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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소리가 들려 - 청소년이 알아야 할 우리 역사, 제주 4·3
김도식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5년 3월
평점 :
❝나는 빨갱이 잡으러 제주도 내려왔지, 양민 학살하러 온 적 없어.❞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을 타고 하늘을 가르던 총탄 소리와 울부짖는 이들의 절규가 들려온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듯하다. 온 땅이 피로 젖어가던 그날의 모습이. 동백꽃처럼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던 사람들이. 누군가는 자식을, 누군가는 부모를, 누군가는 형제를 잃었다. 젖먹이까지 품에 안은 채, 한날한시에 스러져 간 그들. 매해 같은 날, 제사를 지내며 기억을 되새기는 사람들. 그들의 아픔을 우리는 얼마나 깊이 공감하고 있는가.
#바람의소리가들려 #김도식 #마디북
햇살이 초가집 위를 비추던 4월의 어느 날,
평화롭던 수혁의 집에 균열이 생긴다.
“이보게, 준규가 나온 것 같네!”
준규, 수혁, 그리고 옥희. 그들을 둘러싼 아프고도 슬픈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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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압제가 극에 달하던 시절,
수혁의 눈에 밥 굶는 전학생이 들어온다.
물로 배고픔을 달래는 아이, 준규.
아버지가 독립운동가라 했던가.
생사도 알 수 없는 아버지를 둔 채, 준규네 가족은 제주로 흘러들어 왔다. 삶은 가난했고,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면에서 가장 큰 기와집에서 자란 수혁은 그런 준규를 집으로 데려간다. 배를 곯는 친구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주고 싶어서. 그렇게 그들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그리고 그 곁에는 언제나 어여쁜 옥희가 있었다.
그러나 평온했던 삶은 오래가지 않았다.
1947년 3월 1일.
기념집회 도중, 기마경찰이 탄 말에 어린아이가 차여 도랑에 빠진다.
놀라 달아나는 경찰, 흥분한 군중.
그리고 울려 퍼진 총성.
그날, 여섯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1954년까지, 제주에서는 수많은 주민이 무력 진압 과정에서 희생되었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이야기.
존재했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묻혀 버린 역사. 제주 4·3 사건은 그렇게 오랜 세월, 침묵 속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비로소 진상규명조사단이 꾸려지기 시작했다.
너무 늦게,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그날의 피와 절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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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극 속에서도 인간은 살아간다.
살아남은 자들은 어떻게든 삶을 이어간다.
그 속에서 웃음도, 사랑도, 생명의 탄생도 존재했을 것이다. 김도식 작가는 그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총부리를 겨누는 이야기 말고, 총부리가 미처 겨누지 못한 청춘들의 삶을.
어른들에게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있다면,
청소년들에게는 김도식의 《바람의 소리가 들려》가 있다.
이 책은 철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쓰였고,
어렵지 않은 문체로 4·3 사건을 청소년들에게 가닿게 한다.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며, 제주 4·3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도 좋을 것이다.
곧 4월이다.
누군가는 기록하고,
누군가는 읽는다.
이제, 기록을 마쳤으니
독자의 몫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