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한다는 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우리는 사랑일까'와 함께 알랭 드 보통의

사랑에 관한 3부작 중 한 권으로 앞의 두 권을 나름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기대했는데 완전히 다른 느낌의 책이었다.

앞의 두 권이 그나마 남녀의 만남에서부터 헤어짐까지의 얘기를

온갖 인문학적인 인용과 분석으로 흥미롭게 풀어낸 반면 이 책에선

상대적으로 남녀간의 관계에 대한 스토리 자체가 그다지 없는 편이라

로맨스물을 읽는 재미는 좀 떨어지는 편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앞의 두 책도 순수한 소설이라곤 할 수 없어 잘못하면 난해함과

지루함의 늪에 빠져 쉽게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ㅋ)

 

이 책에선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를 좀 더 알고 이해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마치 상대방에 대한 전기를 쓰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표현한다.

전기라고 하면 보통 어릴 때 읽었던 위인전과 같은 위대하거나 성공한 인물들의 삶을 담아내는

글이라 할 수 있는데 한 사람의 전기를 쓰려면 그 사람의 인생 전반을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전기에선 주인공의 남다른 모습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과의 유사한 인간적 모습도

부각하는데 전기를 쓸 정도로 누군가를 안다는 건 신적 존재가 아닌 한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신의 인생을 담은 자서전을 쓰라고 해도 술술 써지진 않을 것 같으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쓰는 게 정말 어려운 건 두말 하면 잔소리가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도 남자 주인공은 여자 친구인 이사벨의 전기를 쓰듯이

그녀의 인생 전반에 대해 알아내려고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알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난 시간을 같이 보낸 부모, 형제와 같은 가족도 대략적인 줄기는 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가족의 삶의 세세한 부분들은 알기 어렵다. 그러니 한참의 세월이 흐른 상태에서 만난 상대가

과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과 성격,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내기엔

정말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이나 친구들을 통해서 상대의 현재 모습이 만들어진 배경(?)을 어느 정도

추측해보거나 비슷한 추억거리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부분부분들이 모이다 보면 한 사람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겠지만

전부를 안다고 속단할 순 없을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르는 부분들이 많은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나에 대해서 제대로 알 수가 있겠는가...내 속에도 수많은 내가 있어(마치 다중인격인  

것 같군...ㅋ) 나의 모르던 모습을 어쩌다 발견하면 신기하면서도 섬뜩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남녀간에는 완전히 사고방식이 달라서 출신 행성조차 다르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 책에서도 이사벨을 알아가려는 집요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아갈수록 그녀의 정체는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여자는 벗겨도 벗겨도 그 속을 알 수 없는 양파와 같다고 할까...ㅋ

 

그럼에도 전기를 쓰듯 상대를 알아가려는 노력을 그만둘 수 없는 건

역시 사랑하는 마음의 본질이 상대방을 마치 자신처럼 대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상대의 과거와 현재, 일거수일투족을 마치 나를 보듯 알고 싶은 마음이 사랑의 한 측면이라 할 것인데  

이런 행동들이 지나치면 집착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관계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것 같다.  

상대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은 관계를 더 풍요롭게 해준다고 할 수 있는데

늘 문제는 그 수위 조절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암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전기를 쓰는 것처럼 상대를 알아가면서 서로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은데 완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노력하는 과정이 바로 사랑임을

(역시 이해와 사랑이 동일한 건 아닌 것 같다) 알랭 드 보통 특유의 현란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풀어낸 책이라 할 수 있었는데 분명 의미있고 와닿는 부분도 있었지만 다른 두 책에 비하면  

조금 지루한 점이(누군가의 인생을 안다는 게 항상 재밌진 않으니까...ㅋ) 아쉬웠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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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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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랜만에 읽게 된 알랭 드 보통의 책

현대인들의 불안 심리의 원인과 해법을 알랭 드 보통 특유의 화법으로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그는 문학, 철학 등 여러 분야에 광범위한 지식과  

통찰력을 자랑한다. 물론 책을 쓰기 위해 조사하고, 연구했을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내공을 쌓지 않은 상태에선 이 정도의 내용을 담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늘 나를 감탄하게 만든다.

