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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평점 :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퇴근 후 서점을 찾았다. 무엇하나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보내는 1월이 야속해서였던 거 같다. 한산한 서점을 둘러보다가 진주를 발견했다. 소설코너에 있지만 소설 같지 않았다. 그래서 사버렸다. 이토록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이야기라는 걸 알았더라면 사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진부한 말이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한 번 보고 말았다. 진주를 통해서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했지만 가족에게 ‘우리가 아닌 삶’을 주어야 했고 스스로는 ‘혼자 행진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사실 그의 삶은 맞다. 원래 그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교육도 받으며 큰다. 하지만 그가 가족을 위한 삶을 살았더라면 그 삶은 틀린 게 되는 건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가족에게 그리고 세상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먹고사는 일에 전념한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버지의 삶은 배신당한다. 그가 소중히 했던 가치는 사람들의 우선순위에 없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우리는 좌절을 겪는다.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믿었던 항목들과 편하게 사는 것의 항목이 다르기 때문에.
얼마 전 신문에서 무연고자 시신으로 처리된 남자의 기사를 보았다. 아내와 자녀가 있었지만 그들이 시신인계를 거부했기 때문에 혼자 살던 남자는 무연고자로 세상을 떠났다. 남자의 성실함을 보여주는 이력서를 포함한 몇몇 문서들이 발견되어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가 가족에게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남편의,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지 않은 유가족이 서운했다. 아마도 그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잘 사는 것의 항목을 체크하느라 성실하고 정직하게 직진으로 달렸을지 모른다. 그러느라 편하게 갈 수 있는 샛길을 외면하고 소설 속 아버지처럼 가족들을 외롭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삶이 자꾸 배신당하면 하소연도 할 수가 없어 끝내 혼자가 되고 만다.
나의 신념은 어디에서 숨 쉬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런 말들을 듣고도 그것은 헐떡이며 살아있을지 궁금하다.
<그 고통이 당신들을 서서히 지치게 하고 쓰러지게 하고 병들게 하고 무너지게 하고, 당신들 모두가 죽어 없어진 뒤에도 이 방의 불빛은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다. p129>
새해가 되어 느끼는 들뜬 기분은 어느새 가라앉고 여느 대한민국 직장인과 같이 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다. 거기다 전염병의 위험 속에서도 꿋꿋하게 마스크를 챙겨 내 몫의 일을 해나간다.
아버지가 수감되었던 도시 진주를 제목으로 책을 펴 낸 작가 덕분에 한 사람의, 한 가족의 생을 볼 수 있었다. 퇴근 후 녹초가 되어 쓰러지는 나와 같은 사람들은 더 이상 민주화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기억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은 안다. 과거의 그들 역시 꿋꿋하게 마스크를 챙겨 문밖을 나섰을 거라는 것은 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신념은 어디에 보관해 두었는지 기억해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가 숙제로 남았다. 편안하게 사는 것 말고 잘 사는 것 말이다.