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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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을 지배하는 두 가지 이데올로기를 꼽으라면 물질만능주의와 외모지상주의가 아닐까 싶다.

아니 요즘 세상에만 통하는 게 아닌 인류가 존재한 시점부터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닐까 싶다.

돈과 미모. 이 두 가지 권력의 힘은 너무나 견고해서  

모든 사람들이 이를 당연시 여기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 책은 못 생긴 여자와 그녀를 사랑한 남자의 순애보를 그리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남자에게 못 생긴 여자를 사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남자란 동물들은 외모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뭐라 비난을 하더라도

미인들에게 반응하는 건 자연스런 일이라 할 수 있다.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건 단지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미남을 선호한다.

단지 여자들의 기준은 훨씬 현실적이어서 외모보단 경제력을 더 중시할 뿐이다.

암튼 아름다움에 반응하는 건 자연스런 일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

아니 못 생긴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대우는 정말 잔인하기 짝이 없다.

특히 못 생긴 여자에 대한 인신공격은 살아가는 게 힘들 정도의 고통을 안겨 주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행해지는 무차별적 비난을 꿋꿋이 버텨나가려면 정말 눈물겨운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못 생긴 여자에게 자신을 사랑한다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것도 잘 생긴 남자가 자신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여자는 당연히 그가 내민 손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자신이 당했던 경험과 같이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닌가 의심을 하는데

남자는 잘생긴 것만 믿고 배우한다고 설치다가 우연한 기회에 인기를 얻자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간 배우 아버지를 둬서 그런지 다른 남자들에 비해 외모에 민감하지 않았다.

못 생긴 여자와 아버지에게 버린 받은 남자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는데...

 

아무래도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그들의 사랑은 조심스러웠다.

백화점 알바를 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지긴 하지만 뭔가 모를 거리감이 존재했다.

그나마 그들의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요한이 있었지만 그에게도 깊은 상처가 있었다.

이렇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은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할 지경이었지만

그들의 진실한 마음은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특히 그녀의 마음이 가득 담긴 편지를 읽을 때면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졌을 정도였다.

외모가 아닌 마음을 보라는 말은 쉽게 하지만 마음보단 외모에 먼저 반응하는 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통점일 것이다.

외모에 반응하는 건 본능적인 거고 순식간이지만

마음을 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마음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키워야한다.

그런데 우린 마음의 눈을 키우는 법을 배운 적도 노력한 적도 없다.

늘 못난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고 예쁘고 잘난 사람을 부러워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당연시함이 소수에게 막강한 특권을 부여하게 되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늘 자신을 학대하면서 스스로를 '못난이'로 단정짓게 만든 것이다. 

아름다움은 단지 아름다움일뿐이지 그것에 특권을 부여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멸시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작가의 말처럼 부끄러워하지 말고 부러워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 판치는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외모만이 아닌 각자의 다양한 모습을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박민규 작가의 책은 이번에 처음 접했는데 그의 신선한 감각이 돋보였던 것 같다. 

예스24에서 온라인 연재되었던 것으로 아는데 못 생긴 여자를 사랑한 남자라는

어쩌면 비현실적인 얘기를 흥미롭게 그려내면서 독특한 문장 구성방식으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잘 담아내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에 요한과 그녀, 그의 각각의 얘기가 실려 있어 다양한 열린 방식의 결말까지

작가의 실험정신이 돋보인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는 그런 세상이 오기는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외모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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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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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보증금마저 다 까먹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기 직전인 48세의 실패한 영화감독인 나는  

닭죽을 쑤어놓았으니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말에 날름 엄마 집에 들어간다.  

엄마 집에는 이미 52살인 전과자 출신의 백수인 형이 엄마에게 빌붙어 살고 있는 상태였는데

여동생마저 남편과 한바탕하고 어린 조카를 데리고 엄마 집으로 들어온다.  

이 대책 없는 가족들의 앞날은 과연 어떠할런지...