 

이 책에서 알랭 드 보통은 불안, 특히 지위로 인한 불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누구나 높은 지위에 올라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하지만 그런 높은 지위를 얻는  

사람은 극소수에다가 설령 그런 높은 지위를 얻었다 해도 이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현재 지위가 높은 사람은 이를 잃게 될까봐 불안하고,  

현재 지위가 만족스럽지 못한 사람은 이를 얻지 못한 것에 불만을 갖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러한 불안의 원인으로 크게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을 든다.

먼저 사랑결핍은 다른 사람의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 하는 마음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을 원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사랑을 잃는 것보다  

우리가 불안에 떨게 만드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지위와 인간적 가치를 동등하게 생각하는 속물근성 때문에  

우리는 높은 지위를 얻기를 갈망한다.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인격적으로도 훌륭하다는 것을 내포한다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이 가진 속물근성이어서 다들 이를 충족시키지 못해 불안에 떠는 것이다.

우리의 높아진 기대 또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과학문명의 발달에 따라 과거에 비해 절대적 빈곤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만  

높아진 기대 수준은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켜 불안감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선 능력이 곧 그 사람의 가치로 직결되기 때문에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이 된다.  

예전에는 가난한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지만 요즘에는 가난은 곧 무능력과 불성실로 연결되어

물질적인 생활의 어려움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을 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불확실성은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가장 큰 불안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대표적인 고용 불안을 비롯해 당장 내일 어떻게 세상이 바뀔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 사람들은 살고 있다.

주식이나 환율 등 널뛰는 경제 지표를 보면 우리가 불안에 떠는 것이 어쩌면 당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이러한 불안에 대한 해법으로 알랭 드 보통은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를 제시한다.  

다소 추상적인 면이 없진 않지만 나름 경청할 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먼저 철학은 우리가 지위 등을 기준으로 하는 가치판단의 정당성 여부를 따질 수 있게 만든다.

세상의 잣대로 바라보면 자신의 가치가 보잘 것 없거나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어도  

자신만의 주관으로 볼 때 정당하게 판단된다면 결코 불안할 필요가 없다.

다음으로 삶에 대한 비평이라 할 수 있는 예술은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비극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보다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고,  

희극을 통해서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풍자하고 조롱하며 통쾌한 기분을 느낄 수가 있다.

그리고 정치적인 관점은 기존 질서가 무조건 정당하다는 시각을 깨줄 수 있다.  

흑인이나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관점이 이제는 대놓고 통용될 수 없게 된 점을 보면  

어느 정도 흑인과 여성의 불안을 해소하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은 기독교를 불안의 해법으로 제시하지만 굳이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죽음이라는 인간의 숙명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아무리 부유한 자도, 높은 지위에 있는 자도 결국에는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어떤 불안함도 종교의 힘으로 어느 정도 치유가 가능할 것이다.  

세속적인 가치는 인간의 인식 범위를 넘어 선 곳에선 한낱 무용지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보헤미아는 한 마디로 기존의 관습과 물질적인 가치가 아닌 보다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삶을 사는 것인데 이런 삶을 선택한다면 세속적인 가치를 위해 아둥바둥 살아야 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그런 가치들을 소유하고 유지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을 읽으면 평면적으로만 보았던 세상이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기분이 든다.  

그가 다룬 여러 주제들인 사랑('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여행('여행의 기술'),  

건축('행복의 건축) 등에 대해 내가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단편적인 생각들이  

그의 책과 접하게 되면서 엄청 풍요로워진 느낌을 받는다.

그 전에는 전혀 생각도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되고,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되는 등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줬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불안의 원인과 해법을 다룬 이 책도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불안의 정체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인류의 지적보고에서 잘 추출해낸 지식과 자신의 생각을 잘 버무려서 제시하고 있다.  

약간 추상적인 면도 없진 않았지만 기존에 내가 알던 불안이라는 녀석의 정체를 이번 기회에

보다 제대로 파악하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었다.

