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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 개정판
미셸 푸코 지음, 김현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10년 12월
평점 :
미셸 푸코의 '르네 마그리트論'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미셸 푸코, 1973.
"차라리 그것은 일종의 공간 '부재', 글씨의 기호들과 이미지의 선들 사이의 '공통의 자리(진부한 상투어)'의 말소이리라. 파이프에 이름을 붙여주는 언표와 그것을 형상화해야 하는 데생의 공동 소유물이었던 '파이프', 형태의 윤곽과 말들의 섬유물을 교차시켜 놓고 있던 그 유령 파이프는 결정적으로 달아나 버렸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2. 흐트러진 칼리그람>, 미셸 푸코, 1973.
1990년에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 선생이 독학을 위해 번역해 둔 원고를 문학평론가 정과리 선생이 발문을 붙이고 다듬어서 낸 책이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lt : 1926~1984)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973)라는 짧은 미술 비평문이다.
고전 철학이 지향해 온 '본질'을 해부하고 분열시킨 현대철학의 거장 중 한 사람으로서, 미셸 푸코는 '본질'을 향한 '일자'와 '동일성'의 고전 철학을 해체하면서 그 '불연속성'의 무질서에 정합성을 부여하기 위해 [지식의 고고학](1969)을 선언했다. 근대 독일관념철학을 집대성한 철학자 헤겔의 말마따나 형식은 다를지라도 내용에서는 종교와도 같은 근대의 고전 철학에서 '말'과 '사물', '현상' 등은 궁극의 '본질'에 종속되고 근원으로서의 '본질'로부터 위계화되면서 하나(일자)로서 동일화되었다. 그러나 푸코 같은 20세기 프랑스 현대철학자에게 사물은 그 자체의 실체적인 '본질'은 알 수 없고 '말(언어)'이든 표면적 '현상'이든 이미지든 사물을 지시하는 모든 양태들은 그 자체로 독립된 위치에 있다. 푸코가 연구한 '지식의 고고학'은 바로 이 '동일성'의 고전 철학과 결별하는 해체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초기적 연구였고,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말과 사물](1966)은 그 형이상학적 연구의 준비 작업적인 사전 궤적이었다.
김현 선생이 홀로 번역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973)라는 푸코의 '미술 비평'은 이런 초기 푸코 사상을 담은 책으로서, 이른바 미셸 푸코의 '르네 마그리트論'이다.
20세기 초중반 유럽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는 미셸 푸코와 편지도 주고받던 사이로 현실의 '재현' 속에서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을 신비스럽고 기묘한 그림으로 표현한 작가다. 그는 초현실주의 1차 선언 시절의 대표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 1888~1978)의 영향을 받았으나 자신만의 독특하고 지적인 화풍을 오래도록 내내 이어갔다.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제1선언]에서 규정한 '초현실주의'는 "순수한 심령의 '자동주의'를 통한... 사고활동에 의한 표현"으로서 "아무런 이성의 통제가 없는" 사고활동이었으나, 후반기 초현실주의 화가에 속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화풍은 다분히 지적이고 이성적 분석이 수반되는 일종의 '철학적 회화'였다.
그렇게 마그리트는 푸코와 철학의 지면에서 만난다.
"어디에도 파이프는 없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2>, 미셸 푸코, 1973.
푸코의 미술 비평 '마그리트론(論)'의 중심 소재는 마그리트의 대표작 <이미지의 배반>이다. 1929년인가부터 반복적으로 수차례 그려진 이 그림에는 일반적 파이프 그림과 함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는 문장이 일종의 '칼리그람(문자로 된 그림)'처럼 박혀있다. 그래서 원제목 <이미지의 배반>보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종종 불리는데, 화가가 그린 파이프는 진정한 파이프가 아니라 그 이미지에 불과하며, 그 이미지는 해당 사물과 동일하지도 않고, 인간의 말 또는 글로 표현된 파이프 또한 그러하다는 '포스트-모던'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즉, 미셸 푸코가 [말과 사물](1966)이나 [지식의 고고학](1969)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철학적 메시지를 미술로서 표현한 것이었다.
