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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면 그녀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교 시절 사진부에서 만나 연인사이였다가 헤어졌던 하루에게서 9년 만에 편지를 받은 후지시로는
현재 야요이와의 결혼을 약속한 상태에서 느닷없는 대학시절 여자친구의 편지에 묘한 기분을 느끼는데...
오래 전 헤어졌던 여자친구가 해외에서 보낸 편지로 시작하는 이 책은 제목처럼 4월에서 시작해서
다음해 3월까지 1년의 시간 동안 후지시로를 중심으로 하루와의 과거 연애하던 시절과
현재 야요이와의 만남을 시간을 넘나들며 과연 사랑의 실체가 뭔지에 대해 진지한 문제제기를 한다.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서야 문학을 비롯한 예술은 물론 과학적으로도 여러 가지 분석과 해답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점점 세상이 각박해지고 개인주의가 득세하면서 사랑도 더 이상
예전처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현실적인 문제에 시달리다 보니 사랑이니
결혼이니 하는 것들이 사치라 생각하며 자발적인 비혼과 싱글로서 여유로운 삶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사랑이 위기에 처한 상황인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이 책에선 이렇게 사랑과
연애가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처럼 여겨지고 공감하기 어려운 것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연애감정 자체를 느끼지 못하거나 만나는 사람이 있어도 이게 과연 사랑인지 고민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맞는 차별화된 내용을 선보인다. 주인공인 후지시로의 과거 연인인 하루와 현재 연인인 아요이와의
관계를 번갈아 보여주는데 하루와의 관계가 풋풋한 첫사랑이라면 야요이와는 나이 들어 만난
오래된 연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하루와 헤어지게 된 원인도 뭔가 석연치 않은데다
야요이와의 관계도 의무감으로 만나는 것처럼 심드렁하고 오히려 야요이의 동생인 준에게 노골적인
유혹을 받는 등 후지시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를 도대체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진부 선배인 오시마가 하루를 짝사랑하다가 자살을 시도하는 등의 사건이 있으면서 하루와
후지시로는 헤어지게 된다. 두 사람이 이별하게 된 것 자체가 좀 납득이 가지 않았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 하루가 타국에서 죽어가면서 보낸 편지를 통해 후지시로는 사랑이 뭔지를 조금씩
깨닫는다. 흔히 하는 비유처럼 사랑은 감기와 비슷해서 자기도 모르는 새에 바이러스가 몸속으로
침투해서 알아챘을 때는 이미 열이 나듯이, 사랑을 끝내지 않는 방법도 그것을 손에 넣지 않는 것
하나뿐으로 절대로 자기 것이 되지 않는 것만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고 작가는 얘기한다.
보통 사랑을 하면서 서로 상대를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부턴 편한 사이가 되는 것도 있지만
예전과 같이 소중하게 생각하거나 관계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고 점점 무관심해진다.
특히 결혼한 부부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인데 사랑이 아닌 정으로 산다는 말을 쉽게 하지만
과연 정이란 게 예전에 자신들을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시절의 감정과 같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암튼 하루의 편지를 받으면서 후지시로는 야요이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그녀를 사랑했던
순간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 특별한 추억이 담긴 곳으로 찾아가는데, 하루가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
언급한 '나의 사랑'과 '당신의 사랑'이 똑같이 겹쳐지는 지극히 짧은 한 순간의 찰나인 일식같은
순간을 되살릴 수 있다면 사랑이 유효기간이 좀 더 길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책 속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이 책의 전개 자체가 왠지 사이먼 앤 가펑클의 'April come she will'의
가사와도 유사했는데 사랑이라는 감정의 소중함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과연
사랑이 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어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