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만나는 산책길
공서연.한민숙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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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동네 산책에 나서지 못하고 있지만 작년 상반기에는 동네 한 바퀴를 하면서

주변에 있는 몰랐던 여러 장소들을 발견하는 재미를 맛봤다. KBS에서 토요일 저녁에 방송되는 '동네

한 바퀴'를 직접 실천했다고 볼 수 있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집콕하면서 책으로나마 산책을 떠날 기회를

찾던 중에 딱 내가 원하는 컨셉에 맞는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서울에 살다 보니 아무래도 서울을 다룬 책이 좋을 것 같았는데 대부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역사 

산책에 나서 나중에 직접 찾아가 보면 좋을 듯 싶었다. 총 4장에 걸쳐 산책에 떠나는데 먼저 파리가

부럽지 않은 역사 도시 서울로의 여행을 떠난다. 한때 서울의 첫인상이라 할 수 있던 서울역에서 출발해

중앙고등학교,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물관 등을 둘러봤는데 서울에 오래 살았으면서도 이런 곳들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 그나마 우리 동네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미술관이 등장해 반가웠는데

구 벨기에 영사관이자 사적 254호인 문화재여서 출퇴근 길에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곤 했다. 비극의

주인공인 단종과 정순왕후의 사연이 담긴 정업원 터, 청룡사 우화루, 영도교 등 영월에만 있는 줄 

알았던 이들의 흔적이 서울에도 남아 있어 기회가 되면 한 번 찾아가 보고 싶었다.


다음으론 '왕의 길'을 주제로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까지 18번이나 능행차를 하는 여정에 있는

여러 유적이 소개된다. 하루아침에 왕이 된 강화도령 철종과 관련해선 융흥궁 등 강화도의 유적들이,

격동의 개화기의 왕이었던 고종의 아관파천과 관련한 덕수궁과 구 러시아 공사관이, 홍건적의 침입에

충주로 피난갔던 공민왕에 얽힌 하늘재, 마지막으로 여주에 함께 이름도 같은 영릉(한자는 다름)으로

쉬고 있는 세종과 효종의 얘기를 만나볼 수 있었다. 주로 역사적인 유적들을 찾아다니던 발길은 다음

챕터에선 문래동, 익선동, 을지로의 과거와 현재를 둘러보면서 사람 냄새 나는 재래시장까지 다녀온다.

마지막 장에선 오늘날 우리의 자유로운 삶이 있기까지의 역사적 순간들을 둘려보는데 조금 안 맞는

남한산성과 삼전도의 굴욕을 필두로 많은 독립투사들이 고통을 받았던 서대문 형무소, 김구 선생의

마지막을 장식한 경교장, 최근 영화로 알게 된 장사리와 고문의 현장으로 기억되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마무리를 한다. 이 책을 보면서 서울을 비롯한 도처에 우리의 역사 속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들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는데 코로나를 물리치면 나만의 역사를 만나는 산책길을 다시

재개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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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왕세자들 - 왕이 되지 못한
홍미숙 지음 / 글로세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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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에 대해선 워낙 많은 문화 콘텐츠들이 있어서 왠만한 얘기들은 익숙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대부분 왕을 중심으로 한 얘기들로 권력 다툼의 과정에서 생긴 사건들이 대부분인데 이

책의 제목처럼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왕세자들만 따로 다루는 책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왕이 되지 못한 대표적 인물로는 아버지 영조에게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나 아버지 태조에게 세자

자리에서 쫓겨난 양녕대군 정도가 떠오르는데 이 책에서는 조금은 낯선 인물들도 상당수 등장해

과연 그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 책에선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왕세자를 왕세손까지 포함하여 크게 5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먼저

폐세자가 된 4명, 요절한 6명, 폐세자가 되었다가 복위된 사도세자와 대한제국 최초이자 유일한

황태자 의민황태자 이민, 단명한 왕세손 2명까지 총 14명의 왕세자 내지 왕세손을 다루고 있다.

