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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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느 나라 수도에 674층 높이에 인구 50만명을 수용하는 지상 최대의 타워가 완공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답게 특별 자치구역으로 인정받으며 역사상 최초의 타워 도시국가가 된

빈스토크는 독자적인 군대와 통화를 보유할 정도의 최첨단 빌딩국가인데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타워 특유의 일들이 발생하는데...

 

솔직히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손예진 주연의 영화 '타워'가 촬영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이 책이 영화의 원작소설로 착각해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미리 읽어놔야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영화와 이 책은 제목만 같지 아무 관계가 없었다.ㅋ 한 마디로 엉뚱한 착각에 낚여

읽게 된 책이었는데 좋은 결과를 낳은 착각이었다.

 

빈스토크를 둘러싼 6편의 단편을 담고 있는 이 책에서 빈스토크는 마치 구약성서에 나오는

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톡톡한 대가를 치른 바벨탑를 연상시키는 타워이면서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생활공간을 상징했다. 모든 게 빈스토크 안에서 해결되는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반면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높은 물가 등에 시달려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수인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장소이기도 했다.

고급 술에 전자 태그를 붙여 그 이동경로를 파악함으로써 빈스토크 내의 권력 지도를 파악해 보니

영화배우 P가 권력의 중심(?)에 포진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P는 개였다고 하질 않나('동원박사

세 사람'), 털면 먼지가 나는(상대적으론 적지만?) 작가가 자연예찬적(?)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깨닫게 되는 삶과 생명의 의미('자연예찬') 등 흥미로운 설정의 단편들이 실려 있는데

내 맘에 가장 들었던 단편은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였다.

빈스토크 주민들의 선의에 의해 운영되는 파란 우편함은 95%에 가까운 배달성공률을 자랑하는데

자신이 전달하려던 엽서를 까먹고 보관하던 병수는 이를 4년이나 지나 민소에게 전해주지만

이미 민소는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엽서를 보낸 은수는 빈스토크에 들어가기 위해

해군에 지원하여 헬기를 몰다가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추락하여 실종 상태였다.

사막에서 실종되어 찾을 길이 없는 은수를 찾기 위해 나선 병수와 민소,

그리고 이들의 사연을 접한 후 은수 찾기에 발 벗고 나서 위성사진을 확인하는 빈스토크 주민들의

모습은 인터넷과 SNS가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감동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이런 훈훈한 사연보다는 수직주의자와 수평주의자의 갈등과 대립, 폭탄 테러를 계획하는

코스모마피아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엘리베이터 기동연습 등을 벌이는 빈스토크 사이의 대결,

심지어 경비용으로 순진한 코끼리를 투입하는 황당한 상황들을 통해 갈등과 대립으로 첨예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느낌이 들었다.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나 할퀴고 상처주기 바쁜 삭막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준 작품이었는데

빈스토크라는 가상의 타워 국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숨기고 싶은 현실을 통렬히 풍자한 작품이었다.

그래도 은수와 같은 '바보'들을 구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는 빈스토크 주민들의 모습을 통해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음을 작가는 얘기하고 싶었지 않나 싶다.

이 책의 저자인 배명훈을 어디선가 만난 듯한 느낌이 들어 확인해 보니 전에 읽었던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렸던 '안녕, 인공 존재'란 작품을 통해 이미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작품도 정말 기발한 작품이라 할 수 있었는데 그 전작이라 할 수 있는 '타워'를 통해 배명훈이란

젊은 작가의 역량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좋은 작품을 기대할 만한 작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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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는 누가 죽였나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이상우 지음 / 청어람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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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혈족간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이 끝나고 세종 시대에 들어서야

어느 정도 나라가 반석에 오르는 상황이 되지만 세종의 뒤를 이을 장자 문종이 병약한 데다

그의 동생들인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야심이 남달라 또다시 조선의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 보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결국 왕위계승을 둘러싼 암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수양대군 일당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잡는데

이 사건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바로 김종서라 할 것이다.

단종을 지켜줄 세력의 핵심인물인 동시에 수양대군이 권력을 잡기 위해 꼭 처치해야 해야 했던

인물인 김종서와 관련해선 워낙 많은 책과 드라마, 영화들에서 이 사건을 소재로 다루기 때문에

사실 그다지 새로운 얘기가 나오진 않고 있는데 뜬금없이 '김종서는 누가 죽였나'라는

의혹성의 제목을 단 이 책을 만나니 김종서의 죽음에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과는

다른 사실이 숨겨져 있지 않나 하는 궁금증을 자아냈다.

 

한국 추리작가계의 거목 중 한 명인 이상우 작가의 역사팩션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홍득희라는 산적 출신의 여걸과 김종서와의 인연을 중심으로 얘기가 펼쳐진다.

