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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 책 읽어드립니다, 신과 함께 떠나는 지옥 연옥 천국의 대서사시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구스타브 도레 그림,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단테의 신곡은 중세 유럽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교과서 등을 통해 최소한 제목이라도 들어봤을 것
같은데 왠지 끌리지는 않는 책이었다. 중세라는 시대 자체가 종교가 모든 걸 삼켜버린 암흑시대이다
보니 뻔한 스토리가 전개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종교와 그리 친하지 않다 보니 나완 안 맞을 것
같은 책이어서 쉽게 손이 가진 않았는데 그래도 고전에는 뭔가 얻을 게 있을 것 같아 이번 기회에
도전에 나섰다.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가톨릭의 사후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저자인 단테가 직접 주연으로 등장하여 고대 로마의 최고 시인이라는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행 여행을 떠나는 걸로 시작하는데 베르길리우스를 만나기 전에 사치스런 유혹과
육욕의 달콤함을 상징하는 표범과 권력과 야망을 상징하는 사자, 탐욕스런 늑대의 위협에서 벗어나
지옥문에 이른 단테는 아케론 강의 뱃사공 카론을 만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리스 로마신화와
성경이 짬뽕된 느낌이 드는데 지옥은 제1옥에서 제9옥까지 죄가 무거울수록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제1옥은 림보라 불리며 지옥에 속하는 곳은 아닌데 호메로스를 비롯한 위대한
시인들, 줄리어스 시저,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등 인류 역사에 이름을 떨친 여러 인물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다. 오직 신앙이 없어 세례를 못 받았기 때문인데 지옥행이냐 천국행이냐는
종교적인 기준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본격적인 지옥이 시작하는 제2옥에는 그리스 신화 속 미노스,
트로이전쟁의 파리스 등이 있었고, 제3옥에는 지옥의 파수꾼인 케르베로스가 첼베로스라는 이름으로
지키고 있는데 단테가 살던 시대의 인물도 등장한다. 이렇게 점점 아래로 내려갈수록 큰 죄를 지은
자들이 갇혀 있었는데 제7옥에는 살인자들을 비롯한 폭력배들이, 제8옥에는 위선자들, 이기주의자들,
포주들이, 제9옥엔 모든 반역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범죄의 죄질과는 사뭇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걸 알 수 있는데 과연 가장 죄질이 안 좋은 자들이 있는 제9옥에는 누가 있을까 했더니
성경에서 인류 최초의 살인자라는 카인과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 시저를 암살한 브루투스 등이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있었다.
훨씬 자극적인 지옥을 벗어나 가톨릭의 전유물인 연옥에 이르니 정죄산을 등산(?)하게 되는데
일곱 개의 죄악(교만, 질투, 분노, 나태, 인색, 탐욕, 애욕의 타락)이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는
지옥과 천국의 중간계다 보니 애매한(?)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어 인지도가 높은 인물들은 별로
없었다. 연옥까지 가이드를 해준 베르길리우스와 헤어지고 천국행 안내자로 베아트리체가 등판하는데
아홉 개의 하늘(월천, 수성천, 금성천, 태양천, 화성천, 목성천, 토성천, 항성천, 원동천)과 하나님이
계신 정화천으로 구분되었다. 이곳에는 유스티니아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성 베드로 등이 등장해
크게 예상을 벗어나진 못했다. 천국이라고 해서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거라 상상하기 쉽지만 왠지
좀 심심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단테와 함께 지옥부터 연옥을 거쳐 천국에 이르는 대장정을 마치고
나니 중세시대의 사후 세계관이 어떤지를 대략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특정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거라 아무래도 종교적 잣대가 들어가 있고 당대 인물들의 경우 단테 개인적인 판단도
들어가 있어 객관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고
지옥을 중심으로 한 사후세계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역시 고전은 막연하게 아는 것보다 직접 한 번 읽어봐야 그 가치와 맛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