"내가 보기엔, 마그리트는 '유사(類似:ressemblance)'에서 '상사(相似:similitude)'를 분리해 내고, 후자(상사)를 전자(유사)와 반대로 작용하게 하는 것 같다. 유사에는 '주인'이 있다. 근원이 되는 요소가 그것으로서, 그로부터 출발하여 연속적으로 복제가 가능하게 되는데, 그 사본들은 근원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점점 약화됨으로써, 그 근원 요소를 중심으로 질서가 세워지고 위계화된다. '유사'하다는 것은 지시하고 분류하는 제1의 참조물을 전제로 한다. 반면 '비슷'하다('상사')는 것은 시작도 끝도 없고,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으며, 어떤 서열에도 복종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면서 퍼져 나가는 계열선을 따라 전개된다. '유사'는 '재현'에 쓰이며, '재현'은 '유사'를 지배한다. '상사'는 '되풀이'에 쓰이며, '되풀이'는 '상사'의 길을 따라 달린다. '유사'는 모델에 따라 정돈되면서, 또한 그 모델을 다시 이끌고 가 인정시켜야 하는 책임을 떠맡는다. '상사'는 비슷한 것으로부터 비슷한 것으로의 한없고 가역적인 관계로서의 '모의(模擬:simulacre:시뮬라크르)'를 순환시킨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5. 확언의 일곱 봉인>, 미셸 푸코, 1973.
그렇게 사물로서의 '파이프'도 아니고, 이미지(그림)로서 '파이프'에 불과하나, 이를 언어로 표현한 '파이프' 또한 그것들과 동일하지 않으니, 결론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본질'로서의 '파이프'를 그림이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니 원래 '파이프'라는 사물의 '본질'은 알 수 없는 '불가지론'의 영역이고, 우리가 보거나 그리거나 표현한 현상과 행위들만 남게 된다.
이것이 바로 김현 선생이 '모의'라고 번역한 '시뮬라크르(표면적 현상)'를 강조하는 20세기말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다.
"동일성을 뒤섞는 대신에 '상사'가 그것들을 깨뜨리는 힘을 갖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5>, 미셸 푸코, 1973.
'말'이든 '이미지'든 파이프는 '본질'로 동일화될 수 없다.
그러므로,
"파이프는 어디에도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현대철학을 미술에서 아주 잘 표현해내고 있는 마그리트에 대한 헌사인 듯, 미셸 푸코는 르네 마그리트의 몇 가지 대표작을 이 책에서 함께 평론하고 있다.
<대화의 기술> - 1950.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사물의 형태 속에 담론이 새겨진 경우였다. 그것은 부정하고 분할하는 모호한 힘이었다. 반면, <대화의 기술>, 그것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자신들 고유의 말을 이루어 내고,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대화를 그들의 일상적 수다 속에 심어 넣는 사물들의 자체 중력이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4. 말들의 은밀한 작업>, 미셸 푸코, 1973.
<이미지의 배반>처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꿈(reve)'이라는 언어적 상징물 앞에서 '대화'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설령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침묵 속에서 몽환적 상상력을 확산시킨다.
과연 무슨 대화를 하고 있을까?
<떨어지는 저녁> - 1964.
"... 이미지와 말들의 풀릴 길 없이 얽힌 그물망, 그리고, 그것들을 받쳐줄 수 있을 공통 영역의 '부재'에 근거하고 있다. (마그리트에 의하면)... '그림에서 말들은 이미지와 마찬가지의 실체들이다. 그림에서의 이미지와 말들은 보통 때와는 다르게 나타난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4>, 미셸 푸코, 1973.
<떨어지는 저녁>(1964)과 <자유로 가는 문>(1933)에서는 깨져서 파편화된 유리창의 조각을 통해 새겨진 원래의 풍경이 엿보이는데, 유리창에 투영된 해와 나무의 사물과 풍경이 원래의 그 사물풍경인지 이미지인지, 그리고 나의 눈에 비친 그 영상과의 관계는 무엇인지 모호하다.
'본질'은 무엇인가?
'현상'과 '이미지'는 또 무엇인가?
<레카미에 부인>, <발코니> - 1950~1951.
"... 그는 전통회화의 인물들을 관(棺)으로 바꿔 놓는다. 밀랍 먹인 떡갈나무 널빤지들 사이에 보이지 않게 담겨진 공허가 산 육체들의 부피, 드레스의 펼쳐짐, 시선의 방향, 막 말을 하려던 참의 그 모든 표정들이 이루고 있는 공간을 해체하면서, 그 '비-장소'가 '사람이나 되는 듯 제 스스로' 출현한다 - 인물들 대신에, 그리고 더 이상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그 장소에서."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4>, 미셸 푸코, 1973.
자크 루이 다비드의 <레카미에 부인>에서 부인의 초상과 에두아르 마네의 <발코니> 속 두 여인은 마그리트에 와서 '관'으로 대체된다. 유한한 인물은 현재의 형상 뿐만 아니라 그의 미래가 투영된 삶의 궤적을 결국에는 죽어서 들어가게 되는 '관'을 통해 설명된다. 인물은 '부재'하지만, '관'은 그 인물의 모든 것을 최대한으로 보여준다.
<재현> - 1962.