사실 제목만 보면 계유정난이 핵심 소재일 것 같지만 후반부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얘기가 나오고

그 전까지는 주로 김종서가 6진 개척을 하는 와중에 홍득희와 만나

그녀와의 질긴 인연이 계속되는 얘기가 그려진다.

문신임에도 세종으로부터 북방개척의 임무를 받은 김종서는 조선 병사들에게 부모를 잃은

홍득희 남매를 돌봐주면서 홍득희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 와중에 양정, 송희미, 박호문 등 악질 관리들을 만나게 되지만

이들을 완전히 발본색원하지 못한 김종서는 결국 나중에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여진족들에게서 조선 백성들을 보호해야 할 관리들이 자기 사욕만 채우기 바쁘고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있으니 나라 꼴이 제대로 돌아갈 턱이 없는데

이런 분개할 만한 현실에 고군분투하는 김종서의 모습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등장해

감탄하면서도 안쓰러운 맘이 들었다.

심지어 호랑이와 일대일 대결을 펼치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왜 그의 별명이 호랑이가 되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목과는 다르게 김종서의 북방개척과 그 와중에 인연을 맺은 홍득희와의 사연 등에

내용이 편중되었고, 김종서의 죽음에 얽힌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는 게 아닌가 기대를 했는데

별반 새로운 얘기가 펼쳐지지도 않았다. 완전 제목에 낚인 느낌이 드는 책이라 할 수 있었는데

차라리 얼마 전에 방영된 드라마 '공주의 남자'처럼 김종서와 여자 산적 홍득희와의 로맨스에만

더 집중했다면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비록 팩션이지만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김종서라는 인물의 진가를

제대로 알게 해주는 데는 기여한 작품이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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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무정 2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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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를 죽이려는 산과 흰머리를 살리려는 그미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지만  

여전히 흰머리와의 승부를 겨루려는 산의 맘은 변하지 않는다.

백두산까지 흰머리를 쫓아간 산은 드디어 흰머리와의 운명적인 대결을 펼치는데...

 

7년이나 복수의 칼을 갈던 남자와 개마고원의 지배자 백호 흰머리의끈질긴 대결을 그린 이 작품은   

2권 초반부에서 일단 산과 흰머리의 정면대결이 펼쳐지는데 승부는 어이없게도 백두산이 결판을 낸다.

요즘 안 그래도 백두산이 잠에서 깨어난다는 소식이 들리긴 하는데  

이 책에서 백두산이 엄청난 역할을 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ㅋ

우여곡절 끝에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잡힌 흰머리는 경성으로 이송되고

제대로 된 승부를 내지 못했던 산과 그미는 창경원에 갖히게 된 흰머리를 탈출시키려 하는데...

 

1권에서는 산과 흰머리간의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할 대결이 펼쳐졌다면

2권에선 공동의 적인 일본을 향해 서로 동반자(?)가 되는 산과 흰머리의 묘한 관계가 형성된다.

조선의 최고 맹수를 잡아다가 한낱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려는 일제의 만행에

창경원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이 통곡하는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하는데

흰머리는 단순히 개마고원을 호령하는 최고의 포식자가 아닌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었다.

일제가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어놓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 쇠못을 박아놓은 것과 같은 취지로

말로는 해로운 동물을 잡아 없앴다며 해수격멸대를 만들었지만 그 속셈은

우리의 토종 맹수들을 없애려는 한민족 말살 음모의 일환이라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7년이나 복수의 순간을 기다려왔던 산마저 일단은 흰머리를 탈출시키기 위해 노력하는데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 흰머리가 경성부청(현재의 서울시청) 옥상에 나타나는 장면은  

공포스럽기보단 오히려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기왕이면 총독부 건물 옥상에서 포효했으면 훨씬 더 멋있지 않았을까 싶다.ㅋ

사실 서울에 호랑이가 돌아다닌다면 정말 집밖을 나서기 무서울 만큼 충격적인 일이겠지만

결코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 흰머리의 활보는 오히려 일본의 탄압을 받고 있던  

조선 사람들의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주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서로를 미워할 수만은 없는 산과 흰머리는 7년간을 끌어왔던 승부에 결국 종지부를 찍게 된다.

과연 무엇을 위해 7년이란 세월을 보냈는지 쉽게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일생을 걸 만한 상대를 만난다는 건 어떻게 보면 행운이라고도 할 것이다.

비록 꺾어야 하는 적일지라도 서로를 자신의 훌륭한 상대로 인정하고 정정당당한 대결을 펼친다면
승부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여한이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산과 흰머리도 비록 처절한 대결을 벌였지만 최고의 적수를 만났기에

아마 후회없는 승부를 끝까지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산과 그미의 안타까운 사랑. 호랑이 같은 남자와 호랑이를 사랑하는 여자의 만남은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라 할 수 있었지만 두 사람이 처한 환경이 너무 달랐다.  