 

'고래'라는 작품으로 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던

천명관의 두번째 소설인 이 책은 콩가루 가족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70대 늙은 노모의 등골을 빼먹는 무능한 자식들이 펼치는 한심한 모습들,  

그리고 막장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출생의 비밀 등 좀 극단적인 설정이라는 느낌도 없진  

않았지만 요즘 해체되고 있는 가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선 집에서 유일하게 공부한 사람인 오감독은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완전히 망해서 다시는 감독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충무로를 배회하는 신세였다가  

아내와도 이혼하고 엄마 집에서 백수생활을 시작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엄마 집에 눌러 살던 형과 티격태격하면서도

마치 인생을 포기한 사람 마냥 엄마 집에 눌러사는데 그의 행동을 보면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싸가지 없는 조카에게 삥(?)을 뜯질 않나 삥 뜯은 돈으로 미용실 여자를 어떻게 해보려 하는 등  

혀를 차기 딱 좋은 인간의 전형이었다.  

게다가 한 술 떠뜨는 인간이라 할 수 있는 건달 출신의 120kg의 큰 아들이 집에서 빈둥거리고,  

바람나서 다시 이혼하는 딸까지 이런 골치 아픈 애들을 데리고 살아야 하는  

70세 노모가 정말 불쌍하기 그지 없었다.

어느 가정이나 문제 없는 집이 없다 하지만 이 집은 정말 구제불능이라 할 수 있었다.

 

전형적인 콩가루 집안이라 할 수 있었지만 조카가 가출하면서 그래도 한 가족임을 확인하게 된다.  

아무 쓸모도 없어 보였던 두 외삼촌이 조카를 찾아 나서고  

결국 두 형제는 각자의 전문 분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와중에 밝혀지는 출생의 비밀들은 이 집안이 왜 이렇게 콩가루 집안이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구제불능의 콩가루 집안이지만 가족이라는 끈은 의미가 없지 않았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는데 좀 복잡하게 얽힌 비정상적인 집안이었지만  

엄마를 중심으로 가족이란 공동체가 미약하나마 기능을 한다는 점이 어떻게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였다.

가족이란 게 사실 좋든 싫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인데 가끔씩은 감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오히려 가족이기에 서로 상처주고 힘들 게 하는 경우도 많아 가족이란 사실이 정말 지긋지긋하거나

끔찍할 경우가 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가족이 바로 그런 가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아무리 미움과 원망이 쌓여도 한 순간에 풀어지는 관계가 바로 가족인데  

모든 걸 감싸주는 엄마의 존재가 가족을 지탱하는 힘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은 오늘날의 붕괴된 가족의 모습을 코믹하게 잘 그려낸 작품인데 

위기의 가정들이 많은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앞으로 예전과 같은 의미로 가정이 역할을 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각종 새로운 형태의 가정들, 이 책에 나오는 복잡한 관계의 가정들이 점차 늘어갈 것인데

그럼에도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그 가정과 구성원은 물론  

사회도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가정들을 볼 때마다 그래도 나는 정말 다행이 아닌가 싶은 위안을 받으며,  

그동안 나의 가족들에게 늘 불만과 투정만 일삼았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한심한 아들처럼 되지 않도록 앞으론 가족들을 잘 챙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얼마나 갈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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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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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소설을 읽을 때 간혹 난해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좋게 말하면 깊이 있고 심오한 뭔가를 담아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소설을 읽는 재미를 못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요즘 새로 데뷔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 예전과는 달리

입에 착착 달라 붙는 그런 감칠 맛을 느끼는 작품이 적지 않다.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이 작품도 그런 작품 중 하나였다.

조선 영정조때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면서도 그 당시 사람들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애틋한 사랑을

여러 등장 인물들의 사연을 통해 잘 그려낸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각 인물들의 시선에 따라 이야기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놓아서

이를 짜맞추기가 쉽진 않았지만 모자이크를 맞추는 재미도 나름 솔솔했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엮는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묘연과 태겸 부부는  

평범한(?) 조선시대 양반 집안의 부부였다.