"... 똑같은 화폭 위에, 이와 같이 '상사' 관계에 의해 옆으로 연결된 두 개의 이미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모델을 바깥의 준거틀로 설정하는 것(유사성의 길을 통하는)은 곧장 불안해지고,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것이 되고 만다. 무엇이 무엇을 '재현'한단 말인가? 이미지의 정확성이 한 모델, 즉 외부에 위치하고 있는 지고한 '주인'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역할을 하는 반면, 상사체들의 (두 개 이상의) 계열은 이상적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유사 재현의) 군주제를 폐지한다. 이때부터 '모의(시뮬라크르)'는 언제나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표면 위를 달린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5>, 미셸 푸코, 1973.
같은 시공간에서 하나의 화면이 작은 화면으로 무한히 복제되고 '재현'된다. '유사'적 '재현'이 아닌 이 '상사'적 '되풀이'는 두 번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이 '상사'적 되풀이를 통해 무한히 증식되고 확장되는 '재현'의 가능성을 본다.
<데칼코마니> - 1966.
"... 유사성의 재생산은 아닌 것... '유사'에 대한 '상사'의 우월성... '유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인지하게 하지만, '상사'는 알아볼 수 있는 대상, 친숙한 실루엣이 감추는, 못 보게 하는,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을 보게 한다. '유사'는 단일한, 언제나 똑같은 단언을 내포한다... '상사'는 상이한 확언들을 배가시킨다. 그 확언들은 함께 춤춘다. 서로 기대면서, 서로의 위에 넘어지면서."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5>, 미셸 푸코, 1973.
그리하여, '상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는 '트롱프뢰유' 같은 붉은 커튼 배경과 대비하여, 사물과 비슷한 현상들을 표현하면서 사물의 이면에 숨겨진 수많은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확장되는 '상사'적 재현은 무한하다.
결국, 마그리트의 <재현(복제) 금지>(1937)라는 작품은 거울을 보고 있음에도 사물이 '있는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절대 불가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마그리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자화상'과 같은 중절모를 쓴 정장의 신사는 아마도 그의 '본질'을 담고 있을 듯한 얼굴을 가린 채 등장한다.
<사람의 아들>(1964)로 지칭된 그 신사는 인류를 구원한 예수와도 같다고 해석되기도 하는데, 근대의 '신'이 부재한 현대의 자리에서 '사람의 아들'은 바로 '신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마그리트는 언어 기호와 조형 요소들을 연결시키는데, 그러나, 어떠한 선행 동위소(동일성의 요소)도 설정하지 않는다. 그는 '유사'가 태연하게 근거하고 있는 (고전 회화의) 확언적 담론의 바탕을 회피한다. 그리고 그는 지표 없는 용적과 구도 없는 공간의 불안정 속에서 비확언적인 순수 '상사체'들과 '말의 언표'들을 놀이하게 한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말하자면, 바로 그 작동 절차의 기본 형식을 제공한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6. 그림은 확언이 아니다>, 미셸 푸코, 1973.
르네 마그리트는 고전 회화의 전통인 '본질'에 위계적인 '유사'적 '재현'을 초월하여 '본질'과 '현상'이 위계화되지 않고 각 층위에서 동등하게 존재하는 '상사'의 상상력을 통해 무한한 '재현'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데, 푸코가 '마그리트론'의 <6장>에서 결론으로 내세운 5단계는 다음과 같다.
1. 누구나 아는 '공통의 자리'에 칼리그람 실천
2. '유사'가 아닌 '상사'로서 칼리그람이 해체되어 빈 공간을 열기
3. 담론이 떨어져 나가고 가시적인 문자 형태를 얻어 그 자체로 불확실하고 무한하게 얽키고 설키며 '상식적'으로 보이던 공통의 공간 '부재'를 드러내기
4. 근원적 '본질'로 회귀되지 않는 '상사체'들이 자신으로부터 무한하게 증식
5. 유사의 재현 속에 감추어진 메시지가 순환하는 '상사체'로 되었는지 검증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와 함께 위와 같이 '재현'되는 현실은 다음과 같은 푸코의 철학적 선언으로 마무리된다.
"언젠가 이미지 그 자체와 그것이 달고 있는 이름이 함께, 길다란 계열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 상사'에 의해, '탈동일화'되는 날이 올 것이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6>, 미셸 푸코, 1973.
현대철학과 함께 하는 초현실주의 회화의 '재현'은 그래서 더욱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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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1973), Michel Foucault, 김현 옮김, 정과리 발문, <고려대학교출판부>, 2010.
2. [지식의 고고학](1969), 미셸 푸코, 이정우 옮김, <민음사>, 2000.
3. [말과 사물 - 인문과학의 고고학](1966), 미셸 푸코, 이규현 옮김, <민음사>, 2012.
4. [초현실주의(Surrealism)](2008), 카트린ㅍ클링죄어 르루아, 김영선 옮김, <마로니에북스>,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