첨엔 흰머리를 죽여야 하는 산과 흰머리를 살리려는 그미가 대립된 모습을 보였지만

흰머리가 잡힌 이후 어떻게든 흰머리를 개마고원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의기투합한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은 이뤄지지 못하는데  

마지막에 남겨진 산의 그림과 글은 마음을 후벼파기에 충분했다.

함께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그미를 향한 산의 애달픈 마음이 절절히 잘 그려졌다.

 

포수와 호랑이의 대결이란 좀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소재라 과연 재미있을까 반신반의했던 책인데

초반의 산과 흰머리의 추격전이 좀 늘어지는 느낌이 드는 걸 잘 참아낸다면

그 이후론 흰머리가 설원을 달려가듯 폭풍질주를 하면서 읽어나갈 수 있던 책이었다.

김탁환 작가의 책은 '혜초'에 이어 두번째였는데 훨씬 박진감 넘치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거의 호랑이 전문가가 된 작가의 열정이 고스란히 이 책에 녹아있는 것 같았다.

비록 슬픈 결말로 끝나고 말았지만 산처럼 인생을 걸 수 있는 대상이 있고,

마지막 순간까지 잊혀지지 않는 그리운 사람을 맘 속에 간직할 수 있었던 점은  

남자로서 충분히 멋진 삶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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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무정 1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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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마고원을 지배하는 왕대인 백호 흰머리에게 아버지 웅을 잃고

하나뿐인 동생 수마저 한쪽 팔을 잃게 되자 개마고원 최고의 포수 산은  

흰머리에게 복수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흰머리를 찾아다닌다.

무려 7년 동안 흰머리를 찾아헤맨 끝에 흰머리의 흔적을 따라잡은 산.

한편 조선의 맹수들을 격멸하는 일본군의 해수격멸대 대장 히데오도 수를 앞장세워 흰머리를 쫓게 되고,  

조선 호랑이를 찾아 개마고원으로 온 생물학자 주홍이 참가하면서  

산과 히데오, 주홍간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하는데...

 

백호 흰머리와 포수 산간의 목숨을 건 치열한 대결을 그린 작품.

백두산 호랑이는 우리나라에선 영물로 치는데 그것도 백호여서 더욱 신성한 분위기와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뿜지만 흰머리에게 아버지를 잃고 동생마저 팔을 잃었으며  

자신도 큰 상처를 입은 산에겐 그저 복수의 대상일 따름이었다.  

무려 7년이나 복수의 일념 하나만으로 흰머리를 추격한 산에게 흰머리는 그야말로 삶의 이유였다.

흰머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꿰뚫고 있으며 흰머리와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하는 것처럼  

흰머리를 따라다니는 산. 그런 산의 추격을 유유히 즐기는(?) 흰머리도  

결코 이유없이 인간을 공격하거나 살상하지 않는 개마고원의 1인자다운 풍모와 기품을 지녔고,  

자신을 7년동안 따라다닌 산을 자신의 진정한 적수로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렇게 서로를 인정하는 최고의 포수와 최고의 맹수간의 한판 대결이 맹렬한 추위가 휘몰아닥친  

황량한 개마고원의 여러 봉우리들을 넘나들면서 펼쳐지는데 정말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생각만 해도 몸과 맘이 온통 꽁꽁 얼어붙을(안 그래도 몸과 맘이 아이스에이지인데ㅜ.ㅜ) 그곳에서  

로를 향한 강렬한 욕망을 분출하는 흰머리와 산의 비장감 넘치는 대결 속에 산과 히데오가 이끄는  

해수격멸대는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흰머리가 거느린 암컷 호랑이 한 마리를 처치하는데 성공하는데...

 

이렇게 1권에서는 지독할 정도의 산과 흰머리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는데 이들의 대결에  

개입하는 히데오와 수, 주홍, 쌍해 등 인물간에 펼쳐지는 갈등도 산과 흰머리 사이의 대결 못지 않았다.

특히 잘 나가는 군인이었다가 몇 번의 실패로 해수격멸대 대장으로 좌천되어 어떻게든 흰머리를  

잡아 공을 세워보려는 히데오와 산간의 갈등, 그리고 호랑이를 구하기 위해 온 주홍를 둘러싼  

산과 히데오의 삼각관계는 산과 흰머리의 운명적 대결을 더욱 뜨겁게 해주었다.