아내에게 무심한 듯한 남편과 그런 남편과 보이지 않는 벽을 쌓아놓고 사는 묘연의 관계는

우리 조상 부부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집안에서 정해준 사람과 결혼하여 그냥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사는  

부부의 모습 속엔 뭔가 허전함이 느껴졌다.

그냥 남편과 아내라는 각자 맡은 바 임무만 꿋꿋이 수행하는 부부의 모습이 좀 안스럽기도 하지만

그들 사이에도 나름의 상대에 대한 존중이랄까 배려는 있는 것 같았다.

 

가장 애절한 사연의 주인공은 태겸과 묘연의 아들 희우와  

그들의 집에서 딸처럼 자란 난이와의 사랑이 아닌가 싶다.

먼저 난이의 정체성이 문제가 되었다.  

난이는 묘연의 배다른 형제인 하연의 딸로 희우와는 이종사촌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묘연의 아버지가 천하의 난봉꾼이라 하연이 정식 자식으로 인정되지 않는 관계였기 때문에
사실상 이종사촌이고 묘연의 시댁에서 딸처럼 자라지만 신분상의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오라버니와 누이로 지내면서 쌓인 정을 쉽게 끊어낼 수가 없었다.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마음이 점점 커지지만 희우는 끝내 반항하지 못하고

다른 명문가의 딸을 베필로 받아들이며 난이는 집에서 나가게 된다. 

묘연도 희우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지만 그 당시의 높은 신분의 벽과

사실상의 근친상간이 된다는 점에서 그들은 결코 이루어지지 못한다.

희우와 난이가 서로에 대한 맘을 제대로 표현도 못하고 가슴 아파하는 장면들,

겉으로 드러내놓고 아파하지도 못하는 절제된 두 사람의 사랑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밖에 여러 커플들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각자의 입장에서 그려지는데

당시엔 정말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신분을 비롯한 여러 제약 때문에 서로의 감정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사람과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묵묵히 감내해야 했던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맘이 들 뿐이었다.

그에 비하면 요즘 사람들의 사랑은 너무 쉽고 가볍지 않나 싶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그런 가벼운 만남들이 넘쳐 나는 가운데

이 책에서 나오는 그런 애틋한 사랑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여러 사회적인 제한과 장벽에 의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측면도 없진 않는데 제한 같은 게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사랑의 무게가 예전보다 가벼워진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여러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랑을 치밀한 구성으로 애달프게 엮어낸 이 책은

신인 작가의 데뷔작품치고는 수작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을 했는지를 실감나면서도 절제된 미학 속에 그려내어

시대극을 읽는 묘미를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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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시 - 시인 최영미, 세계의 명시를 말하다
최영미 / 해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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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와 시인의 간략한 해설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오랜만에 읽어보는 시집이라 그런지 쉽게 읽히진 않았다.

역시 시인의 안목은 범부의 안목과는 달라 시를 보는 수준이 뭔가 다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쉽게 와닿는 시에 애정이 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책에 실려 있는 시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최영미 시인이 좋아하는 총 55편의 시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시인 나름대로 고대부터 19세기 이전의 시를 모아놓은 1장,

19세기의 작품들을 모아놓은 2장, 20세기의 작품들을 모아놓은 3장,

동양의 시인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4장, 한국 시인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5장,

상대적으로 최근 시인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6장으로 되어 있다.

(시대에 따른 구분이란 건 전적으로 내 나름의 해석이다.)

사실 이 책에 소개된 55편의 시 중에 기존에 알고 있던 작품은

겨우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과 기형도의 '빈집' 밖에 없었다.

솔직히 처음 이 시집을 손에 들었을 때는 그래도 최영미 시인이 좋아하는 시들 중에

내가 좋아하는 시나 적어도 아는 시가 좀 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했었는데

역시 나는 아직까지 시의 문외한에 불과했다.