폐세자가 된 인물 하면 양녕대군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그보다 먼저 최초의 타이틀을 차지한

사람이 있었으니 조선의 첫 번째 왕세자였던 의안대군 이방석이었다. 태조 이성계가 총애한 계비

신덕왕후 강씨와의 사이에 태어난 막내 아들인 이방석은 아버지의 사랑과 신권 중심의 나라를 만들려는

정도전 등 개국공신 세력들의 지지로 첫 왕세자의 영광을 차지하지만 장성한 이복형들이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결국 왕자의 난으로 최초의 폐세자이자 살해된 세자가 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는데 이때부터 조선왕조의 골육상쟁이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그와 반대로 폐세자가 되고도

천수를 누린 사람이 바로 양녕대군이다. 그가 세종에게 왕위를 빼앗겼기(?) 때문에 명군이 탄생하게

되었으니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세조의 왕위찬탈을 옹호하는 등 종친 어른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진 못했다. 나머지 두 명은 생각도 못했던 연산군과 광해군의 장자들이었다.

그들은 아버지가 왕이어서 왕이 되는 게 누워서 떡 먹기였지만 운명은 그들을 결코 왕이 아닌

처참한 죽음으로 내몰았다. 다음으로 요절한 왕세자 중엔 역시 소현세자가 단연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인조의 독살설이 유력한 소현세자는 못난 아버지가 왕이 되면서 세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못난 아버지 때문에 본인은 물론 처자식이 몰살당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그 외에 부모

등의 죄를 대신 일찍 갚은 듯한 인물들로 세조의 장자였던 의경세자(성종의 아버지로 덕종으로

추존)나 할머니 문정왕후의 죄를 대신한 듯한 명종의 아들이자 마지막 적통이었던 순회세자, 역시

아버지 영조 대신 일찍 간 듯한 효장세자,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까지 조선

왕실은 유독 요절한 왕세자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것도 대부분 피를 보고 왕이 된 자들의 자식들이어서

인과응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 했다. 폐세자가 되었지만 유일하게 복위된 인물은 친숙한

사도세자였고, 영친왕으로 더 잘 알려진 의민황태자가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라 할 수 있었다.

단명한 왕세손까지 저자는 조선 왕실의 능, 원, 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생생한 사진까지 싣고

있어 새롭게 알게 된 부분들이 많았는데 특히 마지막에 등장한 영친왕의 약혼녀 민갑완의 사연은

정말 비극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었다. 영친왕과 딱 한 번 만나고 정식 약혼녀가 되었지만 일제에

의해 영친왕이 일본 왕실의 이방자와 결혼하게 되면서 졸지에 파혼녀 신세가 되어 평생 외롭게

혼자 살다 쓸쓸하게 죽어가야 했던 그녀의 한 많은 인생에 저절로 마음이 짠해졌다. 이 책을 보니

조선왕실의 왕릉 투어를 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그동안 잘 다루지 않았던 주제를 잘 정리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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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 이야기 길 따라 걷는 시간 여행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3
홍인희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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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에는 주말 등을 이용해 집 주변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곳들을 운동삼아 다녀보곤 했다.

오랫동안 한 동네에 살면서 바로 주변에 있는 곳들도 몰랐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는데

찾아보면 인근에 우리 역사의 흔적들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은 인문학적 관점에서

경기도 곳곳에 산재해 있는 대중들이 잘 모르는 부분들을 20가지 이야기로 엮어 소개하고 있는데

그동안 제대로 모르고 있던 역사적인 사실들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먼저 여주를 시작으로 이야기 여행을 시작하는데 여주라고 하면 역시 세종대왕을 빼놓을 수 없다.

세종의 업적이나 에피소드들은 여러 책들에서 많이 접해서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세종에겐 사사건건

반대하는 골치 아픈 두 명의 신하 허조와 고약해가 있었지만 늘 그들의 견해를 경청해서 요즘같은

불통의 시대와는 사뭇 대조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조선 왕릉이 서울 안이나 인근에

있는데 비해 세종의 영릉이 여주에까지 간 사연이 문종부터 시작된 왕실의 비극이 세종의 묘가 있던

지금의 헌인릉 부근이 흉지여서 예종 때 여주로 옮겼다고 하니 세조가 일으킨 피바람을 엉뚱하게도

세종의 묘 위치 탓으로 돌린 듯한 느낌도 들었다. 양평편에서도 언급되었던 정약용은 다음 편에선

본격적인 주연으로 등장하는데 그가 풍산 홍씨 집안의 홍혜완에게 장가들 때의 얘기부터 오랜 유배

생활을 거쳐 고향인 마현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아내와의 애틋한 사연들이 담겨 있었다. 선정비와

관련한 얘기는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추한 역사의 단면을 제대로 보여주었는데 옛날에 아이들이 하던

비석치기도 선정비와 관련 있다는 견해가 있을 정도로 탐관오리들이 자화자찬식의 선정비를 남겨

놓아 원통한 백성들이 선정비의 글자들을 뭉개버리는 등 훼손시키는 사례들이 많았다고 한다.