 

1권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산과 주홍(주홍과 그미라는 이름을 혼용해서 좀 헷갈리긴 하는데 누군가가  

생각나게 하는 그미란 이름이 왠지 더 와닿는다)이 서로의 맘을 확인하는 부분까지 나오는데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외롭게 떠도는 산이 과연 그미에게 정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산과 흰머리의 숨가뿐 대결은 과연 어떤 결말을 맞게 될런지 빨리 2권을 읽어야겠다. 

(아마도 오늘 밤에 흰머리를 쫓는 산이 되는 꿈을 꾸게 되지 않을까 싶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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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중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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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우리 소설들을 자주 읽은 편은 아니다.

내가 추리소설류의 장르소설을 좋아해서인 점도 있지만

우리 소설을 읽으면 뭔가 확 와닿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드물고(물론 다른 나라 소설들도 편차가 있다.)  

내용 자체가 잘 파악이 안 되는 난해한 작품들이 종종 있어 주로 유명 작가들의 베스트셀러 정도를  

읽는 편이지만 나름 젊은 작가들의 신선한 작품들도 만나고 싶은 맘이 있던 차에  

문학동네에서 새로 제정한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 책에 담긴 단편들은 역시 등단 10년 이내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라 풋풋함과 신선함이 넘쳤다.  

총 7편이 실려 있었는데 흔히 만날 수 있는 그런 작품도 일부 있었지만 상당수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있다니...' 하는 놀라움을 자아내게 했다.  

먼저 대상작인 김중혁의 '1F/B1'는 고평시(배트맨의 '고담시'가 연상된다.ㅋ)의 네오타운의  

건물관리자연합회가 치룬 암흑 속의 전투(?)를 그리고 있는데 기발한 상상이 돋보인다.

건물들의 지하관리실을 연결하는 비밀통로를 만들어 건물관리연합회의 비밀 공간을 만든 것도 그렇고,  

'1F/B1'를 보고 FBI를 연상한 것도 작가만의 능력이 아닐까 싶다.  

독특한 설정 속에 현대도시문명을 지배하는 권력에 대한 풍자가 잘 드러난 작품인 것 같았다.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는 동명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얼마 전에 읽은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나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처럼

어떤 그림에서 하나의 새로운 얘기를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대단했는데  

죽기도 전에 이미 죽은 것처럼 죽음을 준비하는 우리의 죽음에 대한 자세와  

남녀간의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잘 그려진 작품인 것 같았다.

 

이장욱의 '변희봉'은 최근 '괴물' 등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뒤늦게 진가를 인정받고 있는  

노배우 변희봉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변희봉이란 배우를 오직 한 명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다 모르는 상황에서 과연 뭐가 진실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나 혼자 아무리 진실을 얘기해도 세상의 다른 사람들이 이를 인정해 주지 않아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속 터지는(?) 상황을 잘 묘사했다.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는 이 책에 실린 작품 중 가장 독특한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공법으로 제작된 인공존재라는 기발한 제품을 소재로  

철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획기적인 얘기라 할 수 있었는데  

SF적인 이런 소설이 우리나라에서도 나온다는 게 정말 신선한 충격이라 할 수 있었다.

 

김미월의 '중국어 수업'은 중국인 불법체류자와 이런 불법체류자들을 대상으로  

어학원에서 강의를 하는 비정규직 여자의 애환을 그린 작품인데  

요즘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잘 포착한 작품이었다.

정소현의 '돌아오다'는 반전이 인상적인 작품인데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가족간의 관계를  

영화같은 반전을 이용해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마지막인 김성중의 '개그맨'은 무명시절 그를 사랑했던 여자가 그가 죽은 후 그의 존재와 
그에 대한  

사랑을 머나먼 이국에서 확인하는 얘기인데 개그맨의 마지막 개그(?)가 씁쓸한 웃음을 안겨주었다.

 

이 책에 실린 7편의 단편은 말 그대로 앞으로 우리 문학을 짊어질 젊은 작가들의 주옥같은 단편들이라  

할 수 있었다. 각 단편마다 저자들의 작가노트와 평론가들의 평론이 실려 있고

마지막에 심사위원들의 심사평까지 있어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작품이란 게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 그것을 읽는 독자들의 것이 되지만 작가들의 의도랄까  

작품을 쓰게 된 계기, 사연 등을 알면 작품의 의미를 더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작가들과 평론가들이 늘어놓은 작품에 대한 얘기들은 좀 어려운 면도 없지 않았지만  

작품에 그런 의미들을 부여하고 그런 해석과 평가를 한다는 게 흐릿하게 보이던 작품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

늘 새롭고 재밌는 이야기에 굶주려(?) 있는 내게 이 책은  

우리 소설의 밝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해준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앞으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들 뿐만 아니라 여러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장르의 매력적인 작품들이 계속 쏟아져 나올 것을 생각하면 

잠시나마 먹기도 전에 배부른 포만감을 느끼게 해준 작품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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