최근에는 거의 시집을 가까이하지 않았고 시집이라 봤던 것도  

류시화 시인이 소개한 잠언 시집들이 전부였는데

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에 매력에 다시 한 번 빠져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학창 시절엔 시를 읽는다는 게 왠지 멋져 보인다는 자아도취에 빠져

시에 관심을 가졌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시와는 소원해졌다.

시집이 분량도 가볍고 어디서나 읽기 쉬운데도 불구하고 시와의 감흥도가 점점 떨어졌다.

아마 세상사에 점점 찌들어가서 그런지 시를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시의 매력은 짧은 글귀 속에 담겨 있는 삶에 대한 촌철살인의 메시지일 것이다.

그리고 보통 사람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예민한 감수성과 관찰력으로 만들어낸 표현들에

그동안 놓치지 지나쳤던 세상을 새롭게 발견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시를 읽는 묘미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영미 시인이 소개한 시들이 그리 쉽지 만은 않았지만

읽어버렸던 시를 읽는 즐거움을 다시 되살려주었다.

점점 쌀쌀해져가는 겨울 문턱에 시린 마음 속을 따뜻하게 해줄

좋은 시집을 찾아 읽는 것도 겨울나기의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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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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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정신병원에 입원 경력이 있던 수명은 또 다시 사고(?)를 친 후

아버지에게 떠밀려 다시 수리희망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거기서 동갑내기 승민과 같은 방을 쓰게 되지만 승민은 늘 사고를 몰고 다니면서  

정신병원에서의 탈출을 꿈꾸는데...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정신병원에서 탈출을 꿈꾸는 두 남자의 얘기를 사실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낸 이 책은 실제로 작가가 정신병원에 들어가 환자들과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정신줄을 좀(?) 놓아버린 수명과

배다른 형제들과 얽힌 재산문제로 정신병원에 감금된 승민

그리고 이들을 괴롭히는 점박이와 그나마 공정한 간호사 최기훈

승민을 자신의 또별이라 여기며 등에 업혀다니는 만식씨

깍쟁이 같은 김용 등 수리희망병원의 여러 인물들을 통해

정신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사실 정신병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외부 사람들이 알기 어렵다.  

그 명칭대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기관이라고 생각되지만  

환자들의 상태가 자신들의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거나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간혹 환자들에 대한 인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심지어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자로 만들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경우도 없지는 않는 것 같다.  

소설 속 승민의 경우가 전형적인 사례로 한때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멀쩡한 사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신병자로 만들어 정신병원에 감금시키는 사태가 발생한다.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도 잭 니콜슨이 범죄자이지만 결코 정신병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신병원은 그를 진짜 정신병자로 만든다.  

이 책에서도 "정신병동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어요.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쳐가는 자"라는  

대사를 통해 잘 드러내고 있다.

이는 정신병원이라는 곳이 결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들을 격리하고 감시하는 곳으로 변질되었고,

심지어 누군가의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을 가두는 곳이 될 수도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그런 정신병원의 부조리한 면이 적나라하게 그려지면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수명과 승민이 자유를 갈망하며 정신병원을 탈출하는 장면은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팀 로빈스)가 탈옥에 성공하는 것과 같은 쾌감을 주었다.  

게다가 승민의 마지막 비행은 잘못된 것들 투성이인 답답한 세상을 벗어나  

잠시나마 무한한 자유의 느낌을 맛볼 수 있게 해주었다.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정신병원이란 낯선 공간을 무대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특히 정신병원에 갖혀있는 여러 환자들의 독특한 캐릭터와  

그들을 괴롭히고 감시하는 병원 직원들의 모습이 너무 사실적으로 그려져서  

마치 실제 정신병원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만큼 작가의 소설을 쓰기 위한 취재와 정성이 잘 녹아든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작품으로 우리 문단을 빛내줄 작가가 되기를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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