물론 반대로 선정을 베풀고 떠나는 고려 시대 순천 지역 태수 최석에게 백성들이 모은 돈으로 산

말 7마리를 전별 선물로 딸려 보내자 서울로 돌아온 최석이 상경 길에 낳은 망아지까지 8마리를

돌려보내 백성들이 팔마비를 세워줬다는 훈훈한 사연도 있었다. 이렇게 경기도 여러 지역들마다

관련된 역사적인 인물들이나 사연들을 소개하고 있어 그동안 큰 줄기의 역사와 수도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 지역마다 우리가 잘 모르고 지냈던 아기자기하면서 흥미로운 역사 얘기가 많이 숨겨져

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역사책들은 왕조와 정치 중심으로 서술되는 게 보통이었는데 이

책은 역사도 중앙집권화에서 벗어나 지방분권형으로 바뀌어야 함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역사의 현장과 얘기거리들이 무궁무진함을 잘 일깨워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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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조선 - 우리가 몰랐던 조선인들의 성 이야기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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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한 권으로 읽는 왕조실록' 시리즈로 각 왕조의 단권화(?)에

일가견을 보인 박영규의 책은 조선왕조뿐만 아니라 고려신라왕조까지는 봤다. 나머지 왕조들의

책들과는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았는데 제목부터 자극적인 이 책은 조선의 숨겨진(?) 에로틱한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남녀유별을 강조하는 유교사상 아래 겉으로는 고상한 척 엄청 체면을 내세우지만

뒤로는 호박씨 까기에 급급한 이중적인 모습의 조선사회에서 실제 성문화가 어떠했는지를 이 책은

여러 관점에서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에로틱 심벌이 된 여인들', '춘화와 육담의 에로티시즘', '조선의 섹슈얼리티와 스캔들'의

3부로 나눠져 있는데 먼저 '에로틱 심벌이 된 여인들'에서는 조선시대 남자들의 성적 대상으로 일방적

피해자인 경우가 많았던 여자들의 한 많은 사연을 기생, 궁녀, 의녀, 첩으로 나눠서 소개하고 있다.

성을 상품화한 대표적인 에로틱 심벌인 기생들은 흔히 만인의 연인이자 풍류의 동반자로 여겨졌는데

기생은 천인 신분으로 관청에 소속되어 나라의 재산인 관리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황진이나 장녹수 등

유명 기생뿐만 아니라 기생을 둘러싼 쟁탈전이나 각종 스캔들까지 실제 실록에 있는 얘기들을 수록해서

흥미로운 사연들이 많이 등장했다. 오직 왕만 바라봐야 했던 궁녀는 궁중에서 머물며 일정한 지위를

가지고 봉급을 받는 왕조 시대의 여성 공무원이라 할 수 있었다. 관리들이 품계가 있듯이 궁녀들도

종9품부터 정5품까지 10단계로 나눠지고 상궁, 나인, 비자, 무수리 등 다양한 지위의 궁녀들이

존재했다. 궁궐 밖에서 출퇴근하고 혼인도 할 수 있는 무수리도 있는 등 그동안 사극으로 익숙했던

궁녀들의 몰랐던 면모를 잘 알 수 있었다. 대장금으로 대표되는 의녀는 정말 제대로 몰랐었는데

의료와 관련된 일만 한 게 아니라 여성 경관 역할도 했으며 조선 양반들이 최고로 선호하는 첩의

대상이기도 했다. 눈치 백 단 눈물 백 근의 서러운 삶을 살았던 첩은 자의로 첩이 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남자들의 성욕의 대상이자 노리개 거리로 강제 내지 마지못해 첩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종첩은 주인집 남자들이 언제든지 차지할 수 있는 물건이나 다름없다 보니 주인집 남자에겐

강간당하고 그 부인에겐 갖은 학대를 당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2부인 춘화와 육담의 에로티시즘에서는 적나라한 성행위 장면을 그린 춘화와 요즘으로 하면 야설이라

할  수 있는 육담의 향연이 펼쳐진다. 놀라운 것은 조선시대 풍속화의 양대 산맥이 김홍도와 신윤복이

그린 그림들 중에도 춘화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기대(?) 이상의 높은 수위여서 조선에서도 춘화와

육담이 인기(?)를 끌었음을 알 수 있었다. 역시나 인간의 본능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음을 알 수

있었는데 문제는 대부분 남성의 일방적인 성욕 만족을 위해 여성들이 희생되었다는 점이다.

3부에선 실록에 수록된 성 관련 각종 스캔들과 범죄 사건들을 보여주는데 같은 스캔들이나 범죄라도

신분의 고하 등에 따라 처벌이 달랐다.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의 음지에서 벌어지는 적나라한 성

관련 문제들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성욕은 인간의 본능인지라 무작정 통제한다고 통제될 수도

없는 것인데 유교라는 위선의 탈을 쓰고 뒤로는 강간의 왕국을 만든 게 바로 조선시대 양반이라는

자들의 행태였음을 잘 알 수 있었다. 좀 다루기 쉽지 않은 소재임에도 조선왕조실록을 토대로 하여

조선시대의 성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잘 정리해보여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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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 - 한명회부터 이완용까지 그들이 허락된 이유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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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이라고 하면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임금에게 아첨하고 나라와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만든 신하를

말하는데 역사상 여러 인물들이 떠오르지만 이 책에선 조선시대 간신이라 할 만한 9명을 선정해서

과연 간신이란 인물들이 그들만의 잘못으로 이런 오명을 쓰게 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간신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권력이 그들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리더에게는 간신과 같은

내부의 적이 필요하고,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하며, 조직은 간신이라는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는

저자의 분석은 나름 일리가 있었다. 한 마디로 간신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얘기인데 조선시대 9명의 간신을 통해 이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첫 번째 주자로 등장한 인물은 홍국영이었다. 정조의 오른팔로 정조 즉위의 일등 공신 중 한 명인

그가 간신으로 평가받는 건 좀 의외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정조 즉위 이후 자신에게 집중된 권력을

남용하다가 결국 쫓겨나게 되었지만 정조가 그에게 너무 힘을 실어준 탓도 없지 않았다. 다음 타자는

간신으로 명성이 높은 김자점이어서 충분히 수긍할 만했지만 그가 시대의 간신이 된 배경에는 그 당시

임금인 인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조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했고 권력 기반이 약했던 인조는

그를 이용해 정권을 유지했으니 간신은 혼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라 할 수 있었다. 김자점 못지

않은 간신인 윤원형도 문정왕후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는데 그가 역사에 남을 간신이 된 것도

문정왕후가 자신의 아들 명종을 임금에 올리기 위해 인종을 핍박해 죽음으로 몰고 수렴청정을 했던

비정상적 체제에 기인한 결과라고 말한다. 한명회도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비정상적인

집권을 하면서 혁명동지들에게 의지한 결과 권력의 중심에서 자신의 욕망을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었는데 세조가 죽은 후에도 자신의 사위인 성종을 왕위에 올리면서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다.

간신이라기보단 사육신들의 배신자로 명성(?)이 높은 김질은 그 날의 선택으로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겼지만 사실 사육신들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안위를 선택하기에 그렇게 비난만 할 건 아니라고 얘기한다. 친일파의 대명사인 이완용이

독립협회의 회장을 지내고 독립문 현판까지 썼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완용의 행보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모습으로 당시 상황에선 그렇게 처신하는 사람들이 흔했고

이완용이 아니었어도 또 다른 기회주의자가 똑같은 행동을 했을 거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김자점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간신이라는 임사홍과 유자광도 연산군의 부역자로 간신의 반열에

올랐지만 연산군이라는 시대의 군주와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과 대비되는

원균도 정통성이 빈약한 무능한 군주 선조가 있었기에 간신이 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 책에 나오는 9명의 간신이 모두 군주들과 시대의 산물이며 나름의 변명거리가 있음을 잘 알게

되었는데, '건강한 권력에서는 충신이, 병든 권력에서는 간신이 태어난다'는 말이 딱 맞았다.

부패한 권력에서 간신이 나온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는데 간신들에게 너무 면죄부를 준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간신의 탄생이 단순히 개인적 일탈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를 잘 지적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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