'행복의 건축' 이후 그의 신간이 출간되고 있지 않은데 새로운 주제에 대한  

알랭 드 보통 특유의 지적 통찰을 빨리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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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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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여행에 대한 에세이

그의 에세이집은 늘 엄청난 지식을 자랑하면서도

좀 반항적인(?) 우울함을 풍기고 있다.(딱 내 취향이다. ㅋ)

 

이 책은 여행의 출발에서 귀환까지의 여러 순간들에 대해

위스망스, 보들레르, 호퍼, 플로베르, 고흐 등

각계의 유명한 사람들의 여행 발자취를 쫓아가며

그들이 보고 느꼈던 것과 자신의 감상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어떤 장소를 가보고 싶어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 장소가 유명한 관광지이거나 유적지이기 때문일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유명한 사람이 그곳을 여행하고 나서 쓴 글에 매혹되어 그곳을 찾아가고 경우도 있다.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같은 책이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까 싶다.

아마도 알랭 드 보통도 여러 유명한 사람들의 여행담을 통해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곳을 여행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행을 출발할 때의 설레임은 어떤 경우 여행 그 자체보다 더 인상적일 수도 있다.

막연한 환상이 그 장소를 미화시켜

지루한 일상만이 존재하는 이곳과는 다른 뭔가를 기대하게 한다.  

처음 가보는 곳일 경우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보던 그곳이

과연 실제로는 어떨까 하며 기대에 부풀고

전에 가본 곳일 경우에도 그동안에 얼마나 변했을까 하며

예전의 그곳에서의 추억을 재생시키곤 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 여행길에 발을 내딛는 순간 피로감이 물밀듯이 밀려 오는 경우가 많다.

위스망스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출발하자 바로 

여행에 대한 권태감으로 되돌아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교통체증이 빈번한 곳에선

휴일에 길을 나서는 순간 꽉 막힌 차들을 보고

내가 왜 나섰을까 하고 바로 후회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여행은 목적지에서의 보내는 시간도 특별하지만

이동하는 시간도 일상의 시간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동반자가 있는 경우도 그러하지만 특히 혼자 하는 여행의 경우

그동안 억눌려 있던 생각들이 차장으로 지나가는 풍경들과 함께 봇물 터지듯이 밀려오곤 한다.

그리고 '비포 선라이즈'와 같은 로맨틱한 사건이 발생하기를 꿈꾸기도 한다.

(늘 내 옆자리에 누가 앉을지 은근 기대한다. ㅋ)

 

본격적으로 목적지에서 여행이 시작되면

우리는 그곳이 주는 신선함에 푹 빠질 수 있다.

도시에서 벗어난 산, 바다 등과 같은 대자연을 여행할 경우엔

그동안 잊고 지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고

박물관 등 인류의 위대한 창작물들을 감상하는 것도

우리에게 결핍되었던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엔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드 메스트로처럼 침실에서의 여행을 즐길 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늘 현재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에는 무관심하고

늘 우리가 가보지 못한, 잘 갈 수 없는 먼 곳만을 꿈꾸고 산다.

하지만 드 메스트로에게서 우리 방, 집, 동네도

충분히 여행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늘 다니던 곳만 다니고, 직선거리만 추구하는 나의 삶의 반경에서 벗어나

무심코 지나치기만 해서 발견하지 못했던 일상과 주변의 숨겨진 곳들을 발견하는

일상의 작은 재미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매순간의 감정을 총망라하여

여행의 매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이 에세이집은

알랭 드 보통다운 유려한 글 솜씨가 알랭 드 보통의 여정을 따라가고 쉽게 만든다.

물론 그와 함께 여행하면 피곤할(?) 것 같지만...ㅋ

이 책을 덮는 순간 누구나 어디로라도,

정 안돼면 드 메스트로처럼 자신의 침대라도 여행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힐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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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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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건축에 관한 에세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를 통해

사랑에 대한 그의 박식하고 섬세한 글을 접했던지라

건축에 대한 그의 고견(?)이 어떠한지 궁금했다.

 

이 책에서 그는 건축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지금까지 있어 온 다양한 견해들을 총정리하고 있다.

우리가 세계사 내지 미술 시간에 배웠던 각종의 건축양식을 소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 이런 내용이 담겨 있을거라 생각했다.)

다양한 건축물과 거기에 담긴 건축가의 의도를

보통 특유의 맛깔스런 문체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다양한 건축물을 예시로 제시하며 흑백사진으로 보여주는데

컬러라면 더 실감이 낫겠지만 그러면 책값이 엄청 비싸겠지...

