의 그 숱한 오류성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고체계는 이후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에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앞으로 "진보의 희망"을 이끌어낼 "과학의 운명"(같은책, <4-6>)으로까지 오는데 필수적이었던 과정이었다는 이야기다. 
자연적 현상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던 인류에게 고대의 '주술'은 '오류적 질서'였고 중세의 '종교'는 그 가교 역할을 하고 있으며 현대의 '과학'은 '엄밀한 질서'를 끊임없이 지향하는 바, 인류 사고체계의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진부하지만, 미신과 주술이 인간 사상사의 기원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프레이저의 위대함은 당대 유럽의 지배이데올로기로서 기독교 사상과 제국주의 사상에서 탈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레이저에게 그리스도 십자가형은 고대 이교도의 인간제물 희생의식의 연장된 이벤트였고, 미개인과 문명인의 차이는 없다.


"그러므로 내가 아주 조심스럽게 고려의 대상으로 제기하는 가설은 이렇다. 짐작컨대 유대인은 부림절 또는 때때로 유월절에 그 제전의 중심적 특색을 이루는 수난극에서 죄수를 두 명 고용하여 각기 '하만'과 '모르드개'역을 맡기는 것이 관례였다. 두 남자는 모두 짧은 기간 동안 왕의 상징물을 걸치고 행진을 벌이지만, 운명은 각기 달랐다. 행사가 끝나면 하만역을 맡은 한 인물은 교수형이나 십자가형을 당하고, 대중들이 '바라바'라고 부르는 '모르드개'역을 맡은 인물은 자유롭게 풀려났다. 빌라도는 예수를 고발한 내용이 하찮은 것을 깨닫고 유대인들더러 그에게 '바라바'역을 맡기도록 설득해서 그의 목숨을 구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 선의의 시도는 실패하고, 예수는 '하만'의 대역으로 십자가에서 죽었다... 이러한 임시왕 중 한 사람이 어째서 '바라바', 곧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주목할만한 칭호를 사용했는지 묻는다면, 단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 칭호가 어쩌면 진짜왕, 곧 신격화한 인간이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대신 죽게 하던 시대의 유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황금가지], <3-5.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제임스 프레이저, 1890.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서 아마도 가장 논쟁적이었을 부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이었을 것이다. 기독교 사상이 주류였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예수의 신성한 대속행위로서 십자가형을 고대 '이교도'들의 인간제물 희생제례의 연속으로 보는 '불경함' 자체가 프레이저를 '이단'시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네미' 숲의 사제왕은 공동체의 풍요와 안녕을 지키는 권위자로서 그 기력이 노쇠해지기 전에 젊은 후대 권위자에 의해 살해당할 운명이었다. 한때의 권력자는 자연사하면 안되고 꾾임없는 견제 속에 끝내 폭력적으로 살해당해야 했다. 그래야 권력은 노쇠하지 않고 생생함을 유지하게 된다. 

왕을 살해하려는 자가 들고 가는 것이 바로 '황금가지'로 불리는 참나무 가지다. 여기에는 원시적 기원이 있다. 고대 아리아인 또는 유럽의 선조는 참나무 같은 크고 강한 나무를 섬기는 '나무정령' 신앙이 있었는데, 이는 세계각지 원시사회의 '토템' 중 하나를 의미한다. 단군의 어머니는 웅녀, 즉 곰이었으니 동북아의 어느 종족은 곰의 정령을 믿었을테고, 지금까지도 그 부족이 남아있다면 그 '토템'을 신성시하거나 '터부'시하고 있을 게다. 

'터부'는 [황금가지]에 따르면 바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적극적 주술'과 달리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피하려는 소극적 주술"(같은책, <1-3>)을 이른다. 수많은 사례 중 동북아 코략크 족이나 에스키모 또는 시베리아 사람들에게 곰은 신성하여 범접하면 안되기도 했고(터부), 한편으로는 일용할 공동체의 양식과 옷의 형태로서 사람과 영혼을 나누기도 했는데, 북유럽의 늑대와 나무, 아메리카의 독수리 등이 그렇다. 

또 한 때는 '인간제물'이 횡행했던 시기도 있었는데 이들은 공동체의 풍요와 안녕을 위해 바쳐지던 활력있는 '왕'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원시 풍습이 권력관계의 정치적 확정 과정에서 왕 대신의 희생제물을 바치는 문화로 변형되었다. 이 시기의 절대권력을 바라던 왕들은 다른 '임시왕' 또는 자신의 아들을 희생제믈로 바치면서 자신의 권세를 유지했단다.

신성한 예수의 죽음도 바로 이런 공동체의 희생제의 중 하나였다.


프레이저는 책의 마지막 장(<4-6>)에서 '황금가지'의 비밀을 알려준다. 즉, 태양이나 불을 숭배한 유럽인의 조상이 본, 참나무의 큰 몸체에서 꺾어져 분리된 후에 황금색으로 노랗게 시든 참나무 가지를 보고는 불의 영혼을 담은 신성한 영성체로 믿고는 왕의 영혼을 그 나무에 가두어 보존하고자 했던 '토템'의 일부였던 것이다. 현재 '숲의왕'은 폭력적인 죽음을 당하지만, '황금가지'의 '토템'을 통해 그 활력있는 영혼이 부활하여 미래로까지 이어진다는 믿음이다.

여담으로 현대식으로 빗대자면, 민주사회의 대통령은 '국민주권'이라는 '토템'을 통해 결국 노쇠하기 전에 죽게 된다는 정도 아닐는지. 
결국 현대 민주주의의 '토템'은 '국민주권' 아닌가.


3.

'불'을 담은 '나무'인 '황금가지'는,
과연 우리 아시아의 '목생화(木生火)'였다.

'네미' 숲 호숫가로부터 장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제임스 프레이저는 [황금가지]의 마지막 장에서 다시 '네미'로 돌아온다. 
그때는 이미, 윌리엄 터너의 그림 속 배경이 더 이상 '네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상관은 없다. 
[황금가지]의 첫 장과 달리 마지막 장에 이르면 더 이상 '숲의왕'의 운명 같은 것도 없다. 
'주술'은 오래된 이야기일 뿐, 이제 인류 '진보의 희망'은 '과학의 운명'이 된 지 오래다.
'주술'의 역사를 오랫동안 둘러보았고, 예수의 신성에 불경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성베드로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퍼질 때 프레이저는 "아베 마리아"를 읊으면서 책을 마치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 '황금가지'는 우리의 사상체계에서 영원하다.

자연현상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던 인류사상사에서 '주술'은 그 오류성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현대적 방식으로 줄기차게 이어진다.

***

- [황금가지(The Golden Bough)](1890~1915), James George Frazer,  Robert Frazer 엮음(1994), 이용대 옮김, <한겨레출판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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