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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하루 - 실록과 사관이 미처 쓰지 못한 비밀의 역사 ㅣ 하루 시리즈
이한우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평점 :
왕조국가에서는 왕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관심의 대상이 될 정도로
왕이라는 존재는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다.
모든 역사가 왕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왕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기도 한다.
이처럼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왕의 하루는 역사의 한 장면을 장식하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는 조선 국왕들의 역사적인 하루를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먼저 기상에서 취침까지 왕의 하루 일과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간단하게 보여준다.
새벽 4시 파루에서 시작해 밤 10시 인정까지 왕의 하루는 정말 너무 빡빡했다.
기본적으로 아침형 인간만이 가능한 일과인데다, 문안인사, 조회, 경연은 물론
기본적인 업무까지 5시까지 공식적인 일과를 소화해내야 했다.
항상 사관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왕은 5시 이후에야 자신의 사생활을 가질 수 있었는데,
궁 안의 여자가 모두 자기 여자라지만 몰래 비밀연애를 할 수도 없었고
성생활마저 만인의 주목을 받게 되니 왕이라는 자리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역사를 바꾼 운명의 하루라는 소제목 하에 태조 이성계, 연산군 이융,
광해군 이혼, 소현세자 이왕, 정조 이산의 운명적인 하루가 소개되는데,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내용들과 사뭇 다른 내용들도 담겨 있었다.
이성계의 경우 마치 자신은 역성혁명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주위 사람들에 떠밀려 한 듯한
뉘앙스를 풍겼으며, 궁궐에서 태어난 첫 원자였던 연산군은
이미 왕위에 미련이 없어 반정세력의 역모를 알고도 묵인한 것처럼 그려졌다.
영화 등을 통해 재평가받고 있는 광해군에 대해선 선조의 인사원칙, 정책과 비교하면서 혹평하고 있고,
이덕일의 '조선왕 독살사건'에서도 아버지 인조에 의해 독살된 것으로 나왔던 소현세자는
이 책에서도 의심 많은 아버지에 의해 독살된 것으로 간주한다.
한편 이젠 기정사실이 되고 있는 정조의 독살설에 대해선 저자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정조 독살설은 영남 남인 유생들의 좌절된 바람의 결과물이라 치부하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결국 판단하기 나름이 아닌가 싶다.
조선시대는 개국 초부터 왕권과 신권의 격렬한 대립이 있었다.
왕권을 강화하려는 이방원에 의해 정도전 등 신권파가 제거된 왕자의 난이나 김종서를 제거하고
조카로부터 왕위를 빼앗인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은 왕권파의 승리를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지만,
조선 중기 이후 사림이 정계로 진출하면서 서서히 왕권보다는 신권이 강해지기 시작한다.
특히 조선 후기는 서인들의 세상이라 할 수 있었는데 종묘배향보다
문묘배향을 더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서인들의 태도를 통해 그들의 생각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알고 보니 전에 읽었던 '왜 조선은 정도전을 버렸는가'의 작가이기도 했는데
이전의 책에 이어 조선 역사, 특히 왕의 즉위부터 결혼, 묘호에 이르기까지
왕과 관련된 내용을 총정리하는 느낌의 책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 왕들의 묘호도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게 아니었다.
2대 임금 정종은 공정대왕이란 애매한 이름으로 불리다가 숙종때에 와서야 정종이 되었고,
단종도 노산군으로 불리다가 숙종때에 비로소 제대로 된 왕의 대접을 받게 된다.
영조, 정조, 순조도 원래는 영종, 정종, 순종이다가 고종때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선의 역사에 대해선 나름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아직 모르는 게 훨씬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시 공부는 조금 안다고 그만둘 게 아니라 끝없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