 

우리는 건축물에 대해 단순히 기능적인 면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면도 기대한다.

즉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집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집도 기대한다.

존 러스킨의 말처럼 우리는 건물이 우리를 보호해주길 바라며

동시에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길 바란다.

말을 걸어주는 건물이라...너무 시적인 표현이다.

언젠가는 정말 말하는(?) 건물들이 등장하겠지만 현재로선 중경삼림의 양조위가 그랬듯

우리가 건물에게 말을 걸고 하소연을 해야한다.

집이란 공간은 특히 개인적인 공간이기에 우리는 그곳에서 완전히 무장해제를 당한다.

밖에서는 강한 척, 잘난 척, 각종 '척'들을 하며 자신을 무장하지만

집에 안기는 순간부터 우리는 아기처럼 칭얼대며 자신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집이 정말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들과의 대화가 즐거울 수도 있지만,

그들의 폭로(?)를 두려워 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집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감싸줄 수 있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노래도 있듯이

집이란 단어는 고향과 더불어 편안함을 주며 집은 우리 영혼의 안식처의 역할을 한다. 

 

이 책에서 보통은 집은 인간의 삶을 기억하는 저장소인 동시에 이상의 저장소라고 한다.

집은 그야말로 인간의 생사고락을 모두 지켜 보는 기억의 총화라 할 수 있다.

물론 요즘은 거의 병원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죽는 경우가 많지만

인간의 모든 희노애락을 집은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 살던 집을 오랜만에 가게 되면

그곳에 살던 시절의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 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한편 집은 이상의 저장소이기도 하다.

건물은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을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가 관광지라고 하는 곳에 있는 유명 건축물들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과 함께 우리 맘의 눈높이를 한껏 키우게 되는 것은

바로 건물의 이러한 기능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은 건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와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건물이 투기의 대상이 되어 곧 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멋진 건축물들은 우리에게 단순한 재산 이상의 행복이라는 가치를 제공할 수도 있다.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공간을 차지하며 늘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건축물들에게서    

우리가 행복을 느낄 수 있고, 만들어 갈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보통이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메세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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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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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사랑에 관한 3부작 중 한 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너무 재밌게 봐서 사실 기대가 컸다.

공감하는 내용이 너무 많아서 책이 온통 밑줄로 도배를 했던 그 책에 비하면

'우리는 사랑일까'는 약간 공감도가 떨어졌다.

아마 주인공이 남자에서 여자에서 바뀐 탓이 아닐까 싶다.

 

열정적으로 빠져들 사랑을 꿈꾸던 앨리스는

완소남(?) 에릭을 만난 이후 사랑의 열병에 빠져 들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차츰 보이는 않았던 에릭과의 코드 불일치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에릭을 더 많이 사랑하고

에릭은 자신에게 헌신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자 그녀의 사랑도 서서히 식어 간다.

사랑의 무게 중심이 온통 에릭에게 쏠려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변화에 뒤늦게 에릭이 변화를 시도하지만 이미 식어버린 맘을 되돌릴 순 없는 일

그녀의 맘은 벌써 다른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다가 온 건 사랑은 역시 두 사람 사이의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딱 50 대 50으로 공평하게(?) 사랑할 순 없겠지만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과 헌신으로 이뤄진 관계는 결국 깨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랑은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잘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앨리스가 에릭에게 지쳐 맘이 변하는 것도 서로 코드가 안 맞고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점에도 원인이 있었지만

에릭은 그녀를 위해 거의 희생(?)을 안 하는데

그녀는 에릭을 위해 뭐든지 희생(?)하는 권력(?)의 불균형에 더욱 큰 원인이 있었다.

사랑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 중요한 것이

바로 두 사람 사이의 균형적인(?) 관계인 것 같다.

한 쪽의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 적절히 맘이 오고 가는 관계가

바로 가장 이상적인 관계인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을 때면 늘 느끼는 거지만 그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할 뿐이다.

풍부한 인용과 분석력은 그의 학문적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

다양한 방면의 지식을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의 작품의 매력이 